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년의 반이 지나갔다.. 이렇게 읽기를 마무리 못한 책들이 주변에 널려있기는 참으로 오랫만이다. 늦잠자고 아점먹고 동네한바퀴 돌고, 뒤적뒤적 책 좀 읽고, 맥주한캔 마시고 라디오 듣다가 잠든 게 다반사였다. 아니 가끔은 멀리도 가보고, -대학동창들 만나고, 한때 일했던 동료도 만나고, 동생들도 만나기도 했다. 도서관도 다녀왔다. - 카페에 가 있기도 했지. 그런데 그저께 일도, 아니 좀전의 일도 기억나지 않는 기억력을 가지고, 돼지들이 떠오른다. 나를 보면 불쌍하고 연민이 일지만, 너를 보면 화가 나고 보고 싶지 않고, 기억에서도 지우고 싶다. 예전에 읽은 글이 십오년을 건너서 다시 내게로 왔다. 매일 한두페이지 읽은 게 최근 한 일이 전부다. 머리도 밥을 먹어야 산다면 아사 직전일거다. 머리의 밥은 글이라 여기고 있으니...  이제부터 내가 잘하는 독서모드로 전환해 본다. 백수의 시계가 더 빨리 가는거 같다.  최영미 시인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좋아한다. 앞으로도 좋아할 거다. 근데, 시들이 마음을 때리고 읽을 때마다 조금씩 눈물나게 한다. 돼지, 진주, 여우... 나의 늦은, 아주 늦은 발달 속도가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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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20-07-04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팬텀싱어 라포엠, 이 네남자들의 케미와 the rose,, 위로받다.
 
돼지들에게 - 최영미 시집, 개정증보판 이미 3
최영미 지음 / 이미출판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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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늙고 병들어
자리에서 일어날 힘도 없는데
그들은 내게 진주를 달라고
마지막으로 제발 한번만 달라고......
-돼지들에게 중(18쪽)

겸손한 문체로 익명의 다수를 향해 다정한 편지를 띄우지만
당신처람 오만한 인간을 나는 알지 못하지
당신보다 차가운 심장을 나는 보지 못했어

계산된 ‘따뜻‘에 농락당했던 바보가 탄식한다
늦었지만
순진을 벗게 해줘서 고마워
선생님
-돼지의 변신 중(22-23쪽)

그는 내가 그를 사랑할 시간도
미워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언젠가, 기쁨도 고통도 없이
굳은 빵에 버터 바르듯
너희들을 추억하리라
-굳은 빵에 버터 바르듯(37쪽)

산다는 건 내게 치욕이다. 시는 그 치욕의 강을 건너는 다리 같은 것. 내가 왜 어떤 항구에도 닻을 내리지 못하는 방랑자가 되었는지. 지난 시절의 이야기들을 나직히 풀어놓을 힘이 내게 남아있으면 좋겠다. (53쪽)

돈과 폭력과 약물로 오염된
아무리 더러운 경기장에도
한 조각의 진실이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인생보다 아름다운 게임이 축구다.
-인생보다 진실한 게임(70쪽)

나 또한 그처럼 어리석었으나, 재능은 발자크에 못미치나 어리석음에서는 그에 못지않았다. 다시 살아야겠다. 써야겠다. 싸워야겠다.
-발자크의 집을 다녀와 중(83쪽)

어릴 적, 문막의 섬강에서 자연의 장엄한 교향악을 들었다. 강가의 너럭바위에 앉아 울려다본 밤하늘은 경이로웠다. 보석처럼 반짝이다 시냇물이 되어 졸졸 흐르던 은하수와 사랑에 빠졌던 밤을 언제까지나 간직한다면, 나는 늙지 않을 텐데.
-횡단보도를 건너며 중(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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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덥지근하다. 
떠나기로 한 여행이 자꾸만 미뤄지면서 대신,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작가는 여행에서 시간은 현재, 태도는 노바디(nobody), 방법은 신뢰와 환대... 인생 또한 여행이다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지하고 묻는 말에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답이 절로 떠오른다.  
나의 여행 이유는 무얼까.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이때까지와 다른 모습이나, 아님 괜찮은, 바라던 모습으로 잠시 지내 본 경험을, 되돌아 와 지금 여기서 풀어가는 걸까. 모든 게 풀어져 흐물거릴 때 다시 떠나고, 그럼 이곳은 잠시 머무는 곳이 되고 가고자 하는 곳이나, 아님 이곳을 떠나는 그 자체가 이후의 생활에 힘이 되기에 여행을 가는 걸까...  먼 해외까지가 아니더라도 집 가까운 동네에서 근교까지 어디론가로 다니는 거 자체도 여행이니, 집을 떠나는 게 삶의 원동력이 되는 건 틀림없는 거 같다... '집에는 상처가 있다......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64쪽)' 거창한 이유를 말하기가 뭐하지만, 좋으니까 떠나는 거다. 누군가 풀어 쓴 글을 읽고 숟가락을 얹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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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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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지 않은 사람은 편안한 믿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 이상, 여행자는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가게 된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정신이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의 믿음에 집착한다면 여행은 재난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35쪽)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64쪽)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중략)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81-82쪽)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117쪽)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147쪽)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nobody)일 뿐이다. (155쪽)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던 시절이면 나는 무엇에든 쉽게 중독되어 자신을 잊기를 바랐다.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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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대상자들의 자전적인 고백에는 그들이 글을 쓰게 된 배경, 목적, 방향, 내용, 다짐, 등을 엿 볼 수있다. 특히, 작가 자신을 오롯히 드러내고 있다. 어떠한 순간에 불현듯, 때론 축척된 에너지로, 어떤 계기로, 글을 쓸 수밖에,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로 모여 있다. 사람의 외모가 다르듯, 속 마음의 층위는 얼마나 다를까. 살아 오고, 살고 있는 알 수 없는 환경에서 그 단면을 끄집어 내어 풀어풀어 쓴 그들의 소설에는 그들이 여기에 쓴 문장들과 하나씩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글은 이러하고, 누군가는 저러하다고 나름 느끼게 된다. 모든 게 다른 게 당연하기에 글도 모두 다르다. 좋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동일하다.  "이제는 소설만 가지고도 인간을 교육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150쪽, 김지원)"

 

*글을 읽으며 '밑줄그은' 속 문장은 저자들이 지금까지 이런 이유로 글을 쓰겠구나 하고 짐작한 걸 옮겼다. 그리고 몇몇은 어려워서 짐작도 못하고, 죽은 이들도 있고, 윤이형이 절필한 이유도 추측할 수 있다. 또 표절한 신경숙도 이해할 수 있다. 소설이 가지는 목적과 소설가의 의무도 생각하게 된다. 소위 불법일 때, 사람들은 그 일의 불법성을 따지기보다 자신의 착한 본성과 속한 집단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불법의 정의는, 불법은 누가 정하는 것인지, 불법의 한계도, 무전유죄도, 이것저것으로 이어지면서 막연하고 혼란스럽다... 그들의 속마음이 단번에 쓱 들어와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블라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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