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위한 시간 - 유럽 수도원 기행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패트릭 리 퍼머 지음, 신해경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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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기도를 마친 수사들이 흩어졌다. 몇 시간 뒤에 끝기도까지 마치고 나자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 들었다. 일 분 일 초가 지날수록 혈관의 피는 느려지고 말라붙어 어느 곁에 심장박동이 멈출 것처럼 오싹한 기분이었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매일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세상과 화해하고, 죄를 보속(補贖)받고, 성사(聖事)를 통해 보호받으며, 자정에 가까운 어느 때라도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때가 되면 죽음은 가장 손쉬운 변신이 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죽음의 침묵과 죽음의 외양, 죽음의 안색, 그리고 유령의 걸음걸이를 손에 넣었으니까, 마지막 단계는 그저 사소한 통과의례일 뿐일 테지, 나는 혼잣말을 계속했다. (29-30쪽)

사람들은 수도 생활이라는 개념을 늘 있어왔던 하나의 현상으로 치부하고는 별다른 분석이나 비평 없이 머릿속에서 치워버리는 경향이 있다. 잠시 수도원에서 살아보는 것만이 우리의 일상과 수도 생활이 얼마나 극명하게 다른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두 가지 삶의 길은 단 하나의 요소도 서로 공유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도원 거주자들을 둘러싼 생각과 욕망, 소리, 빛, 시간, 분위기는 우리가 익숙한 그 어느 것과도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뭔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방식으로 정확하게 반대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상식적인 기준들이 물러가고 이상한 신세계가 실체를 갖춰가는 과정은 느렸고, 처음에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36-37쪽)

수도자에게 일생이란 영원에 비하면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찰나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흠숭하는 데도 짧은 생이고, 지극한 행복으로부터 추방당한 동료들의 영혼을 위해 미약하게나마 신과 인간을 중재하는 데도 모자라는 시간이다. 세상의 가치들이 급속히 변화하는 와중에도 수도자들의 가치는 온전히 남았다. 해마다 변화하느라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외부 세상에서 수도 생활에 겨눈 조롱을 듣는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다. 그리스도교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든 간에 수도 생활이 위선과 게으름, 이기주의의 발현이자 현실도피일 뿐이라고 비난하는 주장은 그 얼마나 얄팍한가! 수도자들은 작열하는 확신과 각고의 노력으로 한 생을 보낸다. 거기엔 휴일도 없다. 무엇보다 살아 있는 사람치고 수도자들이 믿는 전제들이 참 또는 거짓이라고 선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도자들은 세상의 가치들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고, 그 가치들이 주는 즐거움과 보상을 단호하게 끊었다. 그들만이 동시대인들과 스스로를 돕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채 맨몸으로 무시무시한 영원의 문제와 대적해왔다. (44-45쪽)

나는 시토 수도회의 어떤 일면을 보고 움찔한 만큼 일반적인 편견을 가졌고, 트라피스트회 수도생활의 기저에 거의 초인적인 관대함과 이타심이 놓여 있음을 알아챌 정도로는 세상물정을 알았다. 그리고 내 편견과 안목이 모두 엄밀하지 않다는 사실과 내게는 거기서 발견한 것들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기록할 만한 정신적 도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 정도의 겸손함과 직감은 있었다. 내가 믿음에 관한 천부적인 재능과 수도 생활에 딱 맞는 천성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트라피스트회 수사가 될 일은 절대 없으리라는 사실 또한 나는 알았다. (93쪽)

매일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침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 안에 숨어 있는 거소가 가려져 있는 것을 모두 떠올려 한 번에 걷어낼 수 있는 시간, 최소한의 균형을 잡고 삶의 방향을 재조정할 시간이. 저자에게 수도원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명징한 정신과 평온한 마음과 새로운 활기를 채워 세상 속으로 되돌려줄 곳이 절실하다. 도달하기 어려운 어떤 곳을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우리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 작은 책은 빼어난 여행서가 분명하다. (155-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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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여행자를 따라 이곳 저곳을 다녔다. 종로서적도 생각나고, 파주 지혜의 숲, 서울도서관, 삼중당 문고판도 생각났다. 고개를 뒤로 젖혀 볼 정도의 높은 천장까지 닿아있는 책장에 사다리를 걸치고 책을 찾아보고 싶다. 책이 가득한 그 공간, 책 냄새, 책장넘어가는 소리 등등이 떠오른다. 그렇게 읽다보면 환상과 현실에서 분명한 자리를 잡을거고, 분명 좋은 생각을 하게 될 거고,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꽃샘추위로 바람 부는 쓸쓸한 날에 1호선을 타고 달려가 시집이 가득 꽂힌 그 아래에 쪼그려 앉아서 읽었던 책들이 그립다. 아직도 코끝에 달려있는 아련한 기억 속의 책냄새, 그 냄새를 맡기 위해 이리저리 찾아 다녔던 도서관들도, 책 속에 갇혀 있고 싶었던 그날들로 달려가고 싶은 날이다. 책여행자를 따라가는 길은 상쾌했다.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는 책들, 책이 만들어주는 한단어, 한문장, 그 속의 그 길을 따라 계속 걷고 싶다. 가득 내려온 커피까지, 햇살이 내려 앉은 창가까지 오늘은 덤이 많아서 즐거운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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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3-10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납니다 삼중당문고
장정일의 말마따나 글씨가 깨알같던...
그 많던 삼중당 문고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JUNE 2015-03-10 20:21   좋아요 0 | URL
글씨가 깨알같고, 세로쓰기로 되어 있던 책, 중고시절에 삼중당문고를 선물로 주고받았던. 그리고 서문문고는 세로쓰기가 두단으로 되어 있었고, 가격은 모두 몇백원이었지요...책냄새가 가장 구수했던 삼중당문고, 아껴가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책여행자 - 히말라야 도서관에서 유럽 헌책방까지
김미라 지음 / 호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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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가 책을 읽고 쓰는 이유는 위험한 이상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문학은 내 생각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겠다는 의도를 내려놓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고 공감할 수 있는 장소다. 의도 없이 서로 이해하려는 시간이다. 그제야 비로소 문학은 모두의 문학이 될 수 있다. (40쪽)

사실 우리는 혁명가로서의 마르크스를 알고는 있지만, 그가 14년 동안 대영도서관에 틀어박혀 싸구려 담배를 피워 대며 [자본론]을 썼던 긴 침묵의 기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가 항상 앉았던 시멘트 바닥이 닳아서 움푹 파였다고 할 정도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은 마르크스를 어떻게 보았을까? 어쩌면 단지 하릴없이 도서관에 다니는 실업자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낸 결과를 보면 결코 무의미가 아니었다. (47쪽)

문자가 만들어 내는 환상 속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온몸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통해 냄새를 맡고, 입맛을 다시고, 노래를 부르고, 먼 곳을 향해 나가야 한다. 책읽기는 온몸을 부딪쳐서 하는 것이고, 그렇게 온몸이 책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깨어 있는 사람의 독서법이다. (65쪽)

런던, 뉴욕, 파리..., 이 도시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꿈에 휩싸이게 한다. 우리가 이 유명한 도시를 여행하고 싶은 이유는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만 보았던 머릿속 환상의 장소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그런 꿈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대부분은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와 피곤한 다리, 이방인이라고 힐끔힐끔 바라보는 시선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한 냄새에 고픈 배를 ㄷ라래야 하는 실질적인 일들로 이어진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경험은 골방 속에서 나 홀로 빚어내곤 하던 희미하고도 불완전한 세사오가는 또다른 기쁨을 준다.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에만 실감할 수 있는 게 있다. (193쪽)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그 간극을 좁혀 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책방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아무리 책 속에, 영화 속에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곳으로 달려간다면 바로 내가 그곳의 현실이 될 수 있다.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놀이를 하기에는 그 어디보다도 파리가 제격이다. (196쪽)

뉴욕은 화려한 만큼이나 많은 것을 잊기 쉬운 도시이다. 그래서 더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대도시의 고급문화가 마치 치장과 허세의 도구로 더욱 유용해지고 있는 듯 보일 때, 고급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얼구로가 옷차림에는 하이클래스라는 자부심이 묻어날 때, 나는 예술의 목적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그런 자체로 인간의 영혼을 이야기한다는 건 왠지 아이러니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223쪽)

책이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 내면의 은밀한 문제가 드러나는 곳이 책의 공간이며, 그 안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떠나서 날것 그대로의 인간이 보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책을 쓰고, 또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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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료의 트위터는 매일 조잘대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전세계로 퍼져 메아리가 되고 있습니다. 저에게까지 왔네요. 촌철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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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순간 (양장)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미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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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즐겁고 행복한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괴로운 것이라고,
고통도 사랑의 일부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기 마세요. (25쪽)

사람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대로 볼 뿐입니다. (67쪽)

매일같이 햇볕만 쨍쨍하게 내리쬔다면
멀쩡한 들판도 사막이 됩니다. (100쪽)

당신이 입 밖으로 내뱉는 말 때문에
누군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뱉지 않고 삼켜버린 말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도 있답니다. (132쪽)

변명하지 마세요.
어차피 사람들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을 뿐입니다. (169쪽)

사람이 익사하는 것은 강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10쪽)

당신이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한 이상
언제나 길은 있습니다. (248쪽)

인생은 요리와 같습니다.
좋아하는 게 뭔지 알려면
일단 모두 맛부터 봐야 하죠.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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