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보고 싶다며 친구가 보내 준 책을 이제야 읽다. 그것도 건성으로. 그녀의 마음에 비하면 내용은 가볍다. 모르겠다. 행간의 의미를 곱씹기 보다는 그냥 건너뛰었다. 그후 그녀가 몇번이나 와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주 어렵고 복잡하고 부럽기까지 한 글들을 읽은 다음에 가볍게 읽거나 또는 몇 권의 책과 섞어 읽기에 좋은 책으로 치부했다.

삶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일상에 대하여, 이름 불러주는 거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앞뒤 내용이 반복되어 나오는 거도 있고 앞뒤 문장이 서로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끼어 맞춘 느낌까지. 내가 읽은 게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이해가 안되면 타인을 탓하는게 속 편한 일이니.  

지난 주 복면가왕에서 들은 Don't Cry를 반복하여 듣는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까지 불었는데 몇번을 수십번을 들어도 이 정도야 약과다. 저음에서 고음까지 고루 실핏줄같은 감정이 고스란이 녹아 있어, 울지말라 하면서도 자꾸 울렸다. 대단한 가수임에 틀림없다.  

특히, 세월 지나도 난 변하지 않아. 이 밤 지나면 이젠 안녕 천천히 그리고 영원히 널 사랑해...

첫 사랑이 자꾸 노래에 묻어 나왔다.

그때는 사람을 특히, 남자를 대하는 건 어려웠다.

다섯살 보다도 많은 나이 차에서 감히 넘볼 수 조차 없었다.

나는 단단하지도 않았고 솜털 보송하고 말랑한 꼬마에 불과했다.

함께 한 시기에 말 한번 붙이지 못했고

한번도 제대로 불러 보지 못했고, 허겁지겁 따라 간 게 전부였다.

그때의 계절도 공기도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고, 볼 수도 없었고, 느끼지 못했던,

다만 형을 보고 있는 거에만 급급했다.

이제 이런 봄날을 즐기고 싶다. 부르고 싶고 말도 먼저 건네고 싶다.

성큼 다가도 가고 싶다. 갈 수 있는 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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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 안도현 아포리즘
안도현 지음 / 도어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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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인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고 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없으나,
늘 떠나고 싶어지고 늘 머물고 싶어지는 것.

바깥으로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안으로는 차갑고 단단한 것. (15쪽)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네가 내 옆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아팠다. 네가 보고 싶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물결이 쳤다.
네가 보고 싶어서 물속의 햇살은 차랑차랑하였다.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가고 있었고,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갈 것이었다.
누군가가 보고 싶어 아파본 적이 있는 이는 알 것이다.
보고 싶은 대상이 옆에 없을 때에 비로소 낯선 세계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고 싶은 호기심과 의지가 생긴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네게 가고 싶었다. (54쪽)

보고 싶다

첫사랑, 첫날밤, 첫 키스.......
`첫`자가 붙은 말은 언제나 아리고 매콤하다.
그대는 아리고 매콤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움`이라고 일컫기엔 너무나 크고, `기다림`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넓은, 이 보고 싶음.....
삶이란 게 견딜 수 없는 것이면서 또한 견뎌내야 하는 거라지만, 이 끝없는 보고 싶음 앞에서는 삶도 무엇도 속수무책일 뿐이다. 보지 않고서는 정신을 차릴 수 없다.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는 건, 마음이 썩게 내버려 두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대를 찾아 나서야겠다고 마음을 먹어 봐라.
순간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63쪽)



강물은 쉬지 않고 흐른다.
흐름을 멈춘 강이란 이 세상에 없다.
속이 깊은 강일수록 흐름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153쪽)

고래는 왜 육지를 떠났을까

사람들에게 수평선은 아득한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갈매기들에게 수평선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이란 뜻이다. 무엇이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게 관점이다.
고래는 왜 육지를 떠났을까. 간단하다. 고래는 육지에서의 삶에 지쳐서 바다로 간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자신을 지치게 하면 그곳이 어디든 떠나고 싶어진다. (173쪽)

사무친다는 것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사랑에는 속도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편리한 것보다는 편한 게 사랑 아닌가.
사무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의 가슴속에 맺히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무엇으로 맺히는가?
흔적,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맺힘. 바로, 사무침이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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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게, 어디 글만 있겠냐. 사람, 경치, 취미등등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아울러서 표현할 수 있는 건, 문학이 최고다. 그 중 최고의 정수만 뽑아 한상차린 글을 읽고 있는데, 문장마다 매력을 뿜어내고 있으니 어찌 매혹되지 않으랴.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녀노소 모두 인생, 사랑, 죽음에 관하여서는 동일한 거 같다. 깊이와 너비에 있어. 낯간지러운 표현도 그 옛날 아주 옛날 그들도 표현했더라. 

마음을 사로 잡아 흔드는 건 과거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동일하다. 모양과 무늬만 다를 뿐, 본질과 내용에서는 똑같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글을 읽는 일은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오늘을 사로잡은 것들은, 오랫만에 나간 명동거리를 거닐고, 달달한 단팥죽은 발끝까지 발그레하게 퍼져 그리움을 꽃 피웠다. 광화문 테라로사의 커피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보고싶음까지 숨쉬기 힘들게 했다. 느릿느릿하게 들어 오며, 강백수가 부르는 주정가에서 원초적인 본능과 그러면서 금단현상까지 일으킨 사랑을 기억하고 취중고백이 진담일까 농담일까 까지, 만약 농담에 그녀가 오케이 했다면, 이런 낭패까지...   

인공지능과 맞붙은 센돌의 승리에 기뻐하고 -사람과의 대국은 상대의 태도, 호흡, 숨소리, 감정, 파장들을 느끼면서 치루지만 알파고는 그게 아니라 세돌의 태도를 완전 다르게 해야하는데라는 나의 걱정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에서 드뎌- 또 복면가왕 음악대장이 부르는 Don't cry를 듣는 순간 나의 마음을 사로 잡고 마음을 줬던 모든 게 다가왔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 이밤 지나면 안녕 영원히 널 사랑해... 

그러면서 이런 모든 순간들은 몸에 차곡차곡 쌓일거다. 어느 순간 몸이 먼저 알아채고 울수도, 웃을 수도 있을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랫동안 깊이있게 가장 넓게 매혹당할 수 있는 일은 책읽기다. 좋은 글을 만나는 순간은 작가의 전생애가 온전히 전부가 오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과 맞닿은 문장에서는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찾을 수도 있다. 장석주의 말에 동의하며 오늘도 읽는다. "책읽기에의 힘씀은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7쪽) 책읽기는 불필요하게 나이 든 자의 근엄함을 엷게 만들고, 잃어버린 어린애의 천진난만함을 되찾게 한다.(78쪽) 독서 외의 다른 즐거움이 없기 때문일거다.(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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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 장석주의 문장 예찬 : 동서고금 명문장의 치명적 유혹에 빠지다
장석주 지음, 송영방 그림 / 문학의문학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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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훌륭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사실 감정을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15쪽)

몸은 오래된 기억들, 너무 오래되어 잊힌 기억들의 창고다. 그 기억들은 대개는 무의식의 저 깊고 어두운 곳으로 내려간다. 무의식은 깊은 자아다. 그것을 꺼내 써야 한다. 마치 무의식에 빙의된 것 같은 느낌으로 글을 써야 한다. 손끝은 펜촉이다. 그 펜촉을 통해 무의식의 검은 잉크가 흘러나온다. 글은 한없이 흘러나온다. (22쪽)

그는(김현) 시를 읽을 때 시인의 의도를 찾아내기보다 제 욕망의 윤리학을 겹쳐 그 시를 읽어 내곤 했다. 그는 시를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하나의 생물로 품어 안으며 그것과 교접한다. 그 교접의 현실태는 도취와 공감이다. 그는 시 속에서 행복을 꿈구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아무도 그가 했던 만큼의 풍요한 비평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51쪽)

나는 독서를 앎을 추구하고 넓히는 방법으로보다는 인생의 낙으로 즐긴다. 책읽기는 아무리 계속해도 타성의 완고함에 빠지지 않는 일이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내면의 사람이 나날이 새로워진다......
책읽기의 욕망 저 밑바닥엔 세월과 더불어 늙어가는, 점점 짧아지는 생명의 금을 늘려 보려는 불가능한 꿈이 있는 것일까? 책읽기가 생자필멸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나이 든 자의 근엄함을 엷게 만들고, 잃어버린 어린애의 천진난만함을 되찾게 한다.....
내가 오랜 세월을 책읽기로 보내는 것은 독서 외의 다른 큰 즐거움이 없기 때문일 것이며, 책에서 `덕`과 `지`를 구하려는 마음은 그 다음이다. (78-79쪽)

살아남음은 온갖 위험 요소들을 누르고 없앴다는 뜻이다. 위험의 본질은 곧 죽음이다. 내 살아남음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남이 아니라 내가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죽여야 한다! 이것이 삶의 조건이다. 생명의 불가침성 따위는 무시해야 제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계속 살아남으면서 다른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을 수 있는가? 내면에 이런 물음이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짐승들이 사는 곳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온화한 형태로 살아남았다 할지라도 우리가 다른 생명체의 밥이 되지 않고 다른 생명체를 밥으로 취했다는 증거이니, 그것은 짓지 않은 원죄의 징표이고, 부끄러워해야 할 근거이며, 항상 겸허하게 살아야 할 까닭이다. (102쪽)

좋은 건축은 사람의 필요와 욕망에 대한 응답이며, 그것을 넘어서서 미적 이상향을 향한 오랜 꿈의 실현이다. 그때 건축은 취향과 실용적인 기능의 영역이 아니라 숭고의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할 철학적 대상으로 바뀐다. (156쪽)

몰입은 삶의 현재성에 `네`라고 응답하는 것이다. 현재성이 그러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186쪽)

고요한 순간을 주목하라. 하나의 생각이 가고 또 하나의 생각이 아직 다가오기 전의 고요한 순간, 대화 중 생겨나는 짧고 고요한 공백, 피아노나 플루트 연주곡을 들으면서 음과 음 사이에 존재하는 고요한 순간, 그리고 들숨과 날숨 사이에 존재하는 고요한 순간을 주시하라. (188쪽)

아주 긴 시다. 오동나무가 되어 네 무릎 위에서 울리는 금이 되고 싶구나, 했다. 나도 누군가의 무릎 위에서 울리는 거문고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다. 그래서 튕겨져 올리는 음률마다 누군가의 애간장을 끓게 했던가. 마음에 간절한 바는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예나 지금이나 연애에 빠진 사내의 모습이란 게 이렇듯 제 마음의 갈피를 다스리지 못한 채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일삼고 궁상맞구나, 하며 공허하게 웃는다. 나이가 적거나 많거나, 옛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사랑에 빠지면 공연히 근심하고 마음에 괴로움은 가득해지고 행동은 나날이 유치해지는가? 내 마음도 누군가 그리운 이를 품으면 물렁물렁해져 유치해질까? 분명 그럴 것이다. (236-237쪽)

문드러지고 스민 것도 세월이 가면 바래지고 삭혀져 별일 아닌 것이 되고 만다. [무등을 보며]의 사랑은 바로 그런 사랑이다. 떫지도 시지도 않은 사랑, 소태처럼 쓰지도 않고 연시처럼 달지도 않은 사랑이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 저 혼자 처박혀 빛나는 옥돌 같은 사랑이고, 샘물처럼 천천히 차오르는 사랑이다. (296-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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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에서, 어떤 책은 누군가에게는 득이 되고 도움되는 목록과 리스트가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전혀 도움되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다는 출발점에서 시작하기를 바란다는 작가는 "좋은 책이란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책이다.(324쪽)"라고 피력한다.

저자가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마흔 세명의 작가와의 대담을 읽으며, 다른 관점의 문을 밀게 해 주었고, 그들의 작품들을 접하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격조 높고 품위 있는 글이었다. 편견을 없애 주었다.  

"성공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사회 구조보다는 개인의 노력과 열정 부족으로. 정치적이라고 말하는 사진은 권력을 가진 자에게 유리하다. 진실의 경중은 없다. 불확실성에 대한 당연한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려고 하는 부분과 언제 행복한지 모르는 자기 객관화의 부족. 고민에 대한 부분을 인터넷과 외부에서 찾기 보다는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하는 것. 명품이 되려면 자신이 만드는 물건을 효용보다는 가치로 보는 부분이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이익을 함께 나누는 공동운명체로 한국과 일본이 중국과 미국을 대처하게 된다면.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본 오리엔탈리즘의 개념으로 침탈이 가능하다는 것. 역사는 현실을 비추는 아주 흐리고 잔상이 많은 거울이라는 것. 맹자의 성선설은 선한 인간이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선의 싹을 계속 키우는 측은지심과 연관되고 지켜야 할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고 그 근거는 한 줌 마음이라는 것. 훈구와 사림의 대립에 대한 새로운 시각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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