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행복한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계속 되돌아 본다. 통화, 문자, 카톡, 카스, 메일, 만남까지 소통이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을 공유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나에게 이런 모습까지 있다니 스스로 놀라고 있다. 순전히 나는 잘살고 있고 행복하다를 포장하여 보여주기 위한 부분이다. 정말 그럴까. 이 부분이 지나치다 못해 상대방을 조정?하려 하고 나에게 집중시키려 애쓰고 있다. 도무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무슨 생각으로, 생각이 있긴 한거야를 되풀이 하면서 읽은 책이 '시옷의 세계'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세계에서 오롯이 '한 번에 한 사람이 된다는 건 충분히 좋은 일(223쪽)'에 눈이 번쩍 뜨였다. 겹겹이 싸고 있는 내모습, 한가지 모습으로 거짓말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이 일치되는, 치열함을 보여주고 싶다. 소통을 하는 가운데에 길게, 넓게 나 있는 서로의 넘어갈 수 없는 부분까지 교감하고 싶다. 적어도 서로가 원하는 반응이 어느정도는 일치해야 하지 않을까. 서로 각각의 반응을 하고 우문우답씩의 리플과 답장과 반응을 하고 있다. 그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그렇다면,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아하는 그 부분까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의 불편함까지 서로 보여주고 알아야 하는 이유는 있을까가 문득 떠오른다. 살짝 보여주고 깊이 알아 맞춰주기를 원하는 걸까. 차마 내입으로 나의 불편감을 드러내 말할 수는 없지만 그저 그정도는 나를 안다면 알아줘야 한다는 의미일까. 여기에서 적어도 나는 타인보다 조금 더 잘하고 있다는 오만함이 깔려있다. 모른척 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그럼 어디까지 소통이 나아가야 할까. 시옷의 세계에서 소통, 사귐, 삶, 시야, 서투름등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들이 나를 제대로 알아주고 반응해주길 바라는 맘이 더 큰 거같다. 이기적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