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새워 읽은 글이 무겁기만 하다. 편리와 풍요를 쫓으면서 한가지 모양으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은 정상이 아니다. 어떻게 한가지 물음에 똑같은 대답이 나올 수 있는가... 각자의 수많은 대답을 들을 수 있고 서로의 다른 길도 충분히 가능하고, 그 누구에게도, 자연도 우주도 영적으로 몸과 마음까지, 피해를 주지 않고 공생가능한, 몇세대의 영원과 지금 현세의 살아있는 모든 것과 연결되고 하나가 된 토착민들의 삶이 경이롭다... 그러나 우리의 불편을 편함으로 바꾸기 위하여, 우리 눈이 수용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하여, 우리가 적응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하여, 강제와 힘으로 밀어부쳐 파괴하고 없애버린 원주민들의 삶과는 대조적으로, 단일화되고 표피적인 지금 우리의 삶은 '극단적'이다 못해 벼랑끝에 서 있다.  그들의 기반을 허물지 않고 포용했더라면 지금 우리에게 삶의 비전을 제시해 주는 단초가 되고 대안이 될 수 있고 지구를 구해 줄 수도 있는데...

"우수함의 기준이 바뀌어서 참으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번영할 수 있는 능력, 진심으로 대지를 경외하고 감사해하는 마음 자세 같은 것이 최우선으로 꼽는다고 한다면 서구의 패러다임은 낙제점을 받을 것이다. 우리 인간종의 가장 고귀한 열망을 담아내주는 절대적인 명제로 신앙의 힘, 영적인 직관력, 종교적인 갈망의 다양성을 인정하고자 하는 너그러운 마음씨 등을 꼽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독단론은 또다시 그 얕은 바닥을 드러내고 말 것이다.(300-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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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천 개의 얼굴 - 아마존에서 티베트까지, 인류 지혜의 원형을 찾아 떠나는 40년의 여행
웨이드 데이비스 글.사진, 김훈 옮김 / 다빈치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제시하는 핵심적인 이슈는 오늘날 이 세계의 수많은 문화가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준 모든 사상과 신화와 통찰의 총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개념인 인종권ethnosphere의 경이로운 다양성과 특징이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사진들과 이야기들이 그런 이슈를 생생하고도 감동적으로 전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인종권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그것은 우리 꿈의 소산이요, 우리 소망의 구현이요, 우리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의 상징이요, 대단히 탐구적이고 놀라우리만치 적응력이 강한 종인 우리가 창조해낸 모든 것이다. (7쪽)

많은 낱말과 문법으로 이루어진 언어는 인간 정신의 정수요, 각 문화의 혼이 물질세계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필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언어는 살아 있는 생물만큼이나 성스럽고 신비롭기 때문에 언어를 생물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다 할 수 있다. 새로운 생물종들이 적당한 정도로 탄생할 경우 멸종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 된다. 그러나 인류의 활동에 따라서 많은 생물종이 사라지는 현재의 흐름은 일찍이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급격하다. 언어도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항상 진화해왔다. 과거에 라틴어는 실생활의 현장에서 퇴조하기 전에 다양한, 그러나 서로 연관된 20여 개의 언어를 낳았다. 그런 반면, 오늘날에는 한두 세대 안에 많은 언어가 그 후예들을 낳을 겨를도 없이 생물종만큼이나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 (16쪽)

노상 침묵에 휩싸여 지내야 하고, 우리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나 하나밖에 없어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어떤 수단도 없고,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와 노인들의 말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지혜와 지식과 내가 알고 있는 온갖 경이의 세계를 말할 기회조차 없는 것보다 더 고독하고 쓸쓸한 경우가 또 있을까? (17쪽)

우리는 세상에 더 많은 기여를 하는 것들과 덜 기여하는 것들을 어떻게 가를 수 있을까? 가난을 덜어주고 사람들을 외로움으로부터 구해내주는 종족의 결속력이나 유대감은 얼마마한 가치를 지닌 것일까? 우주, 영적인 영역, 신앙의 의미와 실천에 관한 다양한 직관적 통찰들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강과 숲을 보호해주는 결과를 낳는 제례 의식들은 경제적으로 얼마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기는 쉽지 않으며, 양으로 환산해서 계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 결과, 사라지고 있는 것들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24-25쪽)

알렉스가 이야기를 할 때면 듣는 이가 그 이야기의 정수를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는 것 같은 방식으로 했다. 듣는 이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서 자연의 모든 음절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 같은 방식으로, 모든 이야기는 새로운 재현의 순간이요. 우주의 원무 속에 끼어들어가 거듭해서 돌 수 있는 기회였다. (52쪽)

모든 문화는 하나같이 기본적인 도전 과제들을 안고 있다. 남녀가 만나고,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고, 부모는 그 아이들을 양육하고 보호해준다. 노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태연자약한 태도로 죽음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인간이 된려면 밤하늘, 엄청난 폭풍우, 새벽 공기를 찢고 터져 나오는 적들의 섬뜩한 함성 같은 것들이 안겨주는 공포와 장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체험을 갖고 있다. (98쪽)

산이 수호신의 거주처라는 믿음을 갖도록 교육받은 아이는 산이 자기네가 마음먹기만 하면 언제든 광물을 채굴할 수 있는 생명 없는 거대한 바윗덩어리라 여기게끔 교육받은 아이와는 아주 다를 것이다. (100쪽)

데니스는 말했다. "이제 당신한테 물어볼게요. 그 샤먼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런 비밀을 알아냈을까요? 5만 종이 넘는 식물이 우거진 숲 속에서 하나는 덩굴이고 하나는 관목이라 서로 아주 다른 두 식물을 찾아낼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봐요? 그리고 그들을 대번에 별세계로 보내주는 이런 놀라운 즙액을 만들기 위해 제각기 아주 유별나고 독특한 화학적 성질을 지닌 두 식물이 서로를 완벽하게 보완해주게끔 아주 정교하게 결합하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는 확률은 또 얼나마 된다고 보나요? 말해봐요." (136쪽)

식물학자들에게 그 모든 식물은 그저 바니스테리오프시스 카피라고 하는 한 가지 종에 속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인디언들은 한 눈에 척 보고도 그 종들을 쉽게 식별해낼 수 있으며, 각기 다른 종족 출신의 인디언들도 거의 일관되게 그 하나하나의 종을 식별해낼 수 있다. 테렌스는 말했다. "그 식물들이 서로 다른 음조로 당신에게 노래한다는 것을 정말로 믿는다는 것이, 그리고 그 식물들과 나눈 진짜 대화를 근거로 하고 있는, 일관되고 진실한 분류학적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것이 뭘 뜻하는지 한번 생각해봐요." (138쪽)

사실, 보둔은 모든 위대한 영적 전통들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아우르는 자비로운 신앙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것은 참으로 민주적인 종교다. 왜냐하면 그 신자들은 영적인 직접 다가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신들을 제 몸 안에 받아들여 변형되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보둔교는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이승 사람들은 신들을 탄생시킨 조상들을 존경해야 한다. 그리고 이승 사람들이 죽은 이들을 제대로 섬기면 죽은 이들이 산 사람들을 도와준다. 그 신자들은 죽음이 삶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라는 점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든다. 그들은 그저 죽음을 인간의 영적 요소와 육체적 요소가 분리되는, 더없이 중요한 순간이자 취약한 순간으로 여길 뿐이다. (153쪽)

아이티는 문화적 믿음이야말로 내가 태어나고 자란 현실과는 크게 동떨어진 전혀 다른 현실을 낳는다는 확신을 내게 안겨줬다. 뒤이은 여러 해 동안 나는 세계의 다른 지역들, 곧 보르네오의 삼림과 티베트 고원, 동아프리카의 사막, 북극의 빙원을 돌아다녔다. 그동안 아이티에서의 기억은 줄곧 그런 지역들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렌즈 역할을 했다. 그 기억 덕에 나는 각각의 문화는 당연히 해당 지역 사람들의 전통 유산과 소망의 유일무이한 측면을 대변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늘 자각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더 깊이 끌어안으면 안을수록 온 세계를 휩쓰는 현대적인 온갖 것이 곧 닥쳐올 파국을 뜻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더욱더 짙어졌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다양성에서 더욱더 멀어져가고, 언어들은 자꾸 사라져가고,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닌 민족들은 폭력적인 변화의 물결 속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177족)

문화적 생존은 문화적 보존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모든 사회는 끊임없이 진화하므로 변화 그 자체가 문화를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데이비드 메이버리 루이스가 말한 바와 같이, 문화는 그에 속한 이들이 자기네 과거에 충분한 신뢰감을 갖고 있을 때, 그리고 그 문화가 앞으로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온갖 변화 속에서도 그 정신과 진수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을 갖고 있을 때 생존한다. (188쪽)

그들의 언어는 한곳에 정착해서 사는 이들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복잡한 사회 친화적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어준다. 유목민인 프난 사람들은 시간 개념이라는 걸 갖고 있지 않으며, 임금노동이나 가난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놀이로서의 여가와는 상반되는, 힘겨운 부담으로서의 노동 개념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는 그저 매일의 연속을 뜻하는 삶만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학업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배우며, 그것도 흔히 부모 곁에서 배운다. 가족들이나 개인들이 숲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자족하고 자립할 수 있어야 하고,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사회에는 전문가가 따로 없고, 위계도 거의 없다......프난 족이 우리와 가장 크게 대비되는 것은 그들이 공동체에 부여하는 가치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모든 재산을 등에 짊어지고 다니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을 축적해야 할 동기나 필연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 사회에서 부의 측정 기준이 되는 것은 소유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관계의 힘이다. (209-210쪽)

변혁과 지배라는 마오의 계산법 속에는 종교 및 정신과 관련된 모든 개념, 문화와 가족의 시학, 남자와 여자와 자연의 관계에 관한 직관적 통찰, 흙의 향내, 돌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의미 같은 것들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민족성이란 그저 경제적 불평등의 소산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일단 물질적 불평등이 해소되고 나면 민족 간의 구분법은 저절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물론 티베트는 낡은 것의 전형이었다. 중국은 새로운 것의 전형이었고, 따라서 문화대혁명은 티베트 옛 문화의 모든 면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뜻했고, 또 실제로 그런 공격을 하라는 요청이기도 했다. (258쪽)

대지에 있는 모든 지형지물은 원형의 것들에 대한 기억과 융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늘 새로 태어나고 있다. 모든 동물과 사물은 옛 사건들의 맥박과 더불어 울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꿈구는 일을 통해서 새롭게 탄생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 속에 있기는 하지만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그 땅에는 리얼리티의 모든 차원에서 존재해왔던 모든 것,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이 인코딩되어 있다. 그 땅을 걷는다는 것은 끊임없는 확인 행위, 무한한 창조의 춤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에 첫발을 내디딘 유럽인들은 그곳 원주민들의 심오한 지적, 정신적 성취에 대한 이해의 단초가 되어줄 만한 언어도 상상력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유럽인들이 만난 사람들은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의 기술적인 성취는 보잘 것이 없었다. 그들의 얼굴은 괴이해 보였고, 그들의 습관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277-278쪽)

영국인들은 개들을 이용하는 것을 경멸했기에 무거운 짐을 실은 썰매를 자기네가 직접 끌고 육로로 해서 몇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캐나다의 광대한 한대림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교역소까지 가기로 했다. 어느 탐험가가 지적한대로 그들은 그들과 비슷한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려 하지 않고 자기네 환경을 거기가지 짊어지고 간 탓으로 죽었다. (289쪽)

세계 전역의 토착 민족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약속에 홀려서 많은 경우 기꺼이, 그리고 열성적으로 옛 것에 등을 돌려왔다. 그 결과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 자기네 전통과 단절된 사람들의 대다수는 서구 세계의 번영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비참한 덫에 걸린 채 화폐경제의 변방에 거주하는 도시 빈민 군단에 속하는 운명에 처할 것이다. 문화는 사라져도 흔히 옛 자아의 그림자 같은 존재들이 된 개인들은 시간의 덫에 걸긴 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들은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배우려고 열심히 애써온 가치들과 간절히 얻고 싶어 한 부를 지닌 세계에서 자기네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도 닫혀 있다. 모더니티가 자랑으로 여기는 것은 세속적인 물질주의의 승리다. 하지만 이런 삶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297쪽)

그런 삶과 타협하려는 우리의 성향 가운데서 과연 이 행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 뭐가 있을까? 온갖 쓰레기로 공기와 물과 흙을 오염시키고, 많은 식물과 동물을 멸종에 이르게 하고, 강을 댐으로 막아버리고, 해묵은 숲을 벗겨내 버리고, 인간을 보호해주는 하늘의 층들에 구멍을 내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환경의 생화학적 질서를 뒤바꿔놓으려 위협하는 산업화 과정을 저지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문명을 한마디로 표현해주는 말은 바로 `극단적extreme`이라는 말이다.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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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렌즈를 통하여 본 확실하고 분명한 실체, 아주 가까이서 그렇게 보지 않고서야 이 책에서 마주하는 곳곳의 상황에 대하여 내가 생각하는 범위와 깊이를 넘어 설 수 없다. 글을 읽다 보니 이게 아니었네. 그럼 이거? 그것도 아니네. 오해와 편견이 넘쳐난다. -광부들. 무슬림. 난민. 죽음을 앞둔 사람들. 달동네.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시골분교. 철거민. 떠돌이 영화감독. 장애인. 독거노인. 단원고. 야학. 신가족 그룹홈. 연평도민.- 과연 이들을 만났을 때 내 생각의 꼭지들은 어떨까를, 멈출수 밖에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이 무지였다는 거.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게 악이라는 시선으로. 제대로 본다는 거. 보려고 얼굴을 돌리는 거조차 외면했다는 거. 나와 무관한 일로 치부했다는 거. 그러니 제대로 생각이나 했겠냐구. "OO은 ***하다."라는 일반적인 오류로 한꺼번에 정의내린 문장으로 그들을 바라본 거다. all or nothing/ 선악/ 좋다나쁘다/ 옳다그르다/ 높고낮다/ 많다적다/ 나와 너의 양끝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꾸만 고정되고 굳어져 가고 있는 나의 생각과 몸을 잠시 멈추게 한 글이다. 소싯적에 재활원에서의 몇시간 봉사와 맹인선생님과의 대학원공부 등이 기억난다. 그냥 가만히 조심만 했던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조심이 편견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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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편견을 부탁해 - 낯선 생각을 권하는 가장 따뜻한 사진
강윤중 글.사진 / 서해문집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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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지와 그로 인한 숱한 편견을 인정하는 것에서 이 책은 시작된다. 나는 가난하지 않아 가난한 이의 한숨을 모르고,이성애자라 동성애자의 고통을 모르고, 늙지 않아 나이 든 어르신의 외로움을 모른다. 죽음을 부르는 병에 걸린 적이 없어 죽음을 앞둔 이의 두려움을 모르고, 남의 땅에서 일해 보지 못해 이주노동자의 절망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나는 `안다` 또는 `이해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무지와 편견으로 무장한 채 누군가의 삶에 대해 참 쉽게 말하며 살아온 것이다. (4쪽)

난민은 인종, 종교,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다. 고시합격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난민 인정에는 야박하고 인색하다. 2001년 우리나라 첫 난민 인정자가 된 에티오피아 출신 데구는 차별과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떠나갔다고 한다. (68쪽)

재개발 광풍에 서울의 달동네들이 사라진다. 달동네를 밀어낸 자리엔 예외 없이 아파트가 솟는다. 달동네가 자취를 감추면서 그곳에서 몸을 부비고 살던 삶도 함께 흔들리며 쓸려 간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쯤 되는 변두리에서 또다시 밀린 삶은 서울 밖 어느 먼 곳에서 다시 남루한 삶을 이어갈 것이다. 신림동, 봉천동, 옥수동 등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들이 자취를 감추었지만, 배갓마을은 아직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린다. (94쪽)

게이들을 만나면서 "그건 선입견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들어야 했다. 해영 상처가 될까 말을 가려 한다고 했지만 참 어려웠다. 게이들을 만나며 머리에서 또 입 안에서 지우고 삼켜 버린 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성애자들이 말하는 `게이는 OO인 것 같다`는 식의 문장은 웬만하면 편견에 기인한 것들이었다. 이성애자들의 특성을 쉽게 정의하지 않듯이 동성애자도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개성의 소유자인 것이다. 게이를 이성애자와 다른 별난 존재로 치부하는 어떤 정의에도 재빠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126쪽)

`파퀴벌레`는 파키스탄 사람을, `짜장`은 중국동포를, `쓰레기`는 동남아 국적의 외국인 전체를 지칭한다. 이른바 외국인혐오현상인 `제노포비아(Xenophobia)`가 만든 신조어들.
외국인을 혐오하는 이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무장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서민 경제를 파탄시켰다고 믿는다. 정말 그럴까?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소위3D업종에 종사한다. 이들에 대한 혐오는 `근거 있는` 혐오라기보다 경제난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현지인들이 그 원인을 외국인에게 돌리며 분노를 표출하는 이른바 `수평적 폭력`에 가깝다. 경제난의 주범은 외국인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 즉 구조에서 기인할 때가 훨씬 많다. (154쪽)

오랜 세월 쌓여 온 삶의 흔적이 눈앞에서 불과 몇 분 만에 사라졌다. 비닐집이 없어진 곳에는 검붉은 흙바닥이 드러났다. 여성 철거민들은 고통스럽게 철거 과정을 지켜봤다. 지쳐서더 이상 고함도 지르지 못하고 망연히 이를 바라보는 나이 든 철거민들 앞에서 앳된 얼굴의 용역업체 직원들은 서로 잡담하며 낄낄대고 있었다. 철거민과 용역의 상반되 표정이 엇갈리는 이 공간이 비현실적이었다. 마지막까지 버텼던 철거민의 비닐집은 그렇게 확실히 제거되었다. 누구도 거침없이 집행되는 철거를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시종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현장을 사진으로 남겨서 꼭 보도해 달라는 철거민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였다. 사진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철거 집행 관계자에게 다가가 "동절기에는 강제 철거를 금지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항의도 아닌 질문 수준으로 말한 것이 고작이었다. (193쪽)

아파트를 나서면서 윤수 씨가 했던 얘기가 귓전에 맴돌았다.
"억울하지 않으세요? 비장애인의 날은 없잖아요. 비장애인, 장애인 다른 게 있나요? 날을 정한 것 자체가 차별입니다. 모든 게 그때 집중되고,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지요."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그녀를 찾은 나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장애란 것은 `옷`이에요. 병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죠. 난 평생 못 갈아입는 옷을 입은 거구요. 그 곳이란 걸 가지고 날까지 만드는 거, 이상하지 않나요? 그런 장애인의 날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232쪽)

진정한 애도란 `기억`하는 것.정말 애도한다는 것은 이 사태를 불러온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놓지 않는 것이다. (271쪽)

분단국가에 함께 살면서도 북한의 포격을 바라보는 불안과 공포의 크기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연평도 주민과 외지인이 인식하는 포격에 대한 구체성이 같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폐허 앞을 지나는 마을 사람들은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포격 현장에 굳이 시선을 두려하지 않았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내 마을에, 내 집 앞에 떨어진 포탄의 공포는 그렇게 구체적인 것이었다. (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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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다 둔 책을 이어서 읽었다. 시에 관한 이야기다. 추상과 현실사이에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고 싶은 이성복의 진한 고백이다. 평소 시를 즐겨 읽고 인용하기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를 생각했다. 표지의 부제처럼 '사람은 시 없이 살 수 있는가'에서 만약 나에게 시가 없다면 하고 고민했다... 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일까지, 모든 현실을 아주 적은 단어만으로도 단번에 명쾌하게 확실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시인은 단어 하나를 고르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딱 맞아 떨어지는 조사를 구하기까지 수많은 밤을 새웠다고 본다. 명사뿐 아니라 조사에서 동사, 부사, 전치사 하나까지. 마침표와 쉼표. 점점점까지 고르고 골라서 나에게까지 왔으니, 그 안에서 얼마나 울었던지. 내 맘을 틈새하나 없이 꼭 집어 주었다. 시없이 살 수는 없다. "시를 읽는 것은 읽는 사람 자신의 삶을 읽는 것이다.(163쪽)" 현실을 가장 많이 비추고 있고 가장 많이 포함하고 있는 시를 읽는 것은 나의 삶을 읽는 것이기에 나는 시없이 살 수 없다.

최근에 읽은 시는 마종기 바람의 말/ 꽃의 이유, 문정희 키 큰 남자를 보면, 정끝별 장미차를 마시며, 문정희 목숨의 노래, 김선우 화비/ 그날이 오면, 김용택 참 좋은 당신/ 꽃 한송이, 박시교 봄날은 간다, 문태준 봄비 맞는 두릅나무, 김경미 엽서 엽서, 김이듬 겨울휴관, 이성복 편지, 나희덕 거리, 박정만 쓸쓸한 봄날, 임영준 5월의 그대여, 목필균 4월이 떠나고 나면/ 목련에게 미안하다, 이향아 벚꽃잎이, 나해철 봄날과 시, 반칠한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김재진 헤어져 있는 동안/ 사랑이 내게로 왔을 때/ 얼마나 더 가야 그리움이 보일까/ 구두에게 물어보네/ 마음길, 정현종 이 느림은, 김사인 화양연화, 문병란 호수, 도종환 인연, 한용운 사랑....  수없이 많은 단어와 단어들, 그 속에 담겨 있던 내 마음, 그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고 다시 쓸어담았던 기억들... 그 순간 내게 다가와 위로와 쓰담쓰담을 해준 많은 시들이 있었기에 지금껏 살고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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