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그 분노의 정체는 무엇일까? 분명 미군 장갑차 사건이나 광우병소 수입 같은 사안들은 분노할 만하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 계기들이다. 부조리하다고 판단하는 사안들이 있다고 그것이 곧바로 집단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중간 단계의 장치들이 필요하다. 가령 인터넷 공간에서 짧은 시간에 압축적이고 다층적으로 벌어진 격렬한 토론은 공분을 집단 행동으로 점화시키는 매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사회적인 사안들에 공적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스탠바이(stand by)'된 영혼의 상태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이런 공적 분노의 정체는 지구화 시대 그 광속의 변화가 지난 시절 영혼을 채웠던 진리, 신, 그 절대적인 것 들을 해체해버린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삶은 깊은 수렁에 빠지듯 헤어나올 수 없는 고도의 위험 사회의 늪으로 내던져졌는데, 그 위기를 견뎌낼 논리적인 내적 자기 준거가 사라진 것이다. 요컨대 사람들의 마음 상태는 존재론적 위기상황(ontological crisis)에 놓여 있다. -28-29쪽
(위의 글에 이어서) 하여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지난 시대의 그것보다 더 크기 때문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는 내적 해석 체계를 갖지 못했기에 다른 시대의 사람들보다 고통을 더 심각하게 체감하게 된다. -29쪽
종교적 엑스터시 상태에 이른 대중에게 교회 지도자들이 요구했던 것은 윤리였다. 그것은 자신의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했고, 또 교인이 아닌 자와 구별되는 선별된 존재임을 규정하는 징표를 뜻했다. 구체적인 갈등과 폭력은 죄, 곧 일반적 의미의 악의 형상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자신의 죄는 몸에 대한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 이러한 집단적인 자기 비하는 동시에 조선인이라는 존재의 문화적 터에 대한 증오로 연결된다. 이제 조선인의 삶은 신앙적 분리 실천의 대상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과 자신의 문화에 대한 배타성을 신앙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새로운 몸으로서 기독교적 존재와 미국적 근대성이 있다. -43쪽
앞에서 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신사참배는 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을 안겨주었다고 보았다. 그런데(수치심에 대한 감정사회학 연구들이 보여준 것처럼)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자기에 대한 수치심'은 '타자에 대한 증오심', 곧 '고강도의 반공주의'로 전환되었다. -61쪽
반명 미국의 전후 세대는 TV와 더불어 확산된 대중문와, 특히 소비사회의 개인화와 세속화의 풍조 속에서 기성세대와 격렬한 문화투쟁을 벌이면서 새로운 문화 현상을 정착시켜 갔다. 이것이 한국에 유입되었을 때 한국은 아직 소비사회가 활성화되지도 않았고, 개인화와 세속화의 풍조는 더더욱 낯선 것이었다. 이렇게 아직은 대중문화 활성화의 사회적 토대가 빈약했음에도, 1960년대 이후의 미국적 모던은 미국에 대한 선망과 겹치면서 맹렬하게 수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상품은 그 열렬한 소비자들에게 개인주의에 대한 낭만적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지향하는 것(개인주의)과 몸에 밴 것(군사적 집단주의)이 이질적으로 교합된 육체, 그것이 1970,80년대 청(소)년의 공통된 존재 상황이었다. 이와 같은 이질적인 것의 교합은 심각한 존재의 불안을 의미했다. 존재의 불안은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한다. 존재는 안정된 자기의식을 갈구하며 반응하는데, 이질적인 것의 교합으로 인한 의도하지 않은 몸의 반응은 종종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동력이 된다. 감정이론들이 주장하는, 생각이 행동화하는 조건이 이 시기 청(소)년의 존재상황에서부터 유추되는 것이다-96-97쪽
(위의 글에 이어서) 그리고 자신의 해동을 설명하려는 노력이 왕성하게 일어나고(경험의 언어화), 그것을 위해 새로운 지식, 새로운 문화를 게걸스럽게 모방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1980년대 청(소)년이 지적.이념적 모방에 더 적극적이었다면, 1970년대는 문화적 모방에 더 열을 올렸던 시대였다. 교회의 청(소)년들도 비슷한 체험을 했다. 매우 집단주의적인 사회 기조(외면성)에 순순히 동조하지 않는 '내면성'이 빠르게 발전했고, 기성세대와는 다른 신앙 운동을 발견하려는 운동이 급속하게 확산된다. 이러한 운동의 양상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나는 이것을 영토의 '내부화'와 '병행화', 그리고 '탈영토화'로 명명하고자 한다. -97쪽
전후 세대의 모던 체험에 대한 비판적 반성은 한국 사회에서 1980년대 이후 대단히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1970년대의 미국적 모던의 모방에서 시작된, 내가 세 가지로 요약한 변화의 시도(영토의 내부화, 병행화, 탈영토화)에 대해서 매우 수구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결과 개신교 교회는 한국 사회의 자기 쇄신 과정에서 매우 지체된 대표적 공간의 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특히 젊은 층의 호감을 잃어버리는 계기가 된다. -99쪽
여기에서 우리가 주지해야 할 것은 교회의 성장이 급격히 둔화하기 시작한 때가 민주화와 소비사회화라는 거대한 사회 변동의 계기가 일어나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는 그 추동의 주체로서 '시민의 등장'과 얽혀 있다. '시민'이란, 군부 권위주의 시대의 '국민'에 대비되는 존재로서, 국가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는 자의식 속에서 국가가 부여한 역사적 사명을 내면화한 수동적 주체가 '국민(people)'이라면, 국가와 거래하고 교섭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민주적 제도를 도모하는 주역이 바로 '시민(citizen)'이다. 하지만 시민이 낡은 제도의 벽을 뚫고 민주화를 지향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여 민주화의 시대는 권위주의적 잔재의 '청산'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한 시대다. 그리고 권위주의적 시대 감각을 가장 잘 체현하고 있던 교회는 바로 이 청산의 주요 표적이었다. 앞에서 본 것처럼 한국 교회는 미국적 신앙을 동일시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상상을 미국적 근대화에 대한 상상과 중첩시켰다. 이런 신앙이 한국인의 모던 체험을 대표하던 시대가 있었다. -140쪽
(위의 글에 이어서) 그런데 민주화의 시대, 반민주에 대한 청산의 대에 한국 교회는 새로운 모던 공간의 상징이 아니라, 퇴색된 모던의 장이었다. 이제 사람들에게 교회는 구태의연하고 시대착오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교회는 미국의 수호신을 추종하는 자들의 사모임에 지나지 않았다. 하여 시민층이 미국을 가슴에서 지워버린 것처럼, 미국의 신 또한 지워버렸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호감과 동경을 철회하기 시작했다. 소비사회로의 급격한 이행기에 부상한 존재는 '개인'이다. 자본은 숨겨진 개인의 취향을 개발하라고 속삭이며, 그 취향을 위해 시간을 개성 있게 활용하라고 충동질한다. 사적 욕망들이 분출했고, 그러한 욕망들이 한바탕 놀이를 벌이는 공간인 대중문화가 출현했다. 그러나 교회에게 대중문화는 하나의 공포였다......하여 시민들은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고, 교회에 투사했던 기대를 철회했다. 그리고 교회의 '성도'는 낡은 근대의 잔상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1990년대 초부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신이 추방되기 시작했다. -140-141쪽
앞서 말한 것처럼 학생 수는 급격히 증가했지만 신학의 질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교육을 받으며 배출된 교역자 후보생들은, 특히 1990년대 이후, 매우 열악한 포교 상황에서 교회 목회의 대열에 진입하게 된다. 특히 미자립 교회를 운영하는 중년의 교역자들은 고도로 발전하는 소비사회에서 거의 비소비계층으로 전락하는 가족들을 대면해야 한다. 이런 부담감 속에서 그들은 초조하게 교회 사역에 임한다. 교회의 성장 외에는 다른 가능성을 배우지 못한 그들은 오직 성장만을 위해 프로그램된 사역에 전념한다. -161쪽
실패는 어디에나 있다. 그런데 성장만이 유일한 가치인 사회에서 성장에 실패한 교역자는 단지 교역에 실패한 자가 아니다. 그는 신앙의 실패자이도 하며, 존재 자체의 실패자가 되기도 한다. 한국의 성장지상주의적 교회 체계에서 그런 생각에 빠져드는 교역자는 대단히 많다. 그런 점에서 성장지상주의를 지양하는 것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가장 근원적인 대책이다. -162쪽
목회는 시적 위임을 받은 돌봄의 행위다. 목회자는 그런 신념으로 돌봄의 서비스를 행하는 자이다. 한데 현재의 교회주의는 개종자에게 한정된 배타적 돌봄을 제도화했다. 그런 점에서 교회의 목회 사역자는 대개 사회 속에 만연한 고통에 무관심하다. 그들의 관심은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 모아 그들이 교회에 충성하게 하는 데만 쏠려 있다. 그런 이들에게는 오직 한정된 돌봄만이 목회의 내용이고 목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목회에 관한 새로운 신학적 논의들은, 목회를 사회의 고통을 대면하는 행위로 이해한다. 즉 배타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현대 신학의 기조다. 여기에는 개종이라는 행위가 전제되지 않는다. '교회의 배타적 경계를 넘어서는 사회적 돌봄'이 바로 목회인 것이다. -163-164쪽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가기계발적 긍정의 담론이 실패를 개인화하는 것처럼, 적극적 사고론의 신은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실패를 구조화하는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거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긍정의 담론이 시스템은 공정하다고 주장한다면, 긍정의 신학의 신은 그러한 시스템의 창조자이자 관리자다. 하여 시스템은 신의 법칙으로 운위되고 있다. 거기에서 탈락한 자는 채찍을 맞고 자본의 질서에 순응하는 태도를 배워야 하며 그러할 때 그들에게도 축복이 내릴것이라는 얘기다.-171쪽
단기 선교는 선교지의 필요보다는 선교사로 참여한 이들의 필요와 그들을 파송한 교회의 필요에 의해 수행된 것임을 의미한다. 물론 앞에서 보았듯이 한국의 해외 선교는 대체로 그런 의미를 갖지만, 단기 선교는 그런 점이 더욱 부각된다. 기간이 짧은 만큼 현지에서 그들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에 참가자가 선교 기구에 강한 귀속성을 갖게 되어 교회에 소홀해져서는 안 된다. 하여 선교 기관은 참가자의 후속 프로그램을 기획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교지에서 얻은 경험과 고양된 영성을 오직 자신의 교회에서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단기 선교는 선교라기보다는 교육에 가깝다. 일종의 극기훈련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그 여정이 험난하고 위험할수록 효과가 상승한다. 그것은 일종의 어드벤처 게임이다. 그렇기에 단기 선교를 위해 가장 선호되는 지역은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는 바로 이러한 구조화된 한국 교회의 선교 메커니즘에서 발생한, 충분히 있을 법한 사고였던 것이다.-184쪽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시대의 지배자들(혹은 지배체제)에게서 그 신은 곧 자본이었다. 게다가 앞에서 보았듯이 대형 교회의 신도 자본과 점점 동일한 존재처럼 되고 있다. 한데 이 신은 불안을 해소하는 신이 아니라 불안을 조장하는 신이다. 그리고 승자만 독식하도록 베푸는 축복의 신이다. 하여 불안해하는 대중은 그 신에 감성적인 의지를 할 수 없다. 따라서 대중에게는 다른 신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종교적이지만, 종교심을 흡수할 신앙 제도로 개신교는 선택되지 못하는 것이다. 자본 친화적인 개신교의 신은 실패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종교적 시민을 향해 귀환할 수 없는 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시대에 종교적 시민으로 등장한 대중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들에게 귀환한 신은 어떤 존재인가? 이 책의 들어가는 글에서 나는 대중의 종교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촛불시위를 얘기했다. 그것은 일종의 대중의 종교적 의례의 하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이 종교적 의례들은 순간적이다. 그래서 좀처럼 기억이 누적되지 않는다. 그것은 성찰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5-206쪽
(위의 글에 이어서) 집합적인 감정적 분출을 통해 참여자들에게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이들 의례들은 그런 점에서 종교의 효과들은 넘치는데 종교적 성찰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때문에 그 의례들은 때로 대단히 파괴적인 공격성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감성적 열정이 넘치지만, 성찰이 결핍된 종교는 위험하다......하여 오늘 우리는, 종교적 시민들의 갈망에 따라 신들의 귀환이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음에도, 특별히 성찰의 종교성, 집단적 경험과 기억 나눔의 종교성을 필요로 한다. 대형 교회는 그런 점에서 시민적 종교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퇴행적이고 권력 지향적이며 반성찰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종교적 사회에서 과연 어떤 방식으로 대안적인 종교 제도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206쪽
많은 작은 교회들은 도처에서 저소득층 어린이방을 운영한다든가 노숙자 생활공동체를 운영한다든가 혹은 아웃사이더 노선의 신학을 교회화하는 등 미시적 단위에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선교방식은 교회의 규모를 키우는 데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아니 많은 경우 이런 활동이 교회의 양적 팽창을 가로막곤 한다. 왜냐하면 그런 타자화된 이들을 돌보는 일에 목회자가 힘을 기울이다 보면 중산층 교인들을 소홀히 하기 마련이고 오히려 교인들에게 이웃을 위한 과제만 잔뜩 부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대중적인 기획이 아닌 것이다. 아여 이들 교회들은 기로에 놓였다. '작음'을 추구하며 그러한 활동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작은데도 큰 것에 대한 열망에 찌들어 있는 이른바 '짝퉁 대형 교회'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212쪽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한국 개신교의 주류 전통 밖에 있는 많은 교회들은, 주류 교회가 적대시하고 배제했던 바로 그들과 함께해온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장애인과 한 공동체를 이루며 신앙 공동체이자 생활 공동체를 이뤄왔던 교회, 동성애자들의 교회, 이주노동자들의 교회, 탈북자들의 교회, 노숙인들의 교회, 기지촌 여성들과 함께하는 교회, 빈민들과 함께하는 교회, 무의탁 노인들과 함께하는 교회 등등. 그리고 딱히 교회를 표방하지 않았지만 그런 형태의 타자와 함께하는 신앙 공동체들도 많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의 불편한 타자들과 삶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신앙을 나누는 기독교도들의 모임은 사회 구석구석까지 두루 퍼져 있다. 어떤 종교, 어떤 종파, 어떤 사회 집단에서도 이렇게 타자성을 적극적으로 내재화한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 개신교의 숨겨진 전통이다. 이들 공동체들 대다수는 주류 교회들의 외면과 신학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끈질기게 자생해왔다.-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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