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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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라는 소유의 사회에서 무소유의 주장은 비현실 그 자체이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이 끊임없이 밀려오느 ㄴ정보사회에서 결코 디지컬화할 수 없는 '지혜'라는 이름의 고독한 깨달음이 설 자리는 없다. 무소유든 지혜든 그것의 결정적인 결함은 '상품'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상품이 못 되는 것은 팔리지 않고, 팔리지 않는 물건은 살아남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무소유와 지혜는 팔리지 않으면서도 살아남는다는 사실이다. 팔리지 않는다는 그 역설적 반시장 논리가 상품의 허상을 드러내면서 스스로 그 대척점에 선다. 무소유는 소유의 물질성을 제거하고 지혜는 반대물인 우직함으로 전화한다. 그것이 바로 변방의 지혜일 것이다.-13쪽

소유란 사람과 물건이 맺는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 내는 관계이다. 물건을 다른 사람의 접근으로부터 차단하는 격리와 고립이 소유이다. 더구나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 자체가 외딴 섬이 아니다. -14쪽

변방을 낙후되고 소멸해 가는 주변부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전위로 읽어 냄으로써 변방의 의미를 역전시키는 일이 과제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방보다는 변방성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변방을 공간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부터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간적 의미의 변방이 아니라 담론 지형에서의 변방, 즉 주류 담론이 아닌 비판 담론, 대안 담론의 의미로 재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40쪽

직선과 속도라는 효율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고갯마루의 곡선과 주막 문화의 유장함은 아득한 변방 문화의 전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달라진 것은 더 이상 별리를 아파하지 않는 세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고시와 취업 시험 그리고 대학 입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있고, 그들을 뒷바라지하며 기다려 온 수많은 사람들 또한 그만큼의 좌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부구하고 이제는 더 이상 박달과 금봉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74쪽

[임꺽정]의 탁월함은 그러한 계급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구속하는 일체의 사회적 문맥 자체를 시원하게 뛰어넘는 곳에 있다고 할 것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삶, 그리고 그러한 삶에 담겨 있는 자유의지와 우정이 그것이다. 우정을 음모라고 했던 에피쿠로스의 말이 새삼 와 닿는다. 온몸으로 부딪치는 인간관계와 그런 인간관계가 엮어 내는 삶의 진정성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 [임꺽정]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6-87쪽

불가에서는 애초부터 세계를 분석하지 않는다.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깨달음이 지혜의 본질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정보사회에서는 정보의 양이 지식의 높이가 된다. 많이 쌓을수록 지혜가 커진다. 근대의 시작은 남의 지(知)를 내게 쌓을 수 있다는 신념의 출현과 함께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의 누적이 결국 혼란이 되고 홍수가 된다면, 그것을 지혜의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것이 타자화하고 대상화하고 분석하는 일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럴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쌓고 소유하는 것으로 공부를 끝낸다. 공부란 깨달음이며 자기 변화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102쪽

변방과 중심은 결코 공간적 의미가 아니다. 낡은 것에 대한 냉철한 각성과 그것으로부터의 과감한 결별이 변방성의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한 결정적 전제는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부에 대한 환상과 콤플렉스가 청산되지 않는 한 변방은 결코 새로운 창조 공간이 될 수 없다. 중심부보다 더욱 완고한 아류로 낙후하게 될 뿐이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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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겨울로 들어서길 바랬는지 모른다. 얼마나 빨리 읽고 싶었는지... 수학여행 길에서 실종된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가슴이 먹먹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생때같은 아이들, 부모들, 하루종일 머리가 아팠다... 폴오스터의 '머리는 잊어도 몸은 기억한다.'는 말처럼, 힘든 상황은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각각의 나이에 죽음의 의미는 다를 것이다. 자연스럽게 죽는다는 의미는 무얼까. 죽음이 어찌 자연스러운 걸까. 죽음은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몸은 알고 있다... 이렇게 눈부시고 아름다운 봄이 나에게 몇번 남았을까를 가끔씩 세었는데, 저자는 아침을 세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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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일기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품절


마침내 그가 고개를 들었다가 당신과 눈이 마주치자, 예상치 못했던 진지함과 엄숙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한다. [폴,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쉰일곱 살에 나는 늙었다고 느꼈습니다. 이제 일흔네 살이 되니 그때보다 훨씬 젊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당신은 그의 말에 어리둥절해진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그에게 중요한 문제이며 당신과 뭔가 굉장히 중요한 것을 공유하려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36쪽

도시에서 산다면 대도시, 그것도 제일 큰 도시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당신이 외딴 전원과 광대한 도시의 양극단을 다 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둘 다 당신에게는 무궁무진한 것 같았지만, 소도시와 작은 마을들은 너무 빨리 바닥이 드러나 버리는 것 같고 결국 더 이상 관심을 사로잡지 못했다. -97-98쪽

과거에도 시신을 본 적이 여러 번 있어서 꼼짝도 하지 않는 시신, 더는 살아 있지 않은 몸을 에워싼 비인간적인 정적은 익히 알고 있지만 그 시신들 중 당신 어머니의 것은 없었다. 그중 어느 시신도 당신의 생명이 시작된 몸은 아니었다. 당신은 어머니의 시신을 슬쩍 보고는 곧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다.-131쪽

뭔가 얘기를 하려면 안에서, 당신의 안에서, 축적된 기억과 당신이 몸에 계속 지니고 다니는 인식들로부터 끌어내어야만 한다. -144쪽

새벽 3시에 생각이 과거로 흘러가면 대개는 어두운 쪽이다. 하나의 기억이 다른 모든 것을 제치고 당신을 사로잡는다. 잠들 수 없는 밤이면 그 기억으로 되돌아가 그날의 사건들을 반복하거나 나중에 느꼈던 수치감, 그 후로 계속 느껴 온 그 수치감을 다시 느낀다. -184쪽

기억하기에 휠체어를 탄 학생은 없었지만 몸이 뒤틀리고 꼽추였던 남학생과 한 팔이 없는 여학생(어깨에 손가락이 없는 살덩이가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셔츠 앞섶에 침을 질질 흘리던 남학생, 키가 난쟁이만 한 여학생은 아직도 기억한다. 지금 와서 그때를 되돌아보면 이런 아이들은 당신의 교육에 없어서는 안 될 일부였다. 그들의 존재가 당신의 삶에 없었더라면 인간이 된다는 의미에 대한 당신의 이해는 깊이도 연민도, 고통과 역경의 형이상학에 대한 통찰도 없이 빈곤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은 자기들의 자리를 찾기 위해 다른 누구보다도 열 배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만 했던 영웅적인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207-208쪽

아내와 결혼함으로써 당신을 아내의 가족과도 결혼했다. 당신의 장인 장모는 아내가 자란 집에서 아직도 살고 있기 때문에 당신의 핏속으로 다른 나라가 점차 스며들어 왔다. -218쪽

[누가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죽어야 한다(할 수만 있다면)]. 당신은 이 문장에, 특히 괄호 속의 말에 감동한다. 그 말을 보기 드문 세심한 정신, 사랑스러워진다는 것이 특히 나이든 사람, 노쇠해져서 다른 이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힘겹게 얻은 깨달음을 보여 준다. (할 수밤 있다면.) 어쩌면 그 마지막이 고통스럽건 고통스럽지 않건 마지막에 가서 사랑스러워진다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인간의 성취는 없을지도 모른다. -231-232쪽

글쓰기는 육체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몸의 음악이다. 단어들이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때로는 글쓰기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단어들의 음악은 의미가 시작되는 곳이다. 당신은 단어들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지만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걷고 있다. 언제나 걷고 있다. 당신이 듣고 있는 것은 당신의 심장의 리듬, 심장의 박동이다. -241쪽

침대에서 나와 창가로 걸어가면서 차가운 마룻바닥에 닿는 당신의 맨발. 당신은 예순네 살이다. 바깥은 회색이다 못해 거의 흰색에 가깝고 해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당신은 자문한다. 몇 번의 아침이 남았을까? 문이 닫혔다. 또 다른 문이 열렸다. 당신은 인생의 겨울로 들어섰다. -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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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 끝은 보이질 않고, 길을 잃기도 하며.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가 신기루를 쫓기도 한다.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동안에는 언제 건너편에 다다를지 알 수가 없다. 우리의 인생도 많은 부분이 그 모습과 닮았다.(p164)"

스티브 도냐휴라는 사람은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라는 글에서 사막. 그중에서도 사하라와 인생을 오버랩시켜 설명하고 있다.

 

북아프리카를 글로서 만났다. 알제리. 이집트. 튀니지. 모로코를 마음으로 다녀왔다. 그 곳을 그림, 소설, 영화 속 장면과 같이 잔잔히 들려준 이야기는 소설을 영화를 그림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눈부신 햇살의 이방인 속 장면도,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동굴도, 그녀들의 히잡에서도 찬란히 빛나는 모스크 돔에서도, 사막조차 아름답다... 요란하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으면서, 적절하게 담담하게 조용하게 읽으면 된다. 그러면 어느새 눈부신 태양도 만나게 되고, 깊고 깊은 사막을 건너게 되고, 튀니지언 블루의 바다를 보면서 갓 따온 커피도 맛보게 되고, 마조렐 정원도 걷게 된다. 음, 이맛이야하고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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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기행 5 - 북아프리카 사막 위로 쏟아지는 찬란한 별빛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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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몸을 싣고 나면 내 안에서 발버둥치던 자아가 비행기의 상승과 함께 상승하고, 비상과 함께 비상하는 느낌이 든다. 인류사의 허다한 영적 스승들이 '길과 깨달음'의 연관성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고정된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행로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싶다. 비행기를 타는 일은 우선 그 앉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일이고말고다. 나와 다른 피부색을 하고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머리 모양을 하고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속으로 섞어드는 순간, 나의 자잘한 자의식의 서푼짜리 고뇌의 뿌리를 이루는 무지며 의식의 한계 같은 것이 서서히 보이고 또한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21쪽

그(존 버거)에 의하면 '떠남'은 "예언의 시간"이며 "영원한 새벽"을 맞으러 가는 일이고 "내가 태어난 마을을 들이마시며" "그 강의 굴곡을 어루만지는"일이다. 무엇보다 "아주 오래된 산맥보다도 더 오래된 가슴속의 꽃 한 송이" 피어나게 하는 힘이다. 그리고 그에 의하면 사람들이 고향 혹은 그와 비슷한 시간 속의 옛 장소를 찾아가려 하는 것도 단순히 추억이나 과거를 그리워해서만은 아닌 "사라진 것을 기려 말을 걸게 하기 위함"이고, 그렇게 말을 걸어서 산맥보다 오래된 가슴속의 꽃 한 송이가 계속 피어 있게 하기 위함이다. -63쪽

모든 종류의 옳고 그름은 종교적 분파나 구별보다는 그 조준경이 자연과 우주의 의미에 대한 실마리로서의 옳고 그름에 대한 사색에서부터 출발함이 옳다고 한 것이다. 죄가 나쁜 것은 하나님을 진노케 하기 때문에보다는 이 자연과 우주의 척도로 볼 때 자신에게 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바로 이 관점 때문에 기본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기본, 내가 챙겨야 될 것은 신앙의 노선이나 색깔이 아니라 기본이었던 것이다. 그 영구적인 자연과 우주의 렌즈로 비춰보는 기본 말이다. -102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미술은 아름답다. 모든 덧없음과 허무와 슬픔을 이겨내게 하는 혹은 잊어버리게 하는 아름다움이다. 거대한 아름다움이고 숨이 멎는 아름다움이다. 보라. 신전의 벽화들마다 원근법과 공간감이 얼마나 과감히 무시되고 있는지. 원근이나 공간은 예컨대 시간과 거리에 관한 것이다. 삶과 죽음이 하나의 시공간 속에서 만난다면 그런 시각법은 유치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 면에서 시간을 이겨내고 공간 또한 주물러댄 이집트 미술은 위대하다. -146쪽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대체 무엇이 실존이고 무엇이 허구이며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허상이란 말인가. 수많은 인간들이 일상과 삶의 현장에서 실존이고 실상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순간에 무너질 허상 일 수 있지 않을까. 사하라는 내게 그런 묵시 같은 느낌을 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실존과 허상의 경계 같은 것을 갖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159쪽

내가 좋아하는 정신의학자 어빈 얄롬이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외로움에 대한, 소외와 두려움에 대한 불안이 녹아 없어져버리는 상태라고.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그 불안을 덮는 대신에 자신을 놓아버리거나 잃어버리는 대가 또는 기꺼이 치러야 할 것이라고. 그런 면에서 소외와 죽음. 그리고 외로움과 고독의 어둠과 맞서 싸워가며 불빛을 찾을 만한 의지가 허약할수록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흡수시키면서 쉽게 사랑에 빠져드는 것 같다. 여린 짐승들이 서로의 상처를 혀로 핥아주듯 그렇게 말이다. -250쪽

어느 문화권이든지 제대로 알고 이해하려면 박제된 박물관보다는 재래시장으로 가라고. 그중에 제일은 페스의 이 미로 시장이라고. 물건을 팔기보다 시간을 파는 수크의 모래시계 장터에서 느리게 걸어보라고. 인생의 길을 잃은 사람일수록 그 미로 속에서 다시 길을 찾아 나설 일이라고.-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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