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 공제控除의 비망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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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가 지척을 가린다. 도심을 벗어나자 마치 서부 활극이 펼쳐질 듯한 황무지처럼 사위가 노랗다. 모든 운명은 이 같은 착시 속의 한 풍경에 맺힌 긴 상처의 기억과 동반한다. 극이 없다면 운명도 없으미, 시선이 없다면 영웅도 없다. 황사는 봄을 기다려, 언약한 장소를 휩쓸며, 도시의 시선들을 낮게 접는다. 황사는 기별이 없는 전령이다. 봄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지만, 정작 황사는 유일한 봄이다. (77쪽)

할 말을 못 한 채로 눈부신 봄날을 간다. 그래서 나는 할 말을 다 못하면서도 가능한 정치적 행위가 무엇일지, 더러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지 않는 것의 정치‘는, 흥미롭게도 ‘응해서 말하기‘라는 대인대물 관계에 관한 내 오랜 지침을 실천하는 과정으로부터 빚어진 것이다. (162쪽)

행복은 반드시 소박해야 한다는 뜻이다. 행복이 별스럽거나 남다른 성취에 얹혀 있다면, 그것은 행운의 기색을 띠거나 경쟁의 상급처럼 여겨져 그 보편성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행복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것은 아니지만, 멀게든 가깝게든 직입하든 에두르든 어떤 ‘정치적 실천‘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대추열매든 끌밋한 열매든 다들 대추나무에서 갈라져 나온 것처럼, 제아무리 소박한 행복의 실천에서라도 담론과 제도의 질서를 규제하는 체제는 엄연하다. (170-171쪽)

연인과 더불어 산책하기 어려운 것은, 우선 연정은 욕심이지만 산책은 의욕이기 때문이다. 양보, 눈치 보기, 그리고 들뜸은 모두 산책에는 치명적이고, 연정이란 무릇 의도의 웅두리에 얹혀 근근이 성립하는 것이니, 산책이라는 그 허소의 길과 어긋난다. ((182-183쪽)

인식은, 특히 인문에 관한 인식은 그 자체로 초라하지요. 사람을 응접하는 슬금한 지혜를 제대로 부리지 못할 경우, 인식은 그저 젠체하는 허영이거나 맨망스러운 지다위질로 떨어집니다. 인문의 지식은 스스로를 현명하게 배치하는 실천적.화행론적 노릇 속에 근근히 자신의 생계를 이어갈 만큼 철저하게 수행적(performative)이기 때문이지요. (216-217쪽)

제자는 타자성의 소실점을 향해 몸을 끄-을-고 다가서는 검질기고도 슬금한 노력속에서야 가능해지는 ‘알면서 모른 체하기‘의 의욕이자 태도인데,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제자는 촛농의 힘에 의지한 이카로스처럼 어렵고 신자는 파리 떼처럼 번성한다. (중략) 그렇기에 제자는 어리눅은 ‘충실성의 형식‘을 취하고 신자는 반지빠른 ‘변덕의 내용‘에 골독한다. (220-221쪽)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이 나의 호오와 무관/무정하게 굴러다니는 덩어리라는 사실 속에 하루살이처럼 묻히는 것이 아니던가?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보다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밀물처럼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깨닫는 일이 아니던가? (중략) 그래서 세속을 아는 것은, 내 생각의 막에서 벗어나 타자들의 아득함을 체험하는 일이다. 의도가 몸을 비껴가고, 선의가 지옥을 불러오는 체험들 속에 세속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244쪽)

어느 스승의 말처럼, 소중한 것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 한다. 그것은 안팎으로 오해와 질시가 잦은 길이지만, 새로운 글, 말(응대), 생활, 그리고 희망을 얻기 위해선 마치 타성일편의 태도로 생사일대사를 뚫어내는 결기와 근기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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