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게, 어디 글만 있겠냐. 사람, 경치, 취미등등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아울러서 표현할 수 있는 건, 문학이 최고다. 그 중 최고의 정수만 뽑아 한상차린 글을 읽고 있는데, 문장마다 매력을 뿜어내고 있으니 어찌 매혹되지 않으랴.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녀노소 모두 인생, 사랑, 죽음에 관하여서는 동일한 거 같다. 깊이와 너비에 있어. 낯간지러운 표현도 그 옛날 아주 옛날 그들도 표현했더라. 

마음을 사로 잡아 흔드는 건 과거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동일하다. 모양과 무늬만 다를 뿐, 본질과 내용에서는 똑같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글을 읽는 일은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오늘을 사로잡은 것들은, 오랫만에 나간 명동거리를 거닐고, 달달한 단팥죽은 발끝까지 발그레하게 퍼져 그리움을 꽃 피웠다. 광화문 테라로사의 커피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보고싶음까지 숨쉬기 힘들게 했다. 느릿느릿하게 들어 오며, 강백수가 부르는 주정가에서 원초적인 본능과 그러면서 금단현상까지 일으킨 사랑을 기억하고 취중고백이 진담일까 농담일까 까지, 만약 농담에 그녀가 오케이 했다면, 이런 낭패까지...   

인공지능과 맞붙은 센돌의 승리에 기뻐하고 -사람과의 대국은 상대의 태도, 호흡, 숨소리, 감정, 파장들을 느끼면서 치루지만 알파고는 그게 아니라 세돌의 태도를 완전 다르게 해야하는데라는 나의 걱정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에서 드뎌- 또 복면가왕 음악대장이 부르는 Don't cry를 듣는 순간 나의 마음을 사로 잡고 마음을 줬던 모든 게 다가왔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 이밤 지나면 안녕 영원히 널 사랑해... 

그러면서 이런 모든 순간들은 몸에 차곡차곡 쌓일거다. 어느 순간 몸이 먼저 알아채고 울수도, 웃을 수도 있을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랫동안 깊이있게 가장 넓게 매혹당할 수 있는 일은 책읽기다. 좋은 글을 만나는 순간은 작가의 전생애가 온전히 전부가 오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과 맞닿은 문장에서는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찾을 수도 있다. 장석주의 말에 동의하며 오늘도 읽는다. "책읽기에의 힘씀은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7쪽) 책읽기는 불필요하게 나이 든 자의 근엄함을 엷게 만들고, 잃어버린 어린애의 천진난만함을 되찾게 한다.(78쪽) 독서 외의 다른 즐거움이 없기 때문일거다.(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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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 장석주의 문장 예찬 : 동서고금 명문장의 치명적 유혹에 빠지다
장석주 지음, 송영방 그림 / 문학의문학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훌륭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사실 감정을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15쪽)

몸은 오래된 기억들, 너무 오래되어 잊힌 기억들의 창고다. 그 기억들은 대개는 무의식의 저 깊고 어두운 곳으로 내려간다. 무의식은 깊은 자아다. 그것을 꺼내 써야 한다. 마치 무의식에 빙의된 것 같은 느낌으로 글을 써야 한다. 손끝은 펜촉이다. 그 펜촉을 통해 무의식의 검은 잉크가 흘러나온다. 글은 한없이 흘러나온다. (22쪽)

그는(김현) 시를 읽을 때 시인의 의도를 찾아내기보다 제 욕망의 윤리학을 겹쳐 그 시를 읽어 내곤 했다. 그는 시를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하나의 생물로 품어 안으며 그것과 교접한다. 그 교접의 현실태는 도취와 공감이다. 그는 시 속에서 행복을 꿈구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아무도 그가 했던 만큼의 풍요한 비평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51쪽)

나는 독서를 앎을 추구하고 넓히는 방법으로보다는 인생의 낙으로 즐긴다. 책읽기는 아무리 계속해도 타성의 완고함에 빠지지 않는 일이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내면의 사람이 나날이 새로워진다......
책읽기의 욕망 저 밑바닥엔 세월과 더불어 늙어가는, 점점 짧아지는 생명의 금을 늘려 보려는 불가능한 꿈이 있는 것일까? 책읽기가 생자필멸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나이 든 자의 근엄함을 엷게 만들고, 잃어버린 어린애의 천진난만함을 되찾게 한다.....
내가 오랜 세월을 책읽기로 보내는 것은 독서 외의 다른 큰 즐거움이 없기 때문일 것이며, 책에서 `덕`과 `지`를 구하려는 마음은 그 다음이다. (78-79쪽)

살아남음은 온갖 위험 요소들을 누르고 없앴다는 뜻이다. 위험의 본질은 곧 죽음이다. 내 살아남음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남이 아니라 내가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죽여야 한다! 이것이 삶의 조건이다. 생명의 불가침성 따위는 무시해야 제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계속 살아남으면서 다른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을 수 있는가? 내면에 이런 물음이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짐승들이 사는 곳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온화한 형태로 살아남았다 할지라도 우리가 다른 생명체의 밥이 되지 않고 다른 생명체를 밥으로 취했다는 증거이니, 그것은 짓지 않은 원죄의 징표이고, 부끄러워해야 할 근거이며, 항상 겸허하게 살아야 할 까닭이다. (102쪽)

좋은 건축은 사람의 필요와 욕망에 대한 응답이며, 그것을 넘어서서 미적 이상향을 향한 오랜 꿈의 실현이다. 그때 건축은 취향과 실용적인 기능의 영역이 아니라 숭고의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할 철학적 대상으로 바뀐다. (156쪽)

몰입은 삶의 현재성에 `네`라고 응답하는 것이다. 현재성이 그러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186쪽)

고요한 순간을 주목하라. 하나의 생각이 가고 또 하나의 생각이 아직 다가오기 전의 고요한 순간, 대화 중 생겨나는 짧고 고요한 공백, 피아노나 플루트 연주곡을 들으면서 음과 음 사이에 존재하는 고요한 순간, 그리고 들숨과 날숨 사이에 존재하는 고요한 순간을 주시하라. (188쪽)

아주 긴 시다. 오동나무가 되어 네 무릎 위에서 울리는 금이 되고 싶구나, 했다. 나도 누군가의 무릎 위에서 울리는 거문고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다. 그래서 튕겨져 올리는 음률마다 누군가의 애간장을 끓게 했던가. 마음에 간절한 바는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예나 지금이나 연애에 빠진 사내의 모습이란 게 이렇듯 제 마음의 갈피를 다스리지 못한 채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일삼고 궁상맞구나, 하며 공허하게 웃는다. 나이가 적거나 많거나, 옛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사랑에 빠지면 공연히 근심하고 마음에 괴로움은 가득해지고 행동은 나날이 유치해지는가? 내 마음도 누군가 그리운 이를 품으면 물렁물렁해져 유치해질까? 분명 그럴 것이다. (236-237쪽)

문드러지고 스민 것도 세월이 가면 바래지고 삭혀져 별일 아닌 것이 되고 만다. [무등을 보며]의 사랑은 바로 그런 사랑이다. 떫지도 시지도 않은 사랑, 소태처럼 쓰지도 않고 연시처럼 달지도 않은 사랑이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 저 혼자 처박혀 빛나는 옥돌 같은 사랑이고, 샘물처럼 천천히 차오르는 사랑이다. (296-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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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에서, 어떤 책은 누군가에게는 득이 되고 도움되는 목록과 리스트가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전혀 도움되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다는 출발점에서 시작하기를 바란다는 작가는 "좋은 책이란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책이다.(324쪽)"라고 피력한다.

저자가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마흔 세명의 작가와의 대담을 읽으며, 다른 관점의 문을 밀게 해 주었고, 그들의 작품들을 접하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격조 높고 품위 있는 글이었다. 편견을 없애 주었다.  

"성공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사회 구조보다는 개인의 노력과 열정 부족으로. 정치적이라고 말하는 사진은 권력을 가진 자에게 유리하다. 진실의 경중은 없다. 불확실성에 대한 당연한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려고 하는 부분과 언제 행복한지 모르는 자기 객관화의 부족. 고민에 대한 부분을 인터넷과 외부에서 찾기 보다는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하는 것. 명품이 되려면 자신이 만드는 물건을 효용보다는 가치로 보는 부분이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이익을 함께 나누는 공동운명체로 한국과 일본이 중국과 미국을 대처하게 된다면.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본 오리엔탈리즘의 개념으로 침탈이 가능하다는 것. 역사는 현실을 비추는 아주 흐리고 잔상이 많은 거울이라는 것. 맹자의 성선설은 선한 인간이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선의 싹을 계속 키우는 측은지심과 연관되고 지켜야 할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고 그 근거는 한 줌 마음이라는 것. 훈구와 사림의 대립에 대한 새로운 시각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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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작가 - 43인의 나를 만나다
장정일 지음 / 한빛비즈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자신이 범한 잘못을 `시련`으로 치환한 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이 어린 학생은 능동성으로 무장한 윤리적 자기계발의 화신이자, 자기 속의 부정적 그늘을 완전히 말소한 것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신비적 자기계발을 완수한 구루Guru가 아닌가? (20쪽)

일반적인 저널리즘 사진이 장면의 맥락 이탈을 감행했으면서도 원래의 맥락을 이어 붙여야 한다는 친절하고 강박적인 속성을 버리지 못하는 반면, 저널리즘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는 노순택의 작업은 채집한 장면의 "맥락을 끊기도 하고, 엉뚱한 데 갖다 붙"이기도 한다. 그 겨로가 저널리즘 사진이 정보 제공을 통한 마침표(.)를 제시한다면, 그는 미심쩍음을 통한 물음표(?)를 추구한다. (38쪽)

지금의 정치 위기가 계속되면 중간층의 부동층화되고 이로 인해 정치 위기가 심화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치권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수수방관한다. 왜냐하면 정치권은 자기 지지 기반을 결속시키는 일 못지않게 상대방 지지 기반을 이완시키는 일이ㅔ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그럴 때, 정치적 무관심과 불신, 협오를 확산시키는 것만큼 더 좋은 수단도 없다. 이런 설명을 들으니, 종편이 생기면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정치 토크쇼의 저질 시비와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정치평론가들의 천한 화술과 논리가 절절로 떠올랐다. (48-49쪽)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그것을 감추고 있지만, 인간이 본질적으로 성공하고 잘되는 것은 누군가의 몸에 상처를 내고 그를 딛고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가족 간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71쪽)

절실한 글쓰기란 내가 당면해 있거나 미구에 닥치게 될 문제, 혹은 주위의 누군가가 겪고 있거나 나 또한 피해갈 수 없는 구체적이고 절실한 것에 대해 생각을 가다듬는 일이다. (97쪽)

절실함이 더해지고 희생이 전제되어야 원하는 물건은 내 것이 됩니다. 좋아하는 물건이 있다면 우선 저질러 놓고 나중에 해결 방법을 찾는 게 내 방식입니다. 재미잇는 것은 이런 방식이 욕망과 현실을 외려 중화시켜 놓더라 이겁니다. 저질러 놓은 것을 수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하니, 간절한 욕망부터 해결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욕망 충족법을 지켜 오니 이제 절시랗게 필요하거나 갖고 싶은 물건도 별로 없게 되고 외려 욕망의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하더군요. 뭐든 대체하면 된다는, 대치의 관점에서 사는 인생이 쓸쓸하다는 얘기는 이래서 가능한 거죠. 난 스스로 선택한 고립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혼자 노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명품을 의식한 게 아니라, 좀 더 세밀하게 나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해체하는 놀이 도구가 바로 물건이었던 셈입니다. 기왕이면 좋은 물건을 선택하려는 노력은 정당했고 좋은 물건은 그만큼의 대가를 내게 돌려주었습니다. (107-108쪽)

미술은 일반 상품과 달리 정신적으로 즐길 수 있을때 비로소 상품이 됩니다. 삶에 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본질을 일깨우는 미술을 즐기면 자연스럽게 미술품이 좋은 상품이 된다는 것. 그리고 미술시장이란 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수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되긴 하지만 더욱 많은 사회 구성원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크게 성장할 수 없다는 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128쪽)

희곡의 매력은 두 시간 안에 인생과 세계를 압축해 보여 주는 `압축의 맛`에 있습니다. 관객은 극장에 와 있는 두시간 동안 우리를 둘러싼 삶과 세계는 물론이고 거기서 일어나는 일을 통찰하고, 일상 속에서 깊이 고민하지 못했던 모럴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146-147쪽)

"만일 그대가 사랑을 하면서도 상대방의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그대 자신을 동시에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한 사랑이요 하나의 불행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181쪽)

훈구와 사림은 도덕적 선악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대신(의정부, 육조)과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라는 각 관서의 고유 임무와 관직 체계에서 비롯한 직능상의 대립이라고 보아야 도덕적 이분법으로만 재단되지 않는 조선 정치의 전모가 보입니다. (198쪽)

유학이 권위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약점은 인정합니다. 유학에서 건져야 할 가장 귀중한 거싱 있다면 사람 사이의 공감에 기반한 윤리며, 누구나 끊임없는 자기 경계와 반성을 통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입니다. 유학에서의 `자신`이란 수신에 머무는 것도 가문에 귀속되는 것도 아닌,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퍼져가는 곳까지입니다. 자신의 관심과 염려가 자기가 사는 마을까지 퍼져싿면 그의 자아는 그 마을만큼이고, 이 세상 끝까지 미친다면 그와 세상의 크기가 같습니다. 맹자는 자신의 측은지심을 세상 끝까지 뻗게 한 사람이고, 세상 끝까지 미친 그 마음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정치를 생각했습니다. (220쪽)

오리엔탈리즘이란 서구가 자신의 동양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양을 계몽되어야 할 여성이나 어린이로 보는 시각이다. 인식론적 폭력으로 확대 설명되기도 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문제는, 서구에 먼저 개항한 대가로 다른 동양 국가보다 한 발자국 앞서 서구화된 동양 국가가 자신의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것을 흉내낸다는 점이다. (233쪽)

익히 알다시피 서구 제국주의자의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타자화해서 바라보면서, 서양은 남성에 비유하고 동양은 여성에 비유했다. 이를테면 변덕스럽고 무질서하며 자연 상태의 동양(여성)은 이성적이고 문명화된 서양(남성)의 지배를 받는 게 순리라는 것이다. 그것이 서구 제국주의자의 동양 침탈 논리였다면, 앞선 개항과 근대화를 통해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고스란히 답습한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는 논리 구조도 그것과 동일했다. (290-291쪽)

각자에게 좋은 책은 그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책이죠. 그렇게 되어야 하죠.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나의 욕망이 나의 거싱 아니듯, 나의 절실함도 나의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딱히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의 문제만이 아니라서 제 능력에 부치는 질문입니다. 단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누가 만들어 놓은 `고전 리스트`가 그 누구에게는 좋은 책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기를 바랍니다. (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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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음악을 들으며, 음악을 들으며 여행을 한 그들의 이야기를 간간히 비오는 밤에 읽었다. 송창식의 밤눈을 들으며, 강아솔의 당신이 놓고 왔던 짧은 기억 중 그대에게를 들으며,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들으며 마음으로는 어디를 못가랴. 지금의 기억에서 점점 더 예전으로 올라가 한없이 즐거웠던 시점과도 만나보고, 안타까운 그때까지 다녀왔다. - 친구왈, 난 그때 많이 어정쩡하고 어설픈 모습이었다는 고백에 옛날에도 그런대로 괜찮은 모습이었다고 답했다. 있는 그대로 말해줬다. -기억은 타인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냉정하다. 어떤 날은 시간의 초단위까지 세면서 기억하고 싶은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통째로 삭제하고 싶은 날도 있다. 여행을 하면 기억들과 맞물린 곳을 가기도 하지만, 생판 아닌 곳에 가서 기억들을 정리하거나 삭제하기도 한다. 여행을 가서도 그곳에 온전히 머물기 보다는 과거에 매달려 있는 경우가 왕왕있다. 여행을 마치며, 그곳까지 따라 온 기억들은 새롭게 각색되어 현재와 다시 맞물려 돌아가고 미래로 나아간다. 그래서 현재에서 떠올리는 기억들은 내가 원하는 기억들로 만들어져 있다. 두사람이 만든 기억들이 서로 엇갈리는 부분이 된다. 각자 바라는 대로 기억들은 잘 만들어져 있다. 그래야 더 이상 아쉽지도 아프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서 가끔씩 여행이 필요하다. 안되면 이자리에서 음악이라도 들어야 한다. 내 마음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곡조나 가사나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 어떤 날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송창식이 부르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듣자니, 슬프다. 비를 좋아하는 나는, 비가 오는 전조를 다친 가슴과 다리의 통증으로 이미 아는 너와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모두가 같은 곳에 가더라도 모두가 다른 것을 보고 듣고 오는 것. 그렇게 각자의 눈에 예뻐 보이는 기억의 돌 하나씩을 찾아 돌아오는 것. 아마도 그 맛에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 하고.(125쪽)" 그래도 네가 좋아하면 나도 좋아라고 했던 너의 말만 기억하기로 한다. 여행은 각자의 눈에 알맞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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