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문트 후설, 엄밀한 학문성에 의한 철학의 개혁 살림지식총서 476
박인철 지음 / 살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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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의 철학은 이른바 ‘현상학‘으로 특징지어진다. (중략) 말하자면 의식과 세계와의 상관관계를 밝히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적 틀로서 현상학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25-26쪽)

후설의 철학에서 세계를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태도란, 어느 특정 존재 영역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총체적이고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 태도를 후설은 ‘철학적‘ 혹은 ‘현상학적‘ 태도로 부른다. (34쪽)

자연적 태도에 대한 판단중지 내지 초월론적 환원과 더불어 후설 현상학의 방법론을 특징짓는 또 다른 대표적인 방법이 ‘본질직관‘이다. (46쪽)

본질직관은 내가 이미 이전에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본질에 대한 선지식을 구체화하고 확증하는 과정이 된다. (중략) 선지식은 이른바 우리에게 하나의 습성 형태로 저장되어 온 것임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 습성이란 근본적으로 개인적,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사회적 성격을 지닌다. (54-55쪽)

세계는 지향적 체험 속에서 구성된(의미 부여된) 것으로 주어지고 파악된다. 그리고 그 세계는 주관성에 의존한다. (중락) 의식과 세계와의 관계는 이제 지향적 관계로 밝혀졌다. 세계는 초월론적 주관성에 의해 구성된 하나의 지향적 대상이다. 지형적 대상성이 주관성에 의해 형성된다. (71쪽)

후설의 존재론은 개체 중심이 아니라 공동체 중심의 전체론적 세계관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전체론적, 목적론적 세계관에 따를 때, 각 개인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만 존재 가치가 있으며 타자와의 관계가 각별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특히 나와 타자가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가 주된 관심사가 된다.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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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탑이 고장났다. 자본을 종교로 보면서 성경의 기도, 찬양, 사도신경, 욥의 애가를 차용하여  빗대어 쓴 글이다.

'로쟈'의 서재 글을 옮겨본다. 
마르크스의 사위라고는 하지만 두 사람의 견해가 일치하는 건 아니다. 출판사 소개 글에서는 두 사람의 차이를 이렇게 정리한다.
원래 religion의 어원은 ‘하나로 묶는다’는 뜻인데, 마르크스는 자본이 인간을 나누고 가르고 투쟁하도록 만든다고 본다. 하지만 라파르그는 자본이 인간을 돈에 묶고, 주인에게 자발적으로 복종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자본을 종교의 대상으로 신앙화하는 메커니즘에 주목한다. 마르크스가 자본의 ‘부정적’ 탈종교화에 주목한다면 라파르그는 ‘긍정적’ 종교화에 주목하는 셈이다. 두 사람은 자본주의의 또 다른 축인 노동에 대해서도 대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는데, 마르크스가 노동을 기본적으로 긍정적으로 보면서 자본주의적 왜곡을 비판하는 데 반해 <게으를 수 있는 권리>에서 라파르그는 최소 노동을 강조한다. 특히 자본주의에서의 종교와 관련해서 마르크스는 종교를 상부 구조의 일부로 보며 “종교는 아편”이라고 주장하지만 라파르그는 자본이 바로 현대적 종교라고 주장한다.

혁명을 가능한 한 최소의 노동과 최대의 지적. 육체적 향유를 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한 라파르그는 평생 일정한 일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대의 종교는 무엇인지,
돈이 있어야 진실한 마음을 보여줄 수 있다. 더 나아가 돈의 많음이 애정의 크기까지..
주말에 다시 본 연극 '라스트 세션',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신의 유무를 토론한다.
이전의 신구와 이석준, 그저께의 남명렬과 이상훈, 두 팀은 조금 달랐다. 원숙과 존경/열정과 재기 발랄 패기의 대담이었다. 더 쓰고 싶지만 다음 기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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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라는 종교
폴 라파르그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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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을 억누르려면 종교가 필요합니다.하지만 어떤 종교? 새로운 종교여야 합니다. 여나 지금이나 시대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는 자본이라는 종교뿐입니다.(44쪽)

돈은 자본가의 영혼이다. 행동의 동원력이다. (80쪽)

라파르그는 물려받은 유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평생을 살며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는 어떤 종류의고정적 직업을 갖 지 않아도 되었다.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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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 자신에게 친절하고 관대하자를 주문처럼 외운다. 이 나이쯤 되면 삶의 구멍정도는 그렇구나 하며 지나칠 줄 알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왠지 자로 잰 듯 맞춤형 위로를 해 줄 거 같은 '수학의 위로'를 펼쳤다. 

'수학의 위로' 책 표지 그림이 무엇인지 봤다. 고사리 잎이었다. 고사리 잎 모양은 점, 직선, 곡선, 면, 부피를 연구하는 산수의 기초가 되는 기하학에서 말하는 프랙탈 이론과 유사하다. 프랙탈처럼 우리의 삶은 자기 유사성과 순환성을 가진다. 비통은 여러가지 작은 슬픔으로 겹쳐있고 서로 유사하면서 연결되어 있으며 되풀이된다. 즉 저자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점과 선, 프랙탈, 기하학으로 비통을 헤아려 보고 해석한다. 비통이 슬픔과 다른 점은 불가역성이다.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이다. 누군가의 죽음에 따른 아주 큰 슬픔과 같다. 덧붙여 끝없는 부재, 공허, 무의미, 감정적인 부분과 초월성까지 포함한 불가역성을 띠는 것이 비통이다. 

책 제목이 '수학의 위로'지만, 비통의 기하학이다. 저자는 수학을 잘하고 기하학에 친숙하기에 기하학으로 비통, 아주 큰 슬픔을 희석하고 달래고 상실의 아픔을 위로한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비통에 처하면, 각자 자신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마음을 위로하고, 위로 받는다. 이때 우리가 타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공감뿐이다. 

'부재들, 상실들, 예전에 있었지만 더 이상 없는 것들. 하지만 그 구멍들의 틈새 사이에서 돌아다니면서 성숙해야 한다는 것을. 비록 예전에 그것들이 있던 곳으로 손을 뻗으면, 그 추억이 있는 공간의 긴장되고 빛나는 아련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해도.(198쪽)'

날씨가 무지 덥다, 바나나, 망고를 심어야 할까... 스콜까지... 토닥 토닥, 자신을 잘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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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위로 - 점과 선으로 헤아려본 상실의 조각들
마이클 프레임 지음, 이한음 옮김 / 디플롯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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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다른 이들의 삶과 크게 달랐을까? (중략) 대다수는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계속 떠올리곤 한다. 몇몇 선택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우리를 이끌곤 한다. 지금 경로를 바꾸어도, 이후의 삶은 열 해 전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펼쳐질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듯이 우리가 닿지 못한 곳들이 있었을 수 있으며, 우리는 이 상실을 비통해한다. 내가 택한 경로는 - 수학의 몇몇 구조를 탐구하는 일 - 비탄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 나는 비통해하기가 수학하기와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본다. (15쪽)

당신의 삶에서 어떤 순간에 일어난 변화와 그 결과만이 다를 뿐 다른 모든 면에서 똑같은 평행 우주가 매번 생겨난다. (71쪽)

비탄은 돌이킬 수 없으며, 우리는 우발적인 사건을 비탄할 수 없고, 예견된 비탄이란 없다. 그리고 남의 비탄을 어렴풋하게라도 이해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든 간에 그 방법은 공감이라는 렌즈를 통해 초점이 맞추어진다. (91쪽)

비탄에는 불가역성 외에 다른 무언가도 필요하다. 비탄은 상실의 정서적 무게 및 초월성과 결합된 불가역성이다. 상실한 것이 자신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상실에 비탄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139-140쪽)

우리가 보는 것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또는 더 추상적인 환경에서 거의 모든 규모에 걸쳐 되풀이되는 패턴이다.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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