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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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유롭게, 그리고 정직하게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경제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면 비굴해지거든요. 쌀독을 채우기 위해서 누군가의 심기를 살피고, 그렇게 해서 마음 내키지 않는 글을 써야 한다면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서글퍼질 겁니다. 예컨대 후한 보수를 받고 존경하기는커녕 좋아하지도 않는 권력자와 부자의 자서전을 써 주는 일 같은 것 말입니다. 존겨앟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야 권력자와 부자라도 기꺼이 대필하겠지만요. (27쪽)

누가 쓴 책이든, 무엇에 관한 책이든 비판적으로 읽는 게 기본입니다. 정치인만 그런 게 아니라 기업인, 교수, 평론가도 거짓말을 하거나 틀린 주장을 하니까요. 책은 모두 사람이 쓴 겁니다. 가방끈이 얼마나 길든, 하는 일이 뭐든, 사람은 다 비슷한 결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잘 속이고, 쉽게 속아 넘어가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빠지고, 감정과 충동에 휘둘리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고 하는 동물. 우리는 모두 그런 불완전한 존재로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그래서 누가 쓴 어떤 책이든 다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30-31쪽)

글을 쓸 때는 오로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실감나게 문자로 표현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닐까요? 무엇에 관한 어떤 내용을 무슨 목적으로 쓰든, 모두 다! (32쪽)

예술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면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정해진 도그마보다 자기 자신의 눈과 생각, 마음과 감정을 믿는 게 현명합니다. 저에게 진보냐고 묻는 분들, 진보적 원칙을 글쓰기에 어떻게 반영하느냐고 묻는 분들께 솔직하게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않습니다. 사실에 부합하는가? 문장이 정확한가? 논리에 결함이 없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인가? 독자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가? 그런 것만 살핍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하면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 근처까지라도 가져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말입니다. (60쪽)

우리는 남들이 주는 것을 안 받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물건은 주고받을 때 요리조리 살펴서 받는데 마음은 그냥 덥석 받고 맙니다. 마음도 살펴서 받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83쪽)

다시 말해서, 악플과 비판 글을 나누는 기준은 논리적 증명이 있는지 여부, 또는 그 글에 대한 역비판이 논리적으로 가능한지 여부인 것이죠. (88쪽)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제 대답은 내버려 두라는 겁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비난하는 가족과 친지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볼까요?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 경우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아마 좋지 않을 겁니다. 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바꾸기 싫은데 남들이라고 바꾸고 싶겠습니까? (95쪽)

정치적 글쓰기는 사악함과 투쟁하는 일이 아니라 어리석음을 극복하려고 하는 일입니다. 사악함과 어리석음은 모두 인간의 본성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승산이 높은 것은 어리석음과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리석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노력하면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덜 어리석어질 수는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바꾸려면 우리 자신이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덜 어리석어져야 합니다. (102쪽)

글은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문자 텍스트입니다. 그런데 독자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내가 쓴 텍스트를 나와 똑같이 해석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습니다. 내가 글에 담은 생각과 감정을 독자도 똑같이 읽어 가도록 하려면 그에 필요한 콘텍스트를 함께 담아야 합니다. 글쓴이가 독자에게 해석의 자유를 무제한 허용하는 문학 글쓰기라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겠지만, 정보 교환과 소통, 공감을 목표로 하는 생활 글쓰기와 논리 글쓰기라면 그렇게 써야만 제대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42-143쪽)

표절 시비에 대한 두려윰 따위는 잊으십시오. 인용이 많다고 해서 글의 가치가 줄어드는 게 아닙니다. 정보의 출처를 저오학하게 밝히면 글에 대한 신뢰가 오히려 높아질 수 있습니다. 굳이 밝힐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은 과감하게 인용 표시를 생략하되, 그렇지 않은 것은 최대한 표시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임하면 됩니다. 혹시 누가 표절 의혹을 제기하면 인용 표시를 생략한 이유를 설명하면 됩니다. 표절은 허세를 부리려는 헛된 욕망의 산물입니다. 글로 누구한테 허세를 부리려는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표절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199-200쪽)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쓰거나, 중요하지 않은 사실을 중요한 사실로 취급하거나, 중요한 사실을 누락하고 무시하거나, 사실에 대한 해석이 앞뒤가 맞지 않거나, 개인적 취향에 객관적 진리의 옷을 입혀 내보낸 비평을 볼 때마다 그 비평을 비평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습니다. 그런들 무엇 하랴 싶어서 마음을 거두긴 하지만 의문은 그대로 남습니다. 비평은 도대체 누가 비평하나? 비평가는 누구한테 평가를 받는가? 비평가들은 서로 좀처럼 비평하지 않는데, 누가 그들에게 비판을 면제받는 특권을 주었다는 말인가? 그런 의문입니다. (207쪽)

한 장의 그림으로 사람을 웃게 하든, 한 줄의 글로 사람을 울게 하든, 한마디 말로 감동을 주든, 그냥 무심코 한 행동이든 간에 가장 좋은 표현의 기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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