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들에게 - 최영미 시집, 개정증보판 이미 3
최영미 지음 / 이미출판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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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늙고 병들어
자리에서 일어날 힘도 없는데
그들은 내게 진주를 달라고
마지막으로 제발 한번만 달라고......
-돼지들에게 중(18쪽)

겸손한 문체로 익명의 다수를 향해 다정한 편지를 띄우지만
당신처람 오만한 인간을 나는 알지 못하지
당신보다 차가운 심장을 나는 보지 못했어

계산된 ‘따뜻‘에 농락당했던 바보가 탄식한다
늦었지만
순진을 벗게 해줘서 고마워
선생님
-돼지의 변신 중(22-23쪽)

그는 내가 그를 사랑할 시간도
미워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언젠가, 기쁨도 고통도 없이
굳은 빵에 버터 바르듯
너희들을 추억하리라
-굳은 빵에 버터 바르듯(37쪽)

산다는 건 내게 치욕이다. 시는 그 치욕의 강을 건너는 다리 같은 것. 내가 왜 어떤 항구에도 닻을 내리지 못하는 방랑자가 되었는지. 지난 시절의 이야기들을 나직히 풀어놓을 힘이 내게 남아있으면 좋겠다. (53쪽)

돈과 폭력과 약물로 오염된
아무리 더러운 경기장에도
한 조각의 진실이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인생보다 아름다운 게임이 축구다.
-인생보다 진실한 게임(70쪽)

나 또한 그처럼 어리석었으나, 재능은 발자크에 못미치나 어리석음에서는 그에 못지않았다. 다시 살아야겠다. 써야겠다. 싸워야겠다.
-발자크의 집을 다녀와 중(83쪽)

어릴 적, 문막의 섬강에서 자연의 장엄한 교향악을 들었다. 강가의 너럭바위에 앉아 울려다본 밤하늘은 경이로웠다. 보석처럼 반짝이다 시냇물이 되어 졸졸 흐르던 은하수와 사랑에 빠졌던 밤을 언제까지나 간직한다면, 나는 늙지 않을 텐데.
-횡단보도를 건너며 중(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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