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품절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은 우리를 붙들어, 우리에게 형태를 부여하낟. 그러나 시간을 정말로 잘 안다고 느겼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금 나는 시간이 구부러지고 접힌다거나, 평행우주 같은 다른 형태로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이론적인 애길 하는 게 아니다. 그럴 리가, 나는 일상적인, 매일매일의, 우리가 탁상시계와 손목시계를 보며 째깍째깍 찰칵찰칵 규칙적으로 흘러감을 확인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초침만큼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 게 또 있을까. 하지만 굳이 시간의 유연성을 깨닫고 싶다면, 약간의 여흥이나 고통만으로 충분하다. 시간에 박차를 가하는 감정이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더디게 하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가끔, 시간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2쪽

"사실, 책임을 전가한다는 건 완전한 회피가 아닐까요? 우린 한 개인을 탓하고 싶어하죠. 그래야 모두 사면을 받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개인을 사면하기 위해 역사의 전개를 탓하거나, 그도 아니면 최다 무정부적인 카오스 상태 탓이라 해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제 생각엔 지금이나 그때나 개인의 책임이라는 연쇄사슬이 이어져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 책임의 고리 하나하나는 모두 불가피한 것이었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모두를 비난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사슬이 긴 건 아니죠. 하지만 물론, 책임소재를 묻고자 하는 저의 바람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ㄷ한 공정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제 사고방식의 반영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중점적인 문제 아닌가요. 선생님? 주관적 의문 대 객관적 해석의 대치, 우리 앞에 제시된 역사의 한 단면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가가 해석한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26-27쪽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101쪽

그러나 언젠가부터 향수鄕愁라는 것, 그리고 내가 그 때문에 괴로운 건지 아닌지 하는 문제로 마음을 뒤척이게 되었다. 확실히 나는 유년시절을 채운 자질구레한 기억 때문에 허우적대는 인간은 아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진실이 아니었던 것-옛 학교에 대한 사랑 등등-때문에 나 자신을 감상적으로 기만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향수라는 것이 뜨거웠던 감정들을 강하게 회고하는 것, 이제는 우리의 삶에 존재하지 않는 감정들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을 의미한다면, 나 자신도 예외일 수 없음을 인정한다. -142쪽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서글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을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162쪽

우리의 기억은, 아니 우리가 기억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얼마나 자주 우리를 기만하고 농락하는가. 그런 기억에 의존해 진리를 만들어 가는 우리의 이성이란 얼마나 얄팍하고 안이한가. 올더스 헉슬리는 "각자의 기억은 그의 사적인 문학"이라고 말했다.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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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으로 보는 많은 매체 속에서 단연 종이책을 주장하는 글을 읽으며, 예전에 잠실구장에서 야구 본 기억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안타를 쳤는데 순식간에 획 지나갔고 다음 타자가 나왔다. 그 순간 잠시 기다렸다. 다시 그 장면이 나오기를...  텔레비전의 야구중계와 착각을 한 것이다... 영상매체는 이와 같다. 내가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 책읽기는 내가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볼 수 있고 미리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종이책을 읽어야 한다. 종이책에 동의한다. 책 냄새, 책장 넘기는 소리, 손끝에 닿는 감촉, 오감을 동원해야 가능한 종이책이다. 그 느낌을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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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읽기를 권함 - 우리시대 어느 간서치가 들려주는 책을 읽는 이유
김무곤 지음 / 더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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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보다 중요한 일은 얼마든지 있다. 강아지와 함께 산보하는 일, 가족들과 바닷가에 가서 연을 날리는 일,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일. 이런 일이 있으면 책 읽기를 그만두고 그 일을 하게 하자. 우리는 책 읽기 위해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살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다. 그것을 혼동하면 안 된다. -36쪽

이제 곧 영상매체가 인쇄매체를 완전 대체할 것인가? 대답은 '아니오'가 아니라 '아니 되오'다. 활자매체를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어 온 것을 영상매체에게 모두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활자매체가 식물성이라면 영상매체는 동물성이다. 움직이는 영상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삼키려고 의도한다. 읽다가 생각에 잠길 수 없으며, 의심나면 다시 한 번 돌아가서 확인하기도 쉽지 않고, 읽다가 덮어버리기도 어렵다. 책을 읽을 때는 사람이 주인이다. 읽으려는 의도와 읽는 속도, 그만두는 행위를 사람이 스스로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상매체는 사람보다 더 힘이 세고, 사람보다 더 빨라서 사람을 종종 압도한다. 물론 편하기는 하다. 영상의 속도에 감정을 맞춰두면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내는 일을 남의 의도에 내맡기기 쉽다. 책 읽는 일이 사람과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참으로 중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60-61쪽

사람은 스스로 책을 고르고, 책장을 연다. 또 스스로 활자를 따라 눈동자를 굴리고, 때로 앞장으로 되돌아가려고 손가락을 움직인다. 또는 읽다가 팍 덮어버리거나 획 던져버린다. 이 모두 사람이 스스로 하는 일이다. 따라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일보다 귀찮고 힘이 드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래서 그만큼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책을 읽는 일은 사람이 스스로의 몸과 마으므이 주인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61쪽

그들은 왜 읽지 않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게씾만, 가장 큰 이유는 책을 읽는 일과, 성공하고 돈을 버는 일이 관계가 적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성찰되고 정제되고 검증받은 지식은 무시되고, 설익은 사상, 자극적인 발언, 돌출적인 생각들이 주목받는다. -71쪽

그러므로 지고(至高)의 독서는 다시 읽기(rereading)다. 소년이 청년이 되고, 그 청년이 중년이 되어 소년 시절의 책을 읽는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만 해도 그렇다. 나는 중학교 다닐 때부터 그 책을 지금까지 열 번즘 읽었다. 그때마다 가슴에 와닿는 구절은 매번 달랐다. 책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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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책방'은 엄마, 딸, 며느리, 아내의 역할을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책읽기를 통하여 함께 나누고 연대하는 이야기다. 음, 뭐랄까... 여자의, 여성의 이야기 같은데, 엄마의로 결론 났다. 조금ooo 한게 있다. 읽고 싶은 책들이 많다. 

-요즘 아들을 가까이 보는 시간이 많다. 많이 힘들었을 건데, 대견하다. 한편 미안하다. 이제와서, 엄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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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책방 -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고단하고 외로운 당신을 위한 독서 처방전
구정은.김성리.윤지영.홍선영 지음 / 아고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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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문제는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게 만드는 현실, 아이와의 상호관계를 처음부터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이다. 정작 낳아놓고 나면 엄마와 아이를 동시에 내리눌러서 그 아름다운 관계가 성공을 향한 힘겨운 사다리 타기로 변하게 만드는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위력!-34쪽

사람들은 대개 여성학이나 여성운동을 여성의 상황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사회문제, 사회 자체를 여성의 눈으로 보는 것이 여성학이다.-51쪽

같은 여성이면서도 삶의 양태가 다른 것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여자와 어머니의 대답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본능에 충실한 이기심이 여자의 얼굴이라면, 본능을 억누른 이타적 사랑이 어머니의 얼굴이다.-93쪽

제대로 틀을 갖춘 아동 개념도, 교육 체제에 대한 역사적 통찰도 없는 채로 시험 제도만 들쑤시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교육은 결국 사회. 문화적 전통과 같이 가는 것이고, 사회 전체에 대한 통찰력 있는 접근 속에서 제도를 다듬어야 한다는 것.-113쪽

'보시'라는 말이 있다. 자비의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조건없이 베풀었을 때 느끼는 극한의 이타 정신을 의미한다. 누구나 내 아이가 세상에 소금이 되길 바라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가? 마음속에 가득한 상처와 외부의 편견으로 괴로워하는 그 아이들의 슬픔에 보시를 하게 해보면 어떨까? 내 아이를 마음이 아픈 아이들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따뜻한 사람으로 키울 수 있는 아름다운 방법이 될 것이다. -176쪽

길들인다는 것은 내 방식대로 상대를 움직인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는 공감이 없는 소통의 방식이 될 수 있다. 공감은 내가 너를 알고 너는 나를 알아서 우리가 되는 감정 상태이므로 공감하면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공감이 없으므로 소통이 힘드고 자연적으로 상대를 나의 의도대로 움직이기 위해 길들이는 것이다. 이 길들이기에서 우리는 소통불능의 늪에 빠진다. 그런데 공감하고 소통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 시간이 문제다. 무엇이든지 빠르게 진행되는 현대 사회에서 언제 춤과 노래로 신을 부르고 신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많은 것들이 즉시 전송되는 이 시대에 굳이 님의 눈썹을 닮은 달을 보면서 님을 그리워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공감 없는 소통을 하면 살고 있다. -184쪽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상대의 말을 들어주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고 그의 생각에 어느 정도의 공감을 가져야 하는데, 그 말을 끝까지 듣는 것 자체가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가족일 때에는 더욱더 어려워진다. 그냥 듣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게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공동으로 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인내심을 쉽게 바닥나게 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204쪽

포기하고 자제하는 마음만 있다면 유쾌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방법은 도처에 있다. 그런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어릴 때부터 의지를 다지고 학업을 통해 시야를 넓힐 기회를 가졌던 사람들에게서만 그런 힘이 나온다. -253쪽

아이들의 노동이 그저 착취에 불과한 노예 노동인가, 아니면 미래를 위한 바탕이 되는 노동인가를 가르는 것은 그 내용과 질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문제는 아이들과 가족들,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삶과도 연결돼 있다.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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