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운 날을 견뎠던 것은 휴가 덕분이었다. 올해 여름은 평창과 부산에서 재밌게 놀다 올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휴가를 이틀 앞두고 역기를 들다가 무릎을 다쳤다. 스내치 동작 중에 균형이 흐트러지며 무릎에 통증이 왔다.
덕분에 부상자 신세로 휴가를 떠나 일주일을 지냈다. 일상이었다면 뭐 그리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있겠지만, 휴가라서 매우 독특한 경험이 되었다. 다행히 나는 일시적으로 잠시 몸이 불편한 상태로 여행을 다녀왔지만, 평생 그 불편을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휴가나 여행이 얼마나 힘든 경험일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흔치 않은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 자판을 두드려 본다.
전날 밤
휴가 가기 전날 밤엔 일찍 잠들었다가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해야지 생각했건만, 더위 때문에 새벽 세시쯤까지 잠들지 못했다. 분명 일찍 자려고 누웠건만, 자꾸만 땀으로 젖는 베개를 돌려 베고, 젖은 깔개를 벗어나 마른 곳으로 옮겨다니다 보니 그 시간이었다. 선풍기 두 대를 교차로 켜 놓아도 그랬다. 도무지 참지 못해서 찬 물로 샤워도 두 번이나 했다.
아, 더위 더하기 아픈 무릎 때문에도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무심결에 조금 움직이다가 무릎 통증을 느껴 고통을 참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새 얼음팩을 번갈아 냉동실에서 꺼내와 무릎에 대놓고 있었다. 처음엔 수건을 깔고 그 위에 댔는데, 하나도 차갑지 않더라. 그래서 맨 살에 바로 대고 수건으로 대강 고정시켜놓고 잤는데, 처음엔 살갖이 시려웠지만, 나중엔 아무렇지 않더라.
아니 생각해보니 잠시 졸다가 깨긴 했다. 그 주 내내 더위와 슬픔과 쌓여있는 일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느라 제 정신이 아니었고, 잠을 잘 자지 못해 늘 피곤한 상태였으니까. 그래도 계속 깼고, 결국 세 시가 넘어서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고 컵에 얼음을 반쯤 채워왔다. 술이라도 마셔야 잠이 올 것 같아서였다. 다시 냉장고를 열어봐도 마땅한 안주는 없었다. 휴가 가기 전에 집에 음식을 남겨두지 않으려고 음식을 사지 않았고, 있던 음식들은 이삼일 동안 다 먹어치웠다. 라면이 두 개 남아있었는데, 끓여 먹기가 끔찍하게 싫었다. 그 더위에 가스불을 켜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그냥 생라면을 부셔서 안주로 삼았다.
아마 얼음물을 탄 소주는 잘 넘어갔다. 한 병을 다 비우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병을 다 비우고도 생라면이 남아서 술병을 치우고도 남은 라면을 오독오독 씹어먹느라 시간이 좀 더 걸렸다. 마침내 라면을 다 먹어치우고 잠시 고민했다.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팔 힘으로 몸을 지탱하며 힘들게 몸을 일으키며, 순간적으로 무릎에 느껴지는 통증을 견디며, 화장실로 가서 이를 닦고 돌아와서 드러누울까, 아니면 지금 앉은 자세에서 그냥 뒤로 드러누울까. 아주 잠시 머리속에서 고민하긴 했지만, 답은 뻔했다. 되도록이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라는 생각을 하며 양치 하지 않고 누운 행위를 스스로 정당화했다. 아까 그 아픈 무릎으로 소주도 꺼내오고, 얼음도 꺼내오고, 라면도 가져왔으면서 말이다.
잠들기 전에 계속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씻은 듯이 무릎이 나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휴가를 떠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난 종교를 믿지 않으니 기도 따위 하진 않았지만, 그날 만큼은 아마 기도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첫날 아침
혹시 늦게 일어날까봐 알람을 여러개 맞춰놓고 잠들었는데, 첫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깼다. 이 더위에 늦게 일어날 걱정 따위는 필요도 없었다. 다만 눈도 뜨고 정신도 들긴 했는데, 몸을 움직이기가 너무도 싫었다. 혹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살짝 다리를 움직여봤다가 무릎 뼈와 인대 사이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이를 악 물고 신음을 흘려야 했다. 수건으로 대충 고정시켜 둔 얼음팩이 다 녹아 흐물거리는 상태로 무릎에 붙어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하루 밤 얼음 찜질을 한다고 늘어난 인대가 다 나을 리는 없었다. 부상 당한 그 순간 느꼈다. 어쩌면 한 달 이상, 심하면 두어달 고생하겠구나. 근데 하루만에 낫길 바라다니. 근데 이 다리로 진짜 휴가를 가긴 갈 수 있는 걸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아니 일어나는 것 조차 너무나도 힘들고 옷을 입는 일만 해도 꽉 깨문 잇몸 사이로 신음을 흘리며 간신히 해내는 상태인데, 어떻게 휴가를 갈 수 있지? 머리는 절로 혹시라도 있을 불상사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함께 들어가지 못하고, 아이들만 계곡에 들어가서 놀다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이 무릎으로 뛰어가지도 못할텐데. 불길한 생각은 한 번 들기 시작하면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이번엔 작은 아이가 혼자 신나서 뛰어가는데, 나는 무릎 때문에 쫓아가지 못하고,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자동차가 아이를 치어버리는 상상이라던가, 크고 작은 바위를 오르내리며 계곡을 지나는데, 큰 바위 위에서 작은 아이가 무서워하며 움직이지 못하는데, 나는 무릎 때문에 아이를 잡아주거나 안아서 내려주지 못하고, 순간 몸을 휘청한 아이가 바위에서 떨어져 다치는 상상이라던가.
암튼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불길한 상상들만 하다가 시간을 제법 보내다가 이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어서야, 신음 소리와 함께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어제 생각엔 이 무릎 상태에도 불구하고 내가 먼저 아이들을 데리러 가서 아이들의 준비 상태를 챙긴 후에 함께 여행갈 가족을 만나러 걸어가려 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한 발짝, 두 발짝 집안에서 씻고, 짐을 챙기느라 움직이면서 그 생각은 싹 지워버렸다. 이 무릎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없었다. 우리를 태워가기로 한, 같이 여행갈 가족의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무릎 부상으로 움직이기 힘들어요. 죄송하지만, 저희 집으로 데리러 와주시면 같이 애들 만나러 가야겠어요. 라고 쓰고 집 주소를 덧붙였다.
그리고 싸놓은 짐을 점검하다 보니, 수영복을 빠뜨렸다. 무릎이 아프니 무의식적으로 수영복을 챙기지 않았던 것인가. 가져가도 쓸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걸까? 그래도 아무리 무릎이 이래도 애들만 계곡과 바다에 넣어둘 수는 없으니, 수영복은 꼭 필요했다. 근데 어디있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이사 후 수영복을 어디다 정리해뒀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여기저기 수영복이 있을만한 공간들을 다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없었다. 여기도, 저기도, 저 구석에도, 이 구석에도 없었다. 결국 나를 데리러 집 근처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을 때까지도 수영복을 찾지 못했다. 포기하고 그냥 가야하나 생각하다가 문득 떠올랐다. 작은 방 저 구석에 처박힌 잡동사니가 담긴 종이가방에 있을 것 같았다. 그 종이가방을 찾기 위해 한참을 뒤져서 간신히 그 안에서 수영복이 담긴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차를 세워두고 기다리던 이는 내 절뚝거리는 걸음을 보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나는 비탈길을 최대한 빨리 걸어내려가려고 애썼건만, 뒤뚱뒤뚱 절뚝절뚝 걸음은 자꾸만 나를 붙잡았다. 차에 타는 것도 문제였다. 차에 타려면 반드시 무릎을 굽혀야 했고, 그 순간 뭔가 날카로운 것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것 같은 통증이 왔다. 그리고 뒤이어 기분 나쁘기 길게 이어지는 둔중한 통증을 느꼈다. 집에서 계단을 내려와 비탈길을 걸어서 차에 타기까지 그 짧은 길이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도 된 듯 길게 느껴졌고, 그 여정 끝네 털썩 앞 좌석에 몸을 묻은 나는 마치 올림픽 경기장에서 100미터 달리기 결승전이라도 뛴 것처럼 피곤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휴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가 아팠다.
운전 교대
몇 년 전까지 아이들과 함께 살았던 집으로 가면서 큰 아이에게 전화했다. 짐 다 챙겼으면 준비해서 집 앞으로 나와있으라고 했다. 그렇게 말했지만, 결국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신발도 신지 않고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역시 그랬다. 우린 집 앞에 도착해서 한참 기다렸다. 다리가 괜찮았다면 내가 올라가서 애들을 데리고 내려왔겠지만, 차에서 내렸다가 다시 탈때 느낄 그 고통을 떠올리니 여기서 꼼짝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가방을 하나씩 메고 내려왔다. 나는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고 손짓으로 애들을 불렀다. 아이들은 뒷 좌석에, 함께 여행가는 가족 3형제 중에 유일한 딸인 둘째 옆에 차례로 탔다. 애들은 서로 인사를 했고, 나는 운적석에 앉은 이에게 길을 알려주며 간접적으로 출발을 명했다.
평창까지는 생각보다 먼 길이라 도중에 운전을 교대해 줄 생각이었다. 가다가 적당히 휴게소에서 어른들은 커피를 한 잔씩 하고, 애들은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씩 물려주고 잠시 쉬다가 다시 출발할 때는 내가 운전할 생각이었다. 가능하려나? 이 다리로. 생각해보니 안 될 것도 없었다. 나는 무릎을 굽힐 때 통증을 느끼지만, 어차피 브레이크와 엑셀을 밟기 위해 오른발은 편 상태로 있어야 하고, 운전을 하는 행위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운전대를 잡은 이는 시간이 흐를 수록 길이 막히니 조금이라도 더 멀리 가서 쉬던가 밥을 먹자 했다. 가는 도중에 다른 차로 이동중인 이 가족의 아내와 아들들은 점심을 어떻게 할 건지, 따로 각자 먹을지, 아니면 어느 지점을 정해놓고 만나서 함께 먹을지 문자로 물었다. 운전중일테니 일부러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한참 후에 답이 왔는데, 쿨하게 각자 먹자고 했다. 우린 평창에 들어와서 목적지인 계곡 입구까지 들어와서 식당을 찾아 주차했다. 차에 타는 일보다 차에서 내리는 일은 생각보다 덜 힘들었다. 차문을 완전히 끝까지 열어젖히고, 무릎을 편 상태로 오른발을 콤파스 돌리듯 돌려 차 밖으로 뻗고, 왼발에 힘을 줘서 엉덩이를 들면 일어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그제서야 아빠가 무릎을 다쳤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큰 아이는 걱정스러운지 절뚝이는 내 곁으로 와서 부축하려고 했다. 작은 아이는 평소처럼 내 옆에서 손을 붙잡았다. 그 순간부터 아이들은 휴가기간 내내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다친 아빠를 돌보는 기특한 아이들.
긴 시간 운전한 이는 이 동네 막거리를 마시고 싶어했다. 내가 운전할테니 걱정말고 마시라고 했다. 나는 맛만 보려고 반 잔만 마셨다. 두 집의 딸들은 입맛이 완전히 달랐다. 저쪽집 딸은 동태찌게를 시켜 맛있게 먹었고, 우리집 딸들은 감자전으로 배를 채웠다. 음식은 맛있었다. 특히 도토리묵이 정말 맛있었고, 막걸리도 맛있었다. 운전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 잔 밖에 못 마신 것이 살짝 아쉽긴 했으나, 그날 밤에 많이 마실 예정이었으니 괜찮았다.
약속대로 운전대를 잡고 출발했는데, 예상했던 대로 별 어려움은 없었다. 차가 낯설어서 차에 익숙해지는 데 조금 시간이 필요했을 뿐.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계곡을 오르는 외길은 좁았고, 시간이 점심 무렵이라 내려오는 차들이 많았고, 좁은 길을 양쪽 차들이 간신히 지나는 일이 좀 무서웠다. 특히 남의 차를 몰고 있는 입장에서 이 차의 너비를 눈대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계곡
숙소에 도착해 다른 차를 몰고 온 그 집 식구들과 합류하고, 아직 방을 청소중이라고 해서 먼저 계곡을 향했다. 그 계곡으로 자갈과 바위로 된 험한 길을 내려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갈 수 있겠지, 설마 못 가겠나 싶었다. 나중에 막상 가보니 진짜 못 내려가겠더라. 그래도 애들이 계곡에서 놀려면 내가 함께 내려가야 하니 억지로 고통을 참으며 내려갔는데, 정말 아프고 힘들었다.
그래도 계곡 물에 발 담그고 평상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기분은 진짜 짜릿했다. 아이들도 신나게 잘 놀았다. 정말 시원했다. 서울에서 느꼈던 그 끔찍한 더위는 남의 나라 얘기 같았다. 그 고통을 참고 힘들게 내려오길 잘했다 싶었다. 하지만 앉아 있는 내내 무릎이 욱씬욱씬 아팠다. 그때까지만해도 압박붕대를 구하지 못해 맨 무릎으로 다녔다. 만약 압박붕대를 처음부터 구했으면 그렇게까지 악화되지 않았을텐데, 처음 집을 나설 때는 그 생각을 못했고, 나중에 생각이 난 후에는 살 곳을 찾지 못했다.
오후 늦게 이제는 올라가려고 하는데, 그때부터 다리를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무릎 통증 만이 아니라 무릎 주위 근육들이 다 무리를 해서 더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내 다리인데도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없고 감각도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큰 아이가 내 상태를 보더니 다가와 부축했다. 하지만 그 오르막길은 누가 누굴 부축해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다행히 내 무릎은 내려가는 계단과 내리막길이 힘들지, 올라가는 계단과 오르막길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비록 울퉁불퉁 불규칙한 바위를 요리조리 잘 밟고 올라야 했지만. 어쨌든 아이를 안심시켜 먼저 올려보내고, 나도 뒤따라 힘겹게 올라갔다.
압박붕대
저녁이 되어 함께 온 가족의 남편은 숯불에 고기를 구울 준비를 했고, 아내는 밥과 야채와 애들 먹을 거리들을 챙겼다. 나는 뭐하나 도와주지 못하고 내 말을 듣지 않는 내 다리를 원망하고 있었다. 무리해서 계곡을 다녀온 덕분에 이제 걸음을 걷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도중에 장을 보러 나간 이에게 압박붕대를 구해달라 했건만, 파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결국 붕대를 구하지 못한 채로 고기를 먹으로 방을 나섰다. 하필 숙소가 2층이라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큰 아이는 이것저것 음식과 그릇과 수저 등을 나르느라 바빴고, 한 발 한 발 다리를 질질 끌며 고기를 먹으러 계단으르 내려가는 나와 옆에서 뭐라도 도와주려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켜보는 작은 아이를 펜션을 운영하는 선배님이 보셨다. 아까 낮에 마주쳤을 때도 다친 다리를 보고 걱정하셨는데, 이제 잘 걷지도 못하는 날 보고는 뭐가 필요냐고, 지팡이를 줄까 물으신다. 압박붕대가 필요하다 했더니, 구해보겠다고 인근 펜션 사장님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하셨다.
마침내 함께 온 두 가족 8명이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저쪽 집 남편은 열심히 고기를 구웠고, 아내는 애들 밥을 챙겨먹였다. 나는 그집 남편을 도으려 불판 앞에 섰으나, 별 도움은 못 되고 그냥 시늉만 하며 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고 고기도 거의 다 구워서 맥주를 마시며 고기를 먹고 있는데, 펜션 선배님이 오셔서 압박붕대를 내밀었다. 마침 근처 한 군데서 있다고 해서 가지러 다녀오신 듯하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그자리에서 붕대를 감았다. 무릎 때문에 고생한 시간이 길어서 붕대를 감는 건 너무나도 익숙했다. 잠시 후에 선배님이 소주를 두 병 갖고 오셨다. 우리도 소주를 사오긴 했는데, 냉장고에서 꺼내오질 않고 맥주만 홀짝이고 있었다. 아마 내가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면 제일 먼저 소주부터 가지러 갔을텐데, 누구 심부름 시키기도 미안해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선배님이 구원자였다. 그때부터 우리 자리에 합석한 선배님과 어른 3명은 늦은 시간까지 웃고 떠들며 술을 마셨다.
술. 술. 술
유쾌한 시간이었고, 서로 많은 얘길 나누며 교감도 많이 했다. 그날 신기하게도 술이 잘 들어갔다.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술을 마셨다. 이상하게 엄청나게 많이 마셨는데도 취하지 않았다. 선배님은 가져온 소주병이 비면 금방 또 창고로 가서 서너병을 가져오셨다. 아이들은 금새 방으로 올라갔고, 어른들만 남았는데, 그 가족의 아내는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대화만 나눴고, 남자 셋이서 소주를 마셨는데, 주로 선배님과 내가 잔을 비우는 속도가 빨랐다. 암튼 셋이서 몇 병이나 마셨던가? 나중에 세보니 놀란만한 숫자였다.
늦은 시간 선배님은 조금 취하셔서 주무시러 가시고, 우린 먹은 자리를 대강 정리하고 방으로 올라가서 더 마셨다. 그 집 남편은 좀 마시다가 먼저 자러 갔다. 특이하게 본인이 코를 매우 심하게 곤다고, 특히 술 마신 날엔 장난 아니라고 말하며 방에서 자지 않고, 혼자 차에서 자겠다고 나갔다. 복층 구조라 그 집 아이들 셋과 아내는 계단 위 다락방처럼 생긴 공간에 누웠다. 덕분에 나와 우리 애들이 아랫층을 다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나는 이미 술을 제법 마셨음에도, 평소였으면 벌써 뻗어버렸을 양이었는데 너무 멀쩡한 게 신기했다. 그래서 더 마셨다. 애들은 내 양 옆에서 안주를 주워먹으며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어차피 휴가라 애들이 늦은 시간까지 안 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원하는대로 하도록 두었다.
나는 우리가 사온 소주를 다 마시고, 냉장고를 뒤져 막걸리도 큰 통을 하나 다 비우고서야 상을 대강 치우고 누웠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날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게 술의 힘으로 다리의 통증을 잊으려는 무의식 때문이 아닐까. 아니 뭐 나는 늘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니 그런 이유를 붙이는 게 우습긴 하다. 다음날 아침에 다락방에서 잤던 그집 아내의 말을 들으니 새벽에 내가 통증 때문에 신음소리를 여러번 냈다고 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간단히 정리만 하는 정도로 쓸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쓰다간 둘째날부터 마지막날까지 다 쓰면 하루종일 걸려도 모자랄 것 같으니, 간단히 요약만 해야겠다. 우린 평창에서 2박3일을 놀았다. 압박붕대를 감고 나서는 한결 움직이기가 수월했다. 푹 잔 덕분에 근육 피로도 조금은 풀렸다. 둘째날은 계곡에서 놀고, 셋째날은 짐을 싸서 강릉으로 갔다. 강릉에도 송정해수욕장이 있던데, 거기서 저쪽집 식구들은 바다에 들어가 놀았고, 우리 식구들은 곧 부산가는 버스를 타야해서 바닷물에는 발만 담갔다가 말리고, 해송이 만든 그늘에서 쉬었다. 그리고 부산행 버스를 탔다.
다른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간 일은 처음이었다. 결혼 생활을 할 때도 아내 친구가 동행한 적은 있었지만, 가족 단위로 함께 움직인 적은 없었다. 다치지 않았다면 훨씬 더 재밌게 잘 놀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재밌게 잘 지내다 왔다. 그 집 부부가 많이 도와주고 배려해준 덕분이다. 그집 남편은 묵묵히 잘 챙겨주고 도와주었고, 그 집 아내 역시 내내 먹을 것들을 챙겨주고 사소한 것들까지 잘 배려해줬다. 함께였기에 여행을 할 수 었었다. 고마웠다!
부산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여동생은 다친 무릎을 보고 난리가 났다. 이 무릎으로 휴가를 왔냐고 타박하고, 애들 데리고 놀러가려고 하면, 다리도 성치 않은 놈이 애들 데리고 어떻게 다닐 거냐고 난리쳐서 제대로 놀지도 못했다. 우리 애들과 조카들까지 5명을 데리고 해수욕장을 가려고 했는데, 하도 식구들이 난리를 쳐서 간신히 설득했다. 아버지가 동행해서 해수욕장을 한 번 겨우 다녀왔다. 해마다 휴가로 부산에 오면 적어도 두세번 이상 바다에 다녀왔는데, 아니 애초에 그러려고 휴가를 오는 건데. 아까운 시간만 실내에 에어컨 켜고 보냈다. 그 며칠간 내내 시끄러운 조카들의 싸우는 소리, 노는 소리를 들으며 지냈다. 조카들은 예전처럼 놀아달라 하는데, 다리가 아프니 예전처럼 놀아주지 못하고 나는 내내 잠만 잤다. 어차피 나가 놀지도 못하니 회복이라도 확실히 하자 싶었다.
어머니의 성화로 한의원에 한 번 다녀왔다가 원장의 어이없는 행동에 질려서 다시는 안 가겠다고 선언했고, 아버지 차를 몰고 근처 마트를 한 번 다녀왔다. 토요일엔 주말 부부인 매제가 돌아와서 온 식구가 아버지 생신을 축하하러 외식을 했다. 엄청 고급스러워 보이는 해변 근처의 큰 식당이었는데 층별로 취급하는 요리가 달랐다. 우린 오리고기를 먹었는데, 고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일하는 직원들의 태도는 나빴고, 가격은 더 나빴다.
평창에서도 부산에서도 내내 짐만 되는 내 처지가 한심해서 설겆이와 청소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최대한 하려고 노력했다. 다들 다리도 성치 않은데 그냥 두라고 했지만, 걷는 게 힘들지 가만히 서 있는 건 괜찮으니 서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괜찮다. 오히려 의자 없이 바닥에 앉거나 누워 있는 일이 내게는 더 힘든 일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후 이삼일 지나자 무릎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아직 완전히 정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혀 굽히지 못하던 무릎을 살짝 굽힐 수 있게 되었고,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혹시 실수로 무릎이 접히며 다시 부상을 당할까봐 여전히 압박붕대는 감고 다니지만, 붕대가 없어도 걷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예상보다 회복 속도가 더 빠른 것 같다. 부산에서 어머니가 계속 전자침이라는 뾰족한 침이 네 귀퉁에 각각 달린 네모난 플라스틱으로 계속 무릎을 찔렀는데, 그 덕분일 것이다. 또 조그만 크기의 저주파 자극기를 하루에 이삼십분씩 하고 앉아 있었는데, 그것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그 두 가지가 억지로 움직이느라 혹사당한 무릎 주변 근육들을 풀어주고, 회복시키는데 도움을 주었겠지만, 정작 다친 부위인 인대에는 크게 도움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대는 저 뼈 안쪽 깊숙한 곳에 있어서 직접 맛사지하거나 치료할 수 없으니까.
이젠 더이상 혼자 누워있다가 일어서는 일이 무섭거나 고통스럽지 않고, 내려가는 계단과 내리막길이 그리 공포스럽지 않다. 물론 혹시라도 발을 잘못디뎌 악화될까봐 조심하기는 한다. 조심조심 잘 회복하고 남은 여름을 잘 버텨야겠다.
마지막은 역시 책 이야기
페이스북에서 이 책 소개를 봤다. 우리 딸들에게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애들엄마가 사줄 수도 있겠지만, 그전에 내가 먼저 사줘야겠다. 알라딘에 주문하기 보다는 동네서점에 애들이랑 놀러가서 사주는 것이 더 좋겠지. 주말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