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독서 두번째 이야기 - 길을 안다는 것, 길을 간다는 것 여행자의 독서 2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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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렇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어쩌면 감동하는 능력, 작고 사소한 것에도 감탄하는 능력인지 모른다. 언제부터 우리가 쿨한 것, 감정을 억제하거나 표현하지 않는 것, 쉽게 만조갛지 않는 것을 세련되고 고상한 것으로 여기는 세상에 살았던가. 그래서 우리는 더 행복하고 세련되었는가. 감동이 드문 사람의 삶은 얼마나 무미건조한 것인가. (91쪽)

하나의 도시 하나의 장소를 제대로 알려면 도대체 얼마나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까? (중략) 하나의 도시, 하나의 장소가 가슴에 온전히 안겨오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일주일? 한 달? 일 년? 그렇게 머문다면 과연 그곳을 완벽하게 알게 될까? (140쪽)

내가 연애하고 책을 읽고 달뜬 청춘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다. 여행하고 공부하다 사회에 첫발을 디딜 즈음이라 한다. 그때 별 관심을 갖지 않던 지구 반대편 어떤 땅에서는 청춘도 삶도 다 무의미했던 끔찍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한다. 전쟁과 폭력, 증오는 언제나 늘 멀지 않은 곳에 도사리고 있다. (153쪽)

인간(근대)은 섬을 발견했다. 하지만 섬에 대대로 살던 무수한 자연과 생물, 원시와 신화는 섬을 떠나야 했다. 낯선 침입자들에 대한 섬의 응전은 처절한 것이었고, 동시에 섬에 처음 당도한 이방인들이 갖는 두려움도 대단했겠지만 이내 그 공포는 극복되었을 터다. 스스로 위대했던 섬들이 문명 앞에 하나씩 무릎 꿂으면서 많은 것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섬의 죽음은 미지와 원시의 죽음이다. (265쪽)

객창감. 그렇다. 이 단어다. 내가 여행에서 즐기는 감정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객창감. 그 쓸쓸함의 즐거움이다. 별 까닭도 없이 이끌려 젊은 날 많은 시간을 외딴 시골길이나 장터, 비 오는 처마 밑에 서게 했던 감정의 실체. 함께 놀던 친구들이 제 어미들에게 불려들어가 저녁 빈 들판에 혼자 남겨진 아이처럼 홀로 달빛 속으로 유유히 걸어가게 했던 감정. 객창감 속에 떠다닌 여행은 쓸슬했지만 그 쓸쓸함으로 여행의 시간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희망이나 거짓 행복이 더러 사람을 배신하는 일은 있어도, 쓸쓸함과 외로움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은 드물다. (327쪽)

정신의 고산 지대에 들어선 사람은 우리가 이 고산 지대에서 희박한 공기에 익숙해져야 하듯 불확실성에 익숙해져야 한다. 또한 엄청난 고도에 익숙해져야 하듯 엄청나게 고고한 질문에 익숙해져야 하고, 또 이들 질문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답변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에서 (3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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