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러 오가는 길에 읽을 시집으로 쟈크 프레베르의 '꽃집에서'를 챙겼다. 삼십대쯤 읽었던 기억이 난다. 노트에 '이 사랑'을 옮겨 적어, 가만 읽었던 기억이 가물댄다. 그때는 사랑이 눈에 보였는데 지금은 달랐다.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우리들이 하는 일을 비꼬기라도 한듯, '바른 길'이 좋았고 몇번을 읽었다. 또 나이들어가지만, 더 나이드신 분들의 도움의 손길에 무관심하고 모른척해야 일신이 편하다는 느낌의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가 가장 마음에 꽂혔다. 벤치를 빙 둘러서 지나가야 한다구... 언젠가 그 벤치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오는 길에 지하도에서 할머니가 다듬어 놓은 나물들을 몇봉지 샀다...
꽃비가 내리는 서촌을 마음의 안팎이 같은 친구와 걸었다. 메카트니 사진전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다음 기회로 미루고, 보안여관옆의 디미에서 스파게티를 먹고, 오쁘띠베르가서 타르트와 벨기에 맥주를 마셨다. 가장 맛있는 맥주가 벨기에산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분위기와 더불어 조금 들뜬 기분으로 건너편의 이상의 기와 집을 바라봤다. 이상하다. 이상하고 다르게 이상했다. 그리고 골목을 따라 배화여고 뒷산, 필운대까지 올랐다가, 은봉이네 점방에 걸렸는 가죽가방을 만지작거렸고, 효자베이커리서 줄서서 빵도 샀고, 통인시장은 깊은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밥플러스에서 맥주와 곤드레밥을 먹었고, 대오서점의 풍금을 지나, 킴스 부티크에서 원피스를 골랐고, 아픈 발로 머물러 입새에 있는 자연의 길에서 커피까지... 그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지만 낮이 길었다. 골목에서 맘놓고 놀았던 기억때문에 골목의 점방들은 반갑고 정겹다.. 우리는 곽재구와 기형도의 시, 이성복의 수필, 성석제의 소설, 황금시대, 리바이어던, 엘리제궁의 요리사등의 영화와 박노해와 메카트니의 사진과 프랑스와 스페인, 인도, 캄보디아까지 여행갔던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놨다. 인문학습원, 프레시안, 녹색평론까지 오갔다...즐겁고 행복했다..
꽃비는 동일하게 내렸다. 나이들어도 청춘이다. 그러나 보여지는 건 그게 아니다. 절망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