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객실의 불을 끄지 않은 채, 여행안내서를 살펴봤다. 그가 읽어보니, 그 책들이 설명하는 곳에 가기 전에 읽었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 자신이 보지 못하거나 하지 못하고 지나친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처음이자, 그리고 의심의 여지 없이 마지막 방문이 될 게 틀림없는 이탈리아를 떠나는 그 시점에 그 나라에 대한 많은 정보를 발견하게 돼 그로서는 후회가 됐다. (74-75쪽)
그 아이는 마이어스의 청춘을 집어삼켜버렸고, 그가 연애해서 결혼한 젊은 여인을 신경과민의 알코올중독자로 바꿔놓고는 번갈아가며 병도 주고 약도 줬다.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자신이 싫어하는 누군가를 만나려고 이 먼길을 나섰단 말인가. 마이어스는 자문했다. 그는 아이의 손, 자기 인생의 적인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싶지도 않았고 어깨를 토닥거리며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는 아이에게 엄마에 대해 묻고 싶지도 않았다. (82쪽)
그는 소파의 한쪽 끝에, 그녀는 다른 쪽 끝에 앉았다. 그래봐야 작은 소파였기 때문에 둘 사이는 여전히 가까웠다. 얼마나 가까웠냐면 손을 뻗으면 그녀의 무릎에 닿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실내를 한번 둘러본 뒤 다시 그를 바라봤다. 자기가 수염도 깍지 않고 머리도 덥수룩하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의 아내였으니까 그에 대해서 알 만한 것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161쪽)
그즈음 J.P.는 이십대 중반이다. 그는 집을 산다. 그는 행복한 삶이었다고 말한다. "만사형통이었지." 그가 말한다. "원하는 걸 다 가졌으니까, 사랑스러운 처자식에다가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었지." 하지만 무슨 까닭에서인지-술버릇이 점점 세진다. 오랫동안 그는 그저 맥주만 마신다. 맥주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하루 스물네시간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밤에 TV를 보면서도 맥주를 마시곤 했다. 물론 가끔은 독주도 마셨다. 하지만 그건 흔하지 않은 경우인, 마을에 나가서 마실 때나 손님이 찾아왔을 때였다. 그러다가 맥주에서 진토닉으로 바꾸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 이유는 그도 알 수 없다. 저녁을 먹고 TV 앞에 앉아 그는 진토닉을 점점 더 많이 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항상 진토닉잔을 들고 있었다. 정말 그 맛을 좋아했다고 그는 말한다. 일이 끝난 뒤, 술을 더 마시기 위해 집에 가지 않고 술집에 들르기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저녁을 거르기 시작했다. 그는 집에 오지 않았다. 설사 집에 왔다 하더라고 뭘 먹으려고 들지 않았다. (184-185쪽)
칼라일은 그녀가 다른 방으로 가서 자기 혼자 남게 되는 일이 두려웠다. 그는 계속 말하고 싶었다. 그는 목을 가다듬었다. "웹스터 부인, 알아주셨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제 아내와 저는 서로 사랑했습니다. 이 세상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말입니다. 그 사랑에는 저 아이들도 포함되지요. 우리는 생각했어요. 아니, 알고 있었어요. 우리가 함께 나이가 들 것이라는 걸 말이죠. 우리가 원하는 일들을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해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 일들을 둘이서 함께 할 것이라는 것도요."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앞으로는 두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각각 상대방 없이 할 수밖에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 그 순간 그 무엇보다도 슬픈 일처럼 그에게 느껴졌다. (251-252쪽)
웹스터 부인은 칼라일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바로 그때, 창가에 서 있을 때, 그는 그렇게 뭔가가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일린과 관계된, 이전의 삶과 관계된 그 무언가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 적이 있었던가?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랬다는 것을 안다. 비록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그는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이해했고 그녀를 보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비록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254쪽)
검은 가죽의 낡은 말굴레일 뿐이다. 내가 아는 바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거기에 말의 입에 물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 부분을 재갈이라고 부른다. 강철로 만들었다. 말의 머리 뒤로 고삐를 넘겨 목 부위에서 손가락에 낀다. 말에 탄 사람이 그 고삐를 이리저리 잡아당기면 말은 방향을 바꾼다. 간단하다. 재갈은 무겁고 차갑다. 이빨 사이에 이런 걸 차게 된다면 금방 많은 것을 알게 되리가. 재갈이 당겨지는 느낌이 들 때가 바로 그때라는 걸. 지금 어딘가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걸.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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