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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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객실의 불을 끄지 않은 채, 여행안내서를 살펴봤다. 그가 읽어보니, 그 책들이 설명하는 곳에 가기 전에 읽었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 자신이 보지 못하거나 하지 못하고 지나친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처음이자, 그리고 의심의 여지 없이 마지막 방문이 될 게 틀림없는 이탈리아를 떠나는 그 시점에 그 나라에 대한 많은 정보를 발견하게 돼 그로서는 후회가 됐다. (74-75쪽)

그 아이는 마이어스의 청춘을 집어삼켜버렸고, 그가 연애해서 결혼한 젊은 여인을 신경과민의 알코올중독자로 바꿔놓고는 번갈아가며 병도 주고 약도 줬다.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자신이 싫어하는 누군가를 만나려고 이 먼길을 나섰단 말인가. 마이어스는 자문했다. 그는 아이의 손, 자기 인생의 적인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싶지도 않았고 어깨를 토닥거리며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는 아이에게 엄마에 대해 묻고 싶지도 않았다. (82쪽)

그는 소파의 한쪽 끝에, 그녀는 다른 쪽 끝에 앉았다. 그래봐야 작은 소파였기 때문에 둘 사이는 여전히 가까웠다. 얼마나 가까웠냐면 손을 뻗으면 그녀의 무릎에 닿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실내를 한번 둘러본 뒤 다시 그를 바라봤다. 자기가 수염도 깍지 않고 머리도 덥수룩하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의 아내였으니까 그에 대해서 알 만한 것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161쪽)

그즈음 J.P.는 이십대 중반이다. 그는 집을 산다. 그는 행복한 삶이었다고 말한다. "만사형통이었지." 그가 말한다. "원하는 걸 다 가졌으니까, 사랑스러운 처자식에다가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었지." 하지만 무슨 까닭에서인지-술버릇이 점점 세진다. 오랫동안 그는 그저 맥주만 마신다. 맥주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하루 스물네시간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밤에 TV를 보면서도 맥주를 마시곤 했다. 물론 가끔은 독주도 마셨다. 하지만 그건 흔하지 않은 경우인, 마을에 나가서 마실 때나 손님이 찾아왔을 때였다. 그러다가 맥주에서 진토닉으로 바꾸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 이유는 그도 알 수 없다. 저녁을 먹고 TV 앞에 앉아 그는 진토닉을 점점 더 많이 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항상 진토닉잔을 들고 있었다. 정말 그 맛을 좋아했다고 그는 말한다. 일이 끝난 뒤, 술을 더 마시기 위해 집에 가지 않고 술집에 들르기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저녁을 거르기 시작했다. 그는 집에 오지 않았다. 설사 집에 왔다 하더라고 뭘 먹으려고 들지 않았다. (184-185쪽)

칼라일은 그녀가 다른 방으로 가서 자기 혼자 남게 되는 일이 두려웠다. 그는 계속 말하고 싶었다. 그는 목을 가다듬었다. "웹스터 부인, 알아주셨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제 아내와 저는 서로 사랑했습니다. 이 세상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말입니다. 그 사랑에는 저 아이들도 포함되지요. 우리는 생각했어요. 아니, 알고 있었어요. 우리가 함께 나이가 들 것이라는 걸 말이죠. 우리가 원하는 일들을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해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 일들을 둘이서 함께 할 것이라는 것도요."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앞으로는 두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각각 상대방 없이 할 수밖에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 그 순간 그 무엇보다도 슬픈 일처럼 그에게 느껴졌다. (251-252쪽)

웹스터 부인은 칼라일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바로 그때, 창가에 서 있을 때, 그는 그렇게 뭔가가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일린과 관계된, 이전의 삶과 관계된 그 무언가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 적이 있었던가?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랬다는 것을 안다. 비록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그는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이해했고 그녀를 보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비록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254쪽)

검은 가죽의 낡은 말굴레일 뿐이다. 내가 아는 바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거기에 말의 입에 물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 부분을 재갈이라고 부른다. 강철로 만들었다. 말의 머리 뒤로 고삐를 넘겨 목 부위에서 손가락에 낀다. 말에 탄 사람이 그 고삐를 이리저리 잡아당기면 말은 방향을 바꾼다. 간단하다. 재갈은 무겁고 차갑다. 이빨 사이에 이런 걸 차게 된다면 금방 많은 것을 알게 되리가. 재갈이 당겨지는 느낌이 들 때가 바로 그때라는 걸. 지금 어딘가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걸.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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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에는 책 몇권을 챙겨 자동차로 갈 수 있는 데까지 지리산을 올랐다. 해발 1,000미터 가까이 갈수록 안개가 짙었다. 세상 사는 일도 똑같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그 길을 올랐다. 매일 사는 우리들은 '풋내기들'이다. 인생에서 누가 전문가가 될 수 있고,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으리. '풋내기들'은 그곳에서도 펼쳐 읽고 싶었다.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번역을 엄청 잘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연결된 듯하지만 아니고, 뭔가를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정작 듣는 이는 알아듣지 못하고, 여운으로 남아있다가 한참 뒤에 독자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런거였어... 참. 재.미.있.다.

각각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우리들, 삶에 대하여, 특히 사랑에 대하여 우리가 뭘 알겠어. 이것도 저것도 사랑이고, 너의 삶도 나의 삶도, 지나보니 그게 사랑이고 살아온 거지. 

그럼, 이 소소하고 작은 한 순간에도 마음을 실어볼까...

돌아오는 길에는 생일상을 받았다. 먼길까지 미역국을 챙겨 와주신 부모님의 사랑은 이제야 조금 알 거같다. 굳이 마다하는 자식에게 그렇게라도 하셔야 하는 당신들과의 차이, 그런 이야기들이 '풋내기들'에 들어있다. 여기서 옳고 그런가, 좋고 나쁘다가 아니라, 선호와 수용의 정도, 관계에서 최소점을 갖게 되면 사랑하게 되는 거 같다. 최대점으로 가게 되면 멀어지고, 그렇다고 그때 그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사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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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기들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우열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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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잃어버렸다는 걸 깨닫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우스운 느낌이 들었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뭔가가 끝났다는 걸 알았지만, 곧 어떤 일이 일어나서 그 자리를 대신할지는 그녀도 나도 아직 알지 못했다. (73쪽)

나는 삶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구나. 한번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심에 짐을 지고 살아가는 건 힘이 드는구나. 그러니까 그게, 자꾸 생각나고 내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 친구가 죽어야 했다는 사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단 말이야. (121쪽)

과거는 불확실하다. 꼭 어린 시절에 얇은 막을 씌워둔 느낌이다. 나는 내게 일어났던 일이라고 기억하는 일들이 정말로 일어났는지 확신할 수 없다. (259쪽)

하지만 그는 계속 창가에 서서 지나간 삶을 떠올린다. 그날 아침 이후 힘겨운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다른 여자들이 생기고,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생기고, 하지만 그날 아침, 바로 그날 아침에, 그들은 춤을 췄다. 둘은 춤을 췄고, 언제까지나 그런 아침이 올 것처럼 서로를 품에 안았고, 나중에는 와플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바깥에서는 모든 것이 얼어붙고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 기대어 웃다가 눈물이 다 났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3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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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갔다. 오월인데... 서둘러 나가야 한다. 몇권의 책을 챙기고 지리산쪽으로 가려한다. 그간 치과를 다니고 있는데, 발치 후, 만들어 끼운 임시치아로 마음과 몸이 도무지 알수 없는 기분으로 허둥댔다. 

영화도 몇편 보면서(특히, 어벤져스는 영화관 전체를 차지하고 있던데, 보긴 봤지만 그정도는 아니잖아/ 리바이어던과 뷰티플라이를 보려고 애쓴 거에 비하면), 몇권의 책도 번갈아가며 읽고(어떤 책이 괜찮은 지는 읽기 전에는 모른다.) 있다... 독서일기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니, 내가 쓰고 있는 스타일을 잘 모르겠다. 쓸모없이 넘치는 글더미를 만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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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부의 서재 - 어느 외주 교정자의 독서일기
임호부 지음 / 산과글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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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최고 판관`, 즉 신에 의해 권리를 부여받은 인민이 새롭게 창조한 나라, 군주의 지배를 받아본 적도 없고, 심지어는 독재자의 망령에 시달려본 적도 없는 그런 나라에서 인민이 타도해야 할 대상은 없다. `체계`, 즉 시스템을 문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파이의 분배 방식만이 문제일 뿐. "파이 따위는 이제 먹지 않아!"가 아니라 "그럼 내 몫의 파이는 얼마나 되는 거야?"가 문제인 것이다. (38쪽)

그레고르가 죽자 가족은 하숙생들을 내쫓고 하녀마저 나가게 한 뒤 놀랍게도 나란히 식탁에 앉아 각자의 직장 상사에게 하루 결근하겠다는 편지를 쓴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가족 외출에 나선다.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며. 하지만 치욕은 오랫동안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 가족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합의를 이용한데서 비롯된 치욕. 세상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중재자 같은 건 없다는 걸 그들은 그 치욕을 통해 깨닫게 될 것이다. 치욕이 유지되는 한 세상의 모든 합의는 무효다. (122쪽)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 또한 그들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의 삶과 연결된다. 우리가 우리 삶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의 삶과 연결된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우리 삶에 찾아온 손님들일 뿐이다. (200쪽)

철학인 깊이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철학이나 수학은 사유의 이치를 궁구하고 그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일진대, 이치와 질서라면 표면과 관계되는 것이지 깊이와는 무관하지 않은가. 각자 자기만의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앉아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 게 철학이랄 수는 없을 테니까. 각자의 구덩이와 그 깊이의 차이를 인정하면 철학은 불가능해진다. 그 구덩이의 깊이를 표면의 연장으로 보고 표면 위의 점으로 일반화해야 철학은 비로소 가능해지니까. 따라서 철학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깊이가 없어서가 아니라 거꾸로 우리의 그 잘난 깊이 때문은 아닐는지. 우리가 모르는 것은 우리의 깊이가 아니라 표면일지도 모르니까. (204-205쪽)

부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의 삶이 징검다리를 건널 때처럼 허방과 마주할 때마다 부사는 마치 누군가가 던져준 징검돌처럼 우리의 바닥을 든든히 받쳐준다. 힘차게, 안전하게 혹은 짜릿하게. 그중에서도 삶의 허방을 채워주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삶 그 자체를 규정해줄 만큼 중요한 부사도 있다. 그 자체로 징검다리인 부사, 접속부사다.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런데도 불구하고). (247쪽)

내가 보았고 내가 겪었다. 나는 본 대로 겪은 대로 썼을 뿐이다. 이 말보다 완고한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 말은 `나`에 대한 존재 선언인 동시에 다른 해석을 차단하고 더 이상 성찰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배제 선언이기도 하니까. (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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