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선물로 받은 '클래식 수업'을 이제야 덮는다. 음악을 들으면서 읽는다면 느낌이 달랐으리라. 기억 속의 곡들을 음미하며 읽었다. 한때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애쓰고 노력했던 그 시절, 교회 반주자로 십년간 봉사했던 그 시간들이 떠오른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강약을 살리고, 마음과 혼이 떠나갈 정도로 열심히 했던,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벗어나면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그때가 기억난다. 그래서 결국 그만뒀지만... 그리 어려운 일을 한 작곡가들과 연주자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바라던 연주자의 모습에 결코 닿지 못했던 지난 날의 내가 떠오른다... 요즘 살아오면서 좌절된 이러한 기억들이 자주 많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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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수업 - 풍성하고 깊이 있는 클래식 감상을 위한 안내서
김주영 지음 / 북라이프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중단 없는 삶,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크고 작은 실수들, 그것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무척 아프지만 다시 멈춰 숨을 고르고 조금 뒷걸음 치며 해결해내야 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이렇게 베토벤의 걸작은 늘 실패와 좌절에 상처받고 그것을 이겨내려 애쓰는, 약하지만 소중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솔직 담백하게 가르침을 준다. (33쪽)

대학교 졸업 후 피아노 전공자들끼리 "졸업해서 제일 좋은 건 쇼팽 에튀드를 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그만큼 테크닉적으로 어렵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며, 따라서 연주될 때 청중의 기대치도 놓다. 프로 연주자들이 독주회와 같은 음악회에서 간간히 리스트나 드뷔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를 선곡하는 경우도 있지만 쇼팽의 에튀드 24곡 모두를 연주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138쪽)

대부분 애호가들은 라흐마니노프를 멋진 피아노 협주곡이나 그외 피아노 작품을 많이 쓴 작곡가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작곡가이기 전에 탁월한 피아니스트였는데 러시아인에게, 특히 피아니스트들에게 그렇다. 역사상 최고의 피아니스트 한 사람을 꼽으라면 대부분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은 블라디미르 호르비츠, 스뱌토슬라프 리히테르,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아닌 라흐마니노프를 꼽는다. (240쪽)

말러가 빚어내는 다채로운 사운드는 모든 것이 멈추고 끝나고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선 느낌을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하며, 어느 순간엔 그것을 체념하고 기다려 온 것처럼 받아들이는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심리를 물음표 그대로 내놓는다. 또 어떤 작곡가도 다다르지 못한 ‘무‘의 세계를 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평온함으로 그리고 있기도 하다. (305쪽)

리히테르는 악보에 맹신이라고 할 정도의 충성을 바치고 연주자가 앞서 나가기 않도록 철저히 선을 지키고 절제한 피아니스트였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작품을 ‘분석‘하지 않았다. (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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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삶의 모습, 점점 이도 저도 아닌, 그렇게 쉽게 단정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나에게서 우유부단과 변덕까지 보인다. 상황과 사람을 드러다 보고 살피는 게 아니라, 쓸데없는 욕심에 초점이 가 있다. 두 가지 모두 갖고 싶다거나 충족 시키고 싶은, 그저 괜찮고 실력있고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쉽사리 선택과 결정에 머뭇거리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산다고 할 수는 없다. 소설 속 인물들 또한 변명을 거듭하고 있으니까. 그들 입장에서 보면 당위성이 있는 말이지만. 나와 다르다고 틀리다 말 할 수 없는 거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다시 온다 해도 이게 어쩔 수 없는 나의 운명이기에 사랑해야 한다면, 지금처럼 살면 될까. 여전히 꾸물거린다... 방금 택배를 경비실에 맡긴단다. 내가 뭘 샀더라~ 내참, 이러고 살아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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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 니체 카잔차키스 서머싯 모옴 쿤데라의 삶의 성찰들
이현우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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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에게 ‘운명애‘는 초인의 행위이자 극도로 주권적인 행동입니다. 운명을 사랑하는 것은 노예가 아닌 주인만이 할 수 있습니다. (37쪽)

삶에 대해서 성찰하기 위해서는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소크라테스주의는 삶과 성찰을 분리시킵니다. 그렇다면 성찰하는 사람은 조르바의 표현에 따르면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제대로 사는 동안에는 성찰할 수 없지요. 이것이 조르바주의입니다. (45쪽)

이 삶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은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것, 윤리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반복되어도 좋을 만한 것으로 최선의 삶을 살라는 주문이기도 하니까요. (66쪽)

카잔차키스에게 핵심적인 가치는 자유였죠. 자유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선택은 다르게 말하면 유혹입니다. 최후의 유혹이나 하느님의 부름에 대한 부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말하자면 신이 선택한 게 아닙니다. 예수가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권‘이지요. (83쪽)

달이나 6펜스냐. 단, 둘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17쪽)

삶의 본질이 무엇이냐? 표상과 의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맹목적 의지는 욕망으로 바꿔도 됩니다. 욕망은 우리를 항상 파멸로 몰고 가니 억제해야 합니다. 욕망은 우리를 항상 파멸로 몰고 가니 억제해야 합니다. 성에 대한 욕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온갖 종류의 욕망, 의지를 다 거부합니다. 이것이 쇼펜하우어적 염세주의입니다. (127쪽)

우리가 개념을 습득하면 그로부터 새로운 시야가 열립니다. 하지만 이면도 있습니다. 즉 보게하지만 보지 못하게도 합니다. 여러 개념을 바궈가며 살펴봐야겠지요. (186쪽)

사람들 대부분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해우이,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모든 것은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96쪽)

그렇다면 일회적인 삶은 아주 가벼운 것이고 이를 극복해서 아주 무거운 삶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다 하더라도 이대로가 더 나은 것인가?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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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라고 믿는 존재, 사람들이 나라고 믿는 존재에서 나의 실체는 뭘까? 타인에 의해 인지되는, 타인이 인지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는 실험을 한다. 나는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명 이상이 될 수 있는 어떤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잡힐 듯한 내용, 어렵다.. 푸르고 초록초록한 5월이 올해만큼 힘들기는 오랫만이다. 그럴수록 책을 읽자.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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