가족 휴가 기억 하나
중요한 일정들 사이에 아주 잠시 숨 돌릴 여유가 있어서 페이스북에 들어갔는데, 과거의 오늘 올렸던 글들이 보였다. 8년 전, 그러니까 2017년 7월 31일에 올렸던 글이었다. 딱 보자마자 곧바로 기억을 떠올렸다. 하, 이 날이었구나. 한 편으로 정말 즐겁고 재밌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최악이었던 휴가였다. 아마 한 1주일에서 10일 사이에 북플에도 이 휴가 이야기를 쓴 글 과거 글이 올라올 것이다. 이날은 첫 날이어서 서울을 떠나는 버스를 타고 쓴 글이었다.
어제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휴가 이야기를 하는데, 미리 꼼꼼하게 일정을 다 정해놓고 움직이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안 정하고 그냥 출발부터 하고 생각하는 편인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사전에 아무것도 안 정하고 출발하는 것을 좋아한다. 미리 뭔가를 정하고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왠지 재미가 없다. 그냥 무작정, 즉흥적으로 생각나느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이는 걸 즐긴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그냥 여행을 떠난 적도 많았다. 목적지는 가는 길에 적당히 좋은 곳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별로 문제가 없었는데, 아이들이 조금 자라서부터는 자꾸 질문을 해댔다. 아빠,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그럼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정말 실제로 몰랐으니까. 안 정했으니까. 그럼 또 아이들은 어떻게 모르는 곳으로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다시 어디 갈지 정확하게 정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거라고.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 했다. 아이들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냥 다시 묻는다. 그래서 어디 가는 거냐고? 그럼 또 나는 아직은 모른다고 답한다. 이걸 무한 반복하곤 했다.
아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면 나는 그저 그들 중 누군가가 이끄는대로 아무 말없이 따라다닌다. 나는 즉흥적으로 움직이길 즐기는데, 내가 사전에 이 여행에 대한 아무 정보 없이 누군가가 정한 대로, 원하든대로 따르면 그건 나에게는 즉흥적인 일정이 되는 거니까. 그런데 미리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뭘 타고 이런 정보를 알려주거나, 뭘 하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그냥 귀를 닫아 버리곤 한다. 사실 나는 뭔가 좋은 정보를 잘 찾아서 일정을 짜맞추는 일에 서툴다. 별로 해 본적이 없어서 익숙하지 않다. 내 주위엔 그런 일을 하는 걸 즐기고, 잘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알아서 좋은 정보들을 잘 찾아주고 적당히 괜찮은 일정을 잘 짜줄 수 있는데, 괜히 쓸데없이 나까지 거기에 에너지를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앞서 저 2017년 휴가 때는 목적지는 삼척으로 정해 두고, 하루에 딱 하나씩 큰 일정들은 정해두었지만, 나머지는 그때 그때 운에 맡겨 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 데리고 다니면서 그것도 대중교통으로 다니면서 그렇게 운에 맡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래서 서울에서 삼척으로, 삼척에서 다시 부산으로, 부산에서 다시 서울로 이동하는 교통편은 모두 사전에 예약을 해 두었다. 아이들이 꼭 타고 싶어했던 레일바이크도 미리 예약했었다. 내가 운에 맡겼던 것은 삼척 안에서 움직이는 대중교통과 매 끼니를 해결할 식당과 피곤한 몸을 누일 숙소였다. 이게 문제였다. 설마 숙소가 부족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는데, 하마터면 민박을 구하지 못해 노숙을 해야 할 뻔 했다. 그 외에도 아이들을 챙기다가 이런저런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일단 첫 출발부터 그랬다. 이건 아까 내가 페이스북 과거 오늘 쓴 글에서 발견한 내용을 그대로 올리면 되겠다. 나름 그 긴박한 상황을 잘 전하고 있는 듯하다.
아슬아슬
1. 강변역에 도착하니 배가 고팠다. 뭐 먹을 여유는 안 되고 어쩔까 고민했는데, 포장마차에 우리말이 서툰 아줌마가 금방 나온다 해서 급하게 콩국수를 먹었다.
2. 큰 아이가 음료수가 먹고 싶다 해서 쥬시에서 아이스티를 시켜줬는데, 뭔가 향과 맛이 좀 이상하다. 시간도 없는데 아이가 자꾸 투정을 부려서 가서 물어봤다. 자기네 레시피대로 한 거란다. 결국 다른 쥬스를 하나 더 사줬다.
3. 급하게 애들 화장실 보내고, 버스 타는 곳을 찾는데, 안 보인다. 승강장을 끝까지 가봐도 차가 없어서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반대편으로 가란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서 다시 물었는데, 대꾸를 안 한다. 황당해서 다시 물어보니 계속 반대편으로 가란다. 어떻게 가냐고 물었더니 알아서 가란다. 옆에서 보던 다른 사람이 이층으로 올라갔다가 내려가면 된다고 알려줬다. 이 인간 진짜 짜증나게 만드네. 뭐라 따지려다가 급해서 참았다.
4. 벌써 버스 출발 2분전이다. 다급하게 애들을 불렀다. 작은 아이 손을 잡고 후다닥 가는데, 하필 에스컬레이터에 연로하신 어르신 두 분이 가로막고 서 계신다. 이러다 버스 놓칠 것 같아서 미칠것 같았다. 짧은 에스컬레이터 올라가는 시간이 왜이리 긴지 모르겠다.
5. 앞을 가로막고 계시던 어르신은 에스컬레이터 내릴때에도 느릿느릿. 속 터져 죽을 것 같았다. 어르신이 비켜나자 작은 아이 손을 잡고 뛰었다. 아이는 힘겹게 따라오며 뭐라 말하는데, 들리지 않았다. 계단에서 애들에게 빨리 따라오라 말하고 후다닥 뛰어 내려갔다.
6. 한 아줌마 무거운 장바구니 손수레를 끌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느라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기다려줄 여유가 없어서 손수레 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슬쩍 손목시계를 보니 이미 버스 출발시간이 지나있었다.
7.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일단 뛰었다. 몇 개의 승강장을 지나자 갑자기 누군가가 손짓했다. 버스는 이미 문도 닫고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내가 버스 앞에 도착하자 곧이어 아이들도 도착했다. 허둥지둥 폰을 열어 모바일 티켓을 하나씩 찍었다. 이 직원은 무척 친절하게 서둘지 말고 천천히 하라고 말해준다. 앞서 반대편에 있던 직원이 좀만 친절했어도 3분은 벌었을 것 같다.
8. 직원과 버스 기사님께 큰 소리로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모두의 눈총을 받으며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기다려줘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 버스를 놓쳤다면 완전 일정이 꼬였을 거다. 아까 불친절 했던 직원에 대한 원망도 사라졌다. 미리 승강장을 잘 알아보지 못한 내 탓이다.
9. 아슬아슬 무사히 버스를 타서 감사한 마음으로 휴가를 시작한다. 서울 안녕!
10. 큰 아이의 말대로 이 아이스티 진짜 맛 없다!
아침에 서둘러 아이들을 챙겨 움직이느라 버스 시간보다는 훨씬 여유있게 강변 터미널에 도착했지만, 나는 조금 출출했다. 삼척까지는 꽤 거리가 있으니, 뭔가 먹고 싶었는데, 식당을 갈 여유는 없었다. 아이들은 배는 고프지 않다고 음료수를 사달라고 했다. 나는 터미널 앞에 뭔가 먹거리들이 다양하게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도 운 좋게 콩국수를 얼른 먹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시간 여유가 별로 없어서 얼른 움직여야 했는데, 아이들이 먹던 아이스티에서 이상한 맛과 향이 난다고 했다. 아마 계피였던가? 암튼 아이들이 투덜대서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 바꿔달라고 따졌는데, 그 매장은 원래 계피를 쓴다고 했다. 그렇다니 어쩔 수 없이 다시 다른 음료를 주문했다. 이때부터 사실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다.
문제는 내가 강변역 터미널을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시외버스 터미널과 고속버스 터머널이 나뉘어 있고, 서로 어떻게 분리되어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올린 이 페이스북 글에 여러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주었는데, 한 친구가 자신도 강변역 터미널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암튼 아이들이 화장실을 다녀올 동안 나는 얼른 버스 승강장 위치를 찾아봤는데 없었다. 여기서 충격을 받아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분명 나는 강변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했고 여기 왔는데, 버스 승강장이 없었다. 건너편 다른 건물 앞에 또 승강장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멍해졌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려 해도 마땅한 사람을 바로 찾지 못했다. 당황해서 막 돌아다니다가 누가 봐도 직원인 것 같은 배 나온 아저씨를 발견하고 질문을 했는데, 하필 그 사람이 너무 너무 너무 불친절한 사람이었다. 저 건너편이라고 알려주고, 계단을 올라 2층을 통해 이동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그는 그냥 입을 닫아버렸고, 나는 어떻게 가요? 하고 반복해서, 점점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그걸 옆에서 본 다른 사람이 알려줬다. 2층으로 올라가 건너 가라고.
이때 이미 버스 출발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있었고, 나는 얼른 아이들을 찾아 계단을 향했다. 짧은 계단이어서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에스컬레이터를 선택했는데, 하필 중간 쯤에 노 부부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앞을 막아버렸다. 죄송합니다. 좀 지나갈게요. 라고 말을 하기엔 우린 짐이 많았고, 뭔가 사고가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짧은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건너편으로 건너 갈 때는 정말 전력 질주에 가깝게 달렸다. 작은 아이는 내가 손을 잡고 있어서 버겁게 따라왔지만, 뒤에 있던 큰 아이는 놀라서 뭐라고 소리를 쳤던 것 같다. 그때는 이미 버스 시간이 다 되어서 아이를 신경쓸 수 없었다. 이걸 놓치면 긴 휴가 일정이 전체가 무너지는 거라 무조건 뛰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미 버스 출발 시간이 지났음에도 예약한 사람 중 셋이 덜 탔다는 걸 알고 있던 직원이 미친듯이 달려오던 나를 발견하고 막 출발하려던 버스를 붙잡았던 것, 그 분은 무척 친절한 사람이라 땀 범벅인 내가 숨을 헐떡이며 폰을 꺼내 모바일 티켓을 여는 과정에서 죄송합니다. 라고 연신 말하고 있는데, 천천히 하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상황이 정말 고마웠다. 7월의 마지막 날, 한 낮이었으니 얼마나 더웠을까? 그 더위에 계단을 오르내리며 뛰어다녔으니 얼마나 땀을 흘렸을까? 출발부터 참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여기까지 써놓고 그 당시에 내가 쓴 기억이 있는 휴가 이야기를 내 서재를 뒤져 찾아봤다. 휴가를 다녀와서 바로 썼던 것은 아니고 거의 한 달 후에 썼더라. 그리고 내가 지금 기억에 의존해 쓴 것과 거의 같은 느낌이었다. 암튼 그렇게 어렵게 출발한 후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삼척과 같은 지역의 소도시에서 대중교통으로만 여행을 하기는 정말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 더위에,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서 한 시간이 넘게 버스를 기다리기도 했다. 버스가 아닌 택시 때문에도 엄청 애를 먹었다. 검색해서 전화를 해 봤던 삼척의 콜택시 회사들은 번호와 상호는 다른데, 받는 사람은 모두 한 사람이었다. 같은 여성이 매번 당장 갈 수 있는 기사님은 안 계시니 좀 여유있게 기다리시면 찾아보겠다는 어이없는 답이 돌아왔다.
음, 이렇게 쓰려면 레일바이크와 노숙을 할 뻔했던 상황과 휴대폰 분실과 부산에서 방문을 부순 이야기까지 다 쓸 수가 없을 것 같다. 아, 아까 찾아낸 8년 전에 쓴 글을 링크로 남기면 되겠구나. 8년 전의 다사다난했던 휴가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이 계시다면 아래 링크로 가시길.
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9596918
올해는 여러 이유로 짧은 휴가를 다녀올 예정이다. 작년에 부산으로 가면서 사직구장의 표를 알아봤는데, 정말 기적처럼 응원단상 바로 근처 좋은 자리 3개를 구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아이들도 계속 수도권 구장에서 원정석에 앉아 보다가, 홈 구장에서 경기를 봐서 엄청 좋아했다. 게다가 그날 롯데는 엔씨를 크게 이겼고, 홈런도 쳤다. 그 후로 큰 아이는 여러번 사직 구장에 다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부산 일정을 잡으면서 가능하면 사직구장에 야구가 있는 날로 맞춰보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게다가 작년과 달리 올해는 더더욱 표를 구하기가 어렵다는데, 작년처럼 그렇게 좋은 자리가 아니더라도 외야석 마저도 구하기 어렵다고 하더라. 언젠가 또 기회가 오겠지. 어쩌면 롯데가 가을야구에 진출한다면 좀 무리해서라도 표를 구해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