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일찍 여윈 외동 남편은 어느새 며느리가 없는 우리집 맏아들이 되어, 진즉에 하고 싶었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한 그런 일들을 장인장모에게 열심히 하고 있다. 긴 연휴를 온전히 친정에서 지내는 나를 동생들과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먼저 이 나이에 부모님이 계시다는 부분이 가장 크지만... 온전히 식구들이 맛있게 먹을 음식을 팔십이 다된 엄마와 팔십이 훨씬 넘은 아빠와 준비했다. 여전히 젊은이로 알고 있는 부모님의 종횡무진하에 자잘한 심부름만 하였지만 손님들이 엄청 많이 오셨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절대 공감한다... 찾아온 손님들의 대다수는 한때 우리집에 기숙하며 학교를 다녔던 막내 외삼촌, 사촌들과 이웃이었다. 엄마의 무를 넣고 푹 조린 고등어와 배추김치, 간장에 버무린 찐 가지, 고추장 바른 북어, 멸치조림, 구수한 된장에 여린 이파리를 가진 생채, 묵나물, 취나물, 도라지와 시금치나물, 찐 조기, 문어, 갈비탕, 잡채, 배추전, 오징어 튀김, 전유어, 동그랑땡, 부추전, 감주 등등 그 어떤 재료로도 뚝딱하여 만들어 낸 음식을 맛본 그들은 언제나 엄마의 밥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꼭 식사시간에 맞춰 그들의 식구들까지 데리고 온다. 몇번씩 밥상을 차렸지만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있다... 가끔씩 엄마가 만들어 준 밥상이 그리운 나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니까... 심지어 엄마가 양육한 손자손녀들 또한, 그네들의 친구들이 먹지 않는 나물반찬들을 쓱쓱 맛있게 먹는 거 보면, 햄이 들어간 음식은 도무지 먹기 힘든다고, 콜라는 한참이나 김이 빠진 후에야 먹는... 그렇게 먹은 음식으로 객지에서 몸과 마음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껏 먹은 음식안에 자신의 삶이 들어 있는 거 같다. 당연히 음식에 따라 추억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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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7-10-26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풍경이네요

JUNE 2017-10-27 15:23   좋아요 0 | URL
Be happy! Thanks!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 박찬일 셰프 음식 에세이
박찬일 지음 / 푸른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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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나온 책과 읽은 책의 표지가 다르기에, 밑줄긋기의 쪽수도 다를 수 있다.)
수박은 한국에서는 과일로 취급하지만, 서양에서는 좀 달랐다. 뭐든 굽고 볶는 서양은 과일도 날로 먹는 법이 적었다. 배나 사과, 복숭아, 파인애플, 바나나도 굽고 삶았다. 물 많은 멜론이나 수박도 여지없었다. 수박을 큼직큼직하게 썰어서 오일이나 버터 녹인 팬에 구우면 제법 그럴싸한 맛이 난다. 아하, 수박도 채소구나, 그런 미각의 신천지를 열어준다. 겉은 따뜻하고 부드럽게 녹고, 속을 씹으면 아삭하다. 수박을 꼭 익히지 않더라도 후식이 아닌 요리에 쓰는 건 흔한 일이다. 듬성듬성 썰어서 샐러드에 넣는다. 이건 그리스식이 유명하다. (48쪽)

호남의 한식 기행은 수직적인 변화를 가진다. 저 남도의 끝이 더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맛이라면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맛은 유순해지고 슴슴한 재로의 맛을 강조한다. 담양의 밥상에서는 그 온후하고 융숭깊은 자연을 보여준다. 갯것과 들과 산의 물산이 고루 섞인 밥상은 천천히 당싱의 혀를 어루만진다. (102쪽)

한 개의 달걀은 백 몇십 원에 불과하다. 그렇게 값싼 달걀이지만, 무궁무진한 요리법으로 요리사들을 괴롭힌다. 주로 미국이나 영국 요리사에게 해당되지만, 간단한 아침 달걀 요리 하나에서도 A4지 몇 장을 채우고도 남을 요리법이 있다. 우선 프라이를 보자. 뒤집지 않고 한쪽만 익히는 서니 사이드 업, 뒤집지만 살짝 굽는 오버 이지, 완전히 익히는 오버 하드 등으로 나뉜다. 영국이나 미국의 고급 호텔의 아침 식사는 다른 건 몰라도 달걀만큼은 요리사가 직접 불을 때서 즉석에서 요리하는 게 원칙이다. 파랗게 면도를 한, 갓 수습을 땠을 것 같은 어린 요리사가 살가운 표정으로 주문을 받다 만들어주는 달걀 요리는 정말 받아 먹을 만한 가치가 있다. 앞서의 프라이 요리는 물론, 다른 요리도 다 된다. 마구 휘젓는 것 같지만 일정한 농도와 질감을 내야 하는, 그래서 초보 요리사를 골탕먹이는 스크램블드에그도 있고 끓는 물에 예쁘게 익혀내는 수란도 있다. 치즈 등 고명을 얹어 오븐에서 굽는 사이드 에그도 있으며 반숙이나 완숙 달걀은 기본이다. (169쪽)

대구는 대서양에서 잡히지만, 명물인 소금에 절인 대구는 지중해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맛이 든다. 마치, 아무리 좋은 고등어라도 간잽이의 절묘한 소근 재는 기술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듯이, 그 대구 ‘간잽이‘의 손기술은 날래고 아슬아슬하다. 너무 짜게 소금을 매기면 대구의 조직이 쭈그러들고, 심심하면 오래 보관하지 못하고 맛이 제대로 배지 않는 까닭이다. 내장와 머리를 버린 대구를 한 켜로 쌓고 ‘간잽이‘는 질 좋은 천일염을 삽으로 펴서 끼얹는다. 다시 대구가 한 켜, 한 켜 올라가고 그때마다 엄청난 양의 소금이 대구 사이사이로 스며든다. 대구살이 소금을 먹어 수분을 내주면서 조금씩 단단해진다. 인간이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절임의 미학이 이루어지는 기나긴 순간들이다. ‘꾸득꾸득‘하다고 해야 할까. 대구가 적당한 수분을 남기고 절여지면 비로소 바칼라, 그러니까 포르투갈 사람들이 바칼라우라고 부르는 이 천상의 해물이 완성된다. (224쪽)

내가 간혹 들르는 서울의 문어 파는 술집들은 하나같이 이미 삶은 문어를 강원도든 경상도든 산지로부터 받아 썼다. 직접 요리하지 않고, 이미 삶아진 것을 받는다고 자랑하는 희한한 식당도 다 있구나, 생각했는데 이유가 있었던 거다. "간고들어는 간잽이가 젤로 중요하고, 문어는 삶은 사람이 젤이다." 어머니와 꽤 찬한 그 문어 가게 주인에게 물어봐야 이것도 ‘며느리도 안 가르쳐주는‘ 비법이라고 할까. 문어마다 다리 굵기가 다 다른데도 어떤 문어든 씹으면 살살 녹았다. 나는 문어를 씹으면서 그 비법을 음미했다. 다리 안쪽의 신경섬유질을 둘러싼 부분을 살짝 덜 삶아서 쫀득하게 씹히고, 그 주변의 살은 어느 정도 푹 익힌 것처럼 이빨 사이로 쑥쑥 씹혔다.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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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을 붙잡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와 같은 생각들이 많이 든다.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나에게만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같은 일들, 하지만 그런 일 속에 있다면 어떨까, 어떻게 할까를 고민해 보지만, 종내 알 수 없다. 함께 경험한 일들도 서로의 감정이 다르니, 각자의 경험치에서 느끼고 대처하니, 나의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를 말해보지만, 멀뚱한 너를 볼 뿐이다.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그런(156쪽)." 마음 아픈 일이 한두가지 아니지만, 아프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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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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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라운 뺨과 맑은 침을 가진 찬성과 달리 할머니는 늙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늙는다는 건 육체가 점점 액체화되는 걸 뜻했다. 탄력을 잃고 물컹해진 몸 밖으로 땀과 고름, 침과 눈물, 피가 연신 새어나오는 걸 의미했다. 할머니는 집에 늙은 개를 들여 그 과정을 나날이 실감하고 싶지 않았다. (50쪽)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수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형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173쪽)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껴가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마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 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하게 휙.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획.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첬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검댕이 자기 내부에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남긴. 상대가 한 말이 아닌, 하지 않은 말에 대해 의문과 경외를 동시에 갖는. (213-214쪽)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잠시라도, 정말이지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은 안 했을까. 내 생각은 안 났을까. 떠난 사람 마음을 자르고 저울질했다. 그런데 거기 내 앞에 놓인 말들과 마주하자니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265-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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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가을이다.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면 하는, 일어난 일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살아가는, 그래도 산사람은 살아야지, 누가 정답을 알겠어. 미친 놈이 있다고 다른 길을 알려 주는 놈이 그 미친 놈일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같다. 그저께는 중요한 약속이 엇갈렸다. 이층을 일층으로 착각해 한참을 기다렸다. 차가 밀리나보다... 서로 각자의 층에서 기다리다 만났다. 기다리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서로 맞춰보았다면 과연 어땠을까... 그러나 입속에 두었다. 중요하다는 의미가 서로에게 다를 수 있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더위는 여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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