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철학자들 죽음을 요리하다 1881 함께 읽는 교양 6
토머스 캐스카트 지음, 윤인숙 옮김 / 함께읽는책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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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죽을 운명임을 부정하는 이유는 뻔하다. 죽음을 예상하는 것은 끔찍하니까! 우리는 단지 잠시만 이 세상에 존재하며, 죽으면 영원히 사라진다는 사실을 대면하는 고통은 극도의 불안을 야기한다. 이러한데, 즉 시계 초침이 그리도 크게 째깍거리는데, 어찌 삶을 즐길 수 있겠는가?
베커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미망(delusion, 망상, 착각) 그야말로 대미망(大迷妄, Big Delusion)이다. 이것은 인간의 원초적 동인-성적 동인보다 더 원초적이라고 배커는 말한다-이며, 우리를 불멸한다고 믿게 만드는 비이성적 신념 구조인 '불멸 시스템'을 태동시킨다. 무한한 미래로 이어지며 어쨌든 우리도 그 일부가 되는 부족, 인종, 또는 국가와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는 그 흔한 전략도 있다. 또한 예술을 통한 불멸 시스템도 있다. 이 시스템 속에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남으리라 상상하며, 자신도 역시 그러하리라고 기대한다. -24-25쪽

칼 구스타프에 의하면 종교는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상징들을 제공함으로써 정신을 대변한다. 이러한 상징들이 계시력을 갖는 건 이들이 꿈, 문화적 신화, 그리고 종교들을 통해서만 우리의 의식에 접근할 수 있는 본능적 지혜의 창고, 즉 깊은 무의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 의식이 이 깊은 영혼과 연락이 끊길 때-즉 소원하게 될 때-바로 우리는 그 모든 것의 근원적인 무의미함으로 인해 끔찍하게 우울해지는 신경 이상 증세를 보이게 된다. -37쪽

"......키르케고르에 의하면, 자네의 만사 관련 모든 불안은 그 심리 상담실 소파에서 쏟아 놓는 불평보다 훨씬 먼저 생긴 것으로, 자네가 언젠가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된 거라네. 그리고 아마도 자네가 엄마, 동생 스키피, 그리고 아빠에 대한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자네의 진짜 문제, 즉 그 큰 죽음이라는 문제로부터 자신의 주의를 돌리기 위한 방편일 뿐이야."-44쪽

마이클 프레인은 또한 '지금'을 이렇게 말한다.
"아! 지금! 그 기이한 시간. 모든 시간 중에서 가장 기이한 시간. 항상 있는 그 시간......우리가 '지금'의 '금'자에 다다른 시간이면, '지'는 이미 고릿적 얘기가 돼 버린다."-100-101쪽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의 영원한 삶의 가능성에는 별 관심이 없다. 아마도 그때 영원한 삶이 있었다 해도 그걸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바로 이 점은 '만약 영혼이 불멸이라면 우리 사후의 의식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그 오랜 질문에 대해 새로운 조망을 하게 한다. 우리는 지상에서의 의식을 기억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불멸에 대해 떠드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임Me-ness'이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면, 지금이 됐든 혹은 그 때가 됐든 간에 상관할 바 뭐란 말인가? 또는 달리 말하자면, 어느 쪽의 '나'가 됐든 간에 왜 우리가 거기에 상관해야 하는가?-128쪽

세네카는 "현명한 사람은 그가 살 수 있는 한 오래가 아니라 살아야 할 정도로만 오래 살 것이다.(......) 그는 항상 자신의 삶의 질에 관해 생각하지, 그 길이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마음의 평온을 해하는 많은 일들이 생기면, 그는 곧 자신을 놓아 버린다"고 썼다.-197쪽

윌리엄스는 좋은 삶이란 반복과 따분함이 불가피하게 자리 잡기 전에 끝나는 삶이라고 말한다. -226쪽

우리는 우리의 경험들을 서로 연결하고 그것들에 일관성과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아를 경험한다. 우리의 자아는 우리의 경험들에 구조를 부여하는 '통찰점'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시간을 '살아 있는 현재'로 경험한다. 하나의 경험으로써의 시간이란 개별적 순간들로 이루어지는 그저 직선이 아니며 또한 궤도를 달리는 현시점도 아니다. 우리의 현재는 우리의 과거 기억들과 미래의 기대들이 항상 밀접하게 맺어저 만들어진다. 우리는 지속되는 시간을 통해 우리의 자아를 경험하는 것이다. -238-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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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교수의 '공부'를 읽으며 나또한 책과 함께 끝.까.지 공부하고 살 것을 맹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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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 김열규 교수의 지식 탐닉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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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모든 공부, 온갖 공부의 시작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공부는 읽기로부터 출발한다. -86쪽

이렇게 우리 누구나 온 평생을 책벌레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책만 들고 앉으면 다른 사람이 가진 것도, 누리는 것도 서 푼어치가 안 되어 보이는, 그런 지악한 책벌레가 되기는 어려운 것일까? 그가 나이를 먹어서 어른이 되고 예순 살, 일흔 살을 넘은 노년이 되기까지 줄곧 또 줄기차게 책벌레로 살아간다면 그는 백만장자가 아닌 '책만장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 책의 억만장자는 머리의 억만장자를 의미할 것이다. 뿐만 아니다. 가슴의 억만장자를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되어가면서 책 읽기로 살아가는 한평생!
서가 앞에, 거기 꽂힌 책들 앞에 다리를 펴고 편하게 앉아서 그 하고많은 낯익은 구면들이 던지는 정겨운 눈짓을 즐거이 받아내는 삶!
그렇게 책을 더불어서 살아갈 수는 없을까?
-90쪽

즉 스스로 알아서 하는, 자신을 위한 자신만의 공부, 그런 자율적인 공부야말로 인간을 키워나가는 데, 인생을 설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하게 된다. 학생은 자율적인 공부로 스스로 자라고 스스로 삶의 길을 열어나가는 것이다.-196쪽

공부는 언제 어디서나 속도와 기동성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그런 뜻으로 모바일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은근과 느긋함이며, 끈기와 줄기참이 공부에는 필수적이다. '스터디study'는 '스테디steady'해야 한다. 흔들림 없이 침착해야 하고, 서두름 없이 착실해야 한다. 모바일 시대일수록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모바일이 아니라 요지부동 태산 같아야 한다.-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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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예술가들을 만났다. 주체가 되어 그린 그림과 만든 작품들, 정신이 절로 차려지고 가슴이 쿵광거리고 생채기가 나지 않고는 볼 수가 없다. 그녀 자신들의 삶을 오롯히 전달해 주는 그림, 소름이 돋는다. 작품과 그녀들의 인생이 동일하다... 인상깊은 것은 니키 드 생팔이 지은 '타로공원'에서는 놀고 싶고, 에바 헤세의 '접근'은 만지고 싶은 욕망을 누룰 수가 없다. p195 에 있는 사진을 드려다 보면 한없이 빨려들어 간다. 그러면서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십자가'는 직접 보고 싶다. 그녀의 성당에 있다는 십자가는 한 쪽은 주먹 쥔 손, 한 쪽은 펼쳐진 손이 조각되어 있다.  '삶은 쥐다와 놓다의 가로지름이라고... 쥐고 있는 손은 우리의 집착과 애증에 연민하도록 하고, 열린 손은 아픈 우리를 향해 손 내민다.(길위의미술관 p253)'고 그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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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미술관 - 제미란의 여성미술 순례
제미란 지음 / 이프(if) / 2007년 10월
품절


루이즈 부르주아와 함께 우리 시대 가장 걸출한 페미니스트 조각가로 꼽히는 키키 스미스. 그녀가 만들어내는 여성들은 남성 미술가들이 전통적으로 만들어 온 여성의 아름다움을 거부한다. 나른한 섹시함과 에로틱 판타지로 그들의 욕망에 복무하는 대신, 여성의 몸을 저항과 위반의 메타포로 뒤바꿔 버린다. 여성의 몸을 가부장적 시선으로부터 떼어 내서, 그녀들이 살아온 몸의 체험 그대로 되살려낸 것은, 현대미술에서 그녀가 이룬 최고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26쪽

이리가레이 등은 여자의 말이 이성과 합리성으로는 설명될 수 없고, 남성 지배의 담론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사유 과정이라고 말한다. 여자의 말은 한 곳에 집중되지 않은 성감대처럼 다중적이고, 촉각적이며, 유동적이고, 열려 있다. 이러한 특성은 열등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다.른.것이다.-46쪽

리지아는 뫼비우스의 띠를 자르는 행위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심리적 모순을 극복한다. 객관 세계와 내부 충돌 사이에서 오는 모순점. 그녀는 이 과정을 통해 이원성의 수렁에서 스스로를 건져냈다고 말한다. 그녀는 말한다. "뫼비우스의 띠느 우리를 한계 없는 시간의 경험 속에 살게 해 주고 계속되는 공간의 경험 속에 살게 해 주는 것이었다."-64쪽

왜 하필 카드게임을 주제로 한 타로 공원이냐는 질문에 그녀(니키 드 생팔)는 그 안에 삶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삶이 카드게임이라면 우리는 그 룰을 모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게임은 계속돼야 한다. 타로카드는 그저 게임일 뿐일까. 아니면 그 이면에 삶의 철학이 존재하는 것인가?... 타로는 영적 세계와 삶의 시련에 대한 위대한 이해를 주었다. 그리고 모든 어려움ㅇㄴ 극복될 것이며 결국 내적 평화와 천국의 정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124쪽

"나는 늘 모순들을 생각하고, 모순된 형태로 작업하는 것을 생각해요. 그것은 온통 부조리한 이 삶 안에 존재하지요. 내겐 모든 것이 대립적이에요. 중간이란 존재하지 않지요."
도무지 함께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극단이 무심하게 병존하며 일으키는 기이한 모호성. 이 모호성이 그녀(에바 헤세)에게로 가는 키워드다.-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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