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 있었던가 싶다. 흔히 봄날이 간다라는 말 속에는 실제적인 봄날보다는 추상적인, 개인의 화창하고 좋았던 시절을 음미하며, 추억하는 의미가 더 들어 있는 거 같다. 언젠가의 봄날 같은 표지가 노랑색인 이 책은 분명 이전부터 있었을 터인데, 이제야 펼친 것 보면 순전히 나에게서 봄날이 언제였더라, 벌써 여름이네, 하는 생각에서 일거다. 김영민의 다른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처음 대하는 단어들이 많다. 이 분의 스타일이라고 본다. 이영애와 유지태가 나오는 영화도 생각나고, 늘 여름날이 되어서야 봄날을 챙겼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그래서 봄날은 과거에 더 가까운 말 같다. 뜬금없이 남의 눈을 많이도 의식하며 살았구나, 그리고 타인에게 말도 많이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날 때마다 관리 아저씨는 심심하지 않냐고, 조금 쉬다가 무슨 일이라도 하라고, 어찌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지. 인사정도 나누는 사이인데...    

장갑 이야기는 세상만사 새옹지마 같다. 명사와 동사의 세상 바깥에서 어긋남을 어긋냄으로 되받아치는 부사적인 움직임과 생활양식, 의욕으로 살아보자. 다정한 사람, 서늘한 학인이 되라 하네. 김수영 시인이 고은 시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부디 공부 좀 해라는 말이 있다.

영화 '퍼스트 리폼드'를 보았다. 지난 날의 잘못을 자폭으로, 자학으로 한번에 없앨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일은 결코 없고,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 아무리 덮고 포장하여도 그 일은 그대로 남아 있다. 결국, 사랑과 연대만이 용서의 바탕이 될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이해를 했다, 어렵다. 5월 18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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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 공제控除의 비망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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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가 지척을 가린다. 도심을 벗어나자 마치 서부 활극이 펼쳐질 듯한 황무지처럼 사위가 노랗다. 모든 운명은 이 같은 착시 속의 한 풍경에 맺힌 긴 상처의 기억과 동반한다. 극이 없다면 운명도 없으미, 시선이 없다면 영웅도 없다. 황사는 봄을 기다려, 언약한 장소를 휩쓸며, 도시의 시선들을 낮게 접는다. 황사는 기별이 없는 전령이다. 봄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지만, 정작 황사는 유일한 봄이다. (77쪽)

할 말을 못 한 채로 눈부신 봄날을 간다. 그래서 나는 할 말을 다 못하면서도 가능한 정치적 행위가 무엇일지, 더러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지 않는 것의 정치‘는, 흥미롭게도 ‘응해서 말하기‘라는 대인대물 관계에 관한 내 오랜 지침을 실천하는 과정으로부터 빚어진 것이다. (162쪽)

행복은 반드시 소박해야 한다는 뜻이다. 행복이 별스럽거나 남다른 성취에 얹혀 있다면, 그것은 행운의 기색을 띠거나 경쟁의 상급처럼 여겨져 그 보편성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행복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것은 아니지만, 멀게든 가깝게든 직입하든 에두르든 어떤 ‘정치적 실천‘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대추열매든 끌밋한 열매든 다들 대추나무에서 갈라져 나온 것처럼, 제아무리 소박한 행복의 실천에서라도 담론과 제도의 질서를 규제하는 체제는 엄연하다. (170-171쪽)

연인과 더불어 산책하기 어려운 것은, 우선 연정은 욕심이지만 산책은 의욕이기 때문이다. 양보, 눈치 보기, 그리고 들뜸은 모두 산책에는 치명적이고, 연정이란 무릇 의도의 웅두리에 얹혀 근근이 성립하는 것이니, 산책이라는 그 허소의 길과 어긋난다. ((182-183쪽)

인식은, 특히 인문에 관한 인식은 그 자체로 초라하지요. 사람을 응접하는 슬금한 지혜를 제대로 부리지 못할 경우, 인식은 그저 젠체하는 허영이거나 맨망스러운 지다위질로 떨어집니다. 인문의 지식은 스스로를 현명하게 배치하는 실천적.화행론적 노릇 속에 근근히 자신의 생계를 이어갈 만큼 철저하게 수행적(performative)이기 때문이지요. (216-217쪽)

제자는 타자성의 소실점을 향해 몸을 끄-을-고 다가서는 검질기고도 슬금한 노력속에서야 가능해지는 ‘알면서 모른 체하기‘의 의욕이자 태도인데,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제자는 촛농의 힘에 의지한 이카로스처럼 어렵고 신자는 파리 떼처럼 번성한다. (중략) 그렇기에 제자는 어리눅은 ‘충실성의 형식‘을 취하고 신자는 반지빠른 ‘변덕의 내용‘에 골독한다. (220-221쪽)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이 나의 호오와 무관/무정하게 굴러다니는 덩어리라는 사실 속에 하루살이처럼 묻히는 것이 아니던가?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보다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밀물처럼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깨닫는 일이 아니던가? (중략) 그래서 세속을 아는 것은, 내 생각의 막에서 벗어나 타자들의 아득함을 체험하는 일이다. 의도가 몸을 비껴가고, 선의가 지옥을 불러오는 체험들 속에 세속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244쪽)

어느 스승의 말처럼, 소중한 것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 한다. 그것은 안팎으로 오해와 질시가 잦은 길이지만, 새로운 글, 말(응대), 생활, 그리고 희망을 얻기 위해선 마치 타성일편의 태도로 생사일대사를 뚫어내는 결기와 근기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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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라 부모님과 동생들이 먼길에서 왔다. 축하는 언제 받아도 감사하다. 41타워에서 먹는 음식도 즐겁다. 웃음이 넘치고 모든 게 넉넉하고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주말이었다.

윤택수 산문은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잘 보여 준다. 설렁설렁, 이것저것, 미사여구, 이도저도 아닌, 팩트를 바탕으로 진솔하게 진중하게 마지막 문장을 마칠 때까지 감동을 준다. 자기 검열, 완벽, 반성, 배려가 지나쳐 일상생활이 힘들지 않았을까, 그래도 자신을 혼내고 반성하는 글에서 기꺼이 동참이 되고, 당연히 그래야지 하면서 받아 들이게 된다. 역시 그럴듯한 게 아니라 사실대로 쓴 글이라서 그럴 거다. 이런 멋진 글을 쓰고 싶다.   

 

"주어와 서술어가 따뜻하게 마주 보고 있는 산문, 비유와 윤색과 전고가 자제되어 있는 산문, 무심한 돌처럼 놓였어도 우둑하고 우묵하여 우르릉 우르릉 울리는 산문, 산문이란 이래야 한다는 모델을, 그 도달점을 윤택수에게 배운다.(292쪽, 김서령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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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친 책 빌린 책 내 책 윤택수 전집 2
윤택수 지음 / 디오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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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하게 쓰는 것과 사실대로 쓰는 것의 문제가 그 속에 들어 있었다는 것을 나는 늦게야 알았다. 나는 첫 글에서부터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거짓말만 쓰다가 죽을 것이었다. (19쪽)

감자의 둥긂, 쟁기의 버팀과 힘, 헛간의 으스름. 나는 그러한 산문을 쓰려고 한다. 감자와 쟁기와 헛간은 두런두런 지껄인다. 욕심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중략) 그래도 나는 내가 쓰는 산문이 실패한 이들에게 용기를 주면 좋겠다고, 혼자 생각으로 몸을 웅크린다. (25쪽)

텔레비전이 없는 대산 어머니들이 옛날 이야기를 해 주는 시절이었다. 그 시절은 가고 없다. 옛날이야기는 이제 [구비문학전집] 속에 엉성하게 모여 있을 뿐이다. 귀신들도 어디론가 황황히 사라져 버렸다. 귀신도 살지 못하는 땅에서 사람이 홀로 잘살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을 넘어서 논리적 파탄이다. 시끄러워. 텔레비전이나 켜 봐. (94쪽)

사물들은 제자리로 놓여 있어야 사물스럽다지만, 제자리에서 쫓겨 난 사물들이 불안하게 진동하면서 냄새를 뿜으면, 하나의 사물은 추억과 회한의 존재가 된다. 사물들은 냄새를 발언한다. (170쪽)

4월 어느 날 다가온 그를 보는 순간 나는 눈이 부셨고 곧 열등감에 휩싸였고 끝내 불쾌한 자의식에 사로잡혔다. 눈부심이 빗선이라면, 열등감은 밑선이고 자의식은 수직선. 그 모든 것을 나는 냄새로써 획득한 것이다. 냄새는 직각삼각형처럼 구체적이고 치명적이다. (173쪽)

콩깍지 속에는 콩알들이 가지런하게 실려 있다. 그놈들은 서로 닮았다. 활자로 비유한다면, 완두콩은 ‘게리몬드체‘처럼 말쑥하고, 제비콩은 ‘샘이깊은물체‘처럼 대범하며, 동부는 ‘명조체‘처럼 무르다. 콩꼬투리를 따고 소쿠리에 까서 밥에 얹어 익혀 먹는 모든 절차에서는 콩의 반투명한 냄새가 난다. (237쪽)

한 권의 책을 읽기 시작하여 마지막 문장의 위태로운 마침표에 이르는 길에는, 유혹도 많고 함정도 많다. 우리는 맹금처럼 외롭게.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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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히 쓱하고 자유로를 달리거나 강화도, 서종까지 가서 커피를 마시고 온다. 맛있는 커피가 그때마다 다르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의 기다림이 참 좋다. 떠나는 데, 무엇을 하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그러다가도 이유를 만들어야 좀 덜 피곤할 거 같기도 하다. 그냥 가고 싶어서, 하고 싶어서는 웬지 부족한 느낌이다. 내가 이유를 제대로 대지 않으니, 그들만의 이유로 함부로 말한다. 꼭 그들에게 내가 이런 말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묻는 그들도 이상하고, 그걸 대답하려는 나도 우습기까지. 조만간 내가 가려는 곳은 없지만 저자의 노정에는 책이 있었구나, 읽은 책으로 그 곳의 분위기나 상황을 느낄 수가 있다. 그래도 직접 가서 보고 있는 것과  머리 속으로 상상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넓기만 하다. 사실을 얼마큼 제대로 전달하느냐, 어쩌면 그곳의 아우라를 없애 줄 수도 있겠구나, 저자의 느낌이 얼마큼 사실적인가도, 뭐가 사실에 가까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의 눈으로 들어와 마음을 통과하여 뱉어지는 말들이 정말로 사실일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오가며 최근 십년만에 연락을 한 어떤 애-한때는 절친,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 그러한 투자니, 뭐니 등등을 이야기할까. 수신거부와 스팸처리, 삭제했다. 여행도 절친으로 다가와 스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커피 맛이 그때마다 다르듯, 한때 열망하고 꿈꾸던, 듣고 배워서, 그 곳을 찾아 가지만, 도무지 아닐 수도, 그럴 수도 있다. 산다는 것도 그런 것 같다. 여행도 삶의 과정에 있으니, 삶은 어디로 가는 여행일까.. 5월이다. 그래도 즐겁게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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