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보슬비 > 한지에 생명을 불어넣은 화가, 양선홍

..






한지에 생명을 불어넣은 화가, 양선홍




4月의 편지



生의 숨결



가을 숲


가을 여정



나비



공작



가을의 안식Ⅱ


전원 교향곡


무제



그 곳



무제2



무제1



양선홍은 애초에 자연을 모방하거나
자신의 기질과 관계없는 방법을 외면해버리고
자신의 시각적 방식으로 이해되는
색채와 목소리로 작품을 해 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환상의 리얼리티라는 조어로서
정의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현상적 모든 물체를 평면 위에 묘사한다는 일반적 이해와는 거리가 멀다.
이미 정신이 육체의 속박을 떠나서
주체도 객체도 멸해 버린 자연의 경지로 돌아가
문명과 제도를 바라보는 빈(空) 마음인 때문이다.

시인 이정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보슬비 > 제주 민중의 한을 품고 핀 '피뿌리풀'

[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2004 김민수
이번에 소개해 드리는 꽃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이고, 제주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동부지역에서 드물게 만날 수 있는 귀한 꽃입니다. 그러니 참 귀한 꽃인 셈이죠.

작년에 고사리를 꺾으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꽃, 첫 만남인데도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선명하게 각인되었으면 봄이 시작되자 언제 만날까 마음을 졸였던 꽃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졸인 이유는 귀한 것이라면 무분별하게 채취해 가는 사람들의 소유욕과 마침 작년에 피뿌리풀을 만났던 그 근처에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있었기에 올해는 못 보나 했거든요.

ⓒ2004 김민수
'피뿌리풀'이라는 이름이 붙은 내력은 뿌리의 색과 꽃의 색이 마치 핏빛 같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뿌리는 확인해 보지 못했지만 막 피어날 무렵의 꽃은 정말 핏빛 같습니다.

그런데 이 꽃은 희귀성을 떠나서 자생지가 아닌 곳에서는 활착이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니 피뿌리풀은 가져서는 안될 꽃인 셈이죠. 섣불리 가지려고 하면 자신도 가지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이 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아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야생화 사이트에 피뿌리풀을 찍어 올렸더니 꼭 한 번 실물을 보고 싶다는 지인이 계셔서 어디쯤 가시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분이 다녀오셔서 30개체 정도 피어 있는 것을 보았고 20개체 정도는 뽑혀간 것을 보았노라고 분노하셨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년에는 그 곳에서 볼 수 있을 것인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2004 김민수
꽃이며 뿌리까지 붉은 피뿌리풀의 자생지는 제주의 동쪽지역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주의 동쪽은 제주에서 가장 소외된 곳이기도 하고, 어려운 시절마다 고난의 정점에서 고난을 당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피뿌리풀을 만난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1948년 4·3항쟁 당시 토벌대에 의해서 사라진 마을이 멀지 않았기에 피뿌리풀은 제주 민중의 피를 품고 있는 꽃만 같았고, 예뻐서 뽑혀져 나가는 그들의 운명이 마치 외세에 의해서 삶의 근간을 위협 당하는 민중들의 삶을 보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주 민중들의 피를 품고 핀 꽃, 그것이 바로 피뿌리풀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2004 김민수
애들아.

제주는 여자와 돌과 바람이 많아서 삼다도라고 한단다. 그런데 왜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을까? 그래, 전쟁이 잦으면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많이 죽게 되니 자연 여자가 많아지는 것이란다. 그러니 제주에 여자가 많았다는 것은 전쟁이 많았다는 이야기와도 연결이 될 것이다.

삼별초항쟁, 일제시대, 4·3항쟁 등등 제주는 늘 전쟁의 크고 작은 소용돌이 속에서 늘 남정네들은 싸움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단다. 제 구실을 하는 남자들은 모두 전쟁터로 끌려가니 생계를 위한 일은 여자들이 도맡아 할 수밖에…. 그러면서 제주의 여성들은 점점 더 강해졌어. 제주의 항일운동하면 해녀를 떠올리는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란다.

척박한 땅이다 보니 밭일과 가까운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해서 근근히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여성들이 생계의 무게를 더 감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주의 동쪽에는 오름이 많단다.

그 오름들 너머에 한라산이 있으니 어쩌면 제주의 동쪽은 천혜의 요새였고, 몸을 숨길 수 있는 좋은 곳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을 폭도로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공격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결국 제주 중산간, 그것도 동쪽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들이 오름에서 들에서 죽어갔단다. 이 제주 민중들의 피를 먹고 피어난 꽃이 피뿌리풀이라면 믿어지겠니?


ⓒ2004 김민수
피뿌리풀을 보면서, 제주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서 '한라산'이라는 노래를 떠올렸습니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 흩날리는 이녘의 땅 / 어둠 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 검붉은 저녘햇살에 /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다


물론 유채꽃이야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이니 '피에 젖은 유채꽃'이라는 표현은 틀리다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상징적인 의미로는 틀리지 않겠지요.

ⓒ2004 김민수
이번엔 몸이 영 시원치 않아 유채를 갈아 버렸수다게. 맴은 아팠지.

그러나 고건 하영 낫으로 베어야 하고, 말려서 다 털어 봐야 얼마 되지도 않으니 뙤약볕에서 죙일 그거 해봤자 본전도 안 된다말씨. 차라리 거름으로 쓰는 게 낫지. 작년에 그거 베느라 고생한 거 생각하면 지금도 오싹하네.


제주의 투박한 사투리를 그대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도 유채밭마다 유채를 베는 손길들이 분주하기만 합니다.

삶이란, 그 땀흘림이란 것이 다 물질로 보상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행복도 그러하기에 몇 푼 안 되는 것을 위해 그 이상의 땀을 흘린다고 할지라도 그냥 묵묵히 소금땀을 흘리는 것이 농심인 것이죠.

ⓒ2004 김민수
피뿌리풀.

이 꽃을 우리의 후손들도 보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책임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 3월에 피뿌리풀을 재배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조만간 자생지에 피뿌리풀을 심을 날이 올 것이라니 기대를 해 보기도 합니다.

참으로 예쁜 꽃, 참으로 슬픈 꽃을 만났습니다. 앞으로도 그 꽃이 필 무렵이면 나는 그 곳을 배회하며 그들과 눈맞춤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변방의 섬 제주의 역사를 점점 깊이 내 몸 속에 새기며 더욱 더 깊이 제주, 그리고 이 땅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보슬비 > [퍼온글] 피카소의 청색 시대


The Tragedy, 1903


어느 맹인의 식사



 

 

 

 

 

 

 

 

 

 

 

 

 

 

늙은 기타수

                                                           다림질 하는 여인

청색시대 (The Blue Period, 1901-1904)

화가들, 특히 성공한 화가들에게도 무명시절이 있었지요.
피카소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는데요.
피카소는 19세때 바르셀로나를 떠나 낯선 파리에서 생활하게 되지만,
거처할 곳이 없어 몽마르트 언덕에 사는 친구 막스 자콥의 방에 끼어살면서 지내게 됩니다.

당시 세기말의 영향으로 피카소는 이 시기에,
페시미즘적이고 고뇌주의적인 분위기에 휩싸여서 그의 그림의 주조가 짙은 푸른색으로 나타나는 청색시대(1901-1904)를 맞이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과 그들의 억압되고 내성적인 분위기,
절친한 친구의 자살,
낭만적 파리 생활의 또 다른 얼굴인 궁핍한 삶의 잔인한 고통,
밑바닥 삶의 근원적 외로움과 소위 민중적 삶의 비참함....
이 모든 요인으로 인해, 그의 이 시기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암울한 느낌을 줍니다.

몽마르트에서의 '청색시대' 동안, 피카소는 청색을 주조로 그림을 그리며, 모든 것을 푸르게 느끼면서 밤을 지새우는 생활을 계속합니다.
그가 좋아하는 색깔로서의 청색.
이 시기 그가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서의 청색.
그가 입고 다녔던 옷들의 색깔까지도 청색이었다고 하며,
그는 청색이야말로 '모든 색들을 다 담고 있는 색깔'이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자화상 (20살 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청포도 사랑님의 익 네임과 같이 싱그럽고 청순해 보인다

 

해피데이
  하현주(bebe322111@hotmail.com)

권사님
반갑습니다
보내신 글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다 썼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증발 해버렸어요

그래서
힘이 쭉 빠지거든요,,,,

저는 밥을 펼때 맨 위에 가지런히 솟아있는
그 밥을 살짝 거두어서 김이 있을때 먹어야
해요 김 나가면 그만 먹기 싫은 좋지 않는
습관이지요

지금이 그런 기분 같아요 그래서 유쾌한 일을
얘기 하려고 했는데......

다름이 아니고요
예지에게 할머니가 되어 주신것 감사해요

어린마음에 언제나 권사님이 계셔서 사랑을
알면서 자라 갈테니 더욱 귀한 사랑 입니다

그리구
문권사님에게 전해주셔요
메시 극장에서 에배드릴때 제 앞에 앉으셔서
가방 고리를 받았던 사람이 멀리 있지만
주안에 있기에 가까운 기도가 되리라고 
확신 하오니
속히 쾌유 하시고 위로를 받으시는
간구로 기억 하시고 힘을 내시라구요...

권사님 
또 고백이 있어요
저는 아직도 컴맹이구요  글쓰는것 말고는 못해요

장노님이 편집하시고 서재도 만들고 하지요
제가 책을 내어 달라니까 알라딘이 책이라고
꾸며준다고 그런대요

내 마음 몰라주는 일등 영감이지욯ㅎㅎㅎㅎㅎ

권사님 
오늘은 슬쩍 영감의 마음을 떠 보았지요

"나 귀고리가 너무 더운것 같은데..."
귀를 만지작  거렸더니 사준대요

마침 마트에 장보러 왓거든요
밖에는 더워서 걷기를 못하니 쉬원한 곳에서
운동겸 찬거리 사니까 겸사가 좋아요

그래서 정말인지 확인 하고 큐빅에 링으로된
심풀한 모양을 70불[카나다 달라]주고 선물 받고
나니 새가 되어 날으는 기분이지요

더욱이 저녁에는 오징어 잡채를 했더니
밥은 안드시고 맛있다고 그것으로 식사를 
마치니 디저트는 레몬과 사과를  믹서해서
입가심 하고나니

아 오늘은 참 해피데이다...하고 웃으니
간사한 여자의 속 마음이 보였지요....

권사님 
섬기시는 모든 일들에 항상 힘주심을 기억
하시고 활기찬 나날이 되시도록 기도 합니다

행복하시고 즐겁게 지내셔요...

사랑 합니다 
서울에서  권사님을 그리워 하는 양희순 권사


이제 피아노 숙제 한번 하고 자야 겠어요...

2004, 7 ,6 .밤 10시 30분에




양희순 (hsyang1029@korea.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청포도 사랑님의 익 네임과 같이 싱그럽고 청순해 보인다

 

사랑하는 권사님
  양희순(hsyang1029@yahoo.co.kr)


 사랑하는 권사님!

주안에서 편안하시죠?

보내주신 아름다운 음악과함게한 글월 감사하고 행복했읍니
다.

벌써 6 월달도 은혜중에 지나고 (화살같이..) 7 월이네요. 믿
으지지 않는 날
짜들입니다....


저는 매일 매일을 집정리는 못한체 바쁜스케쥴로 지나고 있읍
니다 그런데로 건
강하게 잘 지나고 

있읍니다 염려해주셔 감사합니다..


지난 목요일은 문공옥 권사님의 병원심방을 김복순권사님과 
길여사님과 같이 다
녀왓읍니다

병원심방후 새삼 주님의 은혜를 감사드렸읍니다 우리에게 건
강주신 주님의 은혜
를 ......


문권사님은 새벽기도가시려고 아파트를 나오시다가 괴한의 습
격을받아 지갑을 틀
리시고 뒤로 

넘어 지셔서 엉덩뼈가 부러져 수술을 받고 입원해계신답니
다.. 그난편되시는 장
노님도 몇개월전에

교회에서 예배잘 드리고 나가시다가 차에오르시면서 미꺼러지
셔서 지금도 입원해
계시는데요...

두분이 다른 병원에 입원해 게시고 서로 다니실수도 없으시
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 


문권사님은 세벽기도를 거르지않으시는 년세가 (79세)많으신
데도 아주열심있는 
권사님이 신데 ....

얼마전 몇년을 묵을 만들어 모은 돈($ 1 만물) 건축헌금으로 
드린 정말 우리들
이 감격한 권사님이

신데요. 


지난번 우리셀모임때 팔을 걷어부치시고 나는 아직 건강에는 
자신이 있다고 장담
하시든 모습이눈에

선한데요. 정말 우리의 건강은 밤세안녕인것같읍니다..


권사님! 항상 건강에 유의하시길 기도하겠읍니다. 항상 너무 
무리하시는것 같아
염려가 됩니다.


지난 6 월 27일은 예지의 생일이라고 조그만 수첩에다가 선물
대 조금 넣어갖이고
교회갓드니 .....

문앞에 에쁜 예지가 봉투에 생일 감사헌금이라 쓴 봉투를 들
고 서있다가 저에게 
달여와 안겨서 

생일 축하 한다하고 안아주엇읍니다...


권사님 ! 나의 세제 는 잘 정리되여가고 있읍니다 정말 대단
하신 권사님이 십
니다.. 

우리는 꿈도 꾸어보지못할 일을 하시는군요. 다 마무리해놓으
면 얼마나 멋잇겠어
요.. 


아~~~~~감동입니다... 기대하겟읍니다... 


좋은 글 많이 보내주세요 요즘 이곳에서 보내는 멜이 잘안들
어가 매일 나에게 멜
을 보내는 친구가

애가타합니다 이글은 제대로 들어가 줄지 몰으겟읍니다. 잘들
어가 주길 바라며
...


다음또 안부전하겟읍니다 주안에서 두분이 건강하고 행복하시
길먼 이곳에서 기
도 드릴게요...


오늘도 화창한날씨입니다 길여사님이 산보가자고 지금 전화
가 왔읍니다 준비하
고 다녀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사랑하는 권사님!


God Bless you ! 먼나다 벤쿠버에서 하ㅇㅇ드림. 

하 ㅇㅇ 권사 (hsyang1029@korea.com)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foryou/mypaper/4917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