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하다. 손끝이 시리다. 눈도 살짝 내렸다. 얼음도 보인다. 겨울이다. 내가 발딛고 사는 곳이 저 멀리 있는 거같다.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먼저 가버린 시간들이다.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정리한다. '몸으로 책 읽기'의 내용은 다 벗은 몸이기에 섹시(?)하다.  사람들마다 책읽기의 방식이 다르니까 무어라 할 말은 없지만.... 엄마의 생신, 노인들의 미래는 어찌 될지 모르기에 축하하러 갔다. 케익을 자르고 축하주를 나누고, 새벽까지 술마시며, 담소하고, 제부가 DJ가 된 노래감상은 또 다른 놀이문화를 제공했다. 몇시간에 걸쳐 돌아온 길은 주차장이다.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기다리는 일은 고되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서는 힘들다. 몸으로 옮길 때 더 가뿐해 질 수 있다. 막연히 기다리기만 하면 오만가지 생각들로 지친다. 막연히 기다릴 때는 책을 읽을 수도 있고, 당신을 위해 책을 살 수도 있고, 선물을 고를 수도, 커피를 사서 기다려도 된다. 그러나 몸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막연히 기다리기만 한다. 더 피곤하다. 마음을 몸으로 옮기지 못할 때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보고 싶어도, 말을 해도, 몸이 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 다음에는 손에 보여주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랑이 보인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어찌보면 보여줄 수 있는 손이 없기에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 연말이다. 챙길 사람들이 많다. 카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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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책읽기 - 명로진이 읽고 걷고 사랑한 시간
명로진 지음 / 북바이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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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걷는다. 걷기 때문에 인간이다. 동물은 긴다. 기기 때문에 동물이다.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걸어야 한다. 배를 땅에 깔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수많은 복지부동하는 존재들은 인간이 아니다. 기지도 않으므로 동물도 아니다. 그럼 아메바? 말미잘? 무생물?-93쪽

'절실하게 필요할 땐 가질 수 없고, 가질 수 있을 땐 그 필요가 절실해지지 않는' 쌍곡선의 비애가 바로 삶인 것을 그땐 몰랐다. '인간에게 유보시킬 행복은 없다'라는 걸 진작 알았어야 했다. -135쪽

누군가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기 전까지는 우리가 무엇을 본다 해도 보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설명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무엇을 안다 해도 아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산에 오르기 전까지는 산은 있다 해도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미망에 사로잡힌 인간에겐 그렇다. 존재가 문제가 아니라 인식이 문제인 것이다. 산에 오른다는 것은 존재에 대한 인식의 도전이며 실체에 대한 감각의 탐구이자 객체에 대한 주체의 대응이다.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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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히 눈발이 날린다. 누군가와 같이 눈(雪)을 본 적이 없다는, 그래서 함께 눈을 보게 되어 기쁘다는 안선생의 말에서 그럴 수도 있구나, 따뜻한 커피를 들고 큰 유리창을 통해 드문드문 날리는 눈을 보았다. 첫눈은 벌써 다녀 갔다던데... 겨울, 옷깃을 여미고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는 계절이다. 아울러 일터를 옮겨야 하는 사람들로 뒤숭숭하다. 파트너도 떠난다 하니... 이도 저도 못하는, 어떤 쪽도 될 수 없는, 올해와 내년이 연결되어 있는 겨울이다. 하지만 소통일까, 단절일까... '시간은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다. 뒤로도 간다. 앞으로 가는 시간과 뒤로 가는 시간 사이에 우리는 끼여 있다. 그것이 삶의 순간들이다.(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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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設, 첫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절판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알겠느냐? 이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서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얘야, 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부(否)라!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놓은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그것은 인간 삶의 적이다. 그런 허망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없다. 이것은 유물론이 아니고, 경험칙이다. 이 경험칙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공히 유효하다. 돈 없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 -13-14쪽

정치적 언어는 사실에 바탕하지도 않았고 의견에 바탕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흔히 욕망이나 이득에 바탕하고 있었다. 욕망과 이득에 바탕한 말들은 사실을 지운다. 그 말들은 거대한 명분을 뒤집어쓰고 뻔뻔스러워진다. 말은 무기로 변한다. 무기로 변한 말은 적에게 허상을 부여하고 그 허상을 친다. 그때 적의 언어도 똑같은 전략에 따라 무장된다. 그렇게 해서 전면전을 치르는 말들의 신기루가 당대 현실 위에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아무것도 소통되지 않는다. -67쪽

언론의 자기 검열은, 이념이나 지향성에 의한 통제행위가 아니라, 우선은 사실과 의견을, 존재와 가치를 구별하는 통제행위이다. 이것은 쉬운 말이 아니다. 이것은 아마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거의 불가능 쪽에 가까운 일이다. '사실'이 갖는 층위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사실'은 그것을 관찰하고 전달하는 자의 주관 속에서 재편성되고 재해석되며, 의미를 부여받거나 의미를 박탈당한다. '사실'이 객관적이고 '의견'이 주관적이기에 앞서서, '사실'을 만지고 거기에 다가가는 인간의 시선이 이미 주관적이다. 단순한 교통사고나 화재사건, 살인사건조차도 그 전후 맥락과 의미 내용을 완전무결하게 객관적으로 전달할 수는 없다. 나는 '사실'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의견' 앞에서 식은땀을 흘린다. 사실과 의견은 적대적이다. -91쪽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인 각자의 죽음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의 의식 속에서 그 죽음은 통계화된 사회현상일 뿐이다. 죽음이 그렇게 사물화될 때, 삶 또한 우연성 속에 방치된 사물로 전락한다. 사물화된 죽음은 더 이상 삶의 시간들을 긴장시키지 못하고, 삶과 죽음의 자리매김은 불가능해진다. 죽는 일은 무섭지만, 죽음과 구분되지 않는 일상의 삶은 더욱 무섭다. -137쪽

빠른 속도는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의 과정을 챙기지 않는다. 속도의 꿈은 길을 버리고, 오직 시간 속을 달려가는 것이다. 땅에 붙어서 달리는 자에게 그 꿈은 불가능한 꿈이지만,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매혹적이다. 자동차가 빨리 달릴수록 속도감각은 무디어지고 시야는 좁아지낟. 시야는 전방으로만 집중되고, 풍경은 인간의 외곽을 겉돌아 백미러 뒤쪽으로 장난감처럼 소멸한다. 빠르게 질주하는 자동차 안에서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물리적 공간으로부터 소외되고, 그 공간을 삶의 영역 안으로 끌어넣을 수가 없게 된다. 자동차는 나쁘고, 자전거는 착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미 자동차가 없이는 이 세상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전거의 덕성은 그 속도와 힘이 사람의 몸의 허용치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계장치가 그것을 조작하는 사람의 몸과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속도는 능률이고 절약이며, 많은 젊은이들의 꿈이지만, 속도의 본질은 공간으로부터의 소외다. 저렇게 빠르게, 어디로들 가는 것인가. 가는 과정을 저렇게 다 버려도 되는 것인가.-193쪽

사물을 사물 그 자체로서 직접 이해할 것, 사물과 인식 사이에 잡것이 끼어들지 않도록 늘 경계할 것.-198쪽

여름의 강은 가득하다. 가득한 물이 아득히 흐른다. 흐르는 것은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흘러오는 것도 아니다. 흐르는 것은 오고 또 가는 것을 잇대면서 늘 신생한다. 그러므로 강은 지속이고 또 명멸이다. 가득한 여름가은 젊은 날의 시간과 생명의 모습을 닮아 있다. 가을이 와서, 여름의 거센 힘을 모두 버리고, 맑고 또 낮아질 때까지 젊은 여름의 강은 산과 들의 모든 굽이를 다 휘돌아가면서 가득히 흐른다. -246-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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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와의 '관계'와 내담자라는 '화두'(p6)"가 상담에 대한 저자의 태도다. 나에게서 상담이란 과연 뭘까, 관계를 제일 어려워 하는 나는 내담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내담자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고민했다. 전이와 역전이가 오가면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다. 순간의 영민함과 예민함으로 내담자에게 적절하게 개입을 한 저자의 능력(?)은 부럽기도 하고 놀랍다. 철저한 자기분석을 통하지 않고서야 이뤄낼 수 없는 작업이리라. 내담자가 가지고 오는 표면적인 이유에서 보이지 않는 깊은 상처와 고통을 드러내게 하고, 자신을 철저하게 알게 하고, 그대로 수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찌 그저 될 수 있을까. 먼저 상담자 자신부터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한다. 말처럼 쉽지 않다. 나를 철저히 안다는 것은 뼈속 깊은 아픔을 동반한다. 준비된 내담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내담자에게 전적으로 미루는 건 변명밖에 안된다. 지금 나의 모습을 제대로 봐야 한다. 특히 피하고 싶은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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