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 김열규 교수의 지식 탐닉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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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모든 공부, 온갖 공부의 시작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공부는 읽기로부터 출발한다. -86쪽

이렇게 우리 누구나 온 평생을 책벌레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책만 들고 앉으면 다른 사람이 가진 것도, 누리는 것도 서 푼어치가 안 되어 보이는, 그런 지악한 책벌레가 되기는 어려운 것일까? 그가 나이를 먹어서 어른이 되고 예순 살, 일흔 살을 넘은 노년이 되기까지 줄곧 또 줄기차게 책벌레로 살아간다면 그는 백만장자가 아닌 '책만장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 책의 억만장자는 머리의 억만장자를 의미할 것이다. 뿐만 아니다. 가슴의 억만장자를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되어가면서 책 읽기로 살아가는 한평생!
서가 앞에, 거기 꽂힌 책들 앞에 다리를 펴고 편하게 앉아서 그 하고많은 낯익은 구면들이 던지는 정겨운 눈짓을 즐거이 받아내는 삶!
그렇게 책을 더불어서 살아갈 수는 없을까?
-90쪽

즉 스스로 알아서 하는, 자신을 위한 자신만의 공부, 그런 자율적인 공부야말로 인간을 키워나가는 데, 인생을 설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하게 된다. 학생은 자율적인 공부로 스스로 자라고 스스로 삶의 길을 열어나가는 것이다.-196쪽

공부는 언제 어디서나 속도와 기동성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그런 뜻으로 모바일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은근과 느긋함이며, 끈기와 줄기참이 공부에는 필수적이다. '스터디study'는 '스테디steady'해야 한다. 흔들림 없이 침착해야 하고, 서두름 없이 착실해야 한다. 모바일 시대일수록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모바일이 아니라 요지부동 태산 같아야 한다.-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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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예술가들을 만났다. 주체가 되어 그린 그림과 만든 작품들, 정신이 절로 차려지고 가슴이 쿵광거리고 생채기가 나지 않고는 볼 수가 없다. 그녀 자신들의 삶을 오롯히 전달해 주는 그림, 소름이 돋는다. 작품과 그녀들의 인생이 동일하다... 인상깊은 것은 니키 드 생팔이 지은 '타로공원'에서는 놀고 싶고, 에바 헤세의 '접근'은 만지고 싶은 욕망을 누룰 수가 없다. p195 에 있는 사진을 드려다 보면 한없이 빨려들어 간다. 그러면서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십자가'는 직접 보고 싶다. 그녀의 성당에 있다는 십자가는 한 쪽은 주먹 쥔 손, 한 쪽은 펼쳐진 손이 조각되어 있다.  '삶은 쥐다와 놓다의 가로지름이라고... 쥐고 있는 손은 우리의 집착과 애증에 연민하도록 하고, 열린 손은 아픈 우리를 향해 손 내민다.(길위의미술관 p253)'고 그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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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미술관 - 제미란의 여성미술 순례
제미란 지음 / 이프(if) / 2007년 10월
품절


루이즈 부르주아와 함께 우리 시대 가장 걸출한 페미니스트 조각가로 꼽히는 키키 스미스. 그녀가 만들어내는 여성들은 남성 미술가들이 전통적으로 만들어 온 여성의 아름다움을 거부한다. 나른한 섹시함과 에로틱 판타지로 그들의 욕망에 복무하는 대신, 여성의 몸을 저항과 위반의 메타포로 뒤바꿔 버린다. 여성의 몸을 가부장적 시선으로부터 떼어 내서, 그녀들이 살아온 몸의 체험 그대로 되살려낸 것은, 현대미술에서 그녀가 이룬 최고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26쪽

이리가레이 등은 여자의 말이 이성과 합리성으로는 설명될 수 없고, 남성 지배의 담론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사유 과정이라고 말한다. 여자의 말은 한 곳에 집중되지 않은 성감대처럼 다중적이고, 촉각적이며, 유동적이고, 열려 있다. 이러한 특성은 열등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다.른.것이다.-46쪽

리지아는 뫼비우스의 띠를 자르는 행위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심리적 모순을 극복한다. 객관 세계와 내부 충돌 사이에서 오는 모순점. 그녀는 이 과정을 통해 이원성의 수렁에서 스스로를 건져냈다고 말한다. 그녀는 말한다. "뫼비우스의 띠느 우리를 한계 없는 시간의 경험 속에 살게 해 주고 계속되는 공간의 경험 속에 살게 해 주는 것이었다."-64쪽

왜 하필 카드게임을 주제로 한 타로 공원이냐는 질문에 그녀(니키 드 생팔)는 그 안에 삶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삶이 카드게임이라면 우리는 그 룰을 모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게임은 계속돼야 한다. 타로카드는 그저 게임일 뿐일까. 아니면 그 이면에 삶의 철학이 존재하는 것인가?... 타로는 영적 세계와 삶의 시련에 대한 위대한 이해를 주었다. 그리고 모든 어려움ㅇㄴ 극복될 것이며 결국 내적 평화와 천국의 정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124쪽

"나는 늘 모순들을 생각하고, 모순된 형태로 작업하는 것을 생각해요. 그것은 온통 부조리한 이 삶 안에 존재하지요. 내겐 모든 것이 대립적이에요. 중간이란 존재하지 않지요."
도무지 함께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극단이 무심하게 병존하며 일으키는 기이한 모호성. 이 모호성이 그녀(에바 헤세)에게로 가는 키워드다.-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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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얇은 책이지만 무지 무거운 내용이다. 새로운 용어가 낯설다. 용어뿐 아니라 내용이 불편하게 만든다. 기존의 안목이 아니라 '서브얼턴'의 시각으로 역사를 다시 봐야 한다는 점이다. 역사는 승자의 전유물처럼 승자편에서 기록되고 전해져왔다는 점과는 대척점을 이룬다. 친절하게 개념풀이까지 첨부되어 있지만 잡힐 듯 하면서 모호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란 말을 곰곰히 생각해 봐야한다. 이미 알고있는 내용에 점차로 살이 더해지고 있는걸까. 고정된 시각에서 더이상 벗어나고 싶지 않는 고집도 상당히 느끼고 있다. 저항을 하면서 글을 읽고 배우고 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이 상태에 머물고 싶다. 이러한 마음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지금의 나를 낯설게 새롭게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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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와 역사 쓰기 이제이북스 아이콘북스 15
셸리 월리아 지음, 김수철 외 옮김 / 이제이북스 / 2003년 5월
절판


이어서 사이드는 역사라는 "진실된" 설명들은 단지 권력의 유지와 물질적 이득에 부합하도록 조정된 문화 전략들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33쪽

권력은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확립된 언어구조를 지니며 사회에 부과된 모든 형식들은 이 언어구조를 통해 만들어진다. "진리"는 이러한 권력적 소수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들은 하나의 담론을 통해 작동함으로써 주체가 자신의 목표와 잘 맞게끔 체계적으로 통제한다. -34쪽

권력은 앎을 목표로 함과 동시에 그것을 구성하고 지배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지식은 지식 없이는 수행될 수 없는 권력을 낳는다. 이러한 권력과 지식의 사용은, 믿음을 창출해 내고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모든 것들을 규정하는 담론을 생성시킨다. -35쪽

동양은 의도적으로 차이와 특수성을 강조하고 결과적으로는 사회들을 비인간화시킨 고대 문헌, 문학, 언어학, 인류학적 발견들에 의해 연구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결코 중립적인 과학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토를 어떻게 점유하고 관리할 것인지를 결정하도록 만드는 동기들과 불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전제에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이러한 가정 저변에는 동양은 파행적이고 개발되지 않았으며 열등하고 자신을 규정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독단적인 편견이 깔려 있었다.-52쪽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명백해졌듯이, 문화와 예술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서 구조를 감독하는 제국의 기반이 된다. -66쪽

사이드는 역사-말하기라는 탈서사적 양식을 통해서 문화의 형성에 개입하기 시작하고 주체가 체계에 종속되는 것을 금한다. -85쪽

영토를 지배하고자 하는 투쟁이 역사의 일부인 것처럼,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위한 투쟁 역시 그러하다. 비판적 학자의 임무는 하나의 투쟁이 지닌 강력한 구체성과 또 다른 투쟁이 지닌 두드러지게 세련된 공상성이라는 대조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둘을 분리시키지 않고 서로 연결시키는 데 있다.

문화 비평가는 자신을 사회적 맥락 안에 논쟁적으로 위치 지우는 한편으로 고정된 기원들에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그 맥락을 넘어서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87쪽

서브얼턴Subaltern
서브얼턴이라는 서브얼턴 연구 모임(the Subaltern Studies group)이 그람시의 '옥중수고(the Prison Notebook)'에서 가져와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람시 역시 오리엔탈리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은 단지 용어만 차용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이 용어의 의미가 확장되었으며, 최근에 이르러서는 문화 연구자와 인류학자들에 의해 모든 형태의 피억압 상태와 권력관계에서 소외된 집단들을 가리키는 폭넓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용어는 현존하는 지배서사를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지닌 자기-재현의 실행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복을 향한 이러한 노력은 주변을 중심으로 불러들이게 되며, 엘리트적인 글쓰기와 해석에서 일반적으로 간과되는 서브얼턴의 역사를 생산해 내게 된다. -9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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