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으로 따끈하게 받자마자 펼친 '도서관의 말들'은 예전의 기억을 오롯히 소환했다. 

학생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책 읽은 기억이 난다. 대학 4학년 말부터 그 곳으로 매일 출퇴근을 반복했던, 남녀가 구분된 공간으로 2층이 여성의 공간이었다. 기억으로는 6명이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에 각자 한명씩, 구석진 곳부터 뜨문 앉았던, 온전히 자유롭고 편한 넓은 공간이었다. 그러다, 가끔 바람쐬러 주변을 돌아다니기도 했던... 얼마를 다니다 공부하러 온 그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그 도서관이 개관할 때 학생대표로 커팅까지 했다나... 우린 대학 1학년 때 알았고, 방학 때 간간히 마주치는 사이였다. 그러다 서로의 친구들을 맺어준다고 함께 바다를 보러 간 적도 있었다. 그들은 헤어졌고, 우리는 지금 함께 산다. 

저자가 몇년간 근무했던 도서관과 관련된 이야기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사서를 꿈꾼적도 있어, 아들에게 강요까지 한 적도 있는, 오랫만에 생생한 도서관 기억과 마주했다. 그리고 종로서적의 추억도 있다. 도서관 이용자, 애용자가 더 좋다는 건 이제는 알고 있다. 


Best wishes for a merry Christmas and a hopeful New Yea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도서관의 말들 - 불을 밝히는, 고독한, 무한한, 늘 그 자리에 있는, 비밀스러운, 소중하고 쓸모없으며 썩지 않는 책들로 무장한 문장 시리즈
강민선 지음 / 유유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28년 가을, 강연을 준비하던 버지니아 울프는 필요한 자료를 찾아 근처 도서관에 갔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출입을 제지당한다. (13쪽)

그가 고향 흙 대신 도서관의 책을 선택했다고 해서 형편이 나아졌거나 남ㄷ르은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을 이겨 냈거나 역사에 남을 만큼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니었다. 문학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내면의지실, 선함,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 않고 당장의 쓸모는 없지만 계속해서 인생의 다음 단계를 기대하게 한다. 살아가게 한다. (25쪽)

나의 짧은 경력과 특수한 상황이 내가 아는 도서관의 전부가 되는 일은 원치 않는다. 어딜 가나 똑같다는 말이 발목을 붙잡은 적도 있었지만 떠나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도서관은 내 경험 이전부터 있었고 이후로도 있을 것이다. (77쪽)

그런 내게 도서관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었다. 인격을 갖춘 대상이었다. 따뜻하거나 시원한 실내 온도는 도서관의 체온이었고,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 속 좋은 문장으느 도서관의 말이었다. 나는 더욱 자주, 더욱 간절한 마음이 되어 도서관을 찾았다. 그럴때마다 도서관은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받아 주었다. 도서관은 내 감정을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한 몸에서 ‘느끼는 사람‘과 ‘쓰는 사람‘을 구분하게 해 주었고 이미 그런 경험을 했던 다른 많은 이의 글을 내게 보여 주었다. (171쪽)

"모든 방법이 실패하면 포기하고 도서관에 갈 것."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 갔다. - 스티븐 킹, [11/22/63] (20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의 계시로서, 믿음의 확신을 얻을 수 있다. 두 번은 읽었지만, 명쾌하게 잡히지 않았다. 

믿음을 확신한다는 것, 그리하여 현재에서 죽음 이후의 구원까지 나아 간다는 것 사이의 문장에서 길을 많이 잃었다.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오랫 만에 뺨도 따가웠다. 겨울 날씨가 이렇구나를 실감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지금, 너무 풍성하고 넘쳐 도무지 알아채지 못하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교회를 가 본지가 오래되었다. 예배를 언제든 쉽게(?) 드릴 수 있었는데, 

돌아보면 감사할 따름이다. 

올해의 시간은 특별하고 더 빠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믿음의 확신 세계기독교고전 40
헤르만 바빙크 지음, 임경근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믿음의 확신에 관한 문제는 학문적이고 신학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천적이고 신앙적으로도 중요하다. 이것은 신학자들만의 문제인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연구실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거실에서도 중요하다. 이것은 단지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문제인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삶과 실천의 문제다. (21쪽)

따라서 믿음의 확신과 관련된 질문은 두 가지가 된다. 즉, 믿음의 확신은 우리가 고백하는 종교의 참됨과 관련된 것이거나, 그 종교가 약속한 구원에 우리가 개인적으노 참여하는 것과 관련된 것일 수 있다. 객관적인 종교적 진리와 관련된 확신이 존재하고, 믿음의 주체가 그 진리에 의해 약속된 은택들에 참여하는 것과 관련된 확신이 존재한다. 이 두 종류의 확신이 아주 밀접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뒤섞여서는 안 되고 구별해야 한다. 내가 어떤 것을 진리로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는 내 자신의 구원에 대해 확신하는 행위과 다르다. (42쪽)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예수의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이고, 영원토록 그럴 것임을 단호하게 확신한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만이 아니라 자신도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마암아 순전히 은혜로써 죄 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에 의해 영원한 의와 구원을 수여받았다는 것을 어린아이처럼 믿는 믿음 가운데서 살아간다. (62쪽)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을 받거나 우리의 법정에서 옳다고 인정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시야 위로 자신을 높이 들어올려서 우리의 생각과 욕망을 심판하는 재판장으로 우뚝 서서, 우리의 존재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소환하여 하나님의 법정에 세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사람 전체를 향해 말한다. 즉, 그 사람의 지성과 이성, 마음과 양심, 그의 깊은 곳에 감춰진 것들, 그의 존재의 핵심,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그에게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사람에게서 그가 화해와 평안과 구원을 필요로 하는 죄인이라는 것만을 본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 그런 것들을 그에게 주겠다고 약속한다. (107쪽)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통해서 진리에 대한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신비들을 한층 더 깊이 꿰뚫어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가 서 있는 단단한 땅이고, 그가 의지하는 반석이며, 그의 사고의 출발점이고, 그의 지식의 원천이며, 그의 삶의 준칙이고, 그의 길에 빛이자 그의 발에 등불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진리의 확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에게는 구원의 확신도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의지하는 대상이 확실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관련해서 그 진리가 확실할 때에만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 속에서 쉼(안식)과 영광을 누릴 수 있다. (116쪽)

영적인 삶은 가족과 사회생활, 사업과 정치, 예술과 학문을 배제하지 않는다. 영적인 삶은 그런 것들과 구별되고 훨씬 더 큰 가치를 지니지만, 그런 것들과 철저하게 반대되거나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영적인 삶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의 우리의 소명을 신실하게 수행할 수 있게 해주고,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게 해주는 힘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온 세상보다 더 귀한 진주 같은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반죽 전체를 부풀어 오르게 하는 누룩 같은 것이기도 하다. 믿음은 오직 구원의 길일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을 이기는 것도 포함된다. (130쪽)

헤르만 바빙크는 죽음의 침상에서도 믿음의 싸움을 싸웠다. 그가 했다고 전해지는 말을 보자.
"내 학문이 내게 준 유익이 무엇입니까? 내 교의학 또는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오직 믿음만이 나를 구원합니다." (158쪽, 역자의 해제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쪽으로 간 시인 백석, 본명은 기행이다. 그 곳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그의 온 마음을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단어를 끄집어 내어, 불행해지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을만큼 시를 쓰고 싶었는데... 자신을 제쳐두고, 자신을 없애고, 고백이 아닌 자백으로 시를 써야했다. 시집을 내고, 책을 읽으며, 사는 그런 소박한 삶을 꿈꾼 시인은 동토의 땅에서 멈췄다. 이미 죽은 사람으로. 그 겨울의 골짜기에서 얼어붙었다. 1912년 태어나 1996년에 죽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오감으로 싯구가 마음에 먼저 닿았을 시인은 어떻게 살았을까로 마음이 저렸다.

전쟁이 끝나고 백석이 1956년 다시 시를 쓰기하면서 일곱 해를 그 당시의 언어로 김연수가 되짚어 썼다.  그 당시의 언어가 백석이 쓴 시의 언어와 마찬가지 일거다. 


*87쪽 
고백[명] 숨긴 일이나 마음속에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솔직히 말하는 것

자백[명] (해당 기관이나 조직 또는 남들 앞에서) 자기가 저지른 죄과에 대하여 스스로 고백하는 것 또는 그러한 고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