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처럼 "어머니는 지금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연결 고리"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볼 수 없다면, 그 막막함과 보고 싶음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만약 이렇게 좋은 봄날, '어머니가 이제는 볼 수 없는 첫 번째 봄이라는 생각(17쪽)'이 든다면, 그녀는 말을 통해서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섰다. 어머니에 대한 애증과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까지, 한 여자로서의 모습과 자신과의 연결된 부분을 가감없이 모두 보여 주고 있다. 친척들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삶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하지만, 분노한다. 딸은 어떻게든 어떤 모습이든 어머니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고, 계속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친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여전히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아파한다는 것을... 엄마의 모습이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일지라도. 엄마는 나를 이 세계로 보내준 통로이기에. 나의 엄마, 애보다는 증이 더 많은, 그 엄마를 다시 떠 올려본다. 어제는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동생과 살고 있는 아가씨의 문병을 갔다. 혼자서 스스로 병수발을 하고 있다. 그녀의 심정을 조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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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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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그런 상태로 여러 해를 사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모두에게, 어머니는 돌아가신 것이 더 나았다. 그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하나의 문장, 하나의 확신이었다. (15-16쪽)

나의 계획은 문학적인 성격을 띤다. 말들을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는 내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진들도, 나의 기억도, 가족들의 증언도, 내게 진실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문학보다 아래 층위에 머무르길 바란다. (19쪽)

이 글을 쓰면서 때로는 [좋은] 어머니를, 때로는 [나쁜] 어머니를 본다. 유년기의 가장 먼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이 흔들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치 어떤 다른 어머니와 내가 아닌 어떤 다른 딸의 이야기인 것처럼 묘사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62쪽)

나는 어머니가 다리 사이에 병을 끼고서 병마개를 딸 때면 눈길을 돌려 버렸다. 나는 그녀가 말하고 행동하는 거친 방식이 부끄러웠는데, 내가 얼마나 그녀와 닮았는지 느끼고 있는 만큼 더더욱 생생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다른 세계로 옮겨 가고 있는 나는 내가 더 이상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여전히 내 모습인 것에 대해서 어머니를 원망했다. 그리고 교양을 갖추려는 욕망과 실제로 교양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 사이에 깊은 구렁텅이가 존재함을 깨달았다. (63쪽)

나의 어머니는 이 세계에 대해, 훌륭한 교육과 우아함과 교양이 그녀에게 불러일으킨 찬탄과, 자시느이 딸이 그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을 보며 느끼는 자부심과, 겉으로는 절묘한 예의범절을 보여 주면서 속으로는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어머니는 자기 자체로는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자신이 주려는 것으로 사랑받기를 바랐다. (72쪽)

초기에 그녀는 예상했던 것보다는 덜 행복했다. 졸지에 장사꾼으로서의 삶이 끝이 났다. 더불어, 지불만기에 대한 불안, 피로, 그뿐만 아니라 손님들의 왕래와 그들과의 대화, [자신의] 돈을 번다는 자부심 역시, 그녀는 이제 [할머니]일 뿐이었다. 시내에 나가도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말할 사람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세계가 우중충해지고 졸아들었으며, 그녀는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여겼다. 그리고 이것도, 자식네에 얹혀산다는 것, 그것은 그녀가 자랑스러워했던 생활 방식(친척들에게 하던말, [걔네가 아주 살산다고!])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77-78쪽)

내가 청소년기에 [우리보다 더 나은 환경]에 놓였을 때 느꼈던 불편함, 그 감정을 그녀가 내 집에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마치 [열등한 사람들]만이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차이점들로 힘들어한다는 듯이). (79쪽)

그녀는 마침내 계절이 없고, 늘 적당히 따뜻하고 은은한 향내가 나는 그 공간으로 마침내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1년 내내 시간이 흐르지 않고 그저 먹기, 자기등의 기능이 규칙적으로 반복될 뿐이다. (100쪽)

그녀에게는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었고, 그것이 무엇이든 더 이상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 자기 소유의 물건들을 기억하지 못했고, 더 이상 자기 것으로 갖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101쪽)

나는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먹이고, 만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105쪽)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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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 모르지만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글이다. 가볍다고 하기에는 듣는 이들을 우습게 여기는 꼴이 될 거 같고, 남녀노소 라디오 청취자들을 위해서는 수많은 고민을 통해 나온 글은 틀림없는 거 같다.-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한 글을 묶은. 그러나 [한 여자], [이것이 인간인가],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책에서는 눈이 바짝 뜨였다. 읽고 싶은 책이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이 세 부분의 글은 읽기가 편하고 구미가 당겼다. 어찌 되었던 청취자들 또한 어떤 부분에서는 꼭 읽어야지 하고 다짐하는 시간들이 있었으리라 본다. 각자의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 된다. 한번을 읽든, 두세번을 반복하여 읽든, 책을 놓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책 읽어 주는 라디오 코너가 생기지 않았을까. 책을 읽어 주는 이는 누군가가 그 책에서 감명을 받고 그의 생에 조금이나마 변화가 있기를 바랄 거다. 변화라는 건 나쁜 쪽이 아니라 점점 좋은 쪽으로, 삶을 좋다 나쁘다로 규정하는 것도 요즘 생각해 보면 부질 없는 거 같다. 누구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니, 특히 나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바라는 대로 산다면 좋은 삶이라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책을 소개할 때는 그 누군가가 어떤 책이라도 읽어야지 하고 마음 먹게 하는 부분이 가장 큰 목적이 될 거 같다. 아마도 청취자들 중 꽤나 많은 분이 읽어가겠다고 마음먹고 지금까지 책을 읽고 계시리라 믿는다.  

최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쥴 앤 짐] 영화를 보았다. 영화 또한 책 못지 않게 많은 여운을 남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이러다 나의 머리가 어떻게 되는 지 모르겠다. 균형잡힌 머리와 가슴이 되어야 하는데. 강추한다. 보러가겠다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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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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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들엔 `열명`과 `덧없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열망이란 무엇입니까. 견딜 수 없는 몸부림이자 결연한 단절이며 치밀한 계획이자 무모한 도전이지요.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에 방점이 놓이는 작품들입니다. 그 열망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속엔 피와 땀이 흐르는 `인간`이 있습니다. `덧없음`은 실패와 이어진 감정이 아닙니다. 활활 영원히 타오를 것처럼 이어지던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짧은 침묵이 찾아듭니다. 그 침묵엔 많은 것이 담기지요. 어찌할 수 없는 이별, 잊히지 안는 고통, 그리움, 부끄러움이 한순간 밀려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음걸음을 디뎌 나올 때의 헛헛함이라고나 할까요. 멀리서 들려오는 굶주린 짐숭의 울음에도, 긴 꼬리를 지우며 떨어지는 별똥별의 궤적에도 인간으로서의 덧없음이 얹히지요. (8쪽)

"하지만 이따금 한없이 처량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던가.` 하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럴 때면 누구나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 나은` 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이를테면 저는 스티븐스 씨 당신과 함께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하곤 한답니다. 제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화를 내며 집을 나와버리는 것도 바로 그런 때인 것 같아요. 하지만 한 번씩 그럴 때마다 곧 깨닫게 되지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 곁이라는 사실을. 하긴, 이제 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방법도 없으니까요.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113쪽)

실험실에서 잠시 쉴 때마다 옛 친구가 떠오릅니다. 그와 나눴던 대화들, 바라봤던 풍경들, 가졌던 희망들이 어둠을 뚫고 프리모 레비를 휘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다시는 그를 마난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존재와 부재의 거리, 과거와 현재의 간극이 프리모 레비를 괴롭힙니다. 그때는 인간이었으나 지금은 인간만도 못한 삶을, 죽지 못해 이어가는 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 이하로 지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프리모 레비는 수용소 안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씁니다. 그것은 프리모 레비가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현재 그를 비롯한 죄수들은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바로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의 핵심 내용이기도 합니다.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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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과 나의 이야기를 지켜 내는 것이 결정되는 경계, 혹은 한계가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라고 솔닛은 말한다.(379쪽)'

이 봄날이 새롭다. 나에게도 새롭게 씌여질 이야기가 있나보다. '멀고도 가까운(리베카솔릿)'과 '사랑에 관하여(안톤체홉)'를 번갈아 읽다가 봄맞이를 다녀왔다. 가까이 있어도 먼 당신도 있지만, 멀리 있어도 가까운 당신도 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왜 그녀가 나 아닌 그 사람을 만났는지,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 삶에 이런 끔찍한 실수가 일어났는지 이해하려 발버둥쳤습니다.(체홉,198쪽)'  어떤 일이 분명 일어났지만, 왜, 무엇 때문에라고 묻다 보면 실타래처럼 연결되어 있다. 아주 멀리 있는 당신이 지금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처럼. 나의 삶은 나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사실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불분명한 기억의 한계도 있지만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주변의 이야기와 섞여 새로운 이야기로 변용되고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일한 사람을 보고 있지만 제각각의 시선으로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하고 달리 들리기도 한다. 살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보태어 지는 사건은 사라졌다고 믿어의심치 않은 과거와 연관된 일이 많다. 부모와의 일, 가족들, 친구들과 학교등등에서 전리품도 있었지만 희생도 많았다. 특히 희생과 상처에 대한 부분은 아직까지 지금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어떤 일은 여전히 그때의 어린아이로 만들어 꼼짝 달짝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어, 아직까지 더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 이야기에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안아픈척, 고통이 없는 것처럼 몸과 자아의 경계를 허물게 한 부분도 있다. 겨우 무지 아파서 도저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을 이제야 조금씩 하고 있다. 타인의 이야기를 받아 들이기로 한 건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에 새로운 부분이 더해진다는 의미이리라. 타인의 이야기를 받아 들이는 순간 상처받은 과거의 마음보다 더 많이 애리고 아프다. 이제야 듣게 되지만, 그래서 주의깊게 잘 들어야 한다. 감정이입과 동일시를 통하여만, 그사람에게서 왜, 무엇 때문에라는 답을 얻게 된다.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의 너의 감정을 알게 되고, 진정 너와 연대한 모습이 되어 보면, 단절되었던 그 굵고 선명한 금을 쓱쓱 지울 수 있게 된다. "충분히 깊게 이해한다는 것은 일종의 용서이자 사랑이다.(341쪽)" 과거에 집착하고 머물러 있으려는 나를 용서하고 먼저 나를 사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웬지 나에게 덧입혀 씌여진 나쁜 이야기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봄날이 될 거 같다. "It's not your 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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