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려 본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결혼, 죽음, 신앙에 비추어 자신의 슬픔에 대하여 통찰한 글이다.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슬픔을 아주 잘게 나누어 헤아려 본, 사랑하는 사람을 실재가 아니라 상상과 이미지로 만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다시 만날 수 없음을 뼈저리게 체감하게 한다. 슬픔은 두려운 감정이고 게으름이고,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고. 사랑하는 이의 부재는 남아있는 자의 많은 것을 가져가 버린다는 것을. 마음으로 그린 이미지에 대한 생각에 머물러 만족할 게 아니라 현실에서 실존하는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거로. 모든 인간 관계는 고통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살아남은 자가 해야 할 일은?

-슬픔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순간 순간 감정 단어를 넣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드러낼 필요가 있다. 건강해진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로 시작되는 영화 '다가오는 것들' 보다. 고양이 판도라가 은유하는, 절대 열어서는 안되는 인생의 뚜껑을 열었다 닫는 순간, 남는 건 희망이다. 그래도 남은 사람은 살아야지, 살아가야지. 이때껏 서로의 습관적인 행동에 매몰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다독여야 한다. 엔딩으로 unchanged melody가 느리게 흐른다. 변하지 않는 건 한때 너를 사랑했다와 너와 사랑한 그때가 행복했다는 점이고. 세월이 지나면 잃어버리거나 잊혀지게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KIAF 2016, 알수 없고 이해 안되는 작품들을 친구와 보다.  

-코엑스에도 테라로사가 있었다. 오랫만에 만난 노처녀 그녀의 사랑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은 빛이 났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설령 헤어진데도, 

-전국에 있는 OO기관을 평가하는 위원으로 이박삼일간 다녀왔다. 정량평가와 정성평가에서 각 부분에서의 타당도의 문제와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으로 평가를 받기 위해 준비한 수고한 손길을 생각하면서 결국에 더 많은 점수?를 받기 위한 자료를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리고 아팠다. 마치고 터벅터벅 오면서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고 생각의 집을 여러채 지었다.   

-가을이라고 셀수없는 관광버스들과 나란히 하여 나들이를 다녀왔다. 조금씩 물들고 있는 나무를 보았고, 밤새 맥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오는 길 간간히 비 내리고, 비발디 사계 겨울 2악장이 새롭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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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 본 슬픔 믿음의 글들 208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별이란 결혼한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단절이 아니요. 정상적인 단계 중 하나(마치 신혼여행이 그 단계 중 하나이듯)이다. 우리는 그 단계까지 결혼생활을 충실하게 잘 살아내었으면 하고 바란다." (13-14쪽)

슬픔이 마치 두려움과도 같은 느낌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무섭지는 않으나, 그 감정은 무서울 때와 흡사하다. 똑같이 속이 울렁거리고 안절부절못하며 입이 벌어진다. 나는 연신 침을 삼킨다. 어떤 때는 은근히 취하거나 뇌진탕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상과 나 사이에는 뭔가 보이지 않는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다른 사람이 뭐라 말하든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게다. 만사가 너무 재미없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이 옆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 집이 텅 빌 때가 무섭다. 사람들이 있어 주되 저희들끼리만 이야기하고 나는 가만 내버려 두면 좋겠다. (19쪽)

또한 슬픔이 게으른 것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다. 일상이 기계적으로 굴러가는 직장에서의 일을 제외하면 나는 최소한의 애쓰는 일도 하기 싫다. 글쓰기는 고사하고 편지 한 장 읽는 것조차 버겁다. 수염 깎는 일조차 하기 싫다. 내 뺨이 텁수룩하건 매끈하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불행한 인간은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릴 일이 있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 자신으로부터 끄집어 낼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신이 피료한 사람이 추운 날 담요 한 장 더 얻자고 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는 일어나 이불을 찾아다니느니 차라리 떨며 누워 있는 쪽을 택할 것이다. 외로운 사람이 지저분한 사람으로, 마침내는 더럽고 역겨운 인간으로 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21-22쪽)

만약 하나님이 사랑의 대용품이었다면 우리는 그분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어버렸어야 옳다. 바라던 것을 가졌는데 뭐하러 대용품 따위에 신경을 쓰겠는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둘 다 서로 상대방 이외에도 다른 무언가를 원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무언가 다른 어떤 것, 다른 종류의 욕구 말이다. 연인이 서로를 소유하게 된다고 해서 책도 읽고 싶지 않고, 먹고 싶지도 않고, 숨쉬고 싶지도 않더란 말이야? (24쪽)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아주 다양하게, 수많은 각도로, 여러 가지 빛 아래에서, 여러 가지 모습(깨는 모습, 잠든 모습, 웃는 모습, 우는 모습, 먹는 모습, 말하는 모습, 생각하는 모습)으로 보아 왔기 때문에, 그 모든 인상들이 우리 기억으로 떼지어 몰려와 결국엔 그저 흐릿함으로 퇴색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생생하다. 그 목소리를 생각하면 나는 또다시 훌쩍이는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다. (33쪽)

결혼이 내게 주었던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이처럼 아주 가깝고 친밀하면서도 언제나 확실하게 `내가 아닌 남`이며 순종적이지 않은, 한마디로 `살아 있는` 어떤 것의 영향력을 계속 느끼게 해 주었다는 점이다. 한데 그 모든 작용이 이제 무위로 돌아가는 것인가? (39쪽)

그리고 슬픔은 여전히 두려움처럼 느껴진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중간한 미결 상태 같기도 하다. 혹은 기다림 같기도 하여 무슨 일인가 일어나기를 막연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슬픔은 삶이 영원히 임시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무언가 시작한다는 것을 가치 없어 보이게 한다. (55쪽)

왜 슬픔이 마치 어중간한 미결 상테처럼 느껴지는지 알 것 같다. 그것은 습관처럼 굳어진 수많은 충동이 좌절되기 때문이다. 나의 수많은 생각과 느낌, 수많은 행동들은 H를 향한 것이었다. 이제 그 목표물이 사라졌다. 나는 습관적으로 활에다 화살을 메기지만, 다음 순간 목표물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활을 내려놓아야 한다. 너무나 많은 길들이 H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어 나는 그 중 하나를 택했다. 그러나 이제는 건널 수 없는 경계 표시판이 길을 가로막고 버티고 있다. 한때는 그렇게 많은 길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만큼 많은 막다른 길로 변해 버렸다. 좋은 아내는 한꺼번에 여러 사람 역할을 한다. (72-73쪽)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연애 다음에 결혼이 오듯이, 결혼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죽음이 온다. 그것은 과저으이 단절이 아니라 그 여러 단계들 중의 하나이다. 춤이 중단된 게 아니라, 그 다음 표현 양식으로 옮겨 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연인 덕분에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난다.` 그 다음에는 춤의 비극적인 양식에 따라 우리는 여전히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비록 그 육신의 존재는 사라지고 없어도 연인 그 자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우리의 과거와 추억, 슬픔 혹은 슬픔으로부터의 위안, 자신의 사랑 따위를 사랑하느나 안주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76쪽)

사랑하는 이여, 당신이 떠나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함께 가져가 버렸는지 알기나 하오? 당신은 내게서 나의 과저조차 앗아가 버렸소. 우리가 함께하지 않았던 과거마저도. 잘려진 부분이 과거와 단절된 고통으로부터 회복되고 있다고 말하다니 틀린 소리였다. 그 고통은 너무나 여러 방면으로 나를 괴롭히면서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드러나는 탓에 내가 속은 것이었다. (89쪽)

하나님에 대한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 자체를, H에 대한 내 생각이 아닌 H 자체를, 그렇다. 우리 이웃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우리 아웃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같은 방에 있는 산 자들을 향해 종종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곤 하지 않는가? 그 사람 자체에게 말 걸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속에 만든 대략의 그림에다 대고 하는 것이 아닌가? (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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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그은 글을 올리자 마자 갑자기 몰려 온 일감들로 이제야 페이퍼쓰기를 한다. '베개를 베다'의 소설은 지금 내가 한 일 처럼,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평소같은 일들이 소소하게 잔잔히 들어 있다. 누구에게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흔하디 흔한 일들이, 잠깐의 한눈이 엇갈린 길을 만난 듯이, 그냥 평소대로 흘러간다. 그 안에서 아픔도, 슬픔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들어있다. 이 자잘한 일상들이 나에게 주어질 때, 할 일을 하면 된다. --할 일이라는 게 없는 사람도 있고, 그게 다른 일 때문에 방해받을 수도 있고, 과거의 후회와 미련이나 미래의 걱정과 불안이 지금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꾸만 뒤돌아보고 미루고 후회하고 걱정하는 일상들은 다시 과거로 묻히고 또 다시 오늘의 삶을 살고 있는. 그러면서, 이때껏 옆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아무리 지나 다녔어도 눈에 띄지 않았는데, 이제사 발견하기도 하고, 매일이 똑같아 보이지만 어느날 조금 다른 시간들로 다시 보이게 되고 느끼게 되고 의미가 된다. 어쩜 이리 우리 삶을 제대로 보여주는지, 쫀쫀하게 재밌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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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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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고,가을이 지나고 또 겨울이 지나고, 그러면서 언니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미움에 대해서. 시멘트가 굳는 걸 상상하면서, 화장실이 만들어지고 부엌이 만들어지는 걸 상상하면서, 언니는 미워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70-71쪽)

이혼을 하고 나자 그는 아내의 많은 것들이 생각났다. 아내는 쫄면을 좋아했고 그는 콩국수를 좋아했다. "쫄면 좋아하는 여자와 콩국수 좋아하는 남자. 무슨 영화 제목 같지?" 아내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는 아내의 중학교 단짝 친구들과 고등학교 단짝 친구들도 알았다. 아내가 중학교 친구들을 만날 때는 늘 수수하게 입고 나간다는 것도. 그중 한 친구와는 스무 살 때 의절했다가 스물여섯 살에 화해했다는 것도. 중학교 때 친구와 가출을 했는데 강릉터미널에서 선생님에게 붙잡혀 돌아왔다는 것도. 아내와 이혼을 하고 난 뒤에야 그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세상에. 자기는 아직 아내에게 행복마트 평상에서 낮잠을 자던 어느 여름방학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그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152쪽)

태어나서 한 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가 와도 타지 않고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좀, 춥고, 싶었다. 울고 싶다. 보고 싶다. 자고 싶다. 가고 싶다. 떠나고 싶다...... 나는 싶다로 끝나는 말들을 떠올려보았다. 에취, 재채기가 났다. 일곱번째로 버스가 왔고 나는 타고 싶다, 타고 싶다,라고 중얼거리며 버스를 탔다. (184-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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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한 순간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한 적이 몇번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더라도, 혼자서 무엇을 할 때에도, 지금 여기의 나에게 집중하기 보다는 마음은 언제나 달아나 다른 일과 사람으로 가득차 있고, 건성으로 대강으로 마주하고 있은 적이 많았다. 요즘 혼자가 할 수 일들이 이름까지 붙여 넘쳐나고 있다. 혼밥, 혼술... 혼자 가는 미술관에서 옛기억을 마주하여 지금을 조망하는 그녀의 글에서는 앞으로 나이 들어가는 우리네 일상들을 대하는 자세로 딱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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