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물이 자신을 해치는 것을 이미 가지고 있는데 유독 인간만이 많은 나쁜 속성이 있음에도 나빠지지 않고 파괴되지 않을까..란 문장이 맴돈다. 파괴되는 사람은 자신의 나쁨으로 인한 게 아니라 타인으로 인해 그렇게 되는 걸까. 아님 자기 기준이 높아 스스로 나빠지기로 결정한 걸까.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가 만난다. 서로가 원하는 것은 멀리있고. 온 힘을 다해서만 한마디 발화할 수 있고, 희미한 모습이나마 볼 수 있다. 그녀와 그가 지나온 각자의 지난한 세월에서 그들을 비껴간 사람들의 간간한 사건들은 그녀의 언어를 뺏아가고 그의 볼거리를 앗아갔다. 각자의 눈과 입이 되어 줄 수 있는데, 그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사랑의 출발점이 되는데 그건 모를 일이다. 서로의 결핍이 이끄는...---한때 눈멀고 귀멀어 오직 그 사람과 그 일만 있었을 때가 그립다. 사랑해하면 될 말을 표현하기 위해 몇번이나 망설이고 입안의 말을 다듬고 했던, 결국 엉뚱한 이야기로 오해와 이별을 했던. 아무말도 하지 못해 그냥 보냈던. 그때가 그립다.
한강의 글은 세심하다. 마음의 지도를 세세하게 그려내고 세포하나에 담긴 느낌까지 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