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잡지 '외모'를 읽으며, 알바하러 오가면서 사람들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어울리든, 그렇지 않든, 꾸미지 않는 이는 없었다. 누구를 위하여 꾸밈 노동을 했을까. 심지어, 지하철에서 화장까지 하는 이도 있다. 그리고 입을 옷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이도 있구나... 나는 외모에 대해 고민한 적은 거의 없었다. 일단 마른 몸의 덕을 봤다고나 할까. 그 덕에 아무 옷이라도 편히 입고 다닌다... 

'외모'에 대하여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의 견해 중에 노년외과 정희원 교수의 '지속가능한 몸 만들기' 글에 공감이 간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이 드는 사람은 젊어서부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만들고 지킨 이들이다. 지속 가능한 운동 습관을 만들고 실천하면, 생애 전체에서 건강상태를  오래 유지 할 수 있다. 즉 젊을 때 만든 과잉이 나이 들어 항상 반대급부의 고통을 낳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균형 잡힌 운동 루틴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숨쉬기 운동 뿐 아니라 맨손체조라도 꾸준히 해야 한다.. 

박정호 교수의 '얼굴을 잃지 않는 대화'가 감명깊다. 우리가 서로 말을 한다는 것은 나를, 나의 얼굴을, 그리고 얼굴로 표현되는 신성한 자아를 주는 것이다. 이렇다면 아무리 사소한 대화라도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주고 받기에 서로의 체면을 살려주는 대화를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얼굴과 말을 분리하는 기술로(예: 키오스크 주문, 문앞 배송, 화상수업 중 카메라 끄기 등) 계속 도피하고 있다. 나를 타인에게 증여하는 대화를 한다면 말 폭력의 악순환을 선물의 선순환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한다. 제대로 된 대화를 언제 했더라. 얼굴을 맞대고 몸과 마음이 입을 통하여 말하는 게 아니라 눈과 손가락으로 대체된 대화를 하고 있구나... 

벌써 칠월이다. 이리 더워도 되는지, 이렇게 비가 많이 와도 되는지,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도무지 알 수 있는 게,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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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9호 : 외모 인문 잡지 한편 9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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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외모의 매력에 대한 우리의 차별적 선호는 ‘도덕적‘ 잘못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윤리적‘으로는 중대한 문제이다. 여기에서 나는 로널드 드워킨을 따라 윤리를 도덕과 구별하고 있다. 도덕이 우리가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규율하는 원리와 규칙을 뜻한다면, 윤리는 개인이 자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와 관련된다. 이러한 구별에 따르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특별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서도 윤리적으로 잘못 살 수 있다. (25쪽)

날 때부터 주어지 생김새는 변형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옷은 의도에 따라 적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 패션은 외모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중략) 즉 패션은 세상에 보내는 시그널이다. 그 결과물은 타인에게 심는 내 이미지가 되거나 나에게 거는 최면이 된다. (67쪽)

실제로 편견은 고정관념과 같은 인지적 요소보다 호감과 같은 감정적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주목할 점은 편견을 강화하는 감정적 요인이 강한 적대감 같은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무지와 정보 부족, 낮은 접근성으로 생기는 불안과 불편함이다. 다시말해 우리는 잘 모르고 많이 접하지 않은 낯선 대상에 대해 편견을 강화한다. (92쪽)

음식의 소비와 섭취는 누군가에게는 건강에 이로운 취향의 실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고단한 삶 속의 달콤한 위안이다. 음식을 먹는 다양한 맥락이 지워지고 건강의 윤리가 소비의 쾌락과 결합되어 전시될 때, 전시할 수 없는 뚱뚱한 몸들의 삶은 지워진다. (124쪽)

언젠가부터 우리는 얼굴과 대화를 선물처럼 순환시키는 법을 잊고 사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서로의 성스러움을 확인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얼굴과 말이 따로 놀고, 진정성과 상업성이 뒤섞이고, 얼굴을 놓고 누구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는 시대에 그래도 ‘당신의 얼굴은 내게 선물이다‘라는 인정을 주고받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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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미술관이 거리마다 넘치는 뉴욕, 세계의 유행이 시작되는 곳, 도시 전체가 현대미술관이라는 뉴욕, 그 곳에서 예술에 관해 전방위로 박학다식한 저자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꼼꼼하고 촘촘한 연결과 깊이까지 있는 글,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처럼 얼마나 많이 아는지, 전문가인지 드러난다. 그래서 이해하기에는 한참 먼 어려운 말들이 많다. 낯선 예술가들, 그들의 기법, 그림, 글, 사진, 건물, 영화,까지 또한 공적인 장소를 사적인 장소화한 저자, 그 속에서 온전히 느끼고 생활하는 언어들로 가득하다. 몸과 맘이 반응한 이야기들로 뉴욕을 드러낸다. 그렇다해도 읽는 이는 물흐듯 읽을 수 있다. 모르는 부분을 좀 더 알고 싶어 인터넷을 뒤적이기도 하고 따라가면서 아는 만큼 읽었다. 눈 앞에 산해진미가 있다해도 먹는 이의 상태에 따라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듯이.. 부럽기도 질투까지 났지만, 저자의 조근조근, 서두르지 말라는 담담한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저자 덕분에 뉴욕을 그녀의 도시만이 아니라 나의 도시로 성큼 들어오기까지. 하지만 잠깐 다녀 온 여행자와 그 곳에서 늘상 숨쉬는 생활자와는 완전 다르다. 

덕분에 내가 사랑하는 대상 등등을 되짚어봤지만, 저자만큼 잘 알면서 애정있는 게 뭘까라는 의문만 생겼다.. 지금 사랑하는 게 뭔지를 보면 될까, 하지만 가끔은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조차, 길 잃은 맘을 잡아 둘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하고 몰입할 수 있는 뭔가에 닿기 위해, 이때껏 지나온 것에서 부터 가까운 근처까지 차근 살펴본다. 특히, 요즘은 건너뛰는 게 많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 자리에 있지만 처음 듣는 말이 되기 십상이고 말 중간에 자르고 끼어들고 그래서 관계와 사고의 폭이 점점 좁아들고 나의 정형화된 틀로 갇히는 거 같다. 

나아가 나이가 들어가면 입체적이고 복합적이기 보다 일직선의 아주 단편적인 면에 고착되어 보고 듣게 될 거 같다. 사고의 폭이 더 이상 줄여들지 않도록, 입은 다물고 그냥 듣기, 단정짓지 말기, 그러나 사랑하면 이 모든 게 우선 허용되고 용서될 터이지만... 당최 남의 말은 듣고 싶지도 않고 말 섞기도 싫고 나에게만 매몰되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사람과는 달리 서로 쓸데없는 감정들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고 교환하지 않아도 되는 몇 십년째 살고 있는 서울을 나도 사적인 도시로 만들어 볼까.. 

친구가 하늘나라에 갔다. 우리의 찬란했던 시절이 담긴 앨범을 뒤적여 보지만, 마음은 붕 뜨고 머리는 텅 빈 상태다. 

알바 몇 시간하고 터덜터덜하고 온다. 수 십년 규칙적인 직장생활은 어떻게 한거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좋았음에 틀림없다. 관계와 접점은 좋았던 감정이나 아름다움을 재현할 수 있어야 유지하고 몰입할 수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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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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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절대로 억압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배움은 자유로워지기 위한 것이다. 결국 미술은 ‘마음대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수영의 기본을 익히고 꾸준히 훈련해야 저기 보이는 섬까지 자유로이 헤엄쳐갈 수 있듯, 미술도 보는 능력을 키워야 ‘마음대로‘ 보는 감상이 가능한 것이다. (43쪽)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란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의 ‘들어올림‘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일이 됐건, 사랑이 됐건, 공부가 됐건, 그 노력이 때로 코믹하거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할지라도 궁극은 그렇다는 것이다. (71쪽)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의 처음부터 나에게 뉴욕이란 도시는 중요했다. 내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내가 살기로 선택한 도시, 뉴욕은 나라는 개인에게 매우 사적인 은유였다. 내가 자라나며 불만을 품었던 중산층적 가치들의 전복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인정되는 곳. 불가능하게 치솟은 빌딩들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뉴욕은 내 삶의 변명들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가는 데 필요한 나만의 내면적 장치였다. (88쪽

아직 뉴욕이 낯설었던 지역, 매우 다른 풍경이 주는 매우 다른 기대감,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서점과 커피집이 가까이에 있다. 낡은 옷을 입고 부스스한 머리를 한 아이들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는 이곳이 편안하다. 거의 이상적이다. (119쪽)

어떤 사람을 말해주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반복해서 생각해서 하다보면 결국 하나의 태도, 삶에 임하는 태도가 되는 것이다. (142쪽)

옷을 입고 살아야 하는 우리의 몸은 어차피 극장과도 같다. 기능과 장식, 보호와 파격, 보임과 드러냄이 끊임없이 갈등과 긴장을 빚어내는. (193쪽)

[뉴요커]의 미술비평가 피터 셸달이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바라는 대로 되는 세상이라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집엔 어디나 모란디의 그림이 걸려 있었으면 좋겠다. 눈과 정신, 그리고 영혼이 매일 훈련을 하는 김나지움이 될 것이다." (196쪽)

노년은? 재밌게도 이 시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이 그 안에 있으면서 완전히 그 밖에 있게 되는 그런 시기야. 내내 자신의 소멸을 관찰하면서 계속되는 활력 때문에 그 소멸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거지. 심지어는 완전히 독립된 것 같기도 하지. (209쪽)

부자가 멋진 소파를 사는 ‘좋은 취향‘으로 정의를 얻는다면, 가난한 이들은 ‘변형의 힘‘을 갖는 취향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변형의 힘이 있는 취향에는 그걸 보는 눈이 필요하다. (중략) 아름다움을 보려면 마음이 가난해져야 한다. 마음이 가난하면 눈이 밝아지고 눈이 밝은 사람들이 많아져야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된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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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cts(사실들), 필립 로스의 자서전이다. 작가적 분신인 주커먼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책이 쓸모가 있긴 한 걸까?(21쪽)' 자문하면서 사실들로 가득 찬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대인 가족으로 미국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와 어머니, 조상들의 안전한 가정의 품에서 비 유대인 조시 - 꿈의 여인이라 명했지만, 꿈이기를 간절히 여기고 싶었던걸까 -를 만나 온갖 고생을 다 하다가, 위로와 치료가 되는 여인을 있었지만,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인간으로 거듭난다. 주커만이 로스에게 이야기의 중간 중간 동기와 이유가 없음을, 또는 불행한 결과에 대해서는 자의적이고 의도적인 선택의 결과라고 보낸 편지 글로 마무리 된다.    

사실은 실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의미하며, 솔직하게 말할 때 쓰는 말이다. 종종 사실을 말하면, 사실은 말이야, 이러저러하다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 아까 전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사실의 반대는 가정일까. 

특히, 과거의 이야기는 그 후의 감정과 결과물을 덧붙인 기억의 산물에 불과한데, 필립 로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상상과 허구를 벗어나 있는 그대로 썼다고 고백한다.  

쓸모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의 몫이다. 책을 구입할 때는 다양한 동기가 배경이 된다. 제목때문에,저자때문에, 책 표지, 출판사, 그 때의 기분과 경험 등등으로 나의 손에 들어 온 이 책에서 쓸모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이유는... 

맹자 공부가 끝났다. 공부내내 느낌이 너무도 크고 감당하기 어려워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딸린 일손을 간절히 원하는 이가 있어 한달정도 아르바이트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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