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 '이면의 삶', '콤플렉스', 등등에게 말을 거는 법을 읽었다. 내내 나의 그림자를 찾았다. 마음에서 불편한 점을 끄집어 내어 말을 걸어보는 법도 괜찮다고 한다. 가끔씩 중얼거리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리라. 매끄럽지 못한 문장들이 간간히 있었다. 나의 문제인지, 역자의 문제인지는???  

 

눈이 또 왔다. 크리스마스가 다가 온다.

'사평역에서', '설국', '크리스마스 선물', 'Love Story', '단팥죽', '아메리카노', '베이글', '케익', '캐놀', '산타클로스', '메시아', '친구', '이야기', 등등 詩, 소설, 영화, 먹을 것, 상징들이 그립다. 많이.

 

Happy and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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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 - 내 안의 접힌 나를 일깨우는 마음여행
로버트 A. 존슨.제리 룰 지음, 이종도 옮김 / Y브릭로드(웅진) / 2009년 4월
구판절판


선택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고통의 근원이 된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전혀 손을 쓰지 않으면 그것은 무의식 어딘가에서 사소한 문제를 일으키고 급기야는 복수를 감행한다. '이면의 삶'은 쓰지 않거나, 제쳐두거나, 버렸으니 쓸모없어졌다고 치부한다 해서 '사라져버리는'것이 아니다. 그 대신 '이면의 삶'은 내면의 지하로 들어가 우리가 나이를 먹었을 때 아주 심각한 골칫거리가 되곤 한다.-34쪽

콤플렉스는 현실을 드러내 보이고 우리의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 또 우리를 우울과 불안, 낙심과 후회로 내몰며 심지어 아프게가지 한다. 최악의 경우는 우리가 타고난 변화에 대한 창조적 적응력까지 방해하며, 우리를 반복적인 반응 패턴에 묶어두기도 한다. -95쪽

자신의 콤플렉스(무의식)가 무엇인지 찾는 쉬운 방법이 있다. 지난 한 주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지 돌이켜보는 것이다. 어디에서 누구와 싸웠는가? 언제 어떻게 무엇을 미루거나 회피했는가? 나 자신을 제대로 변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를 깔아뭉갰을 수도 있다(권력 콤플렉스). 남들을 기쁘게 하려고 자신의 요구를 희생하기만 했는가? 으스대거나 얕잡아보거나 해서 과잉 보상을 받으려 했는가?(열등감 콤플렉스) 셈을 치르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돈 콤플렉스). 친구와 동아리의 잠재적 지지를 계속 끊어냈는가?(외톨이 콤플렉스) 어느 길목에서 인생을 충만하게 살지 못했나? 때로 이를 어머니 콤플렉스라 부르는데, 어머니 콤플렉스란 유아기에 머물고 싶어 하며 반즘 잠들어 지내는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성장기에 부모가 자식을 너무 쥐고 흔들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남들엑 좀처럼 하지 않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왜 그런가? 충돌을 피하고 싶어서인가? 불편하거나 긴장하거나 예민해지는 때는 언제인가? '이면의 삶'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만큼 타인에게 전가된다. 남들을 비난하고 혹평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평가절하하고 무시하기 때문이다-105-106쪽

내 안의 비평가, 오랫동안 고통받은 내 안의 희생자, 분노에 찬 냉소주의자, 공포에 떠는 아이, 또는 나의 창조의 여신과도 우리는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자신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가? 누가 말썽을 일으키는가? 자신 안에 있는 누가 계속 나타나서 불안과 절망, 불만과 공퐁에 이르게 하는가? 주의를 기울이면 자신 안에서 누군가가 끊임없이 촌평을 달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그들은 각각 누굴 대신해 말을 하며, 또 누구에게 반대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다 보면 지하 세계의 그림자들, 구체화되길 원하는 에너지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건 고통스러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173-174쪽

인생의 후반부에 '영원한 청년'의 정신을 꾸준히 지키려면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갖고 노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일과 책임, 의무에 굴복하기 전에 발견의 기쁨을 되살려보라.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정체되어 있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이다. -229쪽

우리가 인생에서 경험하는 것은 언제나 대립되는 이면의 것을 무의식 속에 남겨둔다. 진리는 언제나 짝으로 오며 우리가 이것을 견뎌야 현실에 발을 맞출 수 잇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서로 충돌하는 두 관점을 다 지지하지만 그렇게 해야 할 상황과 맞닥뜨리는 건 회피한다. 가령 일을 하러 가야 하는데 일하고 싶지는 않다. 이웃이 싫지만 이웃에게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한다. 살을 빼야 하는데 살찌는 음식을 너무 좋아한다. 우리는 매일같이 이런 모순과 함께 산다. 하지만 균형을 이루는 데 필요한 어느 한쪽을 없앨 수는 없다. 이웃에게 '악덕'을 뒤집어씌우는 것도 건강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수는 있다. 두 가지 측면을 모순된 것으로 바라볼 이유는 없는 것이다.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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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흘렀다. 시간이 참 빠르다. 그리고 난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 늙었다... 거울을 보면 새삼 느낀다. 시간의 흐름으로 늙어가고 있지만, 왜 시간은 늙음으로 향하고 있는지.... 늙어가면서 지혜롭다거나 현명해지는 건 아니어서, 안타깝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기억도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다. 쇠약한 육체로 그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것이 가당치나 할까,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가진 것들을 조금씩, 점점 사라지게 하는 건 아닐까. 시간이 하는 일은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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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품절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은 우리를 붙들어, 우리에게 형태를 부여하낟. 그러나 시간을 정말로 잘 안다고 느겼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금 나는 시간이 구부러지고 접힌다거나, 평행우주 같은 다른 형태로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이론적인 애길 하는 게 아니다. 그럴 리가, 나는 일상적인, 매일매일의, 우리가 탁상시계와 손목시계를 보며 째깍째깍 찰칵찰칵 규칙적으로 흘러감을 확인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초침만큼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 게 또 있을까. 하지만 굳이 시간의 유연성을 깨닫고 싶다면, 약간의 여흥이나 고통만으로 충분하다. 시간에 박차를 가하는 감정이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더디게 하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가끔, 시간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2쪽

"사실, 책임을 전가한다는 건 완전한 회피가 아닐까요? 우린 한 개인을 탓하고 싶어하죠. 그래야 모두 사면을 받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개인을 사면하기 위해 역사의 전개를 탓하거나, 그도 아니면 최다 무정부적인 카오스 상태 탓이라 해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제 생각엔 지금이나 그때나 개인의 책임이라는 연쇄사슬이 이어져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 책임의 고리 하나하나는 모두 불가피한 것이었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모두를 비난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사슬이 긴 건 아니죠. 하지만 물론, 책임소재를 묻고자 하는 저의 바람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ㄷ한 공정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제 사고방식의 반영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중점적인 문제 아닌가요. 선생님? 주관적 의문 대 객관적 해석의 대치, 우리 앞에 제시된 역사의 한 단면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가가 해석한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26-27쪽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101쪽

그러나 언젠가부터 향수鄕愁라는 것, 그리고 내가 그 때문에 괴로운 건지 아닌지 하는 문제로 마음을 뒤척이게 되었다. 확실히 나는 유년시절을 채운 자질구레한 기억 때문에 허우적대는 인간은 아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진실이 아니었던 것-옛 학교에 대한 사랑 등등-때문에 나 자신을 감상적으로 기만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향수라는 것이 뜨거웠던 감정들을 강하게 회고하는 것, 이제는 우리의 삶에 존재하지 않는 감정들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을 의미한다면, 나 자신도 예외일 수 없음을 인정한다. -142쪽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서글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을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162쪽

우리의 기억은, 아니 우리가 기억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얼마나 자주 우리를 기만하고 농락하는가. 그런 기억에 의존해 진리를 만들어 가는 우리의 이성이란 얼마나 얄팍하고 안이한가. 올더스 헉슬리는 "각자의 기억은 그의 사적인 문학"이라고 말했다.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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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으로 보는 많은 매체 속에서 단연 종이책을 주장하는 글을 읽으며, 예전에 잠실구장에서 야구 본 기억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안타를 쳤는데 순식간에 획 지나갔고 다음 타자가 나왔다. 그 순간 잠시 기다렸다. 다시 그 장면이 나오기를...  텔레비전의 야구중계와 착각을 한 것이다... 영상매체는 이와 같다. 내가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 책읽기는 내가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볼 수 있고 미리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종이책을 읽어야 한다. 종이책에 동의한다. 책 냄새, 책장 넘기는 소리, 손끝에 닿는 감촉, 오감을 동원해야 가능한 종이책이다. 그 느낌을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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