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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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그런 상태로 여러 해를 사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모두에게, 어머니는 돌아가신 것이 더 나았다. 그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하나의 문장, 하나의 확신이었다. (15-16쪽)

나의 계획은 문학적인 성격을 띤다. 말들을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는 내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진들도, 나의 기억도, 가족들의 증언도, 내게 진실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문학보다 아래 층위에 머무르길 바란다. (19쪽)

이 글을 쓰면서 때로는 [좋은] 어머니를, 때로는 [나쁜] 어머니를 본다. 유년기의 가장 먼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이 흔들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치 어떤 다른 어머니와 내가 아닌 어떤 다른 딸의 이야기인 것처럼 묘사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62쪽)

나는 어머니가 다리 사이에 병을 끼고서 병마개를 딸 때면 눈길을 돌려 버렸다. 나는 그녀가 말하고 행동하는 거친 방식이 부끄러웠는데, 내가 얼마나 그녀와 닮았는지 느끼고 있는 만큼 더더욱 생생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다른 세계로 옮겨 가고 있는 나는 내가 더 이상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여전히 내 모습인 것에 대해서 어머니를 원망했다. 그리고 교양을 갖추려는 욕망과 실제로 교양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 사이에 깊은 구렁텅이가 존재함을 깨달았다. (63쪽)

나의 어머니는 이 세계에 대해, 훌륭한 교육과 우아함과 교양이 그녀에게 불러일으킨 찬탄과, 자시느이 딸이 그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을 보며 느끼는 자부심과, 겉으로는 절묘한 예의범절을 보여 주면서 속으로는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어머니는 자기 자체로는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자신이 주려는 것으로 사랑받기를 바랐다. (72쪽)

초기에 그녀는 예상했던 것보다는 덜 행복했다. 졸지에 장사꾼으로서의 삶이 끝이 났다. 더불어, 지불만기에 대한 불안, 피로, 그뿐만 아니라 손님들의 왕래와 그들과의 대화, [자신의] 돈을 번다는 자부심 역시, 그녀는 이제 [할머니]일 뿐이었다. 시내에 나가도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말할 사람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세계가 우중충해지고 졸아들었으며, 그녀는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여겼다. 그리고 이것도, 자식네에 얹혀산다는 것, 그것은 그녀가 자랑스러워했던 생활 방식(친척들에게 하던말, [걔네가 아주 살산다고!])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77-78쪽)

내가 청소년기에 [우리보다 더 나은 환경]에 놓였을 때 느꼈던 불편함, 그 감정을 그녀가 내 집에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마치 [열등한 사람들]만이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차이점들로 힘들어한다는 듯이). (79쪽)

그녀는 마침내 계절이 없고, 늘 적당히 따뜻하고 은은한 향내가 나는 그 공간으로 마침내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1년 내내 시간이 흐르지 않고 그저 먹기, 자기등의 기능이 규칙적으로 반복될 뿐이다. (100쪽)

그녀에게는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었고, 그것이 무엇이든 더 이상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 자기 소유의 물건들을 기억하지 못했고, 더 이상 자기 것으로 갖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101쪽)

나는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먹이고, 만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105쪽)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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