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아주 촘촘한 채를 가진 그녀의 글은 나의 어릴 때를 떠올리게 했다... 채에 걸린 자잘한 알갱이들은 그녀를 한없이 괴롭혔다. 그녀가 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글에도 나이가 있는 거 같다... 생활의 전체 얼개는 모양을 달리 하지만 반복하여 나타나는 거 같다. 그때 해결하지 못한 일은 여전한 괴로움으로 남아있고, 불쑥하고 올라오는 감정들도 힘에 부친다. 억제하고 아닌척 하는 게,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 형태로 나타나고, 맘과 몸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지금 나에게도 생각없이 '느끼기(97쪽)'와 '반추하지 않기(163쪽)'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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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 - 서른의 한가운데 down to earth
시와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사람이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증거인가.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틀에서 바라보는 것이므로 때로는 오해가 되는 것이니, 어쩌면 이해는 오해의 전부에 지나지 않다는 인식과 더불어, 서로에게 말을 하지 않고도 서로 알아봐주길 기대하는 무모함까지 지금과 다르지 않잖아! 이런, 조금, 절망스럽구나. (76쪽)

선택하지 않은 것보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 나를 더욱 잘 설명해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84쪽)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사람을 바라보는 건 하지 말라 했다. 생각이 끼어들기 쉽단다. 그래서 사물이나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라보기만 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창밖을 보면서 저기 나무가 있네, 구름이 있네, 하지 말고 그냥 그 나무와 구름을 느껴야 했다. 다시 선생님이 가르쳐 준 방법에 따라 사물을 바라볼 때에는 그저 그 사물의 윤곽을 따라 시선을 옮겨 보았다. 생각은 배제하고, 끼어드는 생각은 잘라내고......, 수없이 많은 실패 후에, 마침내 생각 없이 바라보기에 성공했다. 그래서 느꼈던 느낌은 무엇이냐구? 말할 수 없지. 그때의 느낌을 말로 표현할라치면 그게 생각이 되어버리니 말 없이 그저 느낌을 가진 게 다였다. 그때의 느끼기란 `생각 없이 바라보기`이면 충분했던 거였다. (100쪽)

"내 인생에 나타나주어 고마워요."
이보다 더 귀한 말이 있을까. 본디 무척 아껴서 내놓아야 할 말일텐데. 그 말을 내가 듣게 되다니. (104쪽)

어느 저녁에 문득 보았네. 지나간 시간 뒤에 남겨진 발자국들을 선명하게 남아 있었는데 뒤돌아 본 적이, 내려다 본 적이 없었네. (123쪽)

그러나 떠나간 여행지 그곳에서도 역시 `생활`이라는 것이 있었고, 여행을 위해 만나고 함께 지내는 이들 사이에서도 관계의 굴레는 존재했기에 결국 `도망치려 했던 것에서 한 걸음도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134-135쪽)

선택을 위한 기준은 다른 게 아니었다. `무엇이 더 즐거운가.`였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당잡히지 않을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었다. (135쪽)

걷던 길을 되돌려 다른 길로 간다는 것만으로는 삶을 바꿀 수는 없다. 외적인 상황이 삶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달라져야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앞으로 더 만족스럽게 살게 된다면 그건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신뢰하는 방향으로, 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143쪽)

다른 이의 욕구와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의 촉수는 결국 내 욕구, 감정을 억누르게 하니까. 그것은 상대 앞에 선 나를 작고 약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어쩌면 나는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자존심으로 그런 우쭐하는 마음을 키웠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좋은 선택은 아니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196쪽)

널 사랑한다는 게 결국 너를 사랑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거였구나, 라고 깨닫는다. 어떻게? 그 사람의 단점이 자꾸 보이기 시작하니까. 그 사람은 처음 봤을 때부터 그때 그 시간까지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있었을 텐데. (209-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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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가고 싶은 날, 아뿔사 휴관이다. 돌아 돌아 들어와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신경림이 소리내어 읽고 싶은 시를 가만히 조용히 읽었다. 최영미와 김용택 시는 소리 내어 몇번을 읽었다. 이미 지나간 사랑을 생각하는 시였다. 계속 읽어 온 정여울의 글들과 연결되었다.

  

이성복의 시, [편지]에서 가져온 ‘잘 있지 말아요’를 가을방학의 노래와 정여울의 글로 읽었다.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게, 모든 것의 ‘첫’에 해당되는 운명이다. 가끔은 나의 첫에 해당되는 모든 게 잘 있지 말았으면 조금 삐딱하게 있었으면 한다. 이렇게 찬바람 불면 같이 떨었으면 했다. 그러다 그러면 안돼와 그럴 수 없어로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라는 가을방학 노래로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했다.

정여울의 글은 삼백페이지 넘게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있다. 그 작은 글은 우리 가슴 속 알알이 깊이 박혀 있다.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 기억되는 일은 특별났기 때문이리라.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현재에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과거의 사랑이기에. 그렇기 때문에, 그리하였기에, 그는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겠다로 위로받고 삭였다. 그러나 어찌됐든 그 당시에 그와 나에게서 사랑이 최우선이라면 지금과는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서로가 반하는 순간과 사랑의 유통기한도 생각났다.

- 사랑하기에 붙잡을 수 없고, 보낼 수 없기에 차라리 놓아버리는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14쪽) : 그 당시에는 이조차 모르고 놓았다. 지금 돌아보니 이런 마음이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아서 그랬을 거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그래. 그리고 같이 자려고 안달하지 않는 사람이 필요하거든. 그럴 수 있다 해도 말이야.(58쪽) : 살다보니 이런 남자가 있었으면 바란다. 그러나 같이 자려고 안달하지 않는 사람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 줄까. 꼭 남자여야 할까. 사랑 이야기는 성별이 다른 사람이 들어주면 더 위로가 될 듯해서, 그게 이유다.

-나 자신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듯,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내가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욕망의 심연이 있다는 것을.(112쪽) : 사랑한다면 폭풍의 언덕의 히드클리프처럼을 한때 생각했다. 오직 나만 바라봐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부분까지 그가 이해해 주길 바랐던 그 때는 사랑하는 게 서로를 아프게 하는 방법만 찾는 꼴이었다. 어리석었다.

-진실은 분석이 아니라 진심 어린 믿음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사랑은 흠 없는 완벽이 아니라 흠조차 기꺼이 끌어안는 너른 마음으로 완성된다는 것을.(194쪽) :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너른 마음으로 끌어안아 주기만 했어도 되었을 것을. 그냥 믿어 주면 되었을 것을. 어쩌면 나도 너가 사랑의 크기를 묻기보다 따스한 눈빛으로 안아주기를 바랐을 수도.

-배신은 아프다. 실연도 아프다. 증오도 아프다. 하지만 망각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선 끔찍한 고통이다. 우리가 사랑하고 미워하고 웃고 울던 그 모든 기억을 살뜰히 지워버린다는 것. 그것은 단지 사랑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고, ‘우리’라는 관계가 만들어왔던 모든 인연의 네트워크를 삭제하는 천형이다.(259쪽) : 잊으면 안돼. 잊지 않으면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그때의 변명도 어설픔도 아픔도 슬픔도 같이 나눌 수 있으니까. 사랑했다면 잊을 수 없을 거다. 그래서 관계에서 누군가에게 잊혀 진다는 게 가장 끔찍한 일이다. 만약 서로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는데, 누군가 불행한 상태라면 그리고 현재에서 만났다면 어떻게 될까. 아님, 행복한 상태라면 어떨까. 기억의 수준이 달라질까. 모를 일이다. 행복보다는 불행한 상황이 그 기억들을 더 생생히 떠오르게 할 거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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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경림의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
신경림 엮음 / 다산책방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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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는 돈을 벌지도 못하고 쌀을 생산하지도 못하며 자동차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돈을 벌고 쌀을 생산하고 자동차를 만드는 그 주체인 사람을 즐겁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들고 사람답게 살게 만든다. (5쪽)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선운사에서 중. 최영미(17쪽)

문득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성산포 앞바다는 잘 있는지
그때처럼
수평선 위로
당신하고
걷고 싶었어요

-문득. 정호승(33쪽)

동짓달에도 치자꽃이 피는 신방에서 신혼일기를 쓴다. 없는 것이 많아 더욱 따뜻한 아랫목은 평강공주의 꽃밭 색색의 꽃씨를 모으던 흰 봉투 한 무더기 산동네의 맵찬 바람에 떨며 흩날리지만 봉할 수 없는 내용들이 밤이면 비에 젖어 울지만 이제 나는 산동네의 인정에 곱게 물든 한 그루 대추나무 밤마다 서로의 허물을 해진 사랑을 꿰맨다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중. 박라연(35쪽)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눈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있던 집

여자네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그 여자네 집 중. 김용택(43쪽)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 중. 천상병

거기 먼저 와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저 눈 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 온 길들

-길 중. 박영근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가 듣고 싶으면 내려와 계곡이 된다

산은 한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도 되고 명산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산 중. 김광섭(122-123쪽)

허전하단 말도 허공에 주지 않을뿐더러
-그 사람 다시 생각지 않으리
-그 사람 미워 다시 오지 않으리

-밤 미시령 중. 고형렬(136쪽)

저만치 여름숲은 무모한 키로서 반성도 없이 섰다
반성이라고는 없는 녹음뿐이다
저만치 여름숲은 성보다도 높이, 살림보다도 높이 섰다

-여름숲 중. 장석남(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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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한이 정해진 일을 마무리하고, 졸업을 하는 시기와 맞물려 읽은 사노요코의 글이다. 온 몸의 힘이 다 빠져 나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몸은 이미 알아 코밑과 입안이 훨고 -멍한 상태다. 섣달그믐날 같은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반성도 후회도 다짐도 할 수 없는 이때, ''환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죽고 싶어 하던 박력 있는 할머니가 '암'에 대해 적어 내려가다가 문든 '앎'에 이르게 된 사려 깊은 오타 같다.(뒷표지글)" 라는 글은 힘을 내라는 암시같다. 힘을 얻게 되면 하는 일이 시시하게 느껴지고 그 간 했던 일이 미안하고 만나는 사람들도 저만치 밀려나 있고 오로지 나, 나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반성과 후회와 다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면 그 속에 다시 매몰되어 하던 대로 하게 되고 매년 되풀이 되는 거 같다. 할머니처럼 기한이 정해진 삶을 산다면, 어떻게 살게 될까. 그 나이에 삶을 이렇게 맛있게 요리하다니, 멋진 할머니다. if의 삶은 없는데 자꾸 후회 부분이 넘치고 있는지. 앞으로의 가정보다 과거의 가정이 많이 나타나 마음이 슬프고 아프다. 그리고 우습지만 나는 늘 그대로라는 가정이 가장 큰 부분이고 너와 나의 일이 달라지고 사라질 거 같은 부분도 있다. 내가 달라지고 사라질 수 있는 부분도 아주 큰데, 나야 어찌되든, 어떻게 변하든 주변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하는 욕심이다. 그러니까 후회와 반성이 넘치는 거다. 

검사외전.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순응자를 봤다. 영화 속의 사람들이 되어 본다. 그러면서 과거와 맞 닿았다가 또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다. 그러면 조금씩 성장하는 걸까. 후회와 반성이 올라 오면 다음 문장을 기억하리라. 그리고 지금을 살면 된다. 지금이 나의 삶이니까.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는 낡은 차를 떠올리자 가슴이 뜨거워졌다.(41쪽)" "정말로 기운차게 죽고 싶어요.(117쪽)" "그때가 불행의 시대였다고 해도 내가 불행했던 건 아니었다.(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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