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9년 12월
장바구니담기


사실 되돌아보건대 아가멤논, 클리타임네스트라, 또는 오레스테스가 고통을 당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의아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멀고 먼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 때문에 그런 고통을 받는다는 신화적인 설명은 지금 우리의 감수성으로는 받아드이기 어렵다. 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의 뜻에 따라 파멸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이런 문제에 직면하여 결코 부당함을 하소연하지 않는다. 애초에 인간은 우리 인식의 한계 너머에서 우래된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재앙에 묶인 존재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비극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한탄하지 않고 그것에 당당하게 맞부딪친 다음 장대하게 스러질 뿐이다. 이 모든 것들은 긍극적으로 선(善)이 승리하는 과정이다. -37-38쪽

[데카메론]은 100가지의 다양한 상황을 설정해 놓고,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 탐구한다. 이 소설을 통해 보카치오가 반종교적, 반도덕적 태도만 주장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도덕이나 종교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인간은 물론 운명의 힘에 휘둘리며 고난을 겪기도 하고 고통받기도 하지만 때로 참고 견뎌 내고, 때로 자신의 기지를 발휘하여 역경을 헤쳐 나간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이 아니다. 이제 신의 생각이 어떠한지 더듬어 헤아리기보다는 인간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78쪽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형재애)를 기치로 내걸었다. 그렇다면 혁명을 통해 정말로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되었을까? 비판적인 논자들은 혁명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방의 가능성을 말했지만 실제로는 여성들을 배제하고 억압했다고 주장한다. 형제애는 있었을지 몰라도 자매애는 없었으며, 그 형제들(시민)이 아버지(국왕)를 살해하고 권력을 잡았을 때 나타난 결과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질서였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관점에서 볼 때 혁명은 마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130쪽

양편을 가르는 결정적 기준은 '국가'이다. 즉, 국가의 편에 서서 해외로 나가 폭력을 휘두르면 해군이나 사업가가 되고, 국가의 명령을 위반하면서 해외로 나가면 해적이 된다. 그 밖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에서 이를 잘 표현하는 구절을 찾을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사로잡힌 해적에게 왜 바다를 어지럽히면서 도둑질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해적은 오만불손한 태도로 이렇게 대답했다. "세계 각지에 출몰하는 당신과 다를 바 없소이다. 다만 나는 작은 배를 타니까 해적이라 불리는 것이고, 당신은 막강한 해군을 가지고 있으니 황제라 불릴 뿐이오." [보물섬]에서 설파하는 도덕률이 모호한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145쪽

자신의 선한 정체성을 확고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흔히 외부의 악한 모습을 만들어 내서 그것을 거울로 삼아 대조하곤 한다. '서구'는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암울한 측면을 다스리기 위해 그것을 뒤집어씌운 사악한 이미지의 '동방'(동유럽. 그리고 더 나아가서 동양 세계)을 필요로 한 것이다. 에로틱한 방식으로 여성들을 유혹해서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마 같은 존재인 드라큘라는 곧 진보하는 사회의 내면에 자리 잡은 세기말의 불안한 그림자이다. -20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