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 좋은 방
용윤선 지음 / 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그러나 시인은 시인 자신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오지 않은 세상을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 사람이라는 것을 먼 훗날 알게 되었다. (37쪽)

정말 사소하고 느리게 그리고 어눌하게 살고 싶어요. (52쪽)

아이들을 생각할 때가 삶에서는 가장 막막한 순간이다. (55쪽)

우리가 함께 사는 이유는 사랑하고 있었을 그 찰나가 바보처럼 순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상 외에 보이는 것이 없는,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런 적이 있었다. 찰나였지만 그 찰나가 존재했었다는 기억으로 어떤 사람들의 관계는 지탱될 때가 있다. (86쪽)

고백이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으로 하는 것이다. (155쪽)

알지 못하는 형편이라는 것이 사람에게는 있다. 그러나 다 아는 것처럼 남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164쪽)

함께 사는 일은 울음이 뒤통수로부터 뻐근하게 밀려오는 일이며 사람이 살면서 자존심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아가는, 끝이 없는 길이다. (181쪽)

커피는 뜨거운 물과 만나는 순간 욕심과 욕망을 털어내고 유약한 마음만 전해준다는 것을 알았다. (222쪽)

사람은 혼자 일어서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한곳에서 기적처엄 만나서 그 순간의 힘으로 일어선다. 그때가 언제인지 아무고 모르고 누구의 힘이 얼마나 모였는지도 모른다. 이제 조금 알아간다. 나는 혼자 살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일어서는 중이라는 것을. (269쪽)

혼자 커피를 만드는 시간, 혼자 책을 읽는 시간,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없으면 나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 시간에서 만들어지는 힘으로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곧 다시 돌아와 혼자 있어야 한다. (297쪽)

추출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았다면 후회가 좀 덜했을까. (362쪽)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은 아슬아슬했다. 떠나는 일이 아슬아슬했지만 사실은 돌아가는 일이 더 아슬아슬했다. 돌아가는 일이 가장 어렵고 떠나는 일이 가장 쉬운 것. (3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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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어제의 일을 온몸으로 기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나마 책읽기 뿐이다. 혼자서 울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아 '울기 좋은 방'으로 스며들었다. 수십가지의 커피가 저자의 삶과 같이 있다. 부모님같은 커피, 그녀, 그이같은 커피, 힘들때 마시는 커피, 누군가 미울 때 마시는, 답답하고 죽고 싶을 때, 앞이 안보여 캄캄할 때, 마음을 다지려고, 쓸쓸하고 외로울 때, 실패하고 싶지 않을 때, 혼자 설 수 있을 때, 그리운 사람과, 늘 그리울 때, 새벽에 책읽으면서, 헤어지는 게 힘든 사람과, 진짜 괜찮은 사람과 같이, 아픈 사람을 위로할 때, 여행을 가서, 상처를 입고서, 그럴수는 없지할 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될 때, 사는데 알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아는 일도, 알 수 있는 일도 그저 당하기만 하는데, 그때마다 그녀곁에는 커피가 있고, 커피로 달래고 힘을 얻고 위로받는다. 그러나 그녀의 방과 나의 방은 다르다. 그녀만의 커피이야기가 들어있다. 조금 답답했다. 울고 싶지 않았다. 울음이 안나왔다. 그녀의 이야기가 너무 컸다. 그녀의 방이니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랬나보다. 간간히 자기만 바라보고 자기에게만 집중하고, 자기생각만 지나치다는 저자의 고백을 읽다 보면, 어른이라도 너나할 거없이 똑같은 거 같다... 나의 스토리를 들여다 봐야 한다. 말라위AAA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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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만나러 오가는 길에 읽을 시집으로 쟈크 프레베르의 '꽃집에서'를 챙겼다. 삼십대쯤 읽었던 기억이 난다. 노트에 '이 사랑'을 옮겨 적어, 가만 읽었던 기억이 가물댄다. 그때는 사랑이 눈에 보였는데 지금은 달랐다.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우리들이 하는 일을 비꼬기라도 한듯, '바른 길'이 좋았고 몇번을 읽었다. 또 나이들어가지만, 더 나이드신 분들의 도움의 손길에 무관심하고 모른척해야 일신이 편하다는 느낌의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가 가장 마음에 꽂혔다. 벤치를 빙 둘러서 지나가야 한다구... 언젠가 그 벤치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오는 길에 지하도에서 할머니가 다듬어 놓은 나물들을 몇봉지 샀다...  

꽃비가 내리는 서촌을 마음의 안팎이 같은 친구와 걸었다. 메카트니 사진전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다음 기회로 미루고, 보안여관옆의 디미에서 스파게티를 먹고, 오쁘띠베르가서 타르트와 벨기에 맥주를 마셨다. 가장 맛있는 맥주가 벨기에산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분위기와 더불어 조금 들뜬 기분으로 건너편의 이상의 기와 집을 바라봤다. 이상하다. 이상하고 다르게 이상했다. 그리고 골목을 따라 배화여고 뒷산, 필운대까지 올랐다가, 은봉이네 점방에 걸렸는 가죽가방을 만지작거렸고, 효자베이커리서 줄서서 빵도 샀고, 통인시장은 깊은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밥플러스에서 맥주와 곤드레밥을 먹었고, 대오서점의 풍금을 지나, 킴스 부티크에서 원피스를 골랐고, 아픈 발로 머물러 입새에 있는 자연의 길에서 커피까지... 그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지만 낮이 길었다. 골목에서 맘놓고 놀았던 기억때문에 골목의 점방들은 반갑고 정겹다.. 우리는 곽재구와 기형도의 시, 이성복의 수필, 성석제의 소설, 황금시대, 리바이어던, 엘리제궁의 요리사등의 영화와 박노해와 메카트니의 사진과 프랑스와 스페인, 인도, 캄보디아까지 여행갔던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놨다. 인문학습원, 프레시안, 녹색평론까지 오갔다...즐겁고 행복했다..

꽃비는 동일하게 내렸다. 나이들어도 청춘이다. 그러나 보여지는 건 그게 아니다. 절망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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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에서 민음사 세계시인선 17
프레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75년 4월
평점 :
품절


나는 새 시장에 가보았지
그래 나는 새를 샀지
너를 위해
내 사랑아
나는 꽃 시장에 가보았지
그래 나는 꽃을 샀지
너를 위해
내 사랑아
나는 고철 시장에 가보았지
그래 나는 쇠사슬을 샀지
무거운 쇠사슬을
너를 위해
내 사랑아
그리고 나는 노예 시장에 가보았지
그래 나는 너를 찾아 헤맸지만
너를 찾지 못했지
내 사랑아 (너를 위해 내 사랑아, 16쪽)

그는 머리로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슴으로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그가 사랑하는 것에게는 그렇다고 하고
그는 선생에게는 아니라고 한다 (열등생 일부, 32쪽)

이 사랑은
이토록 사납고
이토록 연약하고
이토록 부드럽고
이토록 절망한
이 사랑은
대낮같이 아름답고
날씨처럼 나쁜 사랑은,
날씨가 나쁠 때
이토록 진실한 이 사랑은
이토록 아름다운 이 사랑은
이토록 행복하고
이토록 즐겁고
또 이토록 덧없어

------

우리들의 사랑은 여기 고스란히
멍텅구리처럼 고집 세고
욕망처럼 피 끓고
기억처럼 잔인하고
회한처럼 어리석고
회상처럼 부드럽고
대리석처럼 차디차고
내낮처럼 아름답고
어린애처럼 연약하여
웃음 지으며 우리를 바라본다
아무 말 없이도 우리에게 말한다
나는 몸을 떨며 귀를 기울인다
그래 나는 외친다
너를 위해 외친다
나를 위해 외친다
네게 애원한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서로 사랑하는 모두를 위해
서로 사랑하였던 모두를 위해
그래 나는 외친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내가 모르는 다른 모두를 위해
거기 있거라
지금 있는 거기 있거라
옛날에 있던 그 자리에
거기 있거라
움직이지 마라
떠나버리지 마라 (이 사랑 일부, 60쪽, 64쪽, 66쪽)

광장의 벤치 위에
어떤 사람이 앉아
사람이 지나가면 부른다
그는 외알안경에 낡은 회색옷
엽궐련을 피우며 앉아 있다
그를 보면 안 된다
그의 말을 들어서도 안 된다
그가 보이지도 않는 양
그냥 지나쳐야 한다
그가 보이거든
그의 말이 들리거든
걸음을 재촉하여 지나쳐야 한다

------

이제 다시는 이 아이들처럼
놀 수 없음을
이제 다시는 조용히
이 행인들처럼 지나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이 새들처럼
이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날아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일부, 80쪽, 84쪽)

아주 젊을 때 나폴레옹은 말라깽이
포병 장교였네
나중에 그는 황제가 되었네
그러자 그는 배가 나오고
많은 남의 나라를 삼켰네
그가 죽던 날 그는 아직
배가 나왔지만
그는 더 작아졌다네 (불어 작문, 104쪽)

남자는 죽어가지
꽃은 부서지지
그리고 돈은
돈은 굴러가지
끊임없이 굴러가지
해야 할 일이란 그토록 많아. (꽃집에서 일부, 118쪽)

내가 너에게 반말을 한다고
서운해 말아라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너라고 부른다
내가 그들을 오직 한 번 보았다 해도
나는 서로 사랑하는 모든 애인들을
너라고 부른다 (바르바라 일부, 128쪽)

발을 옮겨놓는 곳마다
해마다
이마가 좁은 늙은이들이
콘크리트의 몸짓으로
어린애들에게 길을 가리키고 있다 (바른 길, 134쪽)

난 본래 이런걸 뭐
난 본래 이렇게 생긴걸 뭐
그 이상 어떻게 해
날보고 어쩌라고 (난 본래 이런걸 뭘 일부, 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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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萬壽), 백의 백배인 만을 써서 만수라고 했다. 그게 '복이 많다'는 뜻도 된다... 만수씨는 우리사회의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만수씨의 복은 죽어라, 죽을 정도로 일하는 복이다. 아무리 일을 많이해도 메워지지 않는 구덩이같은 삶, 언저리와 경계를 넘어서 있는 수많은 만수씨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으로 살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알 수 없다. 도대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소외되고 배척되고 밀려가, 끝까지 밀어내어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아무도 찾지 않고 그들이 있을 자리도 치워버리고, 아파하지도 않고 아무렇지 않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없다... 보. 인. 다... 다만 돌아보지 않고, 보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사람을 어떻게 정당하고, 공정하게 대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고, 투명인간처럼 대하는 염치없는 우리가 되었다. 성석제의 투명인간,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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