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기구한 삶들을 그린 이 소설의 원제는 '활착活着'이다.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로 만들며 [인생]이라는 제목을 달아준 걸 우리말 역서에도 그대로 붙여 썼다. 장 감독은 [인생]으로 199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지만, 나는 제목이 바뀐 것에 불만이 크다. '활착'이란 원래 "옮겨 심거나 접목한 나무가 뿌리를 내려 살아간다."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에는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부제가 은근히 따라다닌다. 하지만 나는 그 부제 역시 그리 탐탁지 않다. 위화는 서문에서 스스로 "고상한 작품을 썼다고 생각한다."라고 조금은 으스대며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적고 있다. -56-57쪽
"작은 나라들은 약하기 때문에 보다 위대한 지혜를 짜내어 정책을 마련한다. 그 지도자들은 아주 잠깐만 어리석게 굴어도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세계에서 정치. 사회적으로 가장 진보한 국가들이 작은 나라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작은 나라일수록 훌륭한 지도자가 필요하다.-82쪽
유전자 자체가 도덕이나 윤리 의식을 가진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가슴이나 뇌를 지닌 생명체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화학 물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기복제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기적인 존재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이기적인 유전자가 바로 우리를 '도덕적인 동물'로 만들어준 장본인이다. 도덕성morality도 엄연한 진화의 산물이다. 어느 사회에서든 보다 도덕적인 개체들이 더 많은 유전자를 후세에 남겼기 때문에 도덕성이 오늘날까지 우리 인간의 본성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170쪽
유전자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정보를 담고 있는 화학 물질이다. 단백질은 생물체의 몸을 만든다. 행동이란 바로 단백질이 만들어낸 구조와 기능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발가락이 닮은 것을 인정한다면 그 닮은 발가락 때문에 나타나는 행동 역시 비록 단계를 더 거칠 뿐 엄연히 유전자의 결과물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193-194쪽
서양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우리를 진정 귀찮게 하는 것은 작은 것들이다. 코끼리를 피할 순 있어도 파리를 피할 순 없다.""우리를 진정 화나게 하는 것은 작은 것들이다. 산 위에 올라앉을 순 있어도 압정 위에 앉을 순 없다.""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작은 것들이다. 마개 없는 욕조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241-242쪽
부양해야 할,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는 현실이 오히려 수명을 연장해주고 생존 확률을 올려준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 홀가분하게 혼자인 사람이 시간이나 에너지를 덜 낭비할 것 같은데 결과는 상식을 뒤엎는다. 이 같은 현상은 다른 영장류 사회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외톨박이는 실제로 다른 개체들로부터 공격도 더 자주 받을뿐더러 자원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 외톨박이가 대체로 더 일찍 죽는다. -315쪽
살고 싶은 마을, 책마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찾아가는 건 위험(?) 하단다. 물론 자국민은 괜찮겠지만... 산책길에 들릴 수 있는 서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흠흠흠... 책 냄새 또한 코끝을 간지르고 커피내음까지... 언젠가 만들고 싶다.
'사평역에서' 설날을 기다리며. 이맘 때가 되면 떠오르는 시詩다.
사평역(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에서 책은 헌 신발짝 값만도 못하다. 중고 서적은 대체로 무게로 저울에 달아 유통된다. 출판인이나 저자 편에서는 국민 수준이 낮다고 하고, 국민은 책이 제값을 못한다고 의심한다. 아무튼 도서의 하향 평준화는 분명하다. 수많은 시간과 지성을 쏟은 저자나 역자의 책이든, 시정잡배가 대필시켜 쓴 책이든 종이 값이나 쪽수로서 정가를 맞춘다. 지성과 정신노동의 가치를 이렇게 경시하고 저평가하는 사회에서 사상의 향기는 커녕 타인의 생각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도야하며, 바람직한 인내심 같은 것을 키룰 여지란 기대하기 어렵다.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기는 법이니, 시적인 표현을 제외하면 아예 상스러운 고함조차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읽어야 하는 소리 없는 대화로서 독서의 미덕을 누가 옹호할까?- 66쪽
독서 운동은 추상적인 구호로 해결되지 않는다. 자유로운 사상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 책을 아끼듯이. 책방이 곁에 없는데 어디서 책을 구할 것인가. 대도시 중심가, 쇼핑센터에 가서 책을 찾는 것과 동네에서 책을 접하는 것은 다르다. 아침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뒤적이며 하루를 시작하듯이. 방과 후나 일을 끝낸 오후에는 서점에 들르는 게 일상이어야 한다. 누가 너절한 잡지와 참고서만 그득한 동네 서점에서 문화를 운운하겠는가. 담배 가게나 빵집이나 카페처럼 책방 또한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76쪽
우리에게 소수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는 이미 중병 수준이다. 모든 분야의 구석마다 배가 부른 주류의 이미지가 중심이다. 급하게 건너뛰는 현대화의 큰 폐해를 생각해 보면 기적을 일으킨 한강 물에 쓸려 보낸 소중한 기술이며 여전히 살아서 사랑받을 수 있었을 기법은 또 얼마나 많은가! 지난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눈부시게 도약했던 흑백사진 복제술 덕분에 기념비적인 도판을 곁들인 양장본과 반양장본도 쏟아졌었다. 이런 훌륭한 도판이 세련될 틈도 없이 금세 컬러 도판만이 통용되었으니 이런 징검다리 사이로 빠져나간 다른 역사적 경험이 어디 하나 둘일까.-104쪽
그런데 우리 서점에 그를 다룬 책이 상당하지만 수백 권도 넘는 빈센트의 책자 가운데 정말 읽을 만한 것은 몇 권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은 놀랍다. 무수한 전기와 미학서와 역사서 가운데 어떻게 가장 비중있는 것들은 싹 걸러지고 나머지 책들만 번역될 수 있었을까? 최근의 책들은 그의 생시나 사후 얼마 되지 않아 출간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로망'으로 채색되었고, 무수한 겹치기 인용 때문에 미지근하다. 그의 편지와 일기만 제외하고 주목할 만한 것이거나 훌륭하기에 그만큼 저작권이 높은 것은 거의 제외된 셈이다. 이런 을씨년스러운 결과와 태연한 풍조가 왜 빚어졌을까. 이런 출판의 향방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인기 뒤에 숨은 삼류 멜로와 권위라는 말에 가려진 진정한 탐구자의 언어를 어떻게 해야 되찾을 수 있을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결코 아니고, 그런 조바심이나 거저 얻으려는 초조한 허영심이 없는 독자가 늘어났을 때가 와야 하지 않을까. 세상사에서 알아보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수천 년부터 혀를 내둘렀던 사람도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185-186쪽
칼이 아니라 펜을 놀려 싸우는 평화로운 전쟁터는 지성과 감성이 다투는 터전이다. 거기에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주장하느라고 무리수를 두었던 애국적 필자들은 이제 인기가 시들하다. 교과서적인 명성을 날리던 저술도 죽을 쑤고 있다. 한때 박식한 사가들은 위증을 위한 증거 자료처럼 방대한 책을 써냈고, 이런 책들은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고 다국어로 번역되곤 했다. 그런데도 한 세기도 안 된 지금은 헐값에도 찾는 사람이 없이 비만증에 걸려 병상에 누운 거물처럼 서가에 처밖혀 있다. -208쪽
마을 아래로 흐르는 와이강江을 바라보면서 성채 주변에서 좌우로, 지그재그로 펼쳐지는 골목으로 한두 집은 서점, 그다음은 옷가게나 상점, 그다음 집은 '펍', 그다음은 '비 엔 비' 민박집, 그 이웃은 다시 서점....... 그런 식이다. 이렇게 반경 200여 미터 안에 서른 군데 가까운 서점이 빼곡하다. -282쪽
요크셔 테일스에서 컴브리아로 접어드는 산길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 엔디미온이 영원히 잠든 '달의 계곡'처럼 오전인데도 짙은 안개 속에 여전히 달빛이 교교하다. 어지럽게 굽이치며 돌아 내려가는 길가의 언덕은 제주도의 오름이 바람에 실려와 이곳에 내려앉기라도 한 듯 다소곳하다. 길을 따라 가다보니 랠프 윌도 에머슨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것도 멀리 있는 것보다 아름다움과 놀라움이 적지 않다는 데에 놀란다. 가까운 것이 먼 것을 해명한다. 물방울은 작은 바다이다. 한 사람 속에 모든 자연이 들어 있다."-291쪽
벽초부터 심상치 않다. 몸도 마음도 다운이다. 쌀쌀한 날씨지만 이곳저곳을 쏘다니고 있다. 몸을 혹사시키고 있다. 숙면을 하기 위해서다. 몇번씩 깨어나 밤잠을 설치고 있다. 무엇때문에, 누구때문에, 괜찮은 카페가 이렇게 많은 데 눈으로만 가봤다. [coffeenbook]에서는 그라인더에서 바로 갈아 내린 커피를 준다. 향과 맛이 좋다. 기분이 꿀꿀할 때는 오시지요~
*coffeenbook : 미래의 나의 북카페명
무엇인가에 길들여져 있다면 길들여진 시간만큼 노력하여 고쳐질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길들여져 있다면,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길들여져 있다면 그 사람과 헤어진 후에도 이미 길들여진 것이 좀처럼 쉽게 고쳐지기 힘들 것이다. 아마 이 [길들여지기]레스토랑은 '무엇인가' 보다는 '누군가'에게 길들여지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 거부할 수 없는 이곳의 평온함과 안락함은 이미 누군가의 손길에 길들여진 듯 내 심신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마치 헤어진 후에도 사랑하던 연인에게서 습관처럼 길들여졌던 손길을 놓을 수 없는 것처럼....-28쪽
카페 안의 풍경을 가만히 보면 같은 공간에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진행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방해하거나 엿듣지 않는다. 그들이 카페에서 보낸 시간이 훗날 인생의 변화를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카페는 새로운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행지와도 같다. 오스트리아 작가 알텐베르크가 카페에 대해 한 말중 이런 문구가 있다. "고민이 있으면 카페로 가자." 일상 속에서 존재하는 수많은 고민들, 오늘 하루만큼은 [카페 모넬린]에서 잠시 잊어버릴 수 있었다. -138쪽
가끔은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다. 무언가 고민이 있거나 머릿속이 복잡해서가 아니다. 공간의 침묵 속에서 차 한잔 마시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을 느끼고 싶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느끼고 싶을 뿐. 다만 그런 시간이 나의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해준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한적한 골목길에 소리없이 자리한 [머쉬룸]은 그런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카페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혼자 와서 즐기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고 멋스럽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기에 더욱 나만의 아지트로 삼고 싶다. -195쪽
2층으로 되어있는 이곳은 마치 옛날 초등학교 교실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추운 겨울 얼어붙은 손을 녹이던 난로. 짝꿍에게 넘어오지 말라며 선을 그었던 나무 책상, 그리고 가장 친근했던 나무의자가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게 만든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희미한 옛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꺄르르 웃으면서도 왜 웃는지 이유를 잘 모를 만큼 모든 게 마냥 즐겁기만 하던 어린시절, 이젠 성인이 된 지금, 그때만큼의 엔돌핀 넘치던 즐거움을 느끼는 게 어렵다. 세상이란 현실 앞에 너무 커버린 것일까? 그래서 즐거움에 이유를 찾는 것일까? 하지만 이곳은 심상치 않다. 어린 시절 느꼈던 즐거움이 되살아난 것 같다. 차를 마시는 사람들도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도 모두 즐겁다. 웃음이 넘쳐나는 [가배나루]사람들. 뭐가 그리도 즐거울까? 유리창가 자리에 앉아 즐겁게 일하는 그분들을 한동안 쳐다봤다. 왠지 그분들을 보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2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