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 그리울 때 보라 - 책을 부르는 책 책과 책임 1
김탁환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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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질문하는 동물이다. 신과 자연과 인간이 안긴 불행 앞에서, 인간은 묻고 또 물어왔다. 끝없는 물음은 얼핏 헛되어 보이지만 이보다 변화무쌍하고 강력한 무기는 없다. 인간에겐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악착같이 질문할 자유가 있다. (9쪽)

우리는 왜 망자들을 그리워할 뿐만 아니라 그 삶을 되새기고, 나아가 의미 있는 장소에서 소설적인 대화라도 나누려 노력할까. 존 버거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죽은 이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제 정치적인 행위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그저 전통적이고 자연스럽고 인간다운 행위였죠. 그러던 것이,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것이면 전부 `퇴물` 취급을 하는 세계 경제 질서에 저항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 너무나 다른 역사 속의 망자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냘픈 희망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액이든 즙이든 정치인들의 눈에서 흐르는 물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 책임을 통감한다는 그들에게 확인할 질문을 챙기기에는 빠듯하다. 언제 느꺼움이 찾아들었느냐고. 죽은이들의 속삭임을 어디서 들었느냐고. 어떤 잘못을 지적하고 무엇을 산 자들에게 당부하였느냐고. (35쪽)

필사의 핵심은 공감과 자발성이다. 소설이 좋아 밤새 옮겨 적는 노력을 아끼지 않은 필사본 소설의 독자처럼, 대자보 작성자들도 최초의 문제의식에 동의하여 시간과 돈을 자진해서 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자보는 인터넷 공간의 글쓰기와는 다른 경험을 젊은 세대에게 새롭게 선사한다. 화면을 띄우고 자판을 쳐서 정해진 칸을 메우는 거소가 전지를 펼쳐두고 펜을 힘껏 쥔 뒤 쓰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내가 쓴 대자보를 붙이고 타인의 대자보를 읽기 위해선 대자보가 붙은 벽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곳의 기온과 바람과 빛과 소리와 냄새 그리고 곁에 나란히 선 모르는 이들까지 대자보를 읽는 과정에 포함된다. 새로운 감각적 실존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82-83쪽)

글른 왜 쓰는가. 흔들리기 위해서다. 흔들리지 않는 이는 지금 거둔 수확이 전부라고 자만하지만, 1밀리미터라도 영혼이 흔들리는 이는 파릇파릇한 잎들 모두 떨어뜨리고 헐벗은 몸으로 추운 겨울을 기다릴 줄 안다. 그리고 이 겨울을 이기면 찬란한 봄과 더운 여름이 오리라는 것을 지나간 시절을 돌아보며 짐작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쓴이의 영혼이 먼저 흔들려야 하고, 또 이를 통해 읽는 이의 영혼을 흔들어야 한다. 글을 쓴다고 행복을 약속하긴 어렵지만, 삶의 우여곡절을 스스로 감내할 힘과 용기를 준다. (119쪽)

심수봉의 절창 [비나리]에 "우리 사랑 연습도 없이 벌써 무대롤 올려졌네"란 구절이 나오지만, 사랑만 연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죽음도 마찬가지다. 이 되돌릴 수 없는, 갑작스러운 단절은, 아득하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시집을 해설하는 자리에서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 없어져 버릴 때, 죽은 사람은 다시 죽는다. 그의 사진을 보거나,그의 초상을 보고서도, 그가 누구인지를 기억해내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때, 무서워라, 그때는 그는 정말로 없음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적었다. (154쪽)

돌아오지만 않는다면 여행은 멋진 것이라고 괴테는 말했다. 그러나 살아서 돌아온 여행자만이 여행기를 남기는 법이다. 고향엔 왜 돌아가는가, 너무 멀리까지 가서 행여 돌아오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을 가리기 위함이다. 고향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큰 소리치는 사람에게조차 고향은 텅 빈 중심이다. (166쪽)

문제는 자세다. 나와 전혀 다른 배경과 인생관을 지닌 이를 물리치지 않고 보듬는 자세, 낯선 문명을 배우고 익히는 자세, 참혹한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해답을 차장 물고 늘어지는 자세, 스토리 디자이너의 자세가 바르면 그와 협력하는 모든 이의 자세가 바르고 이야기도 멋지고 힘차다.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화려한 테크닉도 한낱 손재주에 머무른다. (170쪽)

매혹이란 무엇인가. 프랑스 비평가 모리스 블랑쇼는 지적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의 부재, 그 매혹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라고, 어찌 글쓰기쁜이랴. 자신이 택한 일에 몰두하여 시간의 흐름조차 잊는 것. 저물 무렵 일을 시작하여 길어야 30분쯤 지났으리라 여겼는데 밝아오는 동쪽 창문에 깜짝 놀라는 것, 그것이 바로 매혹이다. (184쪽)

불안과 매혹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불안도 사라지고 매혹도 없는 일상이 백배는 더 위험하다. 미래의 안락을 정해두고 현재를 단지 그곳으로 가는 수단쯤으로 파악하는 삶이 천배는 더 끔찍하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오지 않았으니, 언제나 첫 마음으로 돌아가서 매혹에 떨고 불안에 잠길 일이다. (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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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를 다녀왔다. 소울메이트, 그녀와는 1986년, 2001년, 2016년 여행을 했다. 발렌타인 30년산의 광고를 빌려 소감을 밝힌다. In 30 years, I've become older and wiser, but I'm still me. 30년의 세월은 내게 연륜과 지혜를 가져다 줬지만, 내 본질은 여전히 그대로다. - 그대로라는 것, 한결같다라는 것, 이거 무지 힘든 일인데, 우린 그대로였다.

홍차와 커피의 향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러면서 평생을 보아 온 눈과 앞으로 볼 눈까지 보았다. 눈이 시리도록 눈을 보았다. 여기의 눈과 거기의 눈은 달랐다. 오가며 읽은 '미술관에서 읽은 시'가 떠올랐다. 풍경을 보며 달리는 버스가 터널을 통과하면, '국경의 긴 터널를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셨다.'라는 설국의 첫장면과 닿게 된다. 특히, 장석주 [수그리다]와 이인상 [설송도](214-215쪽)가 여행내내 맴돌았다. 수그려야만 보이는 눈. 눈. 눈. 꽃피는 머리를 수그릴 때야 사람도 나무도 보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눈. 내리다 멈추다를 반복하는 눈을 보며,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고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알고 싶어도 절대 알 수도 없는, 그런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마음 속에서 녹았다.

러브레터의 그녀처럼,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를 몇번이나 외쳤지만 여전히 마음의 울림뿐, 그저 마냥 좋은 그 사람은 묵묵부답이었다. 어쩌면 평생을 산다는 게 눈을 두고 저만치 서있는 것 일수도... 윤의섭의 청어에서는 '기다린다는 건 기다리지 않는 것들을 버려야 하는 일. 등 푸른 눈구름이 지나가는 중이다. 국적 없는 눈송이들의 연착륙들이 이어졌고. 가로수의 가지들만이 하얀 속살 사이에 곤두서 있다. 버스를 기다렸으나 이 간빙기에서는 쉽게 발라지지 않았다.(142쪽)' 여행은 이처럼 버리는 연습을 하는 거지만, 기다리는 사람까지는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냥 좋아, 만나면 그냥 좋아를 떠오르게 하는 그 사람까지는 마음에서 내 몰 수 없다. 쉽게 발라지지 않는다. 

어제는 여전히 꿈을 꾼 것 같은, 꿈만 같은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을 만났다. 풍수원성당을 거닐며,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간절히 그곳을 방문했을까.. 그때 그 사람을 만났다면 이와 같을 거 같은, 누구나에게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소원을 들어주는 그런 곳이였다. 주님이 걸어가신 동산도 올라 갔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그리스도, 지옥으로 내려가다]와 최지인 [아직도 우리는](116쪽)이 떠올랐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것 같다...뒤틀린 몸보다 곤혹스러운 것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는 것.(118쪽)'  그리고 오딜롱 르동 [침묵하는 그리스도]와 이성복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244쪽)도 생각났다.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토록 피해 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뻑뻑한 사랑이었음을(245쪽).' 이곳에서 이뤄졌을 수많은 뻑뻑한 사랑을 확인하며, 오가는 모든 풍경들이 그림과 시가 되었다. 제임스 휘슬리 [회색과 금색의 야상고, 첼시에 내린 눈]과 안미옥 [너는 가장 마지막에 온다](276쪽)를 읽으며 나에게 가장 마지막에 오는 건 무엇일까?가 궁금해진다. 혹시 치욕으로 끝날 뻑뻑한 사랑도 하나쯤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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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그림 하나, 시 하나
신현림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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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노래를 듣고, 좋은 시를 읽고, 아름다운 그림을 봐야 한다"는 괴테의 훌륭한 말을 되새기며. (11쪽)

누구나 인생의 `세한도`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저 버틸 수밖에 없는 날들, 춥고 곤궁한 날들이 말이다. 그럴 때 나직히 자신에게 읊조려 보자. 지금 겪는 결핍을 통해 나는 성장하고 있노라고,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온전해질 수는 있다고. (27쪽)

날씨에 따라 마음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단단했던 각오들은 어디론가 흩어진다. 랭보의 연인이었던 폴 베를렌의 시처럼 가슴 속에 사랑도 미움도 없는데 아무 까닭 없이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올 때는 또 얼마나 많은지. (40쪽)

탁월한 서정을 바탕으로 실험적인 시를 써 온 황지우 시인은 우리가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순간의 감정을 섬세한 언어로 포착했다. 우리 자신도 모른 채 기다리는 것들, 스치듯 지나는 순간순간 속에 깃든 기다림은 어쩌면 살아가는 내내 계속 될 것이다. (57쪽)

"모든 외로움은 결국 네가 견디는 것. 더 많은 멀미와 수고를 바쳐 너는 너이기 위해 네 몫의 풍파와 마주 설 것!"이란 구절이 소년의 앞날에 보내는 담담한 응원 같다. (69쪽)

김사인 시인의 시는 우리에게 일러준다. 시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섬광처럼 흘러 우리도 앞선 사람들처럼 눈멀고 귀 먹는 때 오니, 지금을 잘 살펴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하라고. (80쪽)

"무얼 먹고 사느냐"는 말로 안부를 나누며 생의 고단함을 이해하고 서로를 염려하는 따스한 시절이 있었다. 이제 지고한 휴머니즘이 담긴 배려심은 시에서나 볼 수 있는 걸까? (139쪽)

사랑 앞에 `흐르는 시간`은 가는 봄을 바라보는 김소월의 시처럼 안타깝고, 그래서 붙잡아 두고 싶은 무언가다. 하지만 결국 봄은 지나 갈 게다. 무심히.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봄이 지난 후에 뜨겁고 서늘하고 매서운, 우리를 더욱 성장시키는 계절이 온다. (180쪽)

외로움은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이 외로움을 힘겨워만 하면 세월은 뭉텅뭉텅 흘러가 버린다. 나와 마주한 외로움을 온전히 받아들여 창조적인 힘으로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창조적인 고독도 곁에 아무도 없이는 병들고 만다. (228쪽)

이 시대는 무관심과 냉소가 병균처럼 깃들어 있다. 나 또한 저들과 같았다. 양을 치고 밭을 갈며 `오늘의 양식`을 벌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내 줄 여유가 없었다. 나는 나의 양식을 벌어야 했으므로, 어떤 고통도 다만 나를 비껴가면 그걸로 족했으므로 바다에 처박히는 소년을 짐짓 모른 체했다. 지금 미약한 숨으로 사그라드는 누군가에게 `등불`처럼 친밀한 사람이 되어 주는 것,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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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다는 조금 덜 추운날 도서관 열람실에서 읽다가 빵 터질 뻔했다. 최영미는 말한다. "축구는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 건진 최상의 것이다." 그녀에게 축구는 본능이고 열정이며 꿈이라 한다.  나에게 축구는 너무 원색적이다. 그리고 어디든 굴러갈 수 있는 둥근 공 하나만 던져 주고 90분 동안 뛰어다닌다는... 그리고 우리는 구경을 한다. 그녀를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그녀만큼 축구를 사랑할 수는 없을 거 같다. 

강릉을 다녀왔다. 정동진썬크루즈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소리와 색은 무지 예뻤다. 힐링과 필링을 위하여 다녀왔다. 테라로사 사천점을 들려서... 오가며 한귀은의 '모든 순간의 인문학'은 건성으로 읽었다. - 늙는다는 것은 어쩌면 짝사랑의 능력이 쇠퇴하는 것. 늙는다는 것은 매혹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래서 고착된다는 것이다. 추책이라도 좋으니 짝사랑의 능력이 다시 돌아오기를, 그렇게 회춘하기를 바라야 한다.(297쪽)

생거진천, 그곳에서 아버지의 생신을 축하했다. 식구들의 독창, 합창, 연주로 모두 기뻤다. 

각자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만나 오롯히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배려와 겸손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식구들의 모습에서 사는 게 축구장의 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그러나 '공'은 어디에서 나올지도 모르고 또한 우리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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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 시인 최영미, 축구와 인생을 말하다
최영미 지음 / 이순(웅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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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 선수들이 먼저 운동장에 나와 몸을 풀고, 박수소리가 터지고, 전광판에 `Welcome to the Arsenal Stadium` 환영 자막이 뜨고 드디어 귀에 익은 노래, 챔피언스리그의 공식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귀빈들을 소개한 뒤에 들어준 감미로운 팝송, 많이 듣던 곡인데 가사가 멋져 내 뒤에 앉은 젊은 여자에게 제목을 물어보았다. [The Wonder Of You].

When on one else can understand me
When everything I do is wrong
You give me hope and consolation
You give me strength to carry on
......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때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잘못되었을 때
너는 내게 희망과 위안을 주었지
너는 내게 살아갈 힘을 주었지
......
너는 공, 너는 축구, 너는 시.
너보다 나를 위로해준 사람은 아직 없었지.

아스널의 노래에 감동한 탓인가, 약팀에 대한 동정심에서인가. 경기가 시작되고 나도 모르게 아스널을 응원하는 이상한 일이 내 속에서 일어났다. (48-50쪽)

그러나 나의 `그이`는 이제 여기 없다. 그는 바르셀로나를 떠나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뛰다, 마침내 그의 고국인 브라질로 돌아갔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그는 브라질 대표팀에 뽑히지도 못했다. 그가 없는 브라질은, 소심한 둥가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브라질답지 않은 수비적이고 실망스러운 경기를 펼치다 일찍 짐을 쌌다. 튀어나온 턱의 야생마가 없는 월드컵은 심심했다. 아직 은퇴할 나이가 아닌데, 축구의 신을 가까이서 알현할 기회를 놓쳐, 아쉬웠다. 세계 무대에서 그를 다시 볼 날이 있을까? 호나우지뉴에 대한 그리움을 접고, 나는 해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바르셀로나에 왔는데 바다를 못 보고 그냥 가면 너무나 서운할 터. (70쪽)

기술이 뛰어난 검투사들은 유명한 운동선수와 비슷한 인기를 누렸다는데, 지금 그 이름은 어디에도 없고 무대만이 남아 있다. 그리고 `쇼`는 계속된다. 칼과 헬멧 대신 현대의 검투사들은 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공을 찬다. 피로 물들던 모래바닥이 땀으로 범벅 된 잔디로 바뀌었을 뿐, 게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 그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한 번으로는 부족해 두 번 세 번 그물망을 흔들어 적의 전의를 완전히 꺾는 것. 관중을 흥분시키고 박수소리를 들으며 무대에서 내려오는 짜릿함. 극적인 순간에 터진 예술적인 골이 우리에게 주는 황홀감. 인간은 게임 없이는 살 수 없다. 잔혹한 싸움이 평화로운 공놀이로 변했으니, 역사는 진보했다 말할 수 있으리. (92-93쪽)

무리뉴의 얼굴에 깃든 허탈한 냉소는 그가 이미 경기를 포기했음을 말하고 있었다. 감독이 경기를 포기하는데, 선수들이 싸울 의지가 생길까? 오바마에 버금가는 우리 시대의 웅변가가 이번에는 또 어떤 발언으로 자신을 변호하려나, 2대0으로 홈에서 패한 뒤에 심판의 판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그는 말했다. "가끔 나는 이런 세계에 사는 게 역겹다." 그처럼 강하고 잘난 남자도 이 세상이 역겨워질 때가 있다니. 아시아의 변방에서 쪼가리 글로 연명하는 어느 작가에겐 위로가 되리. (108-109쪽)

감독은 `두렵다`고 밖에 대고 말하면 안 된다. 우리 감독이 상대편의 특별한 재능을 두려워하면, 우리 선수들은 기가 죽는다. 싸우기도 전에 힘이 빠져서, 혹은 `그분`을 막을 생각으로 몸에 너무 힘이 들어가서, 정작 실전에서는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성남 선수들처럼 너무 긴장해서 미끄러지거나 헛발질을 하기 십상이다. 상대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어느 특정 선수를 `막는` 방향으로 전술의 초점이 맞춰지면 곤란하다. 그렇다면 이미 훈련에서부터 저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거나 마찬가지. 축구는 11명이 겨루는 단체경기다.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여럿이 어떻게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는가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공은 둥글고, 순수하고, 평등하다. (134-135쪽)

나는 왜 수비수가 되었나


국민학교 피구선수였던 나는, 상대를 정확히 맞춰 때리는 재주가 없음을 일찍이 간파하고 용감한 수비수가 되었다. 전속력으로 날아오는 공을, 둥그런 아픔을 가슴으로 껴안으며 뻐근한 쾌감이 나를 관통했다. 자기를 버리는 기쁨을 안 뒤부터 승부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도 공만 보이던 그날부터 나만의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운동장 밖에는 더 큰 세상이 있어, 치명적인 공이 바로 내 앞에 떨어지기까지 누가 적이고 누가 진짜 친구인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최영미, 시집 [돼지들에게]에서 (171쪽)

"대한민국! 짝짝짝." 일본 열도를 뒤흔드는 함성이 우리를 진정으로 해방시키리라. 나라를 잃고 언어를 잃고 자존심마저 빼앗겼던 굴욕의 세월들, 전후 세대인 우리는 잊었지만 우리의 실핏줄 어딘가에 도사린 찜찜한 식민지 백성의 콤플렉스를 한방에 날려 보내리라. 바싹 현실로 다가온 꿈을 걷어내며 창문을 연다. 귀에 익은 경적 소리, 소리는 소리를 부른다. 우리 동과 마주보는 건너편 아파트 베란다에 아이들이 나와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른다. 서로 화답하는 소리들과 거리를 질주하는 붉은 티셔츠들, 조용하던 신도시가 깨어난다. (182쪽)

월드컵은 끝났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던 남자들의 야망이 만나 연출한 황홀한 연극은 막을 내렸다. 땀을 흘린 선수들은 연극의 배우였고, 대한민국을 합창한 국민들은 어마어마한 돈과 재능과 시간을 쏟아 부은 축제를 관람한 관객이었었다. 히딩크는 무대 뒤로 사라졌지만 그해 유월, 내 이마에 내려앉았던 뜨거운 햇살은 영원하리라. 오로지 추억 속에서. (188-189쪽)

오로지 이기기 위해 90분 동안 미리 짜인 각본대로 선수들이 움직인다면, 얼마나 재미없겠는가.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도 공의 흐름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기다리지 않는 곳에서 공이 와야 경기의 수준이 높아지는 법. 내가 기다리는 곳에서. 기다리지 않는 곳에서도 공을 주고받아야 사회도 게임도 아름다워진다.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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