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몇 시간의 기차를 타고 읽은 글이다. 상큼하고 깔끔하다. 오가는 길은 멀고 힘이 들었다. 몸이 무겁고 아팠다. 한주 내내 몸과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불편하고 힘든 감정을 마주하기 싫어 쉴새없이 아이들을 만나서 애써 아닌척 모른척 했다. 관계에서 파생된 감정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상대의 감정이 태반이고 결정하는 이도 상대가 해야 하는데 자꾸 내가 관여하려 한다. 타인의 감정을 읽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감정을 좌지우지 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의 경계가 애매하다. 어떤 이는 일일이 알아봐 주기를 원하고, 어떤 이는 손내밀 때 잡아주기를 원한다. 어떤 관계냐에 따라 한참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나때문에 파생되어 시작된 감정이지만 그 감정을 용인하고 받아들인 것은 너이기에, 결정은 너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면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될까. 애증이 섞여서 쌓인 해묵은 감정까지 끊어내고 정리하는 건 어려울테지만. 스스로 선택하여 건너오는 그 마음을 갖고 싶다. 혼자서 설 수 있는 걸 도와 주고 싶다.

나의 짬뽕같은 머리와 감정에 비하면 이태준의 두서없이 기록했다는 글에는 군더더기 하나 없다. 나의 상황과 글과의 큰 괴리, 이열치냉으로 다스리며 읽었다.      

 

"그의 수필에서는 반세기의 세월을 무위하게 할 만큼 마치 방금 따온 과일과도 같은 신선한 빛과 향기가 숨이 막히도록 풍기는 것이다. 철 지난 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케케묵은 군내나 빛바랜 흔적이 전연 없고, 시체 사람이 쓴 글을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조차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작 30대의 나이로 이룬 글인데도 그 원숙한 관조의 세계와 심오한 경지, 동양적 수필의 진수로 삼는 관조와 경지를 그는 불과 30대의 나이에 터득한 것이다. (187쪽, 박재식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서록 범우문고 109
이태준 지음 / 범우사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오래 살고 싶다.
좋은 글을 써보려면 공부도 공부려니와 오래 살아야 될 것 같다. 적어도 천명을 안다는 50에서부터 60, 70, 100에 이르기까지 그 총명. 고담의 노경속에서오래 살아보고 싶다. 그래서 인생의 깊은 가을을 지나 농익은 능금처럼 인생으로 한번 흠뻑 익어보고 싶은 것이다. (20-21쪽)

국화를 위해서는 가을밤도 길지 못하다. 꽃이 이울기를 못 기다려 물이 언다. 윗목에 들여놓고 덧문을 닫으면 방안은 더욱 향기롭고 품지는 못하되 꼬초가 더불어 누울 수 있는 것. 가을밤의 호사다. 나와 국화뿐이려니 하면 귀뚜리란 놈이 화분에 묻어 들어왔다가 울어대는 것도 싫지는 않다. 가을꽃들은 아지랑이와 새소리를 모른다. 찬 달빛과 늙은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그들의 슬픔이요 또한 명예이다. (39쪽)

다른 것끼리가 늘 즐겁다. 돌멩이라도 다른 것끼리는 어느 모서리로든지 마찰이 된다. 마차렝서 열이 생기고 불이 일고 타고 하는 것은 물리학으로만 진리가 아니다. 이성끼리는 쉽사리 열이 생길 수 있다. 쉽사리 탄다. 동성끼리는 돌이던 것이 이성끼리는 곧잘 석탄이 될 수 있다. 남자끼리의 십 년 정보다 이성끼리의 일 년 정이 더 도수를 올릴 수 있는 것은 석탄화 작용에서 일 것이다. 타는 것은 맹목적이기 쉽다. 아무리 우정이라 할지라도 불이 일기 전까지이지 한번 한끝이 타기 시작하면 우정은 그야말로 오유가 되고 만다. 그는 내 누이야요. 그는 내 오빠로 정한 이야요 하고 곧잘 우정인 것을 공인을 얻으려고 노력까지 하다가도, 어느 틈에 실화를 해서 우애는 그만 화재를 당하고 보험들었다 타오듯 하는 것은 부부이기가 일수임을 나는 허다하게 구경한다. (61쪽)

나무들은 아직 묵묵히 서 있다. 봄은 아직 몇천 리밖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나무 아래 가까이 설 때마다 나는 진작부터 봄을 느낀다. 아무 나무나 한 가지 휘어 잡아보면 그 도틈도틈 맺혀진 눈들. 하룻밤 세우만 내려주면 하루아침 따스한 햇발만 쪼여주면 곧 꽃피리라는 소근거림이 한 봉지씩 들어있는 것이다. 봄아 어서 오라! 겨울나무 아래를 거닐면 봄이 급하다. (106쪽)

한 시간 뒤에는 잇짚 지붕들도 흰 빨래 울타리들도 다 사라졌다. 맷새 한 마리 날지 않는다. 어린아이처럼 타박거리는 내 발소리뿐. 나는 몇 번이나 발소리를 멈추고 서서 귀를 밝혀보았다. 아무 소리도 오는 데가 없었다. 그 유구함이 바다보다도 오히려 호젓하였다. (17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마나 바쁜지. 정신이 하나도 없고 코 끝과 입 주변이 헐어서 루돌프 같다. 아이들이 가진 암울한 기운에 빠지지 않으면서 햇살이 들어가는 작은 구멍을 내주고 싶어 이리저리 애쓰는 노력과 오픈할 카페에서 아주 자잘한 물건까지, 신경을 가지고 가는 그 와중에서 몸에는 빨강불이 켜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글자가 읽고 싶었다. 아주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 같아 집어든,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고 그다지 좋아하는 글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제목에서는 위로받고 내용에서는 몇십년 전 신혼초를 떠올리며 웃었다. 각자 서로 다른 길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는 사랑한다면, 고개 들었을 때 당연히 서로의 눈이 마딱뜨려져야 하고 똑같은 곳에 시선이 가 있어야 하고 네맘이 내맘이어야 한다는 당연성에서, 조금이라도 다를라치면 수많은 전투를 했다. 물론 서로 다른 지향점과 가치도 있는데, 돌아보니 표현방법에서 먼저 상한 감정으로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사랑과 믿음의 수많은 저울질 또한. 순간의 끌림에서 시작한 사랑, 그건 서로의 결핍을 메워주는, 그 감정에서 출발하여 다시금 믿음으로 넘어오는 긴 시간들에서... 이젠 서로 전역한 전우가 된 상태다. 그야말로 피를 나눈 가족이 된 것이다. 부부의 날이란다. 그러한 전투는 우리가 겪어야할 수순이었다. 다만 전투시간이 길었다는 게 아쉽긴 하다. 아이에게 불안을 가중시켰을 수도 있는 일이니. 후훗. 살아볼 만은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박범준.장길연 지음, 서원 사진 / 정신세계원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앞에도 뒤에도 다른 차 한 대 보이지 않는 그 길을 우리는 한참이나 달렸다. 내 옆 자리에 앉은 사랑하는 사람과 스쳐가는 부드러운 바람, 따뜻한 햇살과 반짝이는 강물, 싱그러운 나뭇잎.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23쪽)

왜 행복의 모습이 다 같아야 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행복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일까? 물론 우리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또 우리가 행복을 찾아 온 이곳에서 뜻밖의 불행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고 우리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나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을 선택하려 애쓰고 있는 것일 뿐인데 비정상으로, 뭔가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눈초리가 편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우리의 삶이 뭔가 이상하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선택 가능한 삶의 형태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는 (133쪽)

우리는 서로 다툴 때 너무나도 힘들어 하지만 그런 과정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두 사람 다 그리 무난한 성격이 나리고 주장이 강한 편이라 전혀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싸우는 횟수를 줄이고, 싸우게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상처나 감정의 앙금을 남기기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176쪽)

어느 누구에게나 만남이란 운명적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운명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준 많은 사건들 속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영원하도록 운명 지워진 사랑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20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통 사람들의 행동을 묘사할 때, 그 순간을 사진 찍은 거처럼, 그 장면을 그대로 묘사하고 말하라고 한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배제하고 한컷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을 말하는 연습을 하다보면 새롭게 보인다. 그럼에도 자꾸 나의 마음이 들어가서 상대를 보는 경향이 크다. 때론 마음의 눈으로 볼 때야, 눈앞에 보이는 너머의 것과 보이지 않는 거까지 알 수도 있다. 어쩌면 상대도 모르는 거까지 눈에 보여 안타까울 수 있지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내맘이 평온하지 않은데 눈빛은 흔들리고 흐리고 그래서 제대로 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있는 그대로 보는 거, 한 순간을 정지시켜 한장의 사진으로 보는 것. 오히려 마음을 싣지 않고 담담히 바라보기가 오히려 상대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좋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