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여행 끝에서 자유를 얻다 - 마음으로 몸을 살린 어느 탐식가의 여정
데이나 메이시 지음, 이유미 옮김 / 북돋움 / 2012년 6월
절판


내가 원하는 건 완벽한 몸매도, 완벽하게 먹는 법도 아니다. 더 나은 건강, 더 큰 마음의 평화, 내 외모 안에서 나를 평온하게 해줄 음식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원하는 것이다. 중년에 이른 지금, 나는 음식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다. 내적인 자유에 굶주려 있다. -17쪽

알고 있다. 슬림짐(짜고 질긴 싸구려 육포-옮긴이)을 한 상자 다 먹어치우고는 있지만, 이 음식이 나에게 이롭지 않다는 사실을. 하지만 소금과 지방과 설탕의 조합은 마치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그 질긴 스틱형 스낵을 씹을 때면 나 자신과 우리 가족에 대해 느끼는 분노와 슬픔, 당혹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곤 한다. -27쪽

"음식이 어디서 오고 어떻게 자라는지를 이해한다면, 건강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텐데 말이에요. 만물은 생태계와 계절과의 연계 속에서 살아가지요. 자신이 먹는 음식의 원천과, 가족의 내력에 더 깊이 연결될수록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에도 더 깊숙이 연결된답니다."-87쪽

신체 밖에서 음식을 낭비하는 건 신체 내에서 음식을 낭비하는 것과 곧바로 연결됩니다. 음식을 소중히 하세요.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요. 음식을 소중히 하는 건 당신 자신, 당신의 생각과 느낌, 그 모든 것을 소중히 하는 것입니다. -107-108쪽

내가 어린 소녀였던 시절에는 냉동식품과 통조림 식품이 표준 규범이었다. 그런 식품의 미덕 중에는 여성을 주방으로부터 해방시켜 바깥일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도 있었다. 분명히 큰 장점이었다. 우리 문화에서는 돈이 곧 권력이니까. 따라서 여성도 자기 돈을 벌 필요가 있으니까. 하지만 포장식품과 패스트푸드가 표준이 되면서 성별을 불문하고 요리하는 법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늘어갔다. 좋은 영양을 공급하는 방식이 사라져감과 동시에 생에 관한 지식들도 유실되어갔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되어야 한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그 과학이란 어떻게 먹을지 알려면 음식을 정량의 영양 요소로 분해해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영양 성분을 하나하나 분리시켜서 알약 형태로 삼키고 나면 음식에 대해서는 잊어버려도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얘기는 믿지 않았다. -118쪽

뒤뜰 가득한 음식들, 그것들은 어째서 식탁에 오르지 않는 것일까? 이윽고 깨닫는다. 정원에 작물들이 넘쳐흐르는데도, 노부인은 자신의 생각에 가장 좋은 음식을 우리에게 대접하고 있는 것이다. 통조림 음식은 그녀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것이다. 그건 슈퍼마켓에서 오는 것이고 따라서 돈이 드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재배할 수 있는 것보다는 구입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더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이 음식은 그녀의 성의다. 나는 그걸 이해한다. -143-144쪽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 것과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마음에서 몸으로 이해를 옮겨가는 방법들 가운데 내가 할 줄 아는 유일한 방법은 주의집중과 연습이다. -275쪽

체중을 줄이는 것도 다르지 않다. 트라플크림 캄보졸라 치즈 30그램이 적은 양일 수도 있다. 하지만 30그램은 30그램이다. 쌀 한 컵은 쌀 한컵이다. 꿈에 나온 가수가 "비결은 '비결이 없다'는 사실이에요."라고 말했을 때 뜻한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1인분은 1인분이다. 그리고 연습은 연습이다. 지름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계량은 그 속성상 모든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다. 계량은 내 갈망이 담길 곳, 내 열망이 가닿을 경계선을 설절해준다. 경계선이 없다면 균형점을 찾지 못할 것이다. 한계가 없다면 자유로워지길 바랄 수도 없을 것이다. -278쪽

세상에 굶주림의 위기가 존재하듯이, 뭔가를 갈망하는 욕망의 위기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 뭔가는 음식, 물건, 관심, 숭배 등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더 원하는 데에는 끝이 없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는다면. 균형을 찾기 위한 나의 탐색은 음식을 넘어 확장되었다. 내가 집착하는 모든 것과 내가 소비하는 모든 것으로까지 뻗어나갔다. 어떤 것들에 대해 나는 "노"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럼으로써만 다른 것들에 대해 "예스"라고 말할 수가 있게 되니까. 소비를 하겠다는 모든 결정은 내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관심을 투입하겠다는 선택이다. 어쩌면 더 많이 갖는 게 아니라 필요한 걸 줄이는 것이야말로 더 행복해지는 비결 중 하나일지도 모르게다. -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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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슬픔의 글이 잔잔한 호수 같다. 정말 위로가 되었다. 누군가의 죽음, 사라짐에 대한 감정은 살아있는 자에게 슬픔으로 되살아 온다. 공간적인 허전함 뿐 아니라 시각, 청각, 후각적인 부분까지 자극을 한다. 슬픔이 올 때는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면 된다. 슬픔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할까... 누군가를 위로한답시고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건 아니였는데.... 누구든 슬픔을 대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슬픔에 휘둘리지 않는.

2. 정초부터 구설수(?)에 휘말려 몇달이 지난 것 같다... 수많은 말, 말, 말이, 분명 따뜻하고 위로의 말이였는데, 돌아온 건 각각의 말들이 합쳐서 커다란 돌덩이로 왔다...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교류를 한다는 것의 경계를 다시 한번 생각했고, 말 또한 조심보다는 나을 게 없다란, 그러면 한 공간에서 일을 하면서 숨소리만 내고 지내야 할까. 참으로 팍팍하다. 아무리 일을 못했을지라도 떠나는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따뜻한 위로가 아니였을까. 그들에겐 가식이었나?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3. 슬픔의 위로, 슬픔과 위로는 반대의 뜻같다. 슬픔을 당한 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위로의 시점도, 위로의 표현도 기준이 없으니, 가장 좋은 건 그때 마음에 떠오르는 말을 하는 거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구설수에 오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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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위안 - 어느 날 찾아온 슬픔을 가만히 응시하게 되기까지
론 마라스코.브라이언 셔프 지음, 김명숙 옮김 / 현암사 / 2012년 3월
구판절판


죽음은 우리에게 다가올 때 남겨질 사람의 삶에서 이런 사소한 많은 것들을 앗아간다. 사소한 것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가장 깊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관련이 있는 사소한 것들을 가장 많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 -35쪽

타인과 감정을 나누는 것을 꺼린다고 해서 정직해질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니 말이다. 정직함이 사적인 감정을 공개적으로 고백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직은 '내 비애의 양파껍질 벗기기'란 이름으로 블로그를 개설하는 것하고는 다르다. 정직은 정직하고자 하는 다짐일 뿐이다. 그 누구보다도 당신 스스로에게 말이다. 타인과 함께 나누고 싶지 않다면 당신 자신에게만이라도 슬픔을 털어놓으라. -89쪽

수치심은 슬픔의 여러 측면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얘기하길 꺼리는 부분이다. 우리는 슬픔과 죽어가는 과정에 결부된 문제를 두고 사람들이 얼마나 강한 수치심을 느끼는지 알고 놀랐다. 죽어가는 이가 어찌해볼 수 없는 문제뿐 아니라 인간이면 자연히 겪는 불가피한 문제에 대해서까지 수치심을 느꼈다. -102쪽

인간이 피 흘리고, 뼈가 부러지고, 눈물 흐리며, 똥을 싸다 소멸하는 육체의 주인임을 용서하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서, 바로 그 사람이 없다고 마음의 갈피를 못 잡는 스스로를 용서하라. -110쪽

슬픔은 신처럼, 때로는 신보다 더 강한 존재로 느껴질 만큼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유머는 슬픔이라는 거인을 말뚝 한두 개로 쪼그라뜨리고, 그 힘을 빼앗고, 파이로 내리쳐서 음울한 위엄을 약화시키는 방법이다. -152쪽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퍼하고 있다면 추태나 부적절한 생각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실제로는 죽음에 대한 분노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91쪽

슬픔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심리적 특전은 슬픔이 애매모호함을 이해하게 해주고, 삶의 진실이 절대 하나가 아니라 적어도 둘, 보통은 그 이상임을 일깨운다는 점이다. 슬픔은 자기 이야기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변화시킨다. -246쪽

슬픔에 빠진 사람들은 잘 살아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마침내 삶에 제대로 적응하면 떠나보낸 사람 없이도 괜찮은 것 때문에 다시 죄책감을 느낀다. -249쪽

슬픔은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자신이 사랑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며, 자신이 사랑한 누군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또 그가 함께한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인동시에 그 없이 살아야 하는 자기 삶에 대한 이야기다. 슬픔은 자기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252쪽

문제는, 슬픔에 빠져 있을 때는 의미가 소망을 정면으로 강타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떠나간 사람이 남긴 의미가 제 역할을 못하면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그 남자를 만나고 싶고 그 여자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이런 갈망 때문에(세상을 떠나서 고귀해진)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옆에 없다는 사실을 억지로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영화 구경을 시켜주고 초밥을 먹으러 나가는 것일 때는 말이다. 철학은 한 깨 식사만 못하고, 환상은 절대 현실과 같을 수 없다.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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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여자를 나눈다면, 난 어디쯤일까. 숫자 1에서 10까지의 범위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척도를 매겨본다면... 여성의 남성적인 아니무스와 남성의 여성적인 아니마의 정도까지 생각한다면... 저자의 말대로 말하기에는 사소하고 소소하지만 그것들이 여자의 일거수 일투족이다. 즉, 하루다. 오늘은 행복했는지? 지금 행복한지?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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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하루에 관한 거의 모든 심리학 - 정신과 의사에게 말하기엔 너무 사소한 일상심리 이야기
선안남 지음 / 웅진윙스 / 2010년 7월
품절


세상의 모든 엄마는 자기 안의 불만족스러운 모습이 자신의 딸에게도 있음을 보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그런 모습 때문에 힘들었던 만큼 안타까워한다. 왜 그것을 물려줄 수밖에 없었던가 자책하게 되고 자책의 정도가 클수록 해결하지 못한 그 감정 때문에 아이를 괴롭히게 된다. 너만은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하는데......-30쪽

혼자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어떤가? 무엇을 섭취한다는 점에서 혼자 밥 먹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가 있다. 밥을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해 혼자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나를 위해 베푸는 자유로운 사치인 셈이다. 혼자 커피를 마시를 여자의 옆얼굴에는 만족감과 독립심이 엿보이고 감정적으로 무언가 채워진다. -63쪽

노력하지 않고 투쟁하지 않아도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누군가 나에게 '좋은 기분'이라는 선물을 준다면, 단지 누군가 나에게 친절하다는 이유만으로 계획에도 없던 물건을 덜컥 사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게 사고 난 후 바로 후회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던 날, 예쁘고 좋은 물건에 실어 기분을 바꿔보려 했던 내 마음은 그렇게 또다시 스스로에게 배반당해 허허롭다. -85쪽

매번 그런 식으로 물건을 사고 매번 그런 식으로 질리면서도 매번 그런 식으로 속게 된다. 아주 일시적으로라도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우리의 마음은 단박에 부풀어오른다. 그렇게 일시적인 팽창감일지라도 내 존재를 들어올려주는 효과가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지갑을 열 용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새것을 찾게 되나 보다. 결국 그것도 금세 낡고 헌 것이 되고 말 텐데......-119-120쪽

눈물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결국은 빠져나갈 통로를 찾는다. 슬픔을 슬픔 그대로 마주하는 것, 그것은 진정으로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내 슬픔을 얹어 울지 말자. 슬플 때면 그냥 나를 위해 우는 시간을 갖자. 되도록 내 울음을 목격해줄 좋은 사람 앞에서 울자. -172쪽

지금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 그가 어떤 질문을 던지기 전에는 그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한 번 더 들어주고 두 번 더 곱씹어주어야 한다. 그는 지금 당신에게 어떤 조언이나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마음속 이야기를 다 나누고 있는 그대로 공감받길 원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기보다는 그가 받고 싶어 하는 것을 주는 게 진짜 도움 아니겠는가.-182쪽

아름다움은 그렇게 점수를 매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사람의 아름다움은 '평가judgement'가 아닌 '존재being'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모든 사람은 그 존재 자체로 예. 쁘. 다.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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