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의 능력을 보여 다오

내가 만든 풍경을 독자여

완성시켜 다오

밟혀도 소리 내지 않고 울부짖지 않는

밟히면서 사라지는

나는

첫눈 (123쪽)

 

눈 속에서 '참'이라는 동물이 되기 전에 구조대가 와야 하는데, 이제 능력을 보일 때가 되었는데도, 서로를 잡아 먹으면서 아닌 척, 모르는 척, 긴 시간을 견뎌왔고 어떻게든 살아야겠다. 첫눈은 금방 사라지는데, 첫눈은 쓱 지나가는데도, 이미 '참'이라는 동물이 되어 있다.

싱싱하고 살아서 날뛰는 단어에서는 시인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역쉬, 장정일이다.

오랫만에 컴퓨터에서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다. 대학시절 처음 맛본 벽돌깨기에 이어 갤러그가 그리웠다. 담배연기 가득한 오락실에 여자 혼자서 보너스게임까지 하고 있는 나에게 선뜻 들어오기 어려웠다는 친구들의 말, 스타와 롤로 학창시절을 보낸 아들을 보면 모전자전이랄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친구들의 연말모임도 거절했다. 올해는 무엇을 했지, 뒤돌아 보니, 몸과 맘을 쉬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눈 속의 구조대 민음의 시 258
장정일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베리아에서 길을 잃고 사경을 헤매다가 구조된 조난자들은 거개가 참의 희생으로 목숨을 부지했다는데, 참이 이렇듯 잘 알려지지 않고 이 변변치 않은 사람의 글에 의해서 널리 알려지는 까닭은, 인간에게 수치심이 있기 때문이다. 목숨을 부지한 조난자는 차마 동료를 죽이고 그 덕분에 살게 되었다는 것을 밝히기를 꺼린다. (14쪽)

사랑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
사랑은 자신을 더욱 잘 사랑하는 것 (25쪽)

당신이 곁에 있어도 나는
당신보다 더 깊은
곳으로 가고 싶다. (33쪽)

우리가 사는 현대
그 잘난 현대가 행방불명이다
죽었다는 신이 자꾸 새로 생겨나
구조대가 찾지 못하는 것은 현대다
소리 없는 경광등이 눈발을 뒤집어쓴다 (43쪽)

오랫동안 말씀을 찬양했던 노래꾼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말씀을 따라 읽은 사랑 공의 자비가 자신의 귀까지 와서는 항상 다르게 들리는 것에 절망했다. 그는 손바닥을 펼쳐 입과 귀 사이의 거리를 재어 봤다. 귀와 입 사이의 거리는 겨우 한 뼘도 되지 않았지만, 입과 귀보다 더 먼 것은 세상에 없었다. (56쪽)

잠을 재우지 않고 알만 낳게 하려고 형광등을 줄지어 빼곡하게 켜 놓은 양계장의 좁다란 닭장 속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서 있어야 하는 닭들은 자기가 뭐 하는 놈인지 진짜 모른다. (64쪽)

아침에 너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눈을 떴을 때 너를 볼 수 있다면
아침에 너를 볼 수 있다면
일어나서 사과를 한입 깨물듯이
너를 아침에 놀 수 있다면

독자 여러분
너와 나는 남자와 여자가 아닙니다 (100-101쪽)

돈을 받고 등단을 시켜 주는 문예지와 돈으로 작가가 되려는 이들을 욕하지 맙시다.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우려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럼에도 저희는 한국 문학의 발전을 위해 이들을 가혹하게 비판하고 싶습니다. 작가라는 명예스러운 호칭을 고작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니요? 저희는 그런 구태를 강력히 거부합니다. 저희는 시인, 소설가, 평론가가 되려는 분들의 장기를 원합니다. 저희는 흔들림 없는 문학 혼으로 어떤 고통도 감내하시겠다는 분들하고만 거래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문학은 돈 놓고 벼슬 사기가 아닙니다. 문학은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로 하는 것이 문학입니다. 당신의 심장, 폐, 간, 위, 쓸개, 신장, 비장을 내어놓으십시오. (10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두꺼운 삶과 얇은 삶

보이는 부분조차 훤히 다 드러나는 곳에 살고 있는, 도무지 숨을 곳조차 없는 곳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점점 얇아지고 있다. 어릴 때 살았던 집의 온전히 혼자 차지하려고 애쓴 다락방과 잡다한 것을 넣어 둔 광 같은, 심지어 들로 산으로, 혼자만의 공간에서 꾸중 듣거나, 토닥거려 삐쳐 숨어 있었던, 그곳에서 어느정도 감정 정리를 할 수 있었던, 삶을 풍성하게 두껍게 해 주던 그때와 지금은 혼자서 꽁냥꽁냥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지금의 의식주에서 우리는 두꺼운 삶에서 얇은 삶으로 저절로 되고 있다.

 

2. 즐거운 고통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긍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다.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 책읽기 조차도.

 

3. 묘지 순례

파리의 묘지는, 파리가 과연 문화인의 수도라는 느낌을 불러일으켜주었다(125쪽).

 

4. 사라짐과 맺힘

음악, 만화, 겉멋만 든 영화 등에 대한 단상 

 

5. 미술관을 나오면서

고흐의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고통에서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프지 않는 사람이다. 진짜로 아프고 힘든 사람은 고치려고, 나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아프지 않기에 고통인 척 하고 있다.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인지.

프랑스에서 간 적이 있는 지역이 나오면 새롭고 반가웠다. 다음에는 묘지순례를 해 보고 싶다.

 

*가정부가 있던 시절, 1985년 '깊고 푸른 밤' 영화보러 갔을 때 중년 부인들 서넛이 극장 앞에 있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한 말(219쪽),  '저거 보기 흉하지 않아요?' '중년 부인들끼리 영화 보러 다니는 것 말이에요' 

*그 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 돌아보니 격세지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라짐, 맺힘 문지 에크리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면‘은 아파트, 편준화된 학교, 기성복 따위와 마찬가지로 단순 명료한 것을 즐기는, 아니. 즐기게 되어 있는 현대 사회의 한 상징이다. 그것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 평준화된, 획일적인 사고를 만들어낸다는 데에 있다. (51쪽)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술자리는 과음이 되어 서로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큰 소리를 질러대는 자리나 공연히 처연한 몸짓으로 즐겁게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자리이다. 과음이 되어 술자리가 높은 고함으로 가득 찰 때, 술이 부풀린 말들은 터져 불에 탄다. 그때 남은 것은 말의 뼈들만이다. (77쪽)

전통이 있다는 것은 길을 잃고 헤매었을 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타이의 모든 대학이 국립이며, 그 교육의 중심에 불교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타이 정권의 안정의 한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133쪽)

문화는 인간 내부에 숨어 있는 인간을 동물화하려는 모든 노력과의 싸움 끝에 얻어지는 어떤 형태이다. 놀이는 인간 내부의 욕망을 순간적으로 무화시킴으로써 자기 존재의 허무를 보지 못하게 한다. (138쪽)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일이 그렇게 되어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일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을 때, 우리는 기다리지 않는다. (160쪽)

프랑스의 지적 힘은 사회의 한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구석의 일로만 남겨두지 않고, 그것을 사회의 문제로 확대시키는 데 있다. 내가 알 게 뭐냐가 안 되는 것이다. (164쪽)

자기에게 관계없는 것이 세계에 어디 있으랴. 인간이나 세계를 이해해가는 과정은 자기에게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적어져가는 과정과 대응한다. (165쪽)

자신의 고통을 관찰하면서 자신을 고통 그 자체로 묘사한다는 힘든 일을 그(고흐)는 해낸 것이다. 그것이 그리고 그를 가짜 미치광이와 가른다. 진짜 고통하는 사람은 자신이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거나 가짜로 고통하는 사람은 그것을 오히려 즐긴다. 그것은 아프지 않게 때문이다. (25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텍쥐페리의 자서전적인 이야기이다.

사막 한가운데서의 발견되기까지의 이야기(127쪽-181쪽)와 동료 앙리 기요메 이야기(44쪽-56쪽)는 정독하기를 강추한다.

특히, '사람들은 오렌지가 무엇인지 모른다......(161쪽)' 동료와 사막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야기에서, 물 없이 버틴 가운데 발견한 오렌지 하나는 결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오렌지는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처한 그 상황에서 그의 입장이 되어 보면, 관점이 바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며, 그 와중에서 '관계의 품위, 승부에서의 정직함, 생명을 거는 상호존중의 태도(197쪽)'가 인간답게 만드는 일이고,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진리라고 여기는 잣대를 들이밀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각자의 고통은 결국 전 인류의 피해가 된다고 인식하는 자 만이 인간으로 창조된다고...  어려운 문장들, 다른 번역자 글도 읽어 봐야겠다.  

동생 식구들이 모두 연주하는 크리스찬 오케스트라 10주년 연주회에 다녀왔다. 강산이 한 번 변할 동안 이제야 보았다. 이십대에서 팔십대까지 구성된 회원들을 제부가 지휘하면서 이끌어 왔다. 매년 조금씩 실력은 나아지고 있지만 회원들의 눈은 점점 나빠지고 있단다. 은혜로웠다. 짝짝짝.

홍천 은행나무 숲은 수사들만 살고 있는 수도원같았다. 내린천을 따라 구룡령을 넘는 내내 단풍들로 눈이 호강했다.  

벌써 겨울로 들어섰다. 감기조심~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JUNE 2019-11-09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인간의 대지는 인간이다. 인간을 통해서 인간이 되고, 되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