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개인의 경험치와는 어마무시하게 먼 곳에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이야기는 새롭게 매우 겸손하게 된다.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저자).'

    

2. '클레어의 카메라',  '더 테이블' 영화보다.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차이는 뭘까. 부정직해서 해고를 당하지만 진짜 이유는 뭘까. 만희가 노래하는 수의 의미는?

  '사진 속의 저는 다른 사람 같네요.'

-위치가 달라진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너의 찌질한 모습이 보여. 돌고 돌아서 자잘한 선물들을 들고 이제사 너에게 왔네. 이제야 좋아서 하는 진짜 결혼 같은 거를 하려는 그녀 앞에는 가짜 엄마가 있네.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다른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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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전 -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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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의 무게는, 곡절 속을 헤쳐나온 개인의 체험은, 그 나라 역사에 깊이와 부피를 덧얹는다. 개인사의 총합이 곧 역사일 순 없겠지만 역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쟁이나 혁명이나 왕조의 흥망이 아니라 개인사 안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49쪽)

한 사람의 인간을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품어 기른 자연일까. 지혜를 준 스승일까. 아니면 만나고 사랑하고 다툰 세상 전체일까. 그는 인간의 삶이 단순히 현생에서 끝나는 건 아니라고 믿는다.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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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 아껴서 아껴가며 읽은 글이다.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선물로, 교보를 들러 삼청동길을 돌아 칼국수와 동동주까지, 배추적을 장탄식하면서 마셨다.

무작정 떠난 속초에서도 메밀전과 감자전 뒤에 따라오는 배추적 맛이 혀끝에 감돌았다.

밍밍하고 그저 그런 맛이라 하지만 만가지 기억이 오롯이 들어 있다.

각 개인에게 가장 원초적이고 아쉽고 안타까운 기억들과 맞물려 있는 음식이 있을 거다.

  

'고담하고 소박하고 부드럽고 슴슴하고 수수하고 의젓하다는 말은 실은 백석의 시에서 따온 백석의 단어들임을 고백한다(52쪽)'

'1부 아득하거나 아련하거나, 2부 고담하거나 의젓하거나, 3부 슴슴하거나 소박하거나'에 각각 들어 있는 음식들, 어찌 그 맛을 다 알리요. 하지만 글을 읽으며, 신기하게도 그녀의 기억 속에 들어가 오감이 깨어나면서 느끼게 된다.  

깊이 깊이 온 몸을 관통한 맛,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그러한 음식들은 배추적, 쑥버무리, 호박 범벅(호박 뭉개미), 증편, 명태 보푸름 정도이다.  

 

*만들어 먹은 배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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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 김서령이 남긴 조선 엄마의 레시피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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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속성이 있다. 다 잊은 줄 알았던 옛 부엌의 아침과 저녁들이 앞다퉈 떠오른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아이를 많이 낳아 부엌에서 제대로 된 방식, 우리 엄마말로는 ‘조백을 갖춘‘, 범절 있는 음식을 푸지게 만들어 먹이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내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부엌일에 동참시켜 장장근이 발달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혀와 눈과 코와 귀가 탁월한 기능을 갖도록, 강제가 아니라 즐거운 방식으로 단련해, 세상 온갖 미감을 만끽하는 인간으로 키우고 싶다. (29-30쪽)

그러려면 그 교육 장소는 부엌 이상 가는 곳이 없다고 나는 믿는다. 고추를 손바닥으로 비벼보고 냄새 맡고 마늘을 까고 깧고 오이를 문지르고 가지와 파를 결대로 찢고 늙은 호박 껍질을 닳은 숟가락으로 벗기고 양파와 토마토의 단면을 정신없이 들여다 보며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맵고 짜고 다록 쓰고 신맛을 혀끝에 올려놓고 전율할 때 인간은 우주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기심과 탐욕과 분노와 공포 같은 걸로 흐려진 인간성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선하고 고운 그 무엇, 썩은 감자 속에서 길어 올리는 매끄러운 녹말 같은 그 무엇, 어쩌면 인이거나 사랑이거나 자비라도 불러도 좋을 그 무엇, 바로 그것을 대면할 수 있는 가장 가깝고 너그러운 장소가 저 산꼭대기 선방이나 성균관의 명륜당이 아니라 부엌이라고 나는 확실히 믿는다. (30쪽)

현재가 아닌 오래고 먼 시간, 이 부엌에서 지은 밥을 먹고살던 조상들이 줄줄이 뒷산으로 돌아가 묻혔던 시간, 일 년에 한 번씩 생전에 먹던 그 밥을 먹으러 뒷산에서 사당을 거쳐 제상 위에 올라가 슬그머니 앉던 시간, 내가 다시 그리로 돌아가 누을 먼먼 미래의 시간, 지금 내가 보는 풍경 안에 그것들이 서로 겹쳐지고 있는 것을 나는 느낀다. (47쪽)

냉동실 문 앞에 하염없이 서 있다. 허쁘다는 말은 기쁘다와 슬프다와 고프다와 아프다를 다 녹여 비벼놓은 말이다. 삶이 ‘삶은 나물‘보다 못할 리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다 사라져버렸을 리야. 냉동실 문을 잡고 삶과 죽음의 어처구니없음을 생각하는 날, 민들레 꽃씨를 휭휭 나록 뭔 새는 줄곧 쪼롱쪼롱 울고 줄에 넌 빨래는 바람에 화르륵 화르륵 뒤집힌다. 나는 오늘 저 시래기를 녹여 멸치를 대가리 채 솰솰 부숴 넣고 시래기국을 한 솥 끓여볼가. 해 지고 난 후 고개 숙이고 후루룩거리며 마셔볼까. (87쪽)

요즘처럼 먹을 게 넘쳐나는 때에 익지는 무엇이고 콩장은 또 무언가. 나는 내 부엌에서 절대 그런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필요를 느낀 적도 없다. 그러나 이상하다. 익지란 말을 엉겁결에 발음하고 나서 나는 난데없이 그 밍밍한 무와 심심한 콩장 맛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맛이었다. 결코 맛있지 않은 맛이었다. 그런데 그 맛 속에 별의별 것이 담겨 있었던 것만 같다. 무와 콩을 길러낸 척박한 땅에 비치던 은은한 햇볕과, 땅속 깊이 인색하나 달디 달게 숨어 있던 지하수와, 눈물이 돌 것 같은 겸허와 수도승같이 맑은 인내와, 텅 빈 밭이란 위로 불어오는 바람결 같은 가난과, 그 가난과 짝을 이룬 꼿꼿한 자부와 자존심이 슴슴한 익지 맛 안에 모조리 담겨 있었던 것만 같다. (121쪽)

햇장은 산뜻하고 풋풋했다. 산뜻하되 순가넹 지나가는 산뜻함이 아니라 코끝을 오래 감도는 산뜻함이었다. 풋풋하되 풀을 비빌 때 나는 풋풋함과는 달리 옅은 곰팡내가 휘발하면서 풍기는 풋풋함이었다. 그래서 향이 깊고 여운이 길었다. 그러면서 코끝을 싱그럽게 자극했다. 날이 길어지고 먼 산에 아지랑이가 아물거리면서 실내가 갑자기 어둑신해지는 계절, 햇장은 그럴 때에 뜬다. (143쪽)

정성, 거기에 대해 나는 할 말이 너무도 많아졌다. 젊어서는 주변에 널려 있는 하염없는 정성들을 비웃었다. 나는 남들에게 저렇듯 헛된 정성을 바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까기 했다. 나이든 지금은 우습게도 정반대가 되었다. 인간이 제 안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대 가치는 정성이라는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145쪽)

생각해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말없이 반짝이고 글썽이는 것들‘에 매혹돼왔다. 반짝이지 않거나 글썽이지 않거나 말이 없지 않거나 하면 내 마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반짝이는 것은 재주이고, 글썽이는 것은 슬픔이고, 말없는 것은 수줍음 혹은 고요라고 할까? 아름다움의 개념을 왜 그런 쪽으로 규정했던지 스스로도 해명할 길은 없다.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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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WHY?" 그냥 떠오르는 질문에 대답하 듯 여대생들에게 획일적인 대학교육을 친구의 입을 빌어 꼬집고 있다.

또한 직업을 가진 여성에게 장애물이 되는 '집안의 천사'를 죽여야 온전한 자신이 된다는 사안을 질문으로 던지고 있다.    

요새말로 금수저로 태어난 버지니아 울프는 세상과 여성이라는 자신을 향해 언제나 "WHY?"로 질문하고 답했다.

적어도 주변의 상황과 맞닥뜨리는 일에 왜라고 물어라도 보자...        

2.

영화 "ROMA", 남자로부터 버려진(남겨진) 두 여자의 이야기다. 70년대 멕시코에는 그녀들과 무관하게 많은 일이 일어난다. 삶의 현장에서 미리 알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이제는 우리끼리 뭉쳐야 해'로 떠난 여행에서, 수영을 못하는 클레오가 파도에 쓸려가는 아이들을 구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몸을 싸안는 행동으로 진정한 한 가족이 된다. 감독의 자서전적인 영화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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