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죽은 사람이다. 나는 알고 싶다. 죽은 뒤에도 미워하고픈 사람이 나타날까.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주긍면 용서하게 될까. 나도 죽으면 모두들 "좋은 사람이었지"라고 추억해줄까. 죽으면 그런지 아닌지도 모를 테니 시시하다. (11쪽)
나뭇잎이나 조그만 꽃을 보고 가슴이 뛰어서, 나이 든다는 건 청아한 일이라고 스스로 감동하곤 했다.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다. 동년배 친구들 중 가슴 두근거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일흔의 두근거림은 왠지 엉큼하다. 진짜 엉큼하다. (29쪽)
얼마전 거울로 얼굴을 보며 "너도 참 이 얼굴로 용케 살아왔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대견하기도 하지"라고 말했더니 스스로가 갸륵해서 눈물이 나왔다. (57쪽)
"가장 중요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정`이었겠지. (63쪽)
나는 저세상을 믿지 않는다. 저세상은 이 세상의 상상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저세상은 이 세상에 있다. (73쪽)
사람은 죽음과의 거리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받으니까요. 어떤 사람이 한 말인데요, 죽음에 대한 감상에도 1인칭,2인칭,3인칭이 있다는군요. `그.그녀(3인칭)의 죽음`은 아, 죽었구나 정도로 별로 슬퍼하지 않아요. 반면 2인칭인 `당신의 죽음(부모,자식,형제등)`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죠. 그래도 그건 자신의 죽음이 아니에요. 1인칭의 죽음, 즉 `나의 죽음`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인 데다 남들한테 물을 수도 없으니 어려운 거죠. 의사에게 환자의 죽음은 어떤가 하면, 그.그녀의 죽음처럼 3인칭은 아닙니다. 환자와의 관계가 있으니 2인칭도 아니고 2.5인칭 정도일까요. (81쪽)
순간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까먹었다. 딱히 근사한 남자 앞이라서 흥분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안심했던 것이다. 벌써 몇 년이나 안심이라는 마음의 상태를 맛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133-134쪽)
아무리 냉정하고 침착한 사람이라도, 생각의 가장 안쪽과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는 본인조차 알 수 없다. 막상 부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150쪽)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의 작은 우주에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 감정은 소중한 물건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아만 한다는 걸 깨닫는 쓸쓸함이었다.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 이제는 결코 투명한 모습으로 고요히 내 앞을 스쳐 갈 일이 없어진 것이다. 단지 나를 스쳤던 사람이 영영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마치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가 사라진 양 돌이킬 수 없는 쓸쓸함을 느낀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152-153쪽)
나는 내일 죽을지 10년 뒤에 죽을지 모른다. 내가 죽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잡초가 자라고 작은 꽃이 피며 비다 오고 태양이 빛날 것이다. 갓난아기가 태너나고 양로원에서 아흔넷의 미라 같은 노인이 죽는 매일매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죽고 싶다. 똥에 진흙을 섞은 듯 거무죽죽하고 독충 같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 (157쪽)
묻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무언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듯했다. (174쪽)
"또 놀러 와, 누구 괜찮은 남자 없어? 감상하고 싶어"라고도 했다. "요즘엔 불량 할머니가 되어서 말이야. 남자 밝힘증이 절정이거든. 그래도 잡아먹거나 하진 않아. 그냥 감상이라고, 감상."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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