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무라카미 하루키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을 뿐만 아니라 처음에 세운 뜻은 끝까지 밀고 나갔다. 남의 눈치도 보지 않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직접 발굴해내야 직성이 풀렸다. 또 자신이 흥미롭다고 느낀 것은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해도 만사 제쳐놓고 파고들어야만 했다. (33쪽)
그렇다면 재즈란 무엇인가? 나는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방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들의 인생에 어떤 바람이 빛나거나, 어떤 바람이 불타오른다는 느낌을 재즈에 푹 빠져 있을 때 발견해내는 듯합니다. (73쪽)
자기만의 글 스타일을 개발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려면 기존에 정착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94쪽)
지적이면서 고독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희박한, 조금은 이상하고 어두워 보이는 소년 같은 남자,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는 늘 그렇게 엇비슷한 30대의 전문적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 남자는 아무리 힘겨운 일이 닥쳐도 규칙적인 생활을 중요시한다. 가령 운동과 가사, 작은 것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것`들이 실은 세상을 간접적으로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하루키의 스토익한 생활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108쪽)
무라카미 하루키는 레이먼드 카버의 어떤 부분을 높이 평가한 것일까? 그는 레이먼드 카버의 시점이 결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않아서 좋았다고 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위에서 아래로 사물을 내려다보지도 않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지도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에 따르면, 가장 먼저 땅을 자신의 두 발로 확실히 밟아 확인하고 거기서부터 조금씩 시선을 움직여 위를 올려다 본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레이먼드 카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는 척하거나 잘난 척하는 소설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달변을 싫어하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우직함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안심할 수 있었다. (143쪽)
우리는 모두 더없이 소중한 영혼과 그것을 감싸는 깨지기 쉬운 껍질을 가진 알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저마다 높고 단단한 벽과 마주하고 있다. 바로 `시스템`이라는 벽이다. 내가 소설을 쓰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영혼의 존엄을 부각시키고, 거기에 빛을 비추기 위함이다. 우리 영혼이 시스템에 얽매어 멸시당하지 않도록 늘 빛을 비추고 경종을 울리는 것, 그것이 바로 소설가의 책무다. (165쪽)
그러나 저는 읽기 쉬운 문장이야말로 정말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는 단순하고 알기 쉬운 단어를 사용해서 재미있는 글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은 글의 기본이자 `친절한 글쓰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의무는 독자들에게 으스대며 잘난척을 하거나 담당 편집자들을 괴롭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심플하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데 있습니다. (183쪽)
하루키는 말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두 남녀가 결합하는 연애란 꿈 중의 꿈이라고. 그래서 하루키가 소설에서 그리는 연애는 가장 고독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의 자아를 부딪혀가며 극복하는 것보다는 처음 부터 어딘가 `포기한 부분이 있어서` 서로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는 그런 `거리감`이 있는 연애였다. 사랑을 상실해가는 연인의 모습도 많이 그렸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떠나가는 사람을 잡지 않고, 오는 사람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연애라는 것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일까? 지나간 사랑에 대해서도 그는 체념적인 시선을 갖는다. (229쪽)
어떤 문제라도 간단한 해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옳은 답은 내는 것보다 깊은 생각과 고민을 통해 이 세상과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이다. 세상의 복잡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는 시간은 인생에서 필요하다. 혼자 조용히 품어내는 힘이 없으면 `마음의 연륜` 같은 것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다. 그 힘겨움을 혼자 조용히 품다 보면 자연스레 뭔가가 보인다. 고통의 직면은 그러한 방식으로 고요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루어진다. 스스로에게 `힘내라`보다 `일단 살아내자/견뎌내자`고 말한다. 그런 다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해보겠다`며 나다운 방법으로 애쓰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어떤 역경이 와도 `나의 규칙`은 관철시킨다. 즉 사소한 것들을 흩뜨리지 않음으로써 더 큰일을 해날갈 수 있다.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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