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노년이란 연속적인 상실의 통과의례다. 마흔일곱 살이나 쉰두 살에 죽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그게 더 바람직하다. 탄식하고 우울해해 봤자 좋아지는 건 없다. 종일 창가에 앉아 새와 헛간과 꽃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편이 낫다. 나의 일상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기쁨이다.(13-14쪽)  인생사에 좋기만 하나거나 나쁘기만 한 일은 없는 법(49쪽)' 

여든 너머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노인, 노화를 피할 수 없다면 즐기면 되는 노년, 쓸쓸함과 불편함도 있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삶, 실제로 지은이 같은 노인은 많지 않다. 하루하루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노인들도 있다. 개인의 성격, 자라온 환경, 다양한 부분이 노인의 삶을 좌우한다.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정작 늙어가는 노인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일, 기쁘게 글을 쓸 수 있다면, 수십 번 수정하여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라면, 비록 사랑하는 여인은 잃었지만 지금까지 곁에서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늙는다면 암에 걸리더라도 늙는 걱정 안하고 살 수 있을 거 같다. 그래서 당신이 마음대로 말한 살고 싶은 나이가 지나게 되면 안도하게 되는 거지. '노령이라는 세계는 미지의 우주이자 뜻밖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18쪽).' 오직 그때가 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고, 늙어가는 당사자만 알 수 있다. 여든 이후에 쓴 도널드 홀 에세이, 글이 참으로 맑고 담담하다. 관조하며, 진짜 현재를 살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덕분에 늙어가는 방식을 미리 맛 본, 모범 답(?)을 알았다고 할까. 

하지만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이런 생각이 든다. 매일이 똑같고, 이렇게 계속 산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내 몸 하나 잘 건사하여 주변의 도움을 최소로, 늦추게 하는 게 삶의 의미일까.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있어, 그것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게 살아가는 의미가 될까.  

어느 순간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게 맞는 말이 된 나이가 되었다. 

건강 검진 결과로 몇 가지 더 검사를 받았고(결과 나오는 시간 동안 지금 죽기에는 아니다 싶은, 별별 생각이 들었다. 매일 눈뜨면 별 볼일 없는 하루를 보내는데도), 설날에는 해랑 열차 여행을 다녀왔다. 아직도 잘못된 선택으로 여기고 있는 결혼한 날이 코앞이다. 그때도 눈이 오고 추운 날씨에 모두가 얼었었다. 아들이 결혼기념일을 축하한다고 초대했다. 맞아, 결혼해서 제일 잘한 일, 자식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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