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기도를 마친 수사들이 흩어졌다. 몇 시간 뒤에 끝기도까지 마치고 나자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 들었다. 일 분 일 초가 지날수록 혈관의 피는 느려지고 말라붙어 어느 곁에 심장박동이 멈출 것처럼 오싹한 기분이었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매일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세상과 화해하고, 죄를 보속(補贖)받고, 성사(聖事)를 통해 보호받으며, 자정에 가까운 어느 때라도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때가 되면 죽음은 가장 손쉬운 변신이 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죽음의 침묵과 죽음의 외양, 죽음의 안색, 그리고 유령의 걸음걸이를 손에 넣었으니까, 마지막 단계는 그저 사소한 통과의례일 뿐일 테지, 나는 혼잣말을 계속했다. (29-30쪽)
사람들은 수도 생활이라는 개념을 늘 있어왔던 하나의 현상으로 치부하고는 별다른 분석이나 비평 없이 머릿속에서 치워버리는 경향이 있다. 잠시 수도원에서 살아보는 것만이 우리의 일상과 수도 생활이 얼마나 극명하게 다른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두 가지 삶의 길은 단 하나의 요소도 서로 공유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도원 거주자들을 둘러싼 생각과 욕망, 소리, 빛, 시간, 분위기는 우리가 익숙한 그 어느 것과도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뭔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방식으로 정확하게 반대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상식적인 기준들이 물러가고 이상한 신세계가 실체를 갖춰가는 과정은 느렸고, 처음에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36-37쪽)
수도자에게 일생이란 영원에 비하면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찰나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흠숭하는 데도 짧은 생이고, 지극한 행복으로부터 추방당한 동료들의 영혼을 위해 미약하게나마 신과 인간을 중재하는 데도 모자라는 시간이다. 세상의 가치들이 급속히 변화하는 와중에도 수도자들의 가치는 온전히 남았다. 해마다 변화하느라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외부 세상에서 수도 생활에 겨눈 조롱을 듣는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다. 그리스도교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든 간에 수도 생활이 위선과 게으름, 이기주의의 발현이자 현실도피일 뿐이라고 비난하는 주장은 그 얼마나 얄팍한가! 수도자들은 작열하는 확신과 각고의 노력으로 한 생을 보낸다. 거기엔 휴일도 없다. 무엇보다 살아 있는 사람치고 수도자들이 믿는 전제들이 참 또는 거짓이라고 선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도자들은 세상의 가치들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고, 그 가치들이 주는 즐거움과 보상을 단호하게 끊었다. 그들만이 동시대인들과 스스로를 돕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채 맨몸으로 무시무시한 영원의 문제와 대적해왔다. (44-45쪽)
나는 시토 수도회의 어떤 일면을 보고 움찔한 만큼 일반적인 편견을 가졌고, 트라피스트회 수도생활의 기저에 거의 초인적인 관대함과 이타심이 놓여 있음을 알아챌 정도로는 세상물정을 알았다. 그리고 내 편견과 안목이 모두 엄밀하지 않다는 사실과 내게는 거기서 발견한 것들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기록할 만한 정신적 도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 정도의 겸손함과 직감은 있었다. 내가 믿음에 관한 천부적인 재능과 수도 생활에 딱 맞는 천성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트라피스트회 수사가 될 일은 절대 없으리라는 사실 또한 나는 알았다. (93쪽)
매일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침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 안에 숨어 있는 거소가 가려져 있는 것을 모두 떠올려 한 번에 걷어낼 수 있는 시간, 최소한의 균형을 잡고 삶의 방향을 재조정할 시간이. 저자에게 수도원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명징한 정신과 평온한 마음과 새로운 활기를 채워 세상 속으로 되돌려줄 곳이 절실하다. 도달하기 어려운 어떤 곳을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우리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 작은 책은 빼어난 여행서가 분명하다. (155-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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