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인간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원인을 개인의 기질 문제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중국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이 미치는 영향력에 훨씬 큰 비중을 두었다.-13쪽
우리는 어쩌면 생각과 느낌을 혼동하도록 교육받아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이나 판단을 느낌으로 착각할 때가 많다. 아이는 부모에게 야단맞을 때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창피하고 억울한 느낌은 좀처럼 표현하지 못한다. 아이는 어떠한 감정도 나타낼 수가 없다.-20쪽
다시 말해 기쁨은 범문화적인 감정이지만 어떤 사람은 내적인 경계 안에서 기쁨을 느끼는 반면, 다른 사람은 내적인 영역을 넘어 타인의 마음에 비춰지는 자신을 알고 난 뒤에야 기쁨을 느낀다. 이 사실은 나와 타인 사이의 최적의 거리는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34-35쪽
정이라는 정서야 말로 '피'의 관계로 분석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인 감정이다.-43쪽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개인과 인간관계가 별개의 유기체로 존재한다.그러한 문화 안에서 인간관계란 '행위'를 기초로 하는 과정이다.-50쪽
즉, 미국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계와 한국인에게 중요한 관계는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화할 수 있고 통합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할 문제이다.-56쪽
건강한 분화는 '따로 또 같이'의 느낌이 지속되는 과정이다. 분명 한국의 부모와 자녀들은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한 문화자원을 가지고 있다. 부모와 자녀는 따로 떨어져 살지만 늘 함께 있다는 느낌을 공유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켜야 할 '관계적 경계'이다.-84쪽
내가 안전하기 위해 담을 높이 쌓아 올릴 것이 아니라, 함께 하면서 공감하고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관계가 공존할 수 있도록 남을 배려하는 바로 '관계적인 경계'가 필요하다. 우리의 존재 밑바탕에 경계와 경계의 사이를 관계로 메울 수 있어야 한다. 자녀를 믿는 마음, 전문인과 의뢰인,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의 믿음도 이러한 존재론적인 관계에 대해 인식할 때 가능하다. 서양의 개인주의적 관계가 아닌, 너와 내가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상호의존적 관계 말이다. 이러한 관계는 결코 서양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통제하지 않으면 통제 당한다는 서구의 논리로 생각하면, '관계'란 통제 당하지 않고 중독되지 않기 위해 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는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다. 한국인의 관계는 너와 나 사이에 주어진 존재의 사물이다.-93쪽
으슬으슬, 춥다. 무릎담요를 가지고 갔다. 빗줄기가 굵다. 조금이라도 빨리 오려고 달렸다. 도심은 햇살이 짱짱하다. 거짓말처럼 도시이편과 저편은 날씨조차 다르다.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필요하다. 조금씩 속이 시려오는 날이였다.
너무 바짝 붙어 있어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지 모르나, 체험의 실상은 '현장'에 있었던 사람만이 알 수 있다.-23쪽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자라 할지라도,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가슴 깊이 간직할 수만 있다면, 비록 짧은 순간에 그칠지라도 구원의 빛이 찾아든다는 걸 뼈저리게 이해한다.-72-73쪽
사람의 고통을 나는 가스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텅 빈 공간에 가스를 주입하면 가스는 공간이 크든 작든 그 공간을 구석까지 균일하게 채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고통도 크건 작건간에 사람의 의식을 가득 채우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겪는 고통의 '크기'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83쪽
사람은 미래 의식이 있을 때만 존재할 수 있는 특이한 존재이다.-129쪽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하고, 그걸 모르는 사람에게는 깨우쳐 주어야 한다.-135쪽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즉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또 순간순간마다 바뀐다.-136쪽
인간은 여러 사물 속에 놓여 있는 한 가지 물건이 아니다. '사물'은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에 있지만 한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209쪽
불안감 속에서 쫓기듯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꼭 가면을 쓰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 가면을 벗고 "완성의 다음에 오는 저 느긋함과 덤비지 않는 의젓한 얼굴'을 가지기를 애타게 바라는 한 젊은이의 모습을.-75-76쪽
조직으로부터 주어지는 수많은 지시들에 항명抗命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가만히 종이 위에 'I would prefer not to'라고 써보곤 했다.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과업이 주어졌을 때, 쓰기 싫은 기사를 써야만 할 때, 기사를 쓰고 싶은데도 도무지 기삿거리가 없을 때, 모두들 꺼리는 보직을 맡게 되었을 때……. 그 문장을 휘갈기고 있다 보면, 비밀의 주문이라도 외우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I would perfer not to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224쪽
희망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 욕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현실적이고 비루하지만 희망은 비현실적이고 정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무언가를 갈구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그 둘은 같은 것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욕망은 절망감을 낳고, 그러한 절망감은 증오와 다툼, 고통을 낳는다. -246쪽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기 마련"이라는 구절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만 같아서 좋았다.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종종 '나는 지금 구부러진 길모퉁이를 지나고 있는 거야, 앤처럼 말이야'하고 생각했다. 내게 '빨강머리 앤'은 고통과 절망을 상상력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 스승인 동시에, 소녀다운 꿈과 욕망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였다.-292-293쪽
"아까 것보다 훨씬 못해."그레고리는 안타까워했지만, 성모 그림은 스스로 어울리는 것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남색 면 헝겊은 지네트 부인이 준 리본처럼 아름다운 감청색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칙칙한 천이 더 보기 좋았다. 성모 마리아는 자신이 부엌에 있게 될 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소박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내가 계획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영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아, 이일이 결과적으로는 내게 더 좋은 일이 될 거야'라고 마음을 다독이는 버릇을 가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어린 시절 이 책의 위 구절에서 입은 영향 때문이다. 대학에 떨어졌을 때, 연애에 실패했을 때, 회사에서 원하는 부서에 보내주지 않을 때, 나는 항상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어울리는 것을 찾아가는" 그레고리의 성모 그림처럼 되게 해달라고.-351쪽
먼길을 갔다. 호수를 따라 걸었다. 주말은 무지 따뜻했다. 완전 봄날이었다. 갈땐 햇살을 따라 갔는데, 올때는 달빛도 없다. 밤길이다. 앞으로만 나아가는 사람들... 함께 더불어 갈 수도 있는데 아쉽다... 어제는 비가 왔다. 나무 아래 세워 둔 스파이드맨은 벛꽃을 입고 있다. 그냥 그대로 예쁘게(?)돌아왔다. 봄바람이 분다면 팔랑팔랑 날릴텐데...비가 왔기에...지금은 바람이 씽씽 몰아쳐 귓가까지 들린다. 봄날은 변덕이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