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다시, 깊게 드려다 보게 하는, '진실된 이야기'를 가장 빨리 읽었다. 몇권의 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읽고 있다. 일상은 사라지고 기억은 편파적이고 추억은 너무 희망적이다. 소피칼은 사라지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의 본질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그러한  일상이 진실일까, 거짓일까를 되묻기 전에 벌써 사라지고 잃어버리고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시간도, 사람도, 기억조차도 모두 매몰되고 가장 힘든 건 내가 기억하는데 그 사람에게서 나의 부재를 확인할 때이다. 소피칼은 사소한 일상을 이미지와 언어로 애정을 듬뿍담아 우리에게 내놓고 있다. 나는 그냥치다가 순간 걸음을 멈추고 의미있게 그 순간들을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까지 불러 온다. 순간의 일상을 동일한 무게로 바라보기는 어려울거다. 우린 각자의 일상으로 삶을 살고 있다. 그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선정도를, 적어도 작은 부분일지라도 의미를 두고 바라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작은 시도였다고 본다... 프로필사진을 변경하면서 먹는 것이 중요한 일상임을 깨닫는다. 요즘 치통으로 시달리고 있다. 먹는 부분을 형이하학적?으로 대한 내가 벌받고 있다. 그러고보니 살아가는 데 중요하지 않는게 없다. 소소하고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일상을 만들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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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된 이야기
소피 칼 지음, 심은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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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가 나 대신 결정해주는 것을 늘 좋아한다. B와 함께 게임의 규칙을 정하였다. 짝수 날에는 그가 결정을 하고 홀수 날에는 내가 했다. 그는 미국으로 떠나면서 자신을 대신할 주사위 하나를 내게 선물했다. (59쪽)

그러나 내가 바라보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그였다는 사실을 나중에갸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날이 될지 나는 몰랐다. 그는 나를 떠나버렸다. "한순간은 늘 우리보다 앞서 있어 우리는 절대로 그것을 잡을 수도 없고, 그 순간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도 없다네."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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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된 프로이트를 읽었다. 만화라니, 정신분석학을 만화로, 프로이드 이론을 키워드 중심으로 구성한 내용이다. 역시 문외한은 어려운 말이다. 무의식, 의식, 잠재의식, 원초아, 자아, 초자아, 꿈, 욕망등. 우리의 모든 행동에서 무의식과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심지어 말(言)에서조차. 프로이트를 연구하고 연구한 수많은 심리학자들, 그들이 만들어 낸 수많은 이론들, 반박하고 동의한 내용들, 프로이트 때문에 기쁨 삶을 살고 있다. 처음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생각해내고 만들어 낸다는 거에 대하여 경의를 표할 수 있는 말은 없는 거 같다. 프로이트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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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 위대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삶과 꿈
코린 마이에르 지음, 안 시몽 그림, 권지현 옮김 / 거북이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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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무의식은 교활안 존재지요. 늘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11쪽)

꿈은 무의식으로 가는 지름길이에요. 꿈은 열린 서랍장 같아서 꿈을 꾸는 동안 서랍장을 다 뒤져볼 수 있지요. 꿈은 욕망을 충족시켜 줍니다. 그러가 하면 잠을 지켜주는 간수 역할도 하지요. 꿈은 판단도 하지 않고 계산도 하지 않아요. 다만 모든 걸 변형시키죠. (18쪽)

우리 안에는 우리를 죽음으로 내모는 뭔가가 있습니다. 파괴의 본능.... 죽음의 충동이지요. 고통받고....고통의 원인을 반복하는 겁니다. (39쪽)

욕망은 모든 곳에서 억압되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의 투쟁은 그 욕망을 해방시키는 것이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고요. 물론 모든 것이 즐거워야 합니다. 내이름 `프로이트`가 `기쁨`을 뜻하는 말이란 걸 잊지 마세요.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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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행복한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계속 되돌아 본다. 통화, 문자, 카톡, 카스, 메일, 만남까지 소통이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을 공유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나에게 이런 모습까지 있다니 스스로 놀라고 있다. 순전히 나는 잘살고 있고 행복하다를 포장하여 보여주기 위한 부분이다. 정말 그럴까. 이 부분이 지나치다 못해 상대방을 조정?하려 하고 나에게 집중시키려 애쓰고 있다. 도무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무슨 생각으로, 생각이 있긴 한거야를 되풀이 하면서 읽은 책이 '시옷의 세계'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세계에서 오롯이 '한 번에 한 사람이 된다는 건 충분히 좋은 일(223쪽)'에 눈이 번쩍 뜨였다. 겹겹이 싸고 있는 내모습, 한가지 모습으로 거짓말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이 일치되는, 치열함을 보여주고 싶다. 소통을 하는 가운데에 길게, 넓게 나 있는 서로의 넘어갈 수 없는 부분까지 교감하고 싶다. 적어도 서로가 원하는 반응이 어느정도는 일치해야 하지 않을까. 서로 각각의 반응을 하고 우문우답씩의 리플과 답장과 반응을 하고 있다. 그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그렇다면,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아하는 그 부분까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의 불편함까지 서로 보여주고 알아야 하는 이유는 있을까가 문득 떠오른다. 살짝 보여주고 깊이 알아 맞춰주기를 원하는 걸까. 차마 내입으로 나의 불편감을 드러내 말할 수는 없지만 그저 그정도는 나를 안다면 알아줘야 한다는 의미일까. 여기에서 적어도 나는 타인보다 조금 더 잘하고 있다는 오만함이 깔려있다. 모른척 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그럼 어디까지 소통이 나아가야 할까. 시옷의 세계에서 소통, 사귐, 삶, 시야, 서투름등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들이 나를 제대로 알아주고 반응해주길 바라는 맘이 더 큰 거같다. 이기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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