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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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우리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끌어낸다. 나는 마흔다섯. 엄마는 일흔일곱이다. (12쪽)

아침에는 수동적이고 오후에는 반항적이던 엄마는 매일 새로 만들어졌다가 매일 풀어져버리는 사람이었다. 당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재료를 굶주린 사람처럼 붙들고 스스로 창조한 세계에 애정을 보이다가도 일순간 어쩔 수 없이 이 생활로 끌려온 부역자처럼 느끼곤 했다. (26쪽)

우리는 엄마와 딸이 맞고, 거울처럼 서로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혈연이니 효도니 하는 단어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반대로 가족이라는 개념,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 가족의 삶이라는 것 모두 해석이 불가능한 세계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과연 그런 진실이 존재하나 싶어진다. (72쪽)

눈물은 바닥에 떨어지고 샘물처럼 솟아올라서 복도를 가득 메웠고 부엌으로 흘러 들어갔다가 거실로 흘러들어 두 개의 침실 벽에 부딪쳤고 우리 모두를 떠내려가게 했다. (96-97쪽)

나는 엄마로 뒤덮여 있었다. 엄마는 어디에나 있다. 내 위아래에 있고, 내 바깥에 있고 나를 뒤집어봐도 있다. 엄마의 영향력은 마치 피부조직의 막처럼 내 콧구멍에, 내 눈꺼풀에, 내 입술에 들러붙어 있다. 숨을 쉴 때마다 엄마를 내 안에 들였다. 나는 엄마라는 마취제를 들이마시고 취했고 풍요로우면서도 밀실처럼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엄마의 존재감, 엄마라는 실체, 숨통을 틀어쥐는 고통받는 여성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123쪽0

하지만 엄마는 알아듣지 못한다. (중략) 내가 엄마의 불안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엄마의 우울함에 완패해버렸다는 사실을 조금도 알지 못한다. 어떻게 알겠는가? 엄마는 내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데 엄마한테 말할까. 그건 죽음과도 같다고, 내가 여기 있는 걸 엄마가 모른다는 게. 절망과 혼란만이 가득한 눈으로 그저 멍하니 날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서른일곱 살 먹은 이 여자아일 못 본다는 게 슬퍼서 죽고 싶어진다고 말을 할까? 엄마는 또 언성을 높이겠지. "넌 날 이해 못해. 여지껏 한 번도 이해한 ㅈ거이 없어!" (161쪽)

한편 우리가 걷는 이 도시는 우리 안에서 끓어오르는 이 격정의 드라마에 길바닥 버전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190쪽)

나는 그를 사랑했다. 진심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어느 지점까지만 사랑했다. 그 지점을 넘어가면 내 안에서 무언가 불투명해졌고 그에게 줄 게 없어졌다. 나에겐 그 불투명한 막이 보였다. 입으로 맛볼 수 있었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었다. 스테판을 향한 내 감정과 나 사이에, 아니 어떤 남자가 됐건 그와 나 사이에, 확신할 수 없는 일종의 투명막이 드리워져 있고 나는 그 막으로 ‘사랑해‘라고 속삭일 수도 그 말이 들리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 말이 느껴지게 할 수는 없었다. (239-240쪽)

스테판, 데이비, 조. 그들은 제각기 너무나 다른 사람들처럼 보였고 따로 보면 그렇기도 했지만 나는 이 남자들과의 애착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이들과 잠시 잠깐 숨어 지냈을 뿐이었다. 그 남자들을 고른 이유는 그들이 나를 지금 이 순간으로, 즉 사람의 실패로 인해 마비돼버리고 침울해진 이 순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만 같았다. (294쪽)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지네."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중략) "제대로 살지도 않았는데. 세월만 가벼려." (중략) "그러니까 네가 다 써봐라.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걸 다 써야 해."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다. 우리는 끈끈하게 얽힌 혈육이 아니다,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을 그저 바라보는 두 여자다. (300-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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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기반으로 한 소설, [예수]는 기독교인이라면 픽션과 논픽션으로 오가는 글로 읽게 된다. 총 14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14회로 마치는 드라마 같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지금의 우리와 나의 모습으로 환원되고 대치 된다. 특히,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속마음이 인상적이다.

나는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모태 신앙이지만 60년 이상 다닌 교회를 휴학 중이다. 교회라는 공간의 의미도(교회 예배만 드리고 오는 상황에서), 교회 출석과 신앙의 관계도, 성경 말씀과 현재의 삶에서, 예수가 나에게 주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저자가 마지막에 한 말,

'나는 세상 것들에 강하게 얽매여 있는 평범한 그리스도인, 평범한 평신도에게 그리스도의 의미를 보여 주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 


*모리스 젱델이 처음에 한 말,

'그리스도교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머문다. 그리스도의 교리는 교리라기보다는 그분의 인격이다. 따라서 성경 말씀은 그 의미와 생명을 한번에 잃지 않는 한, 그리스도와 떼어놓을 수 없다. 비평가들은 통찰력을 가지고 끈기 있고 충실하게 초대 교회의 신앙을 집약한 책들을 연구하는 데 탁월하게 기여할 수 있었고, 실제로도 기여했다. 그러나 믿음 없이는 성경 본문에 담긴 삶의 비밀을 발견할 수 없다. 성경 본문의 영혼인 하느님의 현존이 발하는 빛 안에서 연속성과 움직임,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


겨울이 되었다. 새벽 기도 뿐 아니라 교회 행사에 모두 참여하는 동생과 김장하러 간다. 네 자매가 처음으로 모여 김장하기로 했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하기 전까지 끝난 게 아닌 우리의 계획, 우아한 백조들만 엄마를 돕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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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예수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정수민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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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영혼이 숨어 있는 곳까지 가서 그 영혼을 수중에 넣는 사냥꾼이었다. 그리스도는 손에 넣기 쉬운 목표물만 쫓는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죄인은 우리를 타락시키고, 우리는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 (98쪽)

예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인간적인 감정이 하느님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였고, 하느님의 열정이 피를 빠르게 돌게 만들었다. 말씀이 사람이 된 이후로 연민은 창조주와 피조물에게 공통된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가난한 이들의 굶주림, 목마름, 피로를 느꼈다. 그는 땀과 눈물, 피를 받은 인간이었던 것이다. (159-160쪽)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만 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말씀을 지키는 것이 전부다. (235쪽)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 세상의 경계는 어디일까? 이 버려진 세상의 영원한 운명은 무엇일까? (325쪽)

유다에게 은돈 서른 닢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그가 예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다른 제자들보다 자신이 덜 사랑받았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아마도 유다는 예수를 팔지 않았을지 모른다. 탐욕이 부른 한심한 계산만으로 그 일을 결정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한의 머리가 예수의 가슴에 기대어 있는 바로 그 순간, 사탄이 유다의 마음을 영원히 지배하게 된 것이다. (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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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곁에서]는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었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세 편의 글이 끊어짐 없이 이어진다. 현대사에 일어난 굵직한 세 건의 사건과 개인에게 일어난 일들이 함께 맞물려 있다. 우리는 살면서 '죽을 때까지 처음 앞에 선다.'는 말이 맴돈다. 그러고 보니 죽는 것도 처음이다. 작별보다는 이별에 더 가까운 글이다. 글 속으로 점점 빠져들면서 마음 깊은 수렁에 빠진 거 같았다. 아직도 마음에는 웅덩이가 몇 개 남아 있는지... 저자가 말한, 내 말이 구체적인 현장에 있지 않기에 계속 회상이나 추억 같은 것을 갉아먹고 살아가는 시간만 남은 걸까? 지금은 내게도 그런 것 같다. 

누군가, 무언가와 이별하고 버린다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서 묵은 짐이 곁에 있고 감정도 찌꺼기로 남아 있다. 그 간 집안 정리를 했다. 머뭇거리고 주저하며 놓아 두었던 것들, 이유는 조금이라도 큰 물건은 신고하고 입금하고 버리기까지 해야 하니 그러한 것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작고 낡았지만 손 떼 묻은 여행 가방, 입지는 않고 버릴까 말까 망설이던 옷들, 예쁜 커피 잔들, 책들 등등, 이것저것을 과감히 버렸다. 아울러 오래된 연락처는 삭제하고, 아직도 투자하라는 친구라 자처하는 번호는 차단했다. 그러나 회상과 기억과 연관된 사람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하루에도 수 번이나 다양하다. 매일 이별을 감행하자.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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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곁에서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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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말의 구체적인 현장에 살지 않는다면 나에겐 계속 회상이나 추억 같은 것을 갉아먹고 살아가는 시간만 남은 걸까? (99쪽)

나는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매일 조금씩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들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행히도 내가 여기에서 이렇게 주저앉아 더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거든. 나는 지금도 나아가고 있는 거 같아. 예상치 않은 곳이라 두렵긴 하지...... (152쪽)

잊을 수 있으면 잊고 지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닙니다. 잊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시간과 함께 모든 게 희미하게 옅어지는 건 가을 뒤에 겨울이 오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맺힌 게 없이 자연스럽게 잊히는 삶을 누구나 살게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167쪽)

이젠 여기 없는 존재들을 사랑하고 기억하다가 곧 저도 광활한 우주 저편으로 사라지겠지요. (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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