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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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죽은 사람이다. 나는 알고 싶다. 죽은 뒤에도 미워하고픈 사람이 나타날까.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주긍면 용서하게 될까. 나도 죽으면 모두들 "좋은 사람이었지"라고 추억해줄까. 죽으면 그런지 아닌지도 모를 테니 시시하다. (11쪽)

나뭇잎이나 조그만 꽃을 보고 가슴이 뛰어서, 나이 든다는 건 청아한 일이라고 스스로 감동하곤 했다.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다. 동년배 친구들 중 가슴 두근거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일흔의 두근거림은 왠지 엉큼하다. 진짜 엉큼하다. (29쪽)

얼마전 거울로 얼굴을 보며 "너도 참 이 얼굴로 용케 살아왔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대견하기도 하지"라고 말했더니 스스로가 갸륵해서 눈물이 나왔다. (57쪽)

"가장 중요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정`이었겠지. (63쪽)

나는 저세상을 믿지 않는다. 저세상은 이 세상의 상상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저세상은 이 세상에 있다. (73쪽)

사람은 죽음과의 거리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받으니까요. 어떤 사람이 한 말인데요, 죽음에 대한 감상에도 1인칭,2인칭,3인칭이 있다는군요. `그.그녀(3인칭)의 죽음`은 아, 죽었구나 정도로 별로 슬퍼하지 않아요. 반면 2인칭인 `당신의 죽음(부모,자식,형제등)`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죠. 그래도 그건 자신의 죽음이 아니에요. 1인칭의 죽음, 즉 `나의 죽음`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인 데다 남들한테 물을 수도 없으니 어려운 거죠. 의사에게 환자의 죽음은 어떤가 하면, 그.그녀의 죽음처럼 3인칭은 아닙니다. 환자와의 관계가 있으니 2인칭도 아니고 2.5인칭 정도일까요. (81쪽)

순간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까먹었다. 딱히 근사한 남자 앞이라서 흥분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안심했던 것이다. 벌써 몇 년이나 안심이라는 마음의 상태를 맛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133-134쪽)

아무리 냉정하고 침착한 사람이라도, 생각의 가장 안쪽과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는 본인조차 알 수 없다. 막상 부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150쪽)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의 작은 우주에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 감정은 소중한 물건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아만 한다는 걸 깨닫는 쓸쓸함이었다.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 이제는 결코 투명한 모습으로 고요히 내 앞을 스쳐 갈 일이 없어진 것이다. 단지 나를 스쳤던 사람이 영영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마치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가 사라진 양 돌이킬 수 없는 쓸쓸함을 느낀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152-153쪽)

나는 내일 죽을지 10년 뒤에 죽을지 모른다. 내가 죽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잡초가 자라고 작은 꽃이 피며 비다 오고 태양이 빛날 것이다. 갓난아기가 태너나고 양로원에서 아흔넷의 미라 같은 노인이 죽는 매일매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죽고 싶다. 똥에 진흙을 섞은 듯 거무죽죽하고 독충 같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 (157쪽)

묻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무언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듯했다. (174쪽)

"또 놀러 와, 누구 괜찮은 남자 없어? 감상하고 싶어"라고도 했다. "요즘엔 불량 할머니가 되어서 말이야. 남자 밝힘증이 절정이거든. 그래도 잡아먹거나 하진 않아. 그냥 감상이라고, 감상."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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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이 매우 좋아한 무라카미 하루키에 관한 글을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살아가는 방식과 글을 쓰는 태도, 소년같은 삶의 태도, 글쓰는 자세가 솔직담백하고 건전하고 자신 뿐 아니라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쿨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임경선 또한 자신의 방식대로 읽고 쓰고 생활한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아주 아주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관한 이야기를 쓴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 자신에 대하여 더 충실하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그녀가 한 고백에 보탠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너비와 깊이, 그러한 틈과 간격이 좋다. 자신에 대하여 충실하려면 이러한 간격을 존중 받아야 한다.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둘러쌓고 있는 너비와 깊이를 뛰어 넘고 싶지 않다. 메우고 싶지도 않다. 그 정도의 위치에 놓아 두고 싶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 틈이 소통하려고 노력하게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자꾸만 그 틈을 메우려 하고 간격을 뛰어 넘으려 하는 사람도 있다. 소통이라는 건 일방적일 수 없다. 함께 서로의 간격을 메워가는 애씀이나 그냥 둬야하는 고통도 필요하다. 그런데 나의 삶을 대신 살려고 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자꾸만 밀어내고 모른 척도 한다. 그래도 좋아한다면 달라질까. 그건 근본적으로 다른 거라고 생각한다.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서로의 너비와 깊이를 존중해 줘야 한다. 하루키 부부의 '감정의 절대성(233쪽)'에 동감하고 그들의 삶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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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5 0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JUNE 2016-02-15 0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의 글은 잔잔하고 따뜻하고 편안해서 부럽기도 하답니다. 방문 감사드립니다. 해피데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 내 방식대로 읽고 쓰고 생활한다는 것
임경선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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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무라카미 하루키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을 뿐만 아니라 처음에 세운 뜻은 끝까지 밀고 나갔다. 남의 눈치도 보지 않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직접 발굴해내야 직성이 풀렸다. 또 자신이 흥미롭다고 느낀 것은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해도 만사 제쳐놓고 파고들어야만 했다. (33쪽)

그렇다면 재즈란 무엇인가? 나는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방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들의 인생에 어떤 바람이 빛나거나, 어떤 바람이 불타오른다는 느낌을 재즈에 푹 빠져 있을 때 발견해내는 듯합니다. (73쪽)

자기만의 글 스타일을 개발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려면 기존에 정착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94쪽)

지적이면서 고독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희박한, 조금은 이상하고 어두워 보이는 소년 같은 남자,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는 늘 그렇게 엇비슷한 30대의 전문적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 남자는 아무리 힘겨운 일이 닥쳐도 규칙적인 생활을 중요시한다. 가령 운동과 가사, 작은 것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것`들이 실은 세상을 간접적으로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하루키의 스토익한 생활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108쪽)

무라카미 하루키는 레이먼드 카버의 어떤 부분을 높이 평가한 것일까? 그는 레이먼드 카버의 시점이 결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않아서 좋았다고 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위에서 아래로 사물을 내려다보지도 않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지도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에 따르면, 가장 먼저 땅을 자신의 두 발로 확실히 밟아 확인하고 거기서부터 조금씩 시선을 움직여 위를 올려다 본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레이먼드 카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는 척하거나 잘난 척하는 소설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달변을 싫어하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우직함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안심할 수 있었다. (143쪽)

우리는 모두 더없이 소중한 영혼과 그것을 감싸는 깨지기 쉬운 껍질을 가진 알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저마다 높고 단단한 벽과 마주하고 있다. 바로 `시스템`이라는 벽이다. 내가 소설을 쓰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영혼의 존엄을 부각시키고, 거기에 빛을 비추기 위함이다. 우리 영혼이 시스템에 얽매어 멸시당하지 않도록 늘 빛을 비추고 경종을 울리는 것, 그것이 바로 소설가의 책무다. (165쪽)

그러나 저는 읽기 쉬운 문장이야말로 정말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는 단순하고 알기 쉬운 단어를 사용해서 재미있는 글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은 글의 기본이자 `친절한 글쓰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의무는 독자들에게 으스대며 잘난척을 하거나 담당 편집자들을 괴롭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심플하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데 있습니다. (183쪽)

하루키는 말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두 남녀가 결합하는 연애란 꿈 중의 꿈이라고. 그래서 하루키가 소설에서 그리는 연애는 가장 고독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의 자아를 부딪혀가며 극복하는 것보다는 처음 부터 어딘가 `포기한 부분이 있어서` 서로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는 그런 `거리감`이 있는 연애였다. 사랑을 상실해가는 연인의 모습도 많이 그렸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떠나가는 사람을 잡지 않고, 오는 사람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연애라는 것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일까? 지나간 사랑에 대해서도 그는 체념적인 시선을 갖는다. (229쪽)

어떤 문제라도 간단한 해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옳은 답은 내는 것보다 깊은 생각과 고민을 통해 이 세상과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이다. 세상의 복잡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는 시간은 인생에서 필요하다. 혼자 조용히 품어내는 힘이 없으면 `마음의 연륜` 같은 것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다. 그 힘겨움을 혼자 조용히 품다 보면 자연스레 뭔가가 보인다. 고통의 직면은 그러한 방식으로 고요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루어진다. 스스로에게 `힘내라`보다 `일단 살아내자/견뎌내자`고 말한다. 그런 다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해보겠다`며 나다운 방법으로 애쓰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어떤 역경이 와도 `나의 규칙`은 관철시킨다. 즉 사소한 것들을 흩뜨리지 않음으로써 더 큰일을 해날갈 수 있다.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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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건조하리 만큼,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흔히 소설속에 나오는 사랑이야기와는 아주 다른) 사랑도 있다니. 두 사람은 분명 사랑하고 있는데 - 분명 만나서 식사를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 몸과 얼굴, 지금 눈앞서 만나고 있지만 얼굴도 몸도 없었다는 - 그와 그녀와 관련된 공간의 흔적을 관찰하고 서로의 아주 작은 몸짓들 속에서의 기대, 되풀이 되는 오해를 하고 있다. 여덟 번의 저녁식사, 두번의 약속 취소, 그리고 여덟 번째 만남에서의 한번의 섹스.... 아홉번째 만남에서의 그의 행동은 -그녀의 피임기구에 구멍을 낸 다음, 그는 그녀와 동시에 잠들었다- 로 끝난다. 분명 벼락같은 사랑을 하게 될 거다. 사랑한다는 건 각자의 고독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하는 행위같다. 사랑한다면 그와 그녀의 온 생애를 끌어 안을 수 있어야 한다. 아님 그와 그녀와 관련된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까지 불타오르는 마음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말을 하지 않아도, 머릿 속에서는 언제나 그와 그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수만가지 집착과 망설임을 끊고서야 그와 그녀는 만나게 되고 그제서야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고보면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임에 틀림없다. 

어제는 winter solstice 커피, 생각이 가장 깊어지는 겨울 동지맛을 맛보고 캐롤을 보러 갔다.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시간이란 요술주머니 같다.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속에서 서로의 존재가 반짝일 수 있고, 그 찰라를 무심히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에 우연히 만난 그녀들의 잠깐은 서로의 운명이 되고 오직 그 사람만 보게 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라고 몇번이나 말하게 된다. 그 시간 그를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사랑은 순간의 머리가 결정한다. 아주 가까이 있는 마음이 알기 전에 이미... 그와 그녀의 사랑과 그녀들의 사랑은 어떻게 되었을까. 불안과 슬픔을 딛고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열애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건 아닐까?(104쪽)" 전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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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뉴엘 베른하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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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두르지 않고 걸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문을 열어주기 위해 뛰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읽지도 않을 신문을 뒤적거리며 그가 도착하기를 애타게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23쪽)

그가 지금 키스하면 엘렌의 배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가 그의 입속까지 울릴 것이고, 그들의 몸이 함께 진동할 것이다. 그가 다가왔다. (25쪽)

그는 그녀가 엿보고 있고, 그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32쪽)

그는 그녀의 눈빛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거리에서 낯선 여자의 올이 나간 스타킹, 해진 옷단, 치마 밑으로 삐져나온 속치마 레이스까지 보았던 그가,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도 엘렌이 스커트를 입었는지, 바지를 입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목을 드러낸 너무 따뜻한 스웨터만 기억났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35쪽)

그녀는 그가 그녀와 같은 리듬으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숨을 내쉴 때 들이쉬었고, 그녀가 숨을 들이쉴 때 내쉬었다. (44쪽)

오늘 저녁, 엘렌은 얼굴도 몸도 없었다. 머리카락과 립스틱 칠한 입술, 젓가락을 능숙하게 놀리던 손가락들만 있었다. (54쪽)

그는 그녀의 눈을 보지 않았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녀는 아마 다른 남자와 그를 비교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로익의 어깨가 그 남자보다 덜 넓고, 팔이 덜 근육질이고, 등이 더 짧다고 생각할 것이다. (73-74쪽)

로익은 엘렌의 몸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얼굴은 더 기억나지 않앗다.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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