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히 무겁다고 느껴지고 막상 펼치기 힘든 성서를 경쾌한 목소리로 교양서처럼 소개하고 있지만, 현대인으로 살고 있다면 이 정도는 읽어줘야 하지 않나하는 묵직한 권유가 느껴지는, 성서 입문서이다. 어쩜 이렇게 재미있게 썼는지, 막힘없이 한번에 꿰뚫어 준다. 독자의 크기만큼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독자의 크기를 논하지는 않는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의심과 의문을 흔쾌히 받아주고 위로까지 주고 있다.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앞으로도 새로운 해석을 더하며 가장 오랫동안 읽히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서에 대한 나의 마음의 무게는 엄청났는지, 후련한 느낌이다. 번역을 아주 잘했다. 이 분만이 할 수 있는 번역같았다... 봄 바다를 보러 동해로 가려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나와 함께한 스파이더맨(자동차 애칭)은 폐차장으로 보냈다... 사물에 대한 애정도 오래갈 수 있음을 새삼 느꼈다. 몇 번을 돌아보고 바이바이했지만, 마음으로는 수없이 더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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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교양 - 3천년 인문학의 보고, 성서를 읽는다
크리스틴 스웬슨 지음, 김동혁 옮김 / 사월의책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사람들이 믿는 바(또는 안 믿는 바)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전달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그리하여 성서를 더 잘 이해하고 성서를 교양 있게 대하도록 도우려는 것이다. 또 성서에서 온 표현이다 개념을 더 잘 인식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돕고, 왜 사람들이 성서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쉽게 흥분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것이다. (12쪽)

오늘날의 성서를 이루는 내용 중 대부분은 책이란 것이 존재하기 이전, 즉 사람들 대다수가 글을 읽을 줄 알기 이전부터 발전하여 온 것이다. 이러한 성서 이전의 본문들은 대개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문서들이었는데, 많은 경우는 옛 구두 전승을 반영한 것들이었다. 이런 성서 이전의 본문들이 당시 글을 읽고 쓸 줄 알던 소수 엘리트들의 손을 거쳐 다시 쓰이고 편집.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21쪽)

대부분의 학자들은 신약에서 가장 먼저 쓰인 책이 바울이 기원후 50년경에 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중 하나(데살로니가전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은 20년 뒤인 기원후 70년경에 쓰였는데, 이것은 예수 사후 한 세대(40년)를 채운 뒤의 일이었다. (51쪽)

안타깝게도 성서가 말해 주는 역사에 의문을 품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의문을 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믿는 신자들이 많다. (72-73쪽)

먼저 말해야 할 것은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사용했던 히브리 성서는 ‘히브리어‘도 아니었고 ‘성서‘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직 고정되지 않은, 경전의 지위를 얻지 못한, 히브리어 두루마리들의 그리스어 번역을 그들의 성서로 사용하였다. 또 하나는 예수를 처음 따르는 이들이 예수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이 모두 같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예수가 어떤 분인지,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그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에 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다. (102쪽)

예수의 특별한 본성에 대한 믿음, 즉 예수가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하게 만든 분이라는 그 믿음이 신약의 저자들로 하여금 붓을 들게 했다. 그들은 예수의 일대기(복음서들)을 쓰고, 교회의 역사(사도행전)를 쓰고, 구너고, 교훈, 격려의 편지(그 외의 책들)를 썼다. (267쪽)

사실 바울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에 관해 말하는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예수의 특별한 본성, 즉 신인 동시에 인간인 근원적 독특성에 관한 자신의 이해를 밝히는 데에 힘을 집중하였다.....그가 전한 것은 부활한 메시야, 예수에 대한 믿음이었다. 예수의 특정한 행위를 본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 말이다. (277-278쪽)

성서는 가부장적 문화와 사고방식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렇기 대문에 성서 본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영향 아래 있던 저자들이 전제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들로 하여금 붓을 들게 한 동기가 무넛인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318쪽)

마지막으로 말할 것이 있다. 예수가 당대의 가부장적 전제들 중 몇몇에 도전한 것은 사실이다. 또 초기 기독교 교회가 예수의 그러한 점을 계승해 여성 지도자 몇을 세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기독교 세계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여성들의 실제 삶과 형이상적 신학 모두에는 여전한 억압과 제한이 있었다는 점을 또한 기억해야 한다. 신앙을 가진 이들이 이해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성성의 표현과 이미지에 영향을 받긴 하지만 그것을 최종적으로 그려 내는 것은 결국 독자의 해석이다. (446쪽)

믿는 이들이 수천 년 동안 성서를 공부해 왔지만 그럼에도 성서의 지위는 여전하다는 사실에 위로받기 바란다.....실제 성서 본문을 해석하고 사용할 때는, 사람들의 개인 경험, 가족력, 문화적 배경, 신앙의 전통이 지식을 다루는 방법을 형성한다. 성서의 항구성이 증언해 주듯, 성서는 끝없이 변화하는 우리 환경 속에서 새로운 반복과 새로운 이해를 요구한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독자와 내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랜 후에도 사람들은 성서를 생각할 때 도움이 되는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해석을 계속 할 것이라는 점이다. (4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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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이 책읽기의 즐거움만 한 것을 글쓰기에서 한번도 느낀 적이 없다는 고백에 의거하여, 그가 분명 읽은 책에서 추려 낸 서문들을 따라 가 본다. 나 또한 책을 구입할 때 서문과 목차가 중요한 한 몫을 차지하기에, 따로 모아 논 서문을 읽으면서 글의 내용을 추측할 수 있었다. 저자들이 책을 출판하기 위해 읍소하는 내용도 있지만 자신이 쓴 글이 독자들에게 오독과 오해를 방지하고,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 몸과 맘을 다하여 노력한 흔적들이 묻어 나온다. 본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았을까, 그 애씀이 마음을 두드리는 울부짖음같다.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느새 4월로 성큼 들어왔고, 한달넘게 이어져온 갈등은 막을 내렸다. 새로운 일터에 처음 온 사람이 이견을 제시한 것 자체가 생소하고 항명 그 자체이고, 그러면 안되는 일을 맞 받아치고, 주어진 대로 해야 하는데 감히 어기려고 하는 내가 그들에게도 무척 낯선 경험이지 않았을까... 이또한 힘의 싸움일까... 승리를 맛보지만 씁쓸하다. 갈등자체를 힘들어 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윽박과 강요가 난무하다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더 이상 잃을거도 없고 아닌 것을 아니라 하는데 뭘 더 말하리요, 싶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나 또한 서문을 열었으니, 그들에게 비친 나의 모습은 이러하고, 이렇게 일을 하리라는 큰 도장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첫 인상, 첫 단추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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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서문
버크.베카리아.니체 외 27인 지음, 장정일 엮음 / 열림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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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만 한 것을 한번도 글을 쓰는 일에서 느낀 적이 없다. (6쪽)

서문을 되새김질해서 얻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서문과 본문 사이에 생긴 모슨(틈) 혹은 미해결을 감지하는 것이다. 서문과 본문 사이에 이런 모순과 미해결이 일어나는 이유는, 서문은 크고 본문은 작기 때문이다. 이런 전도는 서문과 본문의 중요성이 양적 문제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서문은 늘 본문보다 짧지만, 저자의 욕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서문은 그것의 실현물인 본문보다 크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계속 글을 쓰게 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서문을 끝내 완성하기 위하여. (13쪽)

참으로 괴이한 것은,
그리 좋다는 책을 읽고서도 개과천선은커녕
되레 성서와 교훈서를 깔보니, (27쪽)

"격언이란 시중에 널리 쓰이는 말이며, 어떤 사태와 시기에 들어맞는 말로서, 글자 그대로의 말과는 다른 속뜻을 가지고 있다." (36쪽)

스피노자는 사람들이 이성을 경시한 결과 미신을 신의 신탁으로 여기게 되었고, 두려움 때문에 광기에 내몰려 자발적인 노예 상태에 놓인다고 말한다. 자연법칙에 대한 무지가 공포스러운 신의 모습을 만들어내고, 권력은 그 잘못된 믿음과 미신을 이용해 대중을 통치한다고 본 것이다. (85쪽)

그렇기 때문에 미신을 발생시키고, 유지하고, 조장하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88쪽)

우리가 부분을 관찰하는 것은 오직 전체를 함께 판단하기 위해서다. 또 모든 원인을 검토하는 것은 모든 결과를 알기 위해서다. (113쪽)

복잡한 문제에 접근할 때 우리는-우리 스스로가 자연적 조건으로 인해 엄격한 규칙과 좁은 테두리 속에 갇혀 있으므로-그 문제를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요소들을 구별해 하나씩 자세히 조사해보아야 하며 모든 것을 아주 단순화시켜 고찰해야 한다. 원리들이 미치는 영향에 따라 이 복잡한 문제를 고찰할 뿐만 아니라 이 문제가 미치는 영향에 비추어 다시 원리들을 고찰해야 한다. 우리가 다루는 주제를 그와 유사한 것들과, 심지어는 그와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것들과도 비교해보아야 한다. (142쪽)

하지만 인간적 정의, 다시 말해 정치적 정의는 인간의 행위와 가변적인 사회조건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어서, 문제의 행위가 그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가 혹은 유용한가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다. (152쪽)

여성이 이렇게 아름답지만 무익한 존재로 전략한 것은 잘못된 교육 때문이다. 이런 교육의 이론적 토대가 된 것은 우리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암컷으로 보고, 현모양처보다는 매력적인 연인으로 만들려고 한 남성학자들의 저술들이었다. (157쪽)

남자든 여자든 한 인간으로서 자기만의 개성을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목표이므로, 모든 것이 이를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161쪽)

반성 없이 맺어진 관계는 고통 없이 깨질 수도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관계가 깨진 데서 오는 고민이나 배신당한 영혼의 비통한 놀라움이나 완전한 신뢰 뒤에 이어지는 의심, 어떤 한 사람을 의심한 결과가 세간 전체로가지 퍼져가고 스스로 짓밟은 존경을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을 보고서야 사랑하기 때문에, 고민하는 마음속에서는 무언가 신성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함께 느끼지 않고 상대한테만 느끼게 했다고 믿는 그 애정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깨다는 것이다. (207-208쪽)

연구와 관찰, 철학과 경험은 결코 상대를 경멸해서도 안 되고 배제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상대를 상호 보증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213쪽)

나는 종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어느 한 종에서 만들어졌다고 인정되는 변종이 그 종의 자손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같은 속에 속하는 종들은 일반적으로 이미 소멸해버린 종으로부터 얻어진 자손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나는 자연 도태가 변화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도 확신하는 바이다. (251쪽)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물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의 내용들 때문인데, 모든 역사적 발전은 이 내용들의 가치를 이미 전제한다. (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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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번역을 참 잘했다. 역자가 직접 쓴 글같다. 성서를 '역사적 방법론, 네러티브 이론, 문학 비평 방법론, 정경사 방법론, 해석사, 영향사'로 읽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성서를 기록한 저자의 심정도 시대적 배경으로 들어가 보게 된다. 생각지 못했던 방법이다. 그렇게 기록할 수 밖에 없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부언되고 첨삭되었다는 사실까지, 성경읽기가 훨씬 편해졌다. 문자의 문턱을 넘지 못했는데 마음 속에 쓱 들어오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수백 년의 세월을 통과한 성서가 지금 나에게 말해주고 있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저자가 이야기 단계-역사 단계-영적 단계로 나아가면서 성서를 이해한 방법에서, 본문으로 하여금 내가 듣고 싶어하는 말이 아니라 본문이 말하는 바를 말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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