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여행자 - 히말라야 도서관에서 유럽 헌책방까지
김미라 지음 / 호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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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가 책을 읽고 쓰는 이유는 위험한 이상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문학은 내 생각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겠다는 의도를 내려놓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고 공감할 수 있는 장소다. 의도 없이 서로 이해하려는 시간이다. 그제야 비로소 문학은 모두의 문학이 될 수 있다. (40쪽)

사실 우리는 혁명가로서의 마르크스를 알고는 있지만, 그가 14년 동안 대영도서관에 틀어박혀 싸구려 담배를 피워 대며 [자본론]을 썼던 긴 침묵의 기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가 항상 앉았던 시멘트 바닥이 닳아서 움푹 파였다고 할 정도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은 마르크스를 어떻게 보았을까? 어쩌면 단지 하릴없이 도서관에 다니는 실업자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낸 결과를 보면 결코 무의미가 아니었다. (47쪽)

문자가 만들어 내는 환상 속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온몸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통해 냄새를 맡고, 입맛을 다시고, 노래를 부르고, 먼 곳을 향해 나가야 한다. 책읽기는 온몸을 부딪쳐서 하는 것이고, 그렇게 온몸이 책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깨어 있는 사람의 독서법이다. (65쪽)

런던, 뉴욕, 파리..., 이 도시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꿈에 휩싸이게 한다. 우리가 이 유명한 도시를 여행하고 싶은 이유는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만 보았던 머릿속 환상의 장소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그런 꿈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대부분은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와 피곤한 다리, 이방인이라고 힐끔힐끔 바라보는 시선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한 냄새에 고픈 배를 ㄷ라래야 하는 실질적인 일들로 이어진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경험은 골방 속에서 나 홀로 빚어내곤 하던 희미하고도 불완전한 세사오가는 또다른 기쁨을 준다.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에만 실감할 수 있는 게 있다. (193쪽)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그 간극을 좁혀 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책방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아무리 책 속에, 영화 속에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곳으로 달려간다면 바로 내가 그곳의 현실이 될 수 있다.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놀이를 하기에는 그 어디보다도 파리가 제격이다. (196쪽)

뉴욕은 화려한 만큼이나 많은 것을 잊기 쉬운 도시이다. 그래서 더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대도시의 고급문화가 마치 치장과 허세의 도구로 더욱 유용해지고 있는 듯 보일 때, 고급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얼구로가 옷차림에는 하이클래스라는 자부심이 묻어날 때, 나는 예술의 목적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그런 자체로 인간의 영혼을 이야기한다는 건 왠지 아이러니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223쪽)

책이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 내면의 은밀한 문제가 드러나는 곳이 책의 공간이며, 그 안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떠나서 날것 그대로의 인간이 보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책을 쓰고, 또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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